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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30 04:09:04

길도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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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농구인
<colbgcolor=#eeeeee,#191919> 길도익
吉鍍翼
출생 1976년 5월 7일 ([age(1976-05-07)]세)
대전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해평 길씨
종교 불교
신체 190cm|체중 88kg
포지션 농구선수(포워드 / 은퇴)
학력 대전동명중학교 (졸업)
대전고등학교 (졸업)
명지대학교 (체육학 / 학사)
프로 입단 1999년 드래프트 (1라운드 10순위, 대전 현대)
병역 국군체육부대 농구단 (2001~2003)
소속 대전 현대 걸리버스 (1999~2000)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2000~2001)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 (2003)
창원 LG 세이커스 (2003~2004)
창원 LG 세이커스 (2004~2005)

1. 개요2. 선수 이전3.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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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농구 선수였다. 과감한 3점슛이 주무기였지만 스피드가 부족했고 높은 자세 때문에 안정감이 떨어졌다.

2. 선수 이전

중학교 때 육상선수로 전국대회에 출전한 경력도 있었지만, 대전고등학교로 진학하자마자 농구를 늦게 시작했다. 제18회 협회장기에서 조상현, 조동현, 황성인, 구본근 등과 함께 5년만에 정상에 올렸다.

그 후, 진성호 감독의 부름을 받고 명지대학교로 진학해 육상 경험을 살려 다진 체력과 강도 높은 훈련을 하며 유망주로 주목받았다.[1] 특히 4학년 때 1998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 패자 준결승전에서 동기 장영재, 1년 후배 이병석 등과 함께 맹활약하며 한양대를 꺾고 팀 최초로 결승진출을 이끌었다.

3. 선수 시절

1999년 드래프트에서 고향팀인 대전 현대 걸리버스에 지명되었지만, 같은 포지션 층이 두터워 출전할 기회가 많지 않았고, 권종오와 빅딜 트레이드된 부산 기아에서도 마찬가지로 별다른 활약 없이 시즌 종료 후 2년간 군에 전념했다.

제대 후, 울산 모비스로 이적한 뒤에도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시즌 도중 정종선과 트레이드로 온 창원 LG에서도 1경기도 뛰지 못했고, 2004-2005 시즌 정진영과 1:1 트레이드로 다시 친정팀 창원 LG 세이커스에 복귀 후에도 벤치에서만 지켜보다가 시즌이 끝난 후 은퇴했다.


[1] 여담으로 진성호 감독은 강한 훈련 그리고 체벌로도 유명한 감독이었다. 조성원이 농구부를 이탈했다가 겨우 설득시켜서 돌아왔는데 얼마 후에 매타작이 다시 시작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