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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2 23:43:28

글로벌 크로싱

파일:글로벌 크로싱 로고.svg

1. 개요2. 역사
2.1. 삽질2.2. 파멸
3. 영향

1. 개요

글로벌 크로싱(Global Crossing Ltd.)

개리 위닉(Gary Winnick)이 1997년에 창립하였으며, 2002년에 파산한 미국의 유선통신회사.

2. 역사

창업주인 개리 위닉은 지금은 없어진 투자은행인 드렉셀 번햄 램버트에 다니며 1980년대를 풍미했던 기업사냥꾼이자 정크 본드 시장과 LBO를 창시했다고 평가받는 마이클 밀켄(Michael Milken)의 밑에서 금융 쪽 일을 배웠는데, 그가 감옥에 들어가자 독립해서 자신의 벤처 캐피털을 차린 사람이었다. 그는 밀켄으로부터 배운 방법들을 총동원하여 자금을 마련하고 글로벌 크로싱을 세웠는데, 그 방법이 하나같이 비상식적이었다. 정크 본드를 활용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내부정보의 부정 사용이나 금융계의 사람들의 친구가 되는 것 등등. 그리고 결정적으로 장부에 장난질을 친다거나... 글로벌 크로싱은 월드컴과 마찬가지로 닷컴의 메인 인프라라 할 수 있는 통신 산업에 과잉투자가 이루어지는 시대적 배경을 타고 급속도로 성장해 나갔고, 따라서 몇몇 문제는 일시적으로 덮여졌다. 하지만 거기서 그만두었으면 좋았을 것을...

2.1. 삽질

1998년 위닉은 글로벌 크로싱이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해저 케이블 건설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사명인 글로벌 크로싱은 전 세계의 바다를 가로지르는 해저 케이블로 온 세상을 연결할 회사의 밝은 미래를 염두에 두고 지었다는 개드립 발언을 했다. 물론 해저 케이블 자체는 매우 좋은 사업이지만, 문제는 글로벌 크로싱엔 그걸 지을 돈이 없었다.

당연히 돈을 마련하고 회사를 꾸려나가기 위해 경영진들은 더욱 노골적으로 장부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1999년에 글로벌 크로싱은 역시 시궁창에 빠져 있던 월드컴의 제의를 수락하여 회선 임대 교환거래를 시작했다. 회선 임대 교환거래에 관해서는 월드컴 항목에 잘 나와 있다. 그러면서 글로벌 크로싱은 월드컴을 본받아 무리한 인수합병을 여러 건 저지르며 회사의 외형을 키웠다. 속사정을 전혀 모르던 은행과 증권사들은 계속 돈을 빌려주고 채권을 매입하며 글로벌 크로싱에 자금을 대 주었고, 그 자금은 태평양에 꼬라박혔다.

2.2. 파멸

2000년 3월, AOL-타임 워너의 출범과 함께 닷컴 버블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다른 신흥 통신사들과 마찬가지로 글로벌 크로싱 또한 위기에 빠졌다. 통신 트래픽은 급감했고, 나스닥의 폭락으로 경기가 다소 경직되었다. 글로벌 크로싱은 회선 임대 교환거래를 더욱 크게 벌여 장부를 조작하는 한편, 창업주인 개리 위닉은 레오 힌더리(Leo Hindery)를 새로운 CEO로 위촉하고 자신은 회장(Chairman)으로 물러났다. 레오 힌더리는 겨우 몇 개월 전에 글로벌 크로싱의 자회사인 글로벌센터의 경영자로 영입되었던 사람인데, 당연히 갑작스럽게 본사의 CEO가 되자 당황했다. 그리고 회사의 엉망진창인 재무 상태를 확인하자 더욱 당황했다.

힌더리 CEO는 어떻게든 회사를 살려보려 노력했지만 결국 GG를 쳤고, 그는 2000년 7월에 퇴사했다. 퇴사하면서 그는 이사회에 쪽지를 남기고 갔는데, 그 쪽지에는 회사의 막장스러운 상황이 하나도 빠짐없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중에 증거 자료로 잘 쓰였다. 덕분에 레오 힌더리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반쯤 내부고발자로 인정되어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 그는 후에 여러 회사들의 CEO를 하며 승승장구했다. 벤츠처럼 포장한 폐차 직전의 티코를 주고 롤스로이스로 바꾸라는 것을 못하겠다고 나가며 '벤츠가 사실은 티코였음' 이라고 말한 사람에게 처벌을 주면 좀 너무하잖아

힌더리가 4개월 만에 퇴사하면서 위닉은 다시 회사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미 회사에는 희망이 없었다. 위닉은 계속 분식회계를 하며 시간을 벌어보려 노력했지만, 2001년에 엔론의 분식회계가 들통나면서 글로벌 크로싱도 강도 높은 조사를 받게 되었고, 결국 2002년 1월 28일에 회사는 챕터 11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분식회계 규모는 총 30억 달러 가량으로 추산된다.

그 후 글로벌 크로싱은 레벨 3 커뮤니케이션즈[1]에 합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회사 상태는 개판이었지만 보유하고 있던 통신망은 은근히 금싸라기였다고. 위닉의 횡령과 배임만 아니었으면 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지만, 역사에 만약은 없는 법이다.

3. 영향

엔론에 이어 글로벌 크로싱마저 파산하자 월드컴은 회선 임대 교환거래로 올린 가짜 수익을 전부 손해로 계산해야만 했고, 결국 그것이 나비 효과를 일으켜 월드컴까지 파산하고 말았다.

글로벌 크로싱의 외부감사 또한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아더 앤더슨이었는데, 이 회계법인은 몇 개월 뒤에 터진 월드컴 사태가 치명타로 작용하여 공중분해되었다.

또한 글로벌 크로싱 사태의 조사 과정에서 밝혀진 막대한 부정부패는 전미를 분노케 했다. 개리 위닉은 자신이 제공하는 현명한 충고와 조언에 대한 대가로 매년 매출의 3%를 자신에게 증여하도록 하는 미친 계약을 글로벌 크로싱과 맺은 상태였고, 또한 글로벌 크로싱의 본사 건물을 헐값에 매입한 다음 매년 수백만 달러의 임대수입도 챙기고 있었다.

게다가 종업원들의 퇴직연금을 전액 자사주 취득에 사용하여 주가를 부양하고 있었는데, 당연히 회사가 망하자 주식은 휴지조각이 되었고 종업원들은 노후자금을 몽땅 잃었다. 결국 위닉은 5500만 달러를 종업원들에게 지불했지만, 이것은 종업원들이 날린 노후자금의 10%밖에 안 되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5500만 달러를 지불한 덕분에 법원은 위닉을 감옥에 보내지 않았고, 이는 친기업적이던 행정부를 조지고 부시고 지지율을 하락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1] 현재는 CenturyLink에 또 합병된 회사로, 글로벌크로싱의 옛 홈페이지 주소로 들어가면 레벨 3 커뮤니케이션즈 주소를 거쳐 CenturyLink로 리다이렉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