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320><tablebordercolor=#013e7d><tablebgcolor=#013e7d> | 한국마사회 역대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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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나명균 | 2대 서정유 | 3대 김안기 | 4대 이재간 | 5대 김우경 | |
6대 김성광 | 7대 김영근 | 8대 이재간 | 9대 한영주 | 10대 김덕승 | |
11대 최재명 | 12대 김동하 | 13대 오용운 | 14대 임지순 | 15대 이건영 | |
16대 유승국 | 17대 성용욱 | 18대 오경의 | 19대 김봉조 | 20대 오영우 | |
21대 서생현 | 22대 윤영호 | 23대 박창정 | 24대 이우재 | 25대 김광원 | |
26대 장태평 | 27대 현명관 | 28대 이양호 | 29대 김낙순 | 30대 김우남 | |
31대 정기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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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24년 2월 20일~1987년 7월 17일광복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제10대 마사회장. 1982년 건국훈장 대통령표창 수여.
2. 생애
1924년 2월 20일 평안북도 용천군 신도섬 출생. 1945년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 북평, 천진 현지 공작원으로 활동하였다. 해방 후에는 베이징에서 첩보, 보안 임무를 맡았고, 당시 박정희 등과 연이 닿았다 한다.당시 증언 1947년 중국군 52경비사령부 소좌(소령)[1]으로 근무하다가 귀국하였다.광복 후, 대구에서 사업을 하다가 박정희 소장과 연이 닿아 5.16 군사정변에 참여하였다. 쿠데타 전 자금 모집책으로 활동했으나 1961년 5월 12일 방첩대에 체포되었으나, 허위진술을 하여 쿠데타 정보를 누설하지 않았다. 다만 당시 부장검사의 증언에 따르면 체포 직후 모든 것을 밝혔으나 바로 체포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1962년 한국산업진흥회장으로 국제산업박람회를 개최하였다. 1963년 한국마사회 회장으로 취임해 1970년까지 제임하였다. 그 후 한일식품공업 사장, 국일대반점 사장 등 개인 사업을 운영하였고, 1982년 건국훈장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1987년 7월 17일 별세하였다.
[1] 오기나 혼동으로 보이는데, 당시 국부군의 영관급 계급은 교관급이란 호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