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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18:59:56

김하규



1. 개요2. 생애3.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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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군인, 정치인.

2. 생애

1938년 5월 29일에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해방 후 어린 나이에 조선인민군에 입대하였고 소위 시절 순화강치수공사와 만경대유원지건설공사에 참여해서 열심히 일한 공로로 1964년 로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이후 대대장, 연대장을 거쳐 1970년대에 포병사령관으로 재임하면서 김정일의 군부 장악을 도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6년 11월, 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인민군 부총참모장에 임명, 1988년 7월, 친선 대표단장으로 쿠바를 다녀왔다. 로력영웅 칭호 및 김일성훈장을 받은 바가 있다. 김정일의 군인 측근만이 받을 수 있는 216-9999 벤츠도 받았었다.

1991년 12월 24일, 조선로동당 6기 19중전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보선되었다. 1992년 4월 23일, 최고사령관 명령 0024호에 따라 상장으로 진급하였다.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 1995년 7월, 김봉률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1995년 10월 8일, 최고사령관 명령 0065호에 따라 현철해, 김병률과 함께 대장으로 진급하였다. 1997년 2월, 최광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8년 7월,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고 98년까지 김정일의 행사를 열심히 따라다녔으나 1998년 11월 22일, 조선인민군 제27차 군무자예술축전을 김정일과 같이 관람한 이후로 동정보도가 끊겼으며 2003년,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서도 탈락했다. 사망 직후 부고가 발표된 점, 7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이 선군혁명전우로 언급해준 점을 보아 숙청된 것은 아니고 건강 문제 등으로 퇴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2006년 10월 9일 15시에 68세를 일기로 병사했다. 당중앙위원회, 당중앙군사위원회는 연명으로 부고를 발표, "동지는 오랜 기간 인민군대의 중요한 직책에서 사업하면서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고 당의 선군정치, 선군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 인민군대의 불패의 위력을 높이 떨치고 사회주의 조국을 굳건히 보위하는데 적극 공헌하였다. (...) 동지는 우리 당의 주체사상, 선군사상으로 튼튼하게 무장하고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우리 당에 무한히 충실하였으며 주체혁명위업의 승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쳤다."라고 치사했다. 이후 시신은 조선인민군 장령, 로력영웅 직함으로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이후 2016년 5월, 7차 당대회 개회사에서 김정은은 '혁명무력의 강화발전을 위한 투쟁에서 영웅적 위훈을 세운 귀중한 선군혁명전우'로 조명록, 김광진, 김두남, 전재선, 윤치호, 리동춘, 리진수, 심창완과 함께 김하규를 언급하였다.

3.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