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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8 15:07:45

국민당(우루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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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적
30석 • 99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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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민당(우루과이) 로고.png
당기 파일:국민당(우루과이) 당기.png
Partido Nacional
약칭 PN
한글명칭 국민당
상징색
하늘색

하얀색
창당일 1836년 8월 10일
이념 기독교 민주주의
자유보수주의
사회자유주의
정치적 스펙트럼 중도우파
주소 Juan Carlos Gómez 1384, 몬테비데오
대표 루이스 라카예 포우
국제 조직

상원 의석 수
9석 / 30석
하원 의석 수
29석 / 99석
웹사이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상세3. 파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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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루과이의 중도우파 정당으로 백색당(Partido Blanco)으로 부르기도 한다. 콜로라도당과 더불어 우루과이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이다.[1]

2. 상세

우루과이의 3대 대통령 마누엘 오리베가 창당했다. 초기 당명은 블랑코당이다. 4년만에 콜로라도당우루과이 내전[2]을 치렀다. 그러나 브라질 제국, 영국, 프랑스의 공세에 버티지 못하고 항복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불만을 품은 당이 파라과이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 대통령과 손잡고 콜로라도당이 군사행동을 일으킴으로써 1864년 ~ 1865년까지 우루과이 전쟁에서 아르헨티나의 연방당[3]과 연합했지만, 결국 패배하면서 완전히 콜로라도당에게 정권을 넘겨준다[4]. 1872년에 현재의 당명으로 변경했다.

이후 1865년 ~ 1958년까지는 만년 야당으로 지냈다[5]. 1958년부터 1967년까지의 대통령제 대신 국가평의회 기간에는 집권하기도 했고, 군사정권 때는 아파리시오 멘데스가 여기 소속이기도 했다. 1989년 대선에서 루이스 알베르토 라카예 포우 대통령의 아버지 루이스 알베르토 라카예가 당선되면서 1세기만에 집권여당이 됐다. 1994년 대선에서 광역전선의 등장과 함께 최초로 콜로라도당과 함께 야당이 된다.

광역전선이 주요 정당으로 거듭나자 의회 내에서 콜로라도당과 연대하여 광역전선에 대항했고, 2019년 대선에서 30여년만에 다시 집권했다.

3. 파벌


[1] 이는 불과 우루과이 독립 6년만에 창당되어서 현재까지 유지하는 것을 통해 우루과이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만하다.[2] 주세페 가리발디의 붉은 셔츠단이 콜로라도당 측으로 참전했다.[3] 아르헨티나는 직접 참전을 안했지만, 암묵적으로 콜로라도당을 지원했다.[4] 이 사건은 당시 블랑코당 정권과 우호적 관계에 있던 파라과이와의 외교 문제로 비화되며 삼국 동맹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5] 다만 이 기간 국민당이 정계에서 완전히 배제당한 것은 아니었다. 1870년대 국민당이 주도한 '창의 혁명'과 1897년 봉기의 결과 양당간의 권력 분배가 어느정도 이루어졌으며, 1930년대에는 에레라주의로 대표되는 국민당 주류 세력이 20세기 초 콜로라도당의 호세 바트예 이 오르도녜스가 추진한 급진개혁주의 정책에 대한 반감이 고조된 콜로라도당내 보수파와 동맹을 맺고 1933년 가브리엘 테라가 주도한 쿠데타와 독재정을 지지하였다. 그 대가로 개정된 헌법에는 양당이 상원 의석을 15대 15로 양당이 완전히 동률로 가져가는 규정을 얻어냈고, 당연히 이 자리에는 친정부 의원들이 의석을 차지했다. 이 기묘한 동맹관계는 이후 대통령이 된 알프레도 발도미르의 개헌 논의를 두고 양당 사이에 충돌이 가시화되자 1942년 발도미르가 다시금 친위쿠데타를 벌여 친독재 의원들이 쓸려나가면서 협력관계가 종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