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조선로동당 민방위부장 김성규 金成奎 | Kim Seon Ggyu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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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33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
사망 | 2010년 8월 24일 (77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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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군인, 정치인이다. 최종보직은 민방위부장으로 추정된다.2. 생애
북한에서 발표한 부고를 보면 6.25 전쟁에 참여하였다. 이후 인민군 중장을 거쳐 1990년 1월, 6기 17차전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보선되었다. 1990년 4월,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1992년 4월에는 인민군 상장으로 진급하였다.1994년 고난의 행군 시기, 그의 부고 내용에 따르면 인민군 대연합부대장 관직으로 김정일의 령도를 받들었고 사회주의를 수호하는것에 공헌했다 카더라.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이 '대련합부대장'은 제8군단장을 의미한다.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을 지냈고 1996년, 김정일의 리정철 소속부대 군인들과 지휘관들에 대한 감사 전달모임에 참석했고 2년뒤인 1997년에는 인민군 대장으로 진급하였다. 1997년 2월, 최광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8년 7월,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재선되었으며 1999년 2월, 조선인민군 중대장대회 폐막식 참석에 참석했다. 2000년 10월, 강원도 세포군 내평발전소 준공식에 참석했고 2001년 4월에는 김정일 현지지도 과업관철을 위한 함경남도 내 근로자들 궐기모임에 참석했다. 2002년 5월, 김정일이 해군사령부 시찰을 할때 같이 동행했다. 그러나 뭔 이유에서인진 몰라도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거되지 못하고 탈락하였다.
2008년 8월, 평양방송에 김정일에 대한 연속실담 방송에 등장했고 2009년 1월, 로농적위군 창건 50돌 중앙보고대회에서 보고를 맡았다. 같은해 10월에는 박성철 장의위원을 지내더니 2009년 1월, 갑자기 당 부장직에 임명되었다.[1] 같은해 3월에는 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재선되었다. 2009년 4월, 홍성남 장의위원을 지냈고 2010년 4월, 김중린 장의위원을 지낸게 마지막 공식활동이였고 같은해 8월 24일, 페암으로 77세의 나이에 사망하였다.
사망 이후 당중앙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부고를 발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인 당중앙위원회 부장 김성규가 불치의 병(페암)으로 24일 77살을 일기로 서거하였다. 부고에 의하면 일제식민지통치시기 빈농민의 가정에서 태여난 그는 해방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품속에서 유능한 일군으로 자라나 당과 혁명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였다. 그는 조국해방전쟁시기 손에 총을 잡고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용감히 싸웠으며 오랜 기간 인민군대의 중요한 초소에서 혁명무력을 무적필승의 백두산혁명강군으로 강화발전시키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였다. 그는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 전선중부 인민군대련합부대의 지휘관으로서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선군령도를 높이 받들고 조국의 전초선을 철벽으로 지키며 우리 식 사회주의를 굳건히 수호하는데 공헌하였다. 그는 최근년간 당중앙위원회의 책임적인 위치에서 사업하면서 민간무력의 전투력을 강화하며 전인민적, 전국가적방위체계를 튼튼히 세우기 위하여 온갖 지혜와 정열을 다 바치였다. 조국과 혁명앞에 세운 공로로 하여 그는 김일성훈장과 로력영웅칭호를 비롯한 많은 국가표창을 받았다."라고 그에 대해 좋게 말해주었다.
이후 김정일이 그에게 화환을 보냈으며 그의 후임으로는 오일정이 민방위부장에 신속히 임명되었다.
3. 참고문헌
- 통일부 북한정보포털
- NK조선
[1] 그의 부고 내용을 보면, 당중앙위원회 민방위부장을 지낸걸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