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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7 22:05:09

권석환(독립운동가)

파일:권석환.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권봉상(權鳳象)
출생 1907년 8월 14일
경상북도 풍기군 서부면 백야리
(현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백리)
사망 1971년 9월 6일
충청북도 제천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권석환은 1907년 8월 14일 경상북도 풍기군 서부면 백야리(현 영주시 풍기읍 백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0년 1월 31일 경북 영주군 풍기면에서 신간회 영주지회(榮州支會) 영주농민조합 및 조선청년동맹에 가입 활동하면서 광주학생항일운동에 동조하기 위해 풍기면 풍기읍내에 거주하는 정을규(鄭乙奎) 집에서 안기석(安基錫)·김준상(金俊相) 등과 함께 면민의 궐기를 촉구하는 항일격문 300여매를 등사한 후 2월 1일 윤차경(尹次慶)과 함께 영주공립보통학교(榮州公立普通學校)에 들어가 격문 70여매를 살포(撒布)했다.

그러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된 그는 1930년 2월 10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출판법 위반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대구형무소에 이송되었으며#, 그해 5월 6일에는 대구지방법원에서 위 혐의에 주거침입 혐의가 추가되고 구류갱신 결정 처분을 받았다.# 그해 7월 9일 대구지방법원 형사부에서 소위 융희 3년(1909) 법률 제6호 출판법 위반 및 보안법 위반, 주거침입 등의 혐의로 징역 8개월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32년 9월 27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및 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불기소처분을 받고 출옥하였다.#

출옥 후에는 충청북도 제천군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71년 9월 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1992년 권석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5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