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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6-18 11:35:52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권석천
權石泉 | Kwon Suk-chun
파일:201611301958484545.jpg
<colbgcolor=#007899><colcolor=#ffffff> 출생 1967년 1월 25일[1] ([age(1967-01-25)]세)
본관 안동 권씨[2]
소속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학력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사법학 / 학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행정언론대학원 (행정학[3] / 석사[4])
입사 1990년 경향신문 입사
2007년 중앙일보 이직

1. 개요2. 내용
2.1. 백남기 농민 관련 칼럼2.2. 헌법재판소의 구성과 재판관 임명에 관한 칼럼2.3. 김영란법 관련 칼럼2.4. 종북논리 비판 칼럼2.5. 기레기 비판 칼럼2.6. 통진당 해산 관련 칼럼2.7. 김포공항 청소 노동자 관련 칼럼
3. 수상4. 저서5. 출연6.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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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앙일보 기명 반보수/ 진보 칼럼으로 유명하였던 언론인. 現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사법학과 졸업 후 1990년 경향신문에 입사했다. 2007년 중앙일보로 이직하여 사회 2부장, 논설위원 등을 거쳤다. JTBC 보도국장을 지냈고, 2014년 6월 21일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행정언론대학원에서 공공정책학 공공행정 전공으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8년 11월 중앙일보로 복귀했다가 2020년 5월부터 JTBC 보도총괄을 맡았다.

2020년 12월 중앙일보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가 2021년 3월 3일 사직한 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국내 최대 로펌 가운데 하나인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대형로펌 관계자는 "기자 출신 전문위원이나 고문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권석천처럼 이름값이 있는 인물이 로펌으로 바로 자리를 옮긴 건 매우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로펌은 변호사가 중심이 되는 조직이지만, 변호사만으로 할 수 없는 일도 많다. 대형로펌들이 맡는 기업 사건은 재판만큼이나 여론전이 중요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2. 내용

2.1. 백남기 농민 관련 칼럼

요약 : 경위야 어떻든 시위를 하던 60대 농민이 공권력 집행 과정의 불상사로 인해 숨진 것은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하지만, 백씨 죽음의 원인을 둘러싼 공방이 정치적으로 번지는 것은 국가나 사회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와 이념을 떠나 비극을 치유하고 사회적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포용과 관용의 지혜를 찾아야 할 것이다.
ㅡ 백남기씨 죽음은 이 시대 모두의 아픔 중앙일보 사설
경찰, 정부, 여당측야당, 시민단체를 비판.
요약 : 백남기 농민에 대해, 경찰이 과도한 공권력 집행을 하였다. 또한 한국 사회에 보이지 않는 차벽들(대통령만을 바라보고 일하면 어떤일이 있더라도 보호해준다. 인간에 대한 공감, 시민에 대한 공직자의 의무, 개인의 양심과 소신이 존재하고 있지 않는 사회)이 존재한다.
ㅡ 차벽에 가로막힌 나라 권석천의 시시각각
경찰측의 대응과, 박근혜 정부를 함께 비판.

2.2. 헌법재판소의 구성과 재판관 임명에 관한 칼럼

인용 : 강행은 코드 때문으로 보인다. 헌재는 위헌법률 심판 권한을 가진 최종적인 헌법 해석자다. 헌법 해석을 통해 입법을 통하지 않고도 사실상 입법자 역할을 한다. 이 재판관 임명으로 과반수가 좌파성향 단체 출신이 됐다. 대통령·대법원장·여당 지명 재판관들로만 독자적 위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정족수도 채웠다. 다양성과 균형이 깨진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었다.
ㅡ 이미선 임명 강행은 청와대 독선이다 중앙선데이(중앙일보) 사설
헌법재판소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첬음을 지적
인용 : 보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한 재판관들을. 박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명한 재판관은 각각 2명씩이었고, 새누리당이 추천한 재판관은 한 명이었다. 그들이 박근혜 정부의 부하였다면 '8 대 0' 탄핵이 가능했겠는가. ...(중략)...무슨 무슨 연구회에 있었다고 다 같은 성향이란 건 판사들을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이다. 머리 좋고 소심해서 미묘한 차이도 잘 견디지 못한다. '코드'의 힘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이 모든 걸 무력화시키고 문재인 정부 뜻을 관철한다는 것인지, 그 상상력이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다.
ㅡ '코드 헌재' 그 신기한 상상 권석천의 시시각각
헌법재판관들은 개개인의 성향이 아닌,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판단하는 것.

2.3. 김영란법 관련 칼럼

요약 : "방에서 취재원과 신중하게 할 이야기를 못하고 홀에서 (밥을) 먹게 되면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
ㅡ 2016년 7월 29일 JTBC 뉴스현장 정치현장 코너 김진 前 중앙일보 논설위원, 26분 6초부터
→ 김영란법은 언론인에게 피해가 오는 제도라는 취지
요약 : "식탁에 누구와 앉아 있느냐가 나를 규정짓는다"
ㅡ 김영란법 시대의 네 가지 화법 권석천의 시시각각
→ 언론인의 관행 타파와 자성 촉구

2.4. 종북논리 비판 칼럼

요약 : 진짜 종북세력이 범죄를 저지르면 실정법으로 처벌하면 된다. 정부의 대북정책 비판, 북한과 연관된 사건에 대한 정부의 공식입장을 불신하는 것. 이 사항들을 종북이란 카테고리속에 집어 넣으면 안 된다. 자칫 사상의 자유, 토론의 자유를 억누르는 결과를 빚고 만다. 그들의 주장을 얼마든지 반박, 질타할 수 있지만 분명한 근거 없이 종북이라고 규정해선 안 된다.
ㅡ 그렇다면 나도 '종북'일까 권석천의 시시각각

2.5. 기레기 비판 칼럼

요약 : 그제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함께 포탈 검색어에 등장한 인물이 있었다.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 그는 같은 날 오전 "외교·안보 채널을 동원해 알아보니 DMZ(판문점) 회동은 어렵고 전화 통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오후에 판문점 회담이 성사되자 "기분 좋게 예측이 빗나갔다"며 "이번엔 빗나간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기자 출신이라 속보가 중요했던 걸까. 그는 왜 살아 움직이는 팩트(사실) 앞에 겸손하지 않았을까. 기자가 된 뒤 작심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지적 능력은 빠르게 퇴화한다. 느는 것은 교묘하게 베껴 쓰는 '우라까이' 실력이요, 취재원을 압박하고 다독이는 테크닉이다. 자신의 실력 없음을 극단적인 '진영논리'로 가리려 한다. 오보해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취재가 사치 부리는 일이 되다 보니, 서로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 '질 낮은 경쟁'에 몰두한다. 그 시간에 흩어져 다만 며칠이라도 자신만의 취재를 한다면 좋은 기사가 나오지 않을까.
ㅡ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권석천의 시시각각
→ 팩트 앞에 겸손하지 않는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들과 오보해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기자들을 비판.

2.6. 통진당 해산 관련 칼럼

요약 : 생각을 해산시킬 순 없으며, 사상의 자유시장서 걸러야 될 일이다. 다양한 의견까지 위축시켜선 안된다.
ㅡ 생각까지 해산시킬 순 없다 권석천의 시시각각

2.7. 김포공항 청소 노동자 관련 칼럼

인용 : "핵심은 낙하산이에요. 본부장·소장들이 한국공항공사에서 내려와요. 용역업체가 바뀌어도 본부장은 그대로죠. 그 본부장 위해서 회식하고 탬버린 두드리라 하고… 공사가 직접 개선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으면 달라질 게 없어요. 우린 더 이상 인권 유린당하면서 그렇게는 못 살아요." 그날 나는 그들을 오해했음을 고백한다. 공항으로 향하면서 우울한 표정들을 떠올렸지만 그렇지 않았다. 다들 얼굴에서 빛이 났다. 그들은 쓰다가 버려지는 소모품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어머니, 아내, 누이였고, 무엇보다 그들 자신이었다.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았을 뿐 분명히 존재하는 사람, 살아서 숨쉬고 분노하고 맞서는 사람이었다.
ㅡ "우린 소모품이 아니라 사람이다" 권석천의 시시각각

3. 수상

4. 저서

5. 출연

6. 경력



[1] 양력 3월 5일.[2] 추밀공파(樞密公派) 경상(慶祥)계 37세 석(石) 항렬.[3] 공공정책학과 공공행정전공[4] 석사 학위 논문 : Kingdon의 다중흐름모형으로 본 검찰 개혁 사례 -2012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과정을 중심으로-(2014. 6. 21).[5] 물론 사설을 쓰기 전에는 논설위원들끼리 토론을 하는 절차를 거치긴 하지만, 보통 신문의 사설은 신문사 주필이나 논설주간의 논조, 혹은 편집국장의 신문 편집 방침을 따라가기 때문에, 특정 논설위원 한 사람의 소수의견이 사설에 반영되기는 매우 어렵다.[6] 추천사의 내용은 이러하다. "나는 그의 팬이다. 아니, 그는 내가 팬인 거의 유일한 글쟁이라는 표현이 더 맞겠다. 그의 글이 웅장해서도 아니요, 당대의 제일가는 명문이어서도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공감할 수 있어서다."[7] 그 당시 김교준이 중앙일보 발행인 · 편집인 · 부사장을 맡고 있었다.[8] 1991년 김중배 동아일보 전 편집국장이 수상한 이후 '조중동' 구성원이 안종필 자유언론상을 수상한 건 처음이라고 한다.[9] 2007년에서 2011년 사이에 중앙일보 사건사회부 법조팀장을 맡은적이 있다. 하지만 정확히 언제부터 중앙일보 사건사회부 법조팀장을 맡았는지 알 수 없음.[10] 경제부, 사회부 등을 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