피해자 댜오아이칭 1976.3~1996.1 |
생전 모습 |
1. 개요
1996년 중국 장쑤성 난징시에서 있었던 전대미문의 토막 살인 사건. 별별 사건이 다 일어나는 중국이라지만 이 사건은 오원춘보다 더한 잔학함으로 대륙 전체를 충격에 빠트린 사건이었다. 정확한 피살 시간은 확인할 수 없어 시신을 발견한 1월 19일을 따 '난징 1.19 사건', '난징대학 1.19 사건'이라고도 불린다.[1]피해자는 1977년 3월 11일에 태어나 난징대학에 다니던 1학년 댜오아이칭(刁爱青, 조애청)으로, 농촌에서 갓 올라온 대학생이었다. 난징시으로 올라오기 전 그녀와 가까이 지냈던 고향 친구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키 165cm에 쌍꺼풀이 없고 말을 빠르게 하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고 한다.
2. 사건 일지
1996년 1월 10일 밤 룸메이트와 함께 학교로부터 징계를 받게 되어 우울한 마음으로 기숙사에 향하던 댜오아이칭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9일이 지난 1월 19일 큰 눈이 내린 다음 날 한 청소부가 학교 근처의 도로에서 비닐봉지 하나를 발견하였는데 봉지를 열어 보자 안에는 조각나고 익혀진 500여 점의 고기 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청소부는 그 조각들을 씻다가 손가락 세 점이 있는 것을 보고 놀라 경찰에 신고하였으며 비닐 봉지 안의 덩어리들이 댜오아이칭의 시신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후 경찰의 추가적인 조사 결과 손가락 이외에도 다른 신체 부위들이 절단된 채 발견되었다.
경찰 조사 결과 피의자는 범행 당시 댜오아이칭을 살해하고 시신을 뜨거운 물에 넣어 익힌 다음 2000여 조각으로 토막 살인 한 것으로 밝혀졌다. 시신을 매우 잘게 분해했지만 절단된 표면이 깨끗하고 조각의 크기가 일정한 것으로 보아 경찰은 피의자가 칼을 쓰는 데 전문적인 기술을 갖춘 의료직 종사자나 정육업, 도축업자로 추측하였다.
모두를 놀라게 한 충격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에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펼쳤다. 난징 경찰은 난징 대학교에 태스크포스를 세우고 사건 현장 주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을 수사하였는데 모든 난징대학 학생들이 그날의 알리바이를 대야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필사적인 수사에도 불구하고 범인은 공소시효가 지난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2]
3. 의료 실험의 희생양이었나?
희한한 사항으로 댜오아이칭이 발견된 1월 19일에 중국 언론이 주목할 만한 사건이 두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댜오아이칭(당시는 신원미상)의 시신이 토막으로 발견되었다는 소식, 두 번째는 난징 종합병원에서 아시아 최초로 소장 이식을 성공했다는 이야기였다. 때문에 중화권에는 이 사건과 난징 종합병원이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이 퍼졌다.댜오아이칭이 어떻게 납치되고 살해되었는지 알 도리가 없지만 그녀의 시신에 가해진 아주 잔혹한 가해를 보면 어지간한 정신의 사람으로선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라는 추론이 많다. 상술한 대로 의료직 종사자가 범인이라고 한다면 이런 가설에 매우 부합한다는 것이다.[3] 즉, 소장 이식을 위한 의료 실험을 위해 병원 측에서 그녀를 납치한 후 그녀의 장기를 빼내 이식했거나 그녀의 장기로 장기이식 실험을 한 뒤 소장 이식이 성공한 날에 그녀의 시신을 유기했다는 것이 이 의료실험설의 주장이다.
몇몇 반 중국공산당 운동가들은 그녀가 '단순한 병원의 납치가 아닌 중국 정부의 비밀조직의 납치를 당해 장기를 절취당하고 증거인멸을 위해 잔혹하게 토막살인당했을 것'이라는 음모론스러운 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런데 이 음모론들의 문제는 소장 이식을 위해서 사람을 납치할 필요가 없이 그냥 돈을 주는 식으로 기증자를 모집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얼마든지 피실험자를 구할 수 있는데[4] 굳이 납치를 해서 이식 수술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사체를 매장하거나 소각시설 등을 통해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는데 토막낸 뒤 봉지에 담아 유기해 구태여 당국의 수사를 받을 필요도 없으며 소장 이식이 성공한 날에 시신을 버려 세간의 관심을 끄는 일을 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만약 이런 일이 실제로 발생했다면 관련자들은 비밀리에 일을 처리하지, 세간의 관심과 당국의 수사를 초래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 정부의 비밀조직 관련설 역시 위와 같은 비판이 가능하다.
4. 기타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라 지금까지도 중화권 미디어에서 많이 다뤄지는 사건이다.사건이 일어난 지 12년이 지난 2008년 6월 24일에 이 사건을 크게 다룬 난징 신문 기사.
비슷한 시기에 대만에서도 잔혹도에서 쌍벽을 이룬 바이샤오옌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쪽은 미제사건은 아니지만 경찰관계자의 실수 및 기레기의 행태로 일어난 살인 사건이다.
범행 수법이 16년 뒤인인 2012년 수원에서 벌어진 수원 토막 살인 사건(일명 오원춘 사건)과 상당히 비슷하다. 20대 여성을 납치하여 300 토막을 내고 비닐봉지에 담아 유기한 점이 유사하다.
구글에서 피해자의 이름을 검색하면 토막 살인을 당한 시신이 무삭제로 나오므로 되도록이면 검색하지 않는 것이 좋다.[5]
[1] 바이두 백과에는 남대(난징대학의 준말) 살인사건으로 등록되어 있다. #[2] 다만 중국에선 사형에 준하는 범죄에 한해서 공소시효 기간인 20년이 지나도 최고인민검찰원의 허가 아래 기소가 가능하다. 범인을 붙잡는 게 문제이다.[3] 도축업자들도 가축들을 다루기 때문에 사람에게 칼을 댈 수 있는 멘탈을 지닐 직업은 사실상 의료계열 종사자밖에 없다는 추측이다.[4] 중국은 사형수들의 장기를 적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5] 만약 찾아서 볼 생각이라면 시체가 합성이라 생각될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어 있으므로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으니 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