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 권봉상(權鳳象) |
출생 | 1907년 8월 14일 |
경상북도 풍기군 서부면 백야리 (현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백리) | |
사망 | 1971년 9월 6일 |
충청북도 제천군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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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권석환은 1907년 8월 14일 경상북도 풍기군 서부면 백야리(현 영주시 풍기읍 백리)에서 태어났다.그는 1930년 1월 31일 경북 영주군 풍기면에서 신간회 영주지회(榮州支會) 영주농민조합 및 조선청년동맹에 가입 활동하면서 광주학생항일운동에 동조하기 위해 풍기면 풍기읍내에 거주하는 정을규(鄭乙奎) 집에서 안기석(安基錫)·김준상(金俊相) 등과 함께 면민의 궐기를 촉구하는 항일격문 300여매를 등사한 후 2월 1일 윤차경(尹次慶)과 함께 영주공립보통학교(榮州公立普通學校)에 들어가 격문 70여매를 살포(撒布)했다.
그러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된 그는 1930년 2월 10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출판법 위반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대구형무소에 이송되었으며#, 그해 5월 6일에는 대구지방법원에서 위 혐의에 주거침입 혐의가 추가되고 구류갱신 결정 처분을 받았다.# 그해 7월 9일 대구지방법원 형사부에서 소위 융희 3년(1909) 법률 제6호 출판법 위반 및 보안법 위반, 주거침입 등의 혐의로 징역 8개월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32년 9월 27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및 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로 불기소처분을 받고 출옥하였다.#
출옥 후에는 충청북도 제천군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71년 9월 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권석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5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