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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1 18:23:42

무어별

규원에서 넘어옴

無語別
閨怨[1]

1. 개요2. 원문 및 해석3. 감상4. 여담

1. 개요

조선 선조 때의 문인 백호 임제가 지은 5언 절구 한시. 한국 한시 중에서 서정성으로는 고려 정지상송인과 함께 투톱으로 꼽히는 명시이다. 제목 무어별(無語別)은 '말 못하고 헤어지다'라는 뜻인데, 규원(閨怨, 규수의 원망)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어 이것을 제목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2. 원문 및 해석

十五越溪女 / 십오월계녀 / 열다섯 아리따운 아가씨[2]
羞人無語別 / 수인무어별 / 남부끄러워 말도 못하고 헤어졌네
歸來掩重門 / 귀래엄중문 / 돌아와 겹문을 꼭꼭 닫아걸고는
泣向梨花月 / 읍향이화월 / 배꽃 같은 달을 향하여 흐느끼네.

3. 감상

열다섯 살의 어느 아가씨가 연인과 헤어져 돌아와 눈물짓는 과정을 그린 시로, 얼핏 보면 별 내용 없는 장면 묘사처럼 보이지만 문장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꽤나 우울하고 안타까운 정서가 뚝뚝 묻어나는 시이다.

시대가 조선 선조 때임을 감안하면, 열다섯 살은 혼담이 오가고 있거나 조금 이르면 이미 혼인을 했을 나이이다. 하지만 이 시대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러했듯 이 규수 역시 자신이 가슴에 담아둔 남자와 맺어질 확률은 낮았을 것이고, 결국 그를 떠나 보내야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상황에서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여 말 한 마디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헤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남녀상열지사를 엄금하는 조선 중기의 엄격한 유교질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 규수가 소리 내어 우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그녀는 집에 돌아와서도 누가 자기를 볼세라 몇 겹으로 이루어진 규방 문[3]을 단단히 걸어잠갔고, [4] 그러고도 소리 내서 울지도 못하고 배꽃처럼 하얀 달을 올려다보며 소리 죽여 흐느끼는 것이 고작인 것이다.
당쟁에 염증을 느껴 은퇴한 후 승려들과 많이 교류하며 명산을 떠돌아다니며 여생을 보낸 임제이기에 그의 시풍 자체가 워낙 감상적이고 부드럽기도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 시는 5언 절구의 짧은 시 속에 상당한 깊이의 슬픔을 담아내고 있어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4. 여담



[1] '규수의 원망'이라는 뜻으로, 이 작품의 부제이다.[2] '월계(越溪)'는 원래 경국지색 중 하나인 서시가 깁을 빨던 시내를 가리킨다. 여기서는 서시처럼 아리따운 아가씨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3] 옛날 양반 집 구조상, 아녀자가 사는 '규방'은 집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안채나 후원에 있었다.[4] 그냥 잠그는 것이 아니라 '엄폐'의 '엄'을 썼다는 것을 감안하자.[5] 이외에는 신라 최치원의 <제가야산독서당>, 고구려 을지문덕의 <여수장우중문시>, 고려 정지상의 <송인>, 발해 양태사의 <야청도의성>, 조선 이옥봉의 <몽혼> 정도가 고등학교 수준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한시일 것이다.[6] 심지어 선조보다 한참 전인 연산군시대를 다룬 로맨스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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