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사별한 것으로 추정되며, 남편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되지 않는다. 어린 딸 마야를 데리고 중국집 입주점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일을 시켜도 무엇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마야를 시도때도 없이 구박하고, 마야가 학예회에서 바보 역할을 맡았다는 것을 알자 창피하다는 생각에 마야의 첫 연극을 보러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 무대에 선 마야를 울리기도 했다.[1]
마야가 연극을 하겠다고 집을 나가 츠키카게 치구사의 극단에 들어가겠다고 하자 적극 반대하며, 이에 마야는 결국 가출한다.
마야의 가출 후 마야를 찾아 극단 츠키카게를 찾아와 화를 내고, 츠키카게 치구사가 당신 딸은 재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재능을 죽이고 있다며 비난하며 마야를 내주지 않자 펄펄 끓는 물을 마야에게 덮어씌우지만 여배우에게 얼굴은 생명이라며 마야 대신 끓는 물을 뒤집어쓴 치구사를 보고 화를 내며 나와버린다. 이후 후회했는지 마야의 옷가지와 물품들을 소포로 보내고 못난 자기 대신 마야를 잘 돌봐달라며 부탁하는 편지를 쓰지만, 치구사는 과거의 인연은 끊어버려야 한다며[2] 치구사가 모두 태워버렸고, 집을 떠나온 후 어머니로부터 아무 소식도 전해듣지 못한 마야는 막연히 어머니가 화가 났다고 추측하고 집에 연락을 하지 않게 된다.
마야를 떠나보내고 혼자 중국집에 남아있다가 폐병에 걸리자 결국 중국집을 떠나게 된다. 이후 혼자 여기저기 전전하다가 영양실조에 걸려 눈까지 먼 상태로 외딴 요양원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하야미 마스미의 계략이었다. 연예계에 데뷔한 마야의 유명세를 높이기 위해 헤어졌던 어머니와 상봉한다는 이벤트를 인위적으로 짜냈던 것. 이 무렵 <하늘의 빛>에서 사토코 역을 맡아 대인기를 얻으며 성공한 마야가 어머니를 찾지만 행방이 묘연해진 상태였는데[3], 그게 마스미 때문이었던 것. 물론 마스미는 영원히 어머니를 감금해 둘 생각은 없었고, 가을에 마야가 주연하는 영화 샹그릴라가 개봉하면 그 때에 맞춰서 어머니를 만나게 해 줄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요양원 관계자들의 대략적인 이야기만 엿들은 하루는 누군가 자신을 감금하고 있다는 사실과 마야가 성공했다는 것만 막연하게 파악한 채 요양원을 탈출한다.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비를 쫄딱 맞고 지갑도 잃어버리고 차에 치이기까지 하는 등 어려움 끝에 가까스로 도쿄에 도달해[4] 결국 어찌어찌 들어간 영화관에서[5] 마야가 나온 영화 '하얀 정글'에서 연기하는 마야의 목소리를 들으며 기뻐하다가, 교통사고로 인한 뇌일혈과 병약해진 몸으로 인해 객사하고 만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딸이 대스타가 된 것을 실감하고 죽기 전에 몹시 감격하고 기뻐했다는 점일까...
어릴 때 비록 마야를 구박하기는 했지만 학대하거나 방치한 것은 아니었으며[6], 딸이 재능이 없는 것 + 쓸데없는 연기에나 관심있는 점 등을 걱정한 것이 그렇게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마야는 구박받았다는 이야기도 자주 하지만 어머니 하루와 함께 유원지에 자주 갔었다는 이야기도 한 적이 있으며, 하루와 함께했던 좋은 추억들을 되새기기도 했다.
마야가 연기를 아예 못했던 사건은 어머니의 죽음이 유일하며, 돌의 미소 등 어머니 때문에 흔들렸던 적은 이루 셀 수가 없다.[7]
하루의 비참한 죽음 후 벌어진 이런저런 사건들로 인해 마야는 연예계에서 퇴출당하고 연극도 전혀 못하게 되는 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마스미가 자신의 어머니를 죽였다는 생각에 그를 철천지 원수로 여기게 된다. 마스미 역시 마야를 향한 사랑을 망설이게 되는 큰 이유[8] 중 하나가 되며 이후 마스미는 하루의 죽음을 언급할 때마다 급정색하게 된다. 여유만만하게 츠키카게 치구사와 살벌한 농담을 하다가도 "당신은 마야의 어머니를 죽게 만든 사람이니 (마야는)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텐데?"라는 말 한마디에 바로 웃음기가 싹 사라진다.
[1] 사실 마야의 학예회 연극을 보러가지 않은 것은 창피해서가 아닌, 남들이 바보를 연기하는 자신의 딸을 비웃을 것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 도시락도 다 준비했지만 그마저도 대신 전해주기로 한 주인집 딸이 딴 길로 새버리는 바람에 전해지지 않았다.[2] 정확히는 돌아갈 곳이 없어야 막다른 골목에서도 오로지 연기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3] 마야에 대해 쏟아지는 기사들을 묘사하는 장면 중에 '생이별한 어머니, 어디 계세요!'라는 제목도 있다.[4] r24에서는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마야와 스쳐 지나갔다고 돼 있었는데 잘못이다.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 얘기이다.[5] 지나가던 사람들이 '기타지마 마야가 나오는 영화'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듣고, 제발 거기에 좀 데려다 달라며 무작정 붙잡고 애원했다.[6] 사실 하루가 일상적으로 딸에게 날린 언어 폭력은 현대의 시선으로 보자면 엄연한 학대가 맞긴하다. 그러나 이 만화가 연재된 때가 1970년대였다는 사실도 감안해야 한다.[7] 역할에 몰입을 못하거나 지장이 있었던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못했던 경우. 심지어 이 뒤에 연기를 하고 싶어도 연기가 안 나오는 지경에 이르며, 어지간하면 연기가 하고 싶다고 제 발로 기어들어오는 주제에 진심으로 연기를 그만둔다고 결심한 것도 어머니 하루와 사별한 영향이 컸다.[8] 정확히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과, 이미 정체를 눈치 채 은근히 떠보는 마야에게 자신이 보라색 장미의 사람이라는 진실을 털어놓는 일. 마야에게 미움 받아 보라색 장미의 사람으로서도 마야의 사랑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