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국궁의 사법(射法, 활 쏘는 법)에 대해 다루는 문서.2. 전문
줌손의 종류. | 깍지손의 종류. |
흘리기 줌은 하삼지(=중지, 약지, 소지)를 약간 비스듬하게 쥐어 활을 약간 비껴 잡는 방법이고, 여기에 중구미(팔꿈치)를 엎는(팔오금이 바닥을 보도록 돌려준다) 국궁 사법이 결합되면 자연스럽게 활몸이 틀어지며 약간의 고자채기 효과를 주어 화살이 더 깔끔하게 빠지게 된다. 국궁 사법은 제대로 익힐 경우 발시할 때 자연스럽게 화살이 줌손에서 약간 떨어진 상태로 나가게 되어 화살대나 깃이 줌손이나 활채를 전혀 때리지 않게 되어, 활장갑 같은 것 없이도 얼마든지 상처없이 쏠 수 있다.
현대 국궁계의 궁사들 사이에서 전통사법 논쟁은 매우 치열하다. 국궁의 쏘는 방법은 수백 년 역사가 말해주듯, 민간궁술, 군용궁술의 큰 틀이 나뉘고, 그 안에서도 꽤나 다양하게 나뉘기 때문에 무엇이 국궁의 전통사법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 매우 어렵다. 현대 국궁의 사법은 어디까지나 양반계층의 취미용 활쏘기에서 비롯되어 45파운드 정도의 약한 장력에 맞춰져서 형성되었기에 이보다 훨씬 강한 장력의 활을 사용하는 군용궁술과 차이가 크다. 고장력의 활을 사용할때는 당연히 사법도 달라지기에 자료를 찾아가면서 복원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아있다.
활을 처음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활터에 등록해서 사범이 하라는 대로 배우는 게 가장 빠르고 기본기를 익히기도 편하다.
3. 주류사법
정해진 명칭이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두 발의 경우, 앞발은 그냥 일직선으로 밟고, 뒷발은 사선으로 밟아서 선다.
앞손은 흘리기 줌으로, 뒷손은 몽골리안드로우로 활을 잡고 쏘며, 당기기 전 (깍지손 쪽 팔을 굽힌 채) 양팔을 높이 들었다가[1] 내리면서 화살을 당긴다.
엄지손가락을 시위에서 빼는 순간 손을 크게 떼지 않으며, 쏜 후엔 활을 쥔 형태도 당기기 전 그대로를 유지해야 한다.
이 사법이 대개 전통에서 조금 벗어난 양궁 사법에서 변형된 사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확인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 1900년대 초 영상이나 사진들을 보면 현재 흔히 보이는 사법으로 쏘는 궁사들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정체성이 전통무술단체가 아니라 체육단체인 '대한궁도협회'가 전국의 활터를 통솔하기 때문이다.
4. 별절(고자채기+온깍지)
정석적인 한국 별절사법의 모습. 힘있는 고자채기가 인상적이다.[a]
일명 북관사법이라 불리는, 북관대첩도에서 묘사되었던 별절사법. |
여기서 뒷손이 멈추면 반깍지라고 한다. | 여기서 뒷손이 멈추면 온깍지라고 한다. |
별절이란 명칭은 9세기 당나라 왕거의 사법서 '사경'에서 등장하는 표현으로, 사실 한국에선 그리 메이저한 표현은 아니고, 위의 북관대첩도에서 이름을 따서 북관사법이라고 하거나 아예 고자채기까지 통틀어 '온깍지 사법'이라 부르는 게 대부분이다.
현대엔 비주류가 된 사법이다 보니 중세에 이미 실전된 걸 복원한 사법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1950년대 국궁 대회에서도 꽤 많이 쓰이던 사법이다. 고자채기만 쓰기도 하고 온깍지만 쓰기도 하고 둘다 쓰기도 하고 중구난방이긴 하지만 어쨌든 분명 누가봐도 정석적인 별절사법이다. 저 당시에 실전사법 복원이니 어쩌니 할 리가 없었을 테니 분명히 1960년대까지는 전통적으로 내려온 사법이었다 보는 게 맞다.
정확힌 보존과 복원이 혼재된 사법인데, 온깍지궁사회나 대한궁술원 쪽에서 하는 방식은 현대에 복원한 것이고[3], 황학정, 우리활터, 세계국궁연맹 같은 단체들에서 하는 방식은 전통 별절사법이 맞다. 옛날 사법이란 인식과는 달리 의외로 20대 궁사들 사이에서도 꽤 보이는 사법인데, 이 경우 아마 황학정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
국궁계 내에선 꽤 말이 갈리는 사법인데 사실 대한궁도협회에서 일부러 없애려고 없앤 사법이 절대 아니고, 원래 조선 후기까지도 화승총과 계속 공존하며 군용무기로 쓰였던 활이 구한말에 신무기가 들어오며 군용무기로서의 가치를 완전히 잃고, 활쏘기가 군사훈련이 아닌 스포츠로서 남아있게 되면서 (양궁과 마찬가지로) 연사력, 사거리보단 정확도에 치중하다 보니 실전사법이던 별절사법 또한 60년대 이후로 자연스레 실전된 것인데[4], 이 실전된 사법을 억지로 복원할 필요가 있냐는 게 대궁 측의 입장이다. 현대의 국궁은 정확도를 요구하는 엄연한 스포츠인데 정확도를 포기하고 연사력과 사거리에 치중한 실전사법을 억지로 활터에서 할 필요가 있냐는 얘기.
이걸 한국만의 전통사법이라고 볼 수 있냐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사실 이 사법은 중국, 몽골, 이란, 튀르키예, 인도 등에서도 흔히 쓰이던 사법인데[5] 한국만의 고유한 사법이면 모를까 다른 나라에서도 흔했던 사법을 굳이 집착하다시피 보전할 필요가 있냐는 게 요점.
하지만 이건 세계에서 오직 한국만이 근래에까지 별절사법을 보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한 말이다. 다른 나라들에서도 별절사법을 썼던 건 맞는데 여러 가지 이유[6]로 별절사법이 실전되었으나 한국은 비교적 근대까지 전통 군용활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었고, 만주활의 영향을 받지도 않았기 때문에 별절사법이 산업화시대까지 남아있을 수 있었다. 즉 홀로 근대까지 별절사법을 보존했었다는 점은 그 자체로 국궁만의 아이덴티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7] 아무튼 분명히 보존 가치가 있는 사법 중 하나이며 후술하겠지만 튀르키예 전통사법을 복원하는 데에 큰 공을 세우기까지 했다.
튀르키예에선 고자채기를 '카트라(Khatra)'라고 부르는데, 이미 실전된 지 오래고 2019년에 튀르키예 학계에서 한국 궁술을 참고해서 자기네 전통 궁술을 복원할 때 한국식 고자채기를 배워가서 카트라 사법을 복원했다고 한다. 뭐 여기까지야 그렇다 치는데, 튀르키예 학계가 유럽으로 돌아가서 카트라가 한국 궁술에서도 쓰는 사법이라고 홍보하는 바람에 서구권에서도 한국식 사법 하면 카트라, 즉 고자채기를 당연히 해야 한다고 잘못 알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외국의 활 유튜버들이 한국산 개량궁을 사서 쏠 때 고자채기를 꼭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무래도 고자채기(혹은 카트라) 자체가 생소한 서구권에선 일본 궁도가 활을 쏠 때 유미가에리(弓返り)를 반드시 하듯이 한국 궁술이 고자채기를 필수로 한다는 인식이 있는 듯하다. 몽골, 중국 등은 상술했듯이 고자채기가 실전되었기 때문에 서구권에서 '고자채기를 한다고 알려진' 나라는 한국밖에 없긴 하다. 아무튼 별절사법 자체는 아시아에서 흔히 쓰였던 사법이지만 현재는 한국 궁술에서만 전해졌던 양식이기 때문에 한국 궁술의 고유한 특징이라 보아도 틀린 건 아니란 얘기.
재야 국궁단체들 중 별절사법을 무슨 절대불변의 진리마냥 숭배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단순히 활쏘기의 측면에서 살펴볼 땐 매우 비합리적인 사법이다. 활쏘기의 목적은 화살을 쏴서 표적에 맞히는 것인데, 별절사법은 정확도를 희생하고 더 멀리, 더 많이 쏘는 것에 치중한 자세이기 때문이다. 즉, 애초에 정확하게 쏘려고 쓰는 사법이 아니다.
매우 큰 동작이라 복잡해 보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정말 단순하다. 복싱식 호흡처럼, 억지로 흉내낸다고 해보려 하면 당연히 안 되고 나름대로 저런 동작이 되는 이유가 있다. 기본적으로 손을 제외한 나머지 동작은 상술한 국궁식 주류 사법과 동일하나, 앞손을 흘리기줌으로 쥐고, 뒷손을 놓을 때 뒤로 크게 뺀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이 두가지의 사소한 차이로 실제로 활을 쏘고 난 동작의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고자채기.[a]
그런데, 이 흘리기줌은 막줌과는 달리 손바닥(줌손) 안에서 힘이 작용하는 작용점이 손바닥 중앙점보다 살짝 위인 손아귀에 위치하는데, 이러면 막줌으로 당겼을 때와는 반대로 활을 쏠 때 줌통이 앞으로 쏠린다. 이유는 당연히 활을 당길 때 손아귀가 활을 밀던 것의 관성 때문.
사실 막줌으로 활을 쏘는 사람들도 발시를 할 때 고자채기만큼은 아니어도 활이 앞으로 쏠리는 경우가 꽤 있는데, 사실 이건 인간의 주먹은 위아래가 비대칭이다 보니 지렛대의 원리 비슷하게 좀더 길이가 긴 엄지 부분에 힘이 더 쏠리기 때문이다.
또한 고자채기는 의외의 숨겨진 장점이 있는데, 화살이 더 멀리, 더 강하게 날아간다. 사실 활을 휙 훑는 것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투창기와 비슷한 운동원리를 갖고 있는데, 이 탓에 화살이 활시위의 탄성뿐만 아니라 활시위가 투창기처럼 작동해서 지렛대 원리로 추진력까지 더해 더 멀리 날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암깍지로 하는 온깍지.[a]
숫깍지로 하는 온깍지. 이건 육량전으로 멀리쏘기를 하는 모습이다.
온깍지의 경우, 왜 하나 싶은 동작이긴 하나 의외로 별절사법, 정확하게는 고자채기를 활병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온깍지만큼은 실용적인 자세라고 생각할 정도로 합리적인 실전사법이다. 사실 문화권마다 조금씩 온깍지의 방식이 다른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온깍지는 딱히 정해진 개념이 아니고 그냥 활을 쏠 때 깍지손을 뒤로 크게 빼는 동작이다.
이런 이상해 보이는 동작을 하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한데, 반깍지[11]로 쏠 경우, 말만 놓고 보면 깍지손이 제자리를 유지하려는 것 같지만 실상은 활의 장력 때문에, 그리고 활시위를 놓을 때는 순간엔 무의식적으로 깍지손의 힘이 약해지기 때문에 활시위를 놓는 순간 순간적으로 깍지손이 시위에 끌려가게 되고, 이 탓에 쏘기 전만 해도 팽팽하던 활이 시위를 놓는 순간 덜 팽팽하게 변하는 탓에 이 탓에 활의 사거리를 100% 뽑아 낼 수 없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깍지(를 쓰려고 준비한 채)로 쏠 경우, 활이 팽팽한 상태에서도 깍지손이 최대한 더 뒤로 가려는 모양새가 나오기 때문에 시위를 놓을 때도 활이 팽팽한 상태를 유지하고 그만큼 활의 최대 사거리를 뽑아내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온깍지조차 완전히 팔을 180°로 펴는 FM자세보단 팔을 크게 빼지 않는, 즉 어느 정도로만 빼는 반깍지 자세를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또한 활을 당길 때엔 기본적으로 깍지손은 최대한 뒤로 가려고 힘을 빡 주고 있다 보니 발시할 땐 순간적으로 관성 때문에 깍지손이 뒤로 크게 쏠리는데, 이때 상술한 반깍지 방식을 쓰게 되면 이 반동을 어깨가 고스란히 다 받아내게 되며 견갑골과 어깨 관절에 심한 충돌이 오게 된다. 이게 현재의 습사용 활이면 그래도 버틸 만한데, 중세의 120lb가 넘어가는 군용활로 이 짓을 하게 되면 어깨 개박살나기 딱 좋았다.
하지만 온깍지 스타일로 깍지손을 뒤로 쫙 펴면, 상술한 '깍지손의 뒤로 가려는 관성'이 팔을 쫙 편 채로 이뤄지다 보니 어깨에 무리는커녕 그냥 팔이 쭉쭉 펴지는 스트레칭하는 효과가 된다. 이 탓에 120lb가 넘는 초강궁들을 수백 번을 연거푸 쏘면서도 깍지손 쪽 어깨에 거의 무리가 없게 쏠 수 있었다.[12]
보면 알겠지만, 정확도와는 거리가 먼 사법이며, 손목의 피로를 막고 더 멀리 쏘기 위해 쓰는 사법이다. 이는 조선군의 군사교리가 화망을 짜서 쏘는 것이었기 때문에 정확도보단 사거리를 더 중시하게 된 데다가[13], 활싸움은 결국 둘 중에서 화살을 한개라도 더 쏠 수 있는 쪽이 이기는 것이기 때문에 화살 보급 이전에 궁수들이 지치지 않고 화살을 최대한 많이 연속으로 쏠 수 있도록 몸에 무리가 덜한 사법을 익히게 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4.1. 나라별 차이
4.1.1. 한국
우리활터의 별절사법 시연 영상.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고자채기를 할 때 활이 (줌통을 축으로) 그렇게 많이 돌지는 않는다. (무슨 일본 궁도의 유미가에리마냥) 활을 아예 180도 뒤집는 경우가 많은데[14], 60년대에 찍힌 국궁 대회 영상들에 등장하는 고자채기는 아무리 활이 크게 돌아도 90도를 넘지 않으며, 애초에 고자채기의 존재 이유가 손목이 덜 아프게 하려는 건데 억지로 이렇게 해봤자 손목만 더 아프기 때문에 안 하느니만 못하다.
최대한 쉽게 설명하자면, 줌손의 손등 부분이 활을 당길 땐 옆을 보고 있다가 발시하는 순간 손목을 왼쪽 아래 사선으로 스냅을 주며 줌손의 손등이 위를 보게 하는 것이다. 이때 줌손 안의 줌통이 손목과 최대한 평행하게 손목을 트는 게 핵심이다.
이 탓에 쏘고 나면 활의 몸체 부분을 카타나 칼날이라고 쳤을 때, (한손으로) 검도의 옆허리치기를 하고 난 정지화면같이 된다. 현실적으로 이게 손목이 가장 덜 아픈 방식이기도 하고.
사실 고자채기를 할 땐 일본 궁도의 유미가에리마냥 활을 뒤집을 필요가 전혀 없는데, 일본 궁도는 활이 앞으로 쏠리지 않기 때문에 활을 뒤집지 않으면 시위가 노빠꾸로 손목을 그대로 때리는 것에 반해, 고자채기를 하는 국궁은 활이 앞으로 쏠려서 시위와 팔이 평행하게 되기 때문에 (아래의 튀르키예식 참고) 애초에 시위가 팔에 닿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온깍지의 경우, 다른 나라들의 온깍지 사법[15]은 손목이 돌지 않고 그대로 팔만 쫙 펴지지만, 한국의 온깍지 사법은 특이하게 (우궁 기준) 손목이 시계방향으로 45° 돌며[16] 팔이 펴진다. 이 탓에 활을 당길 때의 깍지손 손등 방향과 뒷손을 뗄 때의 손등 방향이 같은 (혹은 수평인) 다른 나라 사법[17]과는 달리 한국식 온깍지는 활을 당길 때 깍지손 손등이 위를 보지만 뒷손을 뗄 때의 손등은 옆을 본다.
이것에 대해선 국궁 특유의 정면서기 자세 때문이란 설이 있는데, 다른 나라 사법들은 옆으로 선 채 쏘기 때문에 뒷손을 뗄 땐 팔을 그냥 옆으로 쭉 뻗은 형태가 되지만 국궁은 정면을 보고 선 채 쏘기 때문에 뒷손을 뗄 때 팔이 뒤로 쭉 뻗어진 형태가 된다. 이때 팔을 옆으로 쭉 뻗는 건 어깨에 무리가 전혀 가지 않지만 뒤로 쭉 뻗는 건 인간 신체 구조상 불편한 자세이다 보니 손등 방향 같은 세세한 요소가 변수가 된다. 실제로 손등이 옆을 본 채 팔을 뒤로 뻗으면 어깨에 큰 무리가 없지만, 손등이 위를 본 채 뻗으면 어깨에 충격이 분명히 느껴질 정도로 무리가 느껴진다. 즉 정면을 본 상태에서 온깍지로 쏘기 (즉 팔을 뒤로 뻗기) 위한 가장 편한 자세란 얘기.
말만 들으면 손목 돌릴 필요 없이 그냥 활 당길 때도 손등이 옆을 보는 일본식 깍지손을 쓰면 되는 거 아냐? 싶겠지만, 정확히는 고구려 때까진 그런 식으로 쐈던 것으로 보이나[18] 이후 점점 더 강궁을 쏘기 위해 (손등이 위를 보는) 일반적인 몽골리안드로우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즉 한국식 온깍지는 정면을 보고 선 채 (손등이 위를 보는 드로우로 당긴) 손을 뒤로 뗄 때 나오는 자연스러운 자세라는 얘기.
그리고 원래는 발시 후에 양팔이 앞뒤 90°로 쫙 펴져야 맞지만 가끔 궁사 중에 양팔을 앞뒤 45° 각도로 떨어트리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은 만작 시에 양팔을 앞뒤로 들어올렸던 힘이 발시와 함께 풀리며 양팔이 자연스럽게 내려오는 것으로[19][20], 전자(90°)와 후자(45°) 모두 장단점이 있다.
일단 편하기는 (발시할 때) 팔을 떨구는 게 훨씬 편하지만 화살이 안 맞기 시작하면 (저 자세가) 영점을 수정하기 어려워서 그때부턴 90°를 유지해야만 한다.[21] 이 탓에 대부분의 궁사들은 평소엔 팔을 떨어트리며 쏘지만 갑자기 잘 안 맞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팔을 떨구지 않고 앞뒤 90° 자세로 쏘며 영점을 수정하는 경우가 많다.
4.1.2. 중국
진원정의 사림광기에 나오는, 왕거의 사경에서 언급된 별절사법.
고자채기의 경우, 중국에도 고자채기 자체는 존재했을 것으로 보이나 고자채기를 하지 않는 만주족한테 지배당한 이후 고자채기가 실전된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어떻게 했는지는 알 수 있는 한국식, 튀르키예식 고자채기와는 달리 중국식은 실전된 지 수백년이 넘었기 때문에 현재로선 알 방도가 없다.
온깍지의 경우, 일본 궁도처럼 시위을 당길 때 깍지손이 옆을 보는지라 놓을 때 손바닥이 옆을 보는 형태일 것으로 보인다.
4.1.3. 튀르키예
고자채기의 경우 튀르키예어로 Khatra'라고 부르며, 한국의 고자채기와 비슷하지만 활을 전혀 뒤집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상술했듯 활을 전혀 뒤집지 않아도 손목이 다칠 일은 없으니 큰 문제는 없다.
5. 논쟁
5.1. 온깍지-반깍지 사법 논쟁
전근대의 사법을 현대에 복원시키려는 고전사법 사용자와 현대의 사법을 사용하는 사람들 간의 논쟁도 대표적인 토론거리다. 이 논쟁은 정사론[22]이라는 옛 무인이 쓴 책에도 나올 정도로 대표적인 논쟁거리며, 지금도 국궁신문 홈페이지에 관련 기사가 자주 나온다.좌사 (坐射, 앉아서 쏨.)
배사 (背射, 등진 채 허릴 틀어 쏨.)
주사 (走射, 뛰면서 쏨.)
대한궁술원 등에서 애기살, 명적 등을 내거나, 보사[23], 배사, 정사, 좌사 또는 주사 등의 무인들이 쓰던 사법을 재현하기도 한다. 요점은 현대의 국궁 사법과 고대-근대의 사법 중 어느 것이 정통이냐 하는 내용. 이는 수많은 논쟁을 낳아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하지만 옛 사법이 멋이 난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내용인 듯. 주몽 이후의 사극에선 대부분이 뒷손을 크게 떼는 옛 사법을 사용한다.
국궁계에서 사법논쟁이 시작된 것은, 2000년 온깍지궁사회의 모임과 동시에 시작된 일이다. 즉 2000년 겨울에 전통활쏘기의 모습을 제대로 보존하자는 취지로 출범한 단체가 있었는데, 깍짓손을 크게 뻗는 동작에 주안점을 두어 <온깍지궁사회>라고 이름을 붙였고, 순식간에 <온깍지>는 국궁계외 논쟁거리가 되었다. 이 논쟁의 출발점은 그 동안 국궁계가 양궁사법의 영향을 받아서 깍짓손을 그 자리에서 때고 마는 방식의 사법을 전통사법으로 착각하고,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이다.
한발 더 나아가 온깍지궁사회에서 제기한 문제는 단순히 깍짓손을 크게 떼느냐 그 자리에서 양궁처럼 떼느냐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각궁과 개량궁의 차이에 따라서 온깍지와 반깍지가 만들어졌다는 데까지 논리가 발전하여, 결국 전통사법을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문제를 제기하였음이 사법 논쟁을 구체화한 배경이 되었다.
한국의 전통사법에 변화를 일으킨 요인은 새로운 장비인 개량궁이 등장한 시기와 교묘히 맞물렸다. 즉 1970년대 중반부터 양궁의 재질을 이용하여 국궁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사람들은 <개량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개량궁이 일반화되어 각궁을 대신하면서 개량궁의 특성이 사법에 반영되어 반깍지가 되었다. 개량궁이란 도구가 등장하고 양궁에서 깍짓손을 크게 떼지 않아도 되는 보범을 보임으로써, 국궁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두 가지 조건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사법이 탄생한 것이고, 그것이 반깍지 사법의 본질이다. (실제로 과거 사진을 찾아보면 대다수 옛 사법을 사용한다. 또한 사망하시거나 생존해 계신 구사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옛 사법이 주류였음이 확인된다. 이외에도 '학무체[24]'라는 것이 존재하였으나 멋이 나는것에 비하여 시수를 내기가 어려운 궁체라 비주류였다는 여러 증언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온깍지-반깍지 논쟁은 1970년대 이후에 나타난 활터의 큰 변화를 비판적으로 보고, 우리의 진짜 사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리고 이 질문은 현재에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전통 사법이 무엇인가를 물을 때 반드시 돌아보아야 할 문제로 남아 있다.
5.2. 반론
이른바 '온깍지-반깍지' 논쟁에 대해 상기 서술에 대한 반론과 보론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온깍지 측의 논의가 가지는 한계는 그들이 말하는 '반깍지(아래는 '주류사법'이라 함)'사법에 대해서 그와 같은 사법이 왜 나왔는지에 대한 설명으로서 '양궁과 같은 소재의 개량궁을 써서 양궁처럼 됐다'는 주장만 읊을 뿐, 정작 주류사법이 왜 '양궁과 같은' 사법이며 '개량궁을 쓰면서 생긴 나쁜 버릇'인지에 대해 설명의 근거조차 제시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2021년 시점의 '양궁(올림픽 리커브 활쏘기)'은 세 손가락을 쓰고 화살을 사수 몸쪽에 두는 지중해 사법을 쓴다. 주류사법은 깍지를 끼는 엄지사법을 쓰고 화살을 사수 바깥에 둔다. 이런 차이를 완전히 무시한 채 그저 '양궁사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논증이 아니라 비난에 불과하다.
작금의 논쟁이 이처럼 어지러운 것은 깍지를 작게 떼든 크게 뿌리든, 줌을 크게 짜서 고자를 채든 활몸을 살짝 비트는 데 그치든, 그러한 동작이 어째서 나오는지에 대한 고증이나 분석적인 설명시도를 도외시하고 가깝게는 100년, 멀게는 200, 300년 전의 책 내용이 어떤지에만 집중한 결과다.
'깍지손을 살살 떼는 문제'을 살펴보자. 일부는 '개량궁에 적합한 사법이라서 양궁처럼 변질됐다'고 주장한다. 각궁으로 활을 배우면 반드시 깍지손을 크게 떼게 되는데 양궁 재질로 만든 개량궁을 쓰니 깍지손을 작게 뗀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주류 사법으로 각궁을 쏘면 활이 망가지는데 개량궁을 쏘면서 나쁜 버릇이 든 신사(新射)들이 각궁을 잡고는 개량궁 사법대로 쏘다가 활을 부숴먹는다'는 주장이 덧붙기도 한다. 활의 재질과 활을 쏘는 사수의 사법 간에 어떤 인과적인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논증이 없다.
개량궁은 단지 각궁보다 현대화된 소재로 만든 튼튼하고 관리하기 편한 활일 뿐이다. 주류 사법은 온깍지 사법보다 동작도 작고 줌을 짜거나 활채를 휘두르는 범위도 제한적이다. 활에 무리가 간다면 오히려 동작이 크고 화려한 온깍지 사법이 무리가 가지 움직임을 줄이고 절제된 동작을 하는 주류사법 때문에 '활이 망가진다'는 주장은 논리가 빈약하다.
깍지손을 떼는 동작은 단순히 발시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할지에 따른 선택일 뿐이다. 현대의 올림픽 활쏘기 또는 '반깍지' 사법이 깍지손을 절제된 동작으로 떼는 이유는 깍지손의 움직임을 최소화함으로써 매 발시 마다 동작의 편차를 줄이고 일정하게 쏘기 위해서이다. 고정된 과녁을 맞히기에 유리한 사법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50파운드 내외의 연한 활로 고정된 과녁을 3초 이상 노려 쏘는 현대 국궁 활쏘기에서 뒷손을 뿌리는 것은 보기에 아름다울지는 몰라도 명중률 면에서는 크게 무차별할 가능성이 높다. 발시 과정의 반동 때문에 손이 뿌려지는 것이 아니라면 이미 시위가 깍지손을 떠난 뒤에 손을 멈추든 뿌리든 차이가 있을 까닭이 없다. 다만 어떤 뒷동작을 의식함으로써 나타나는 미세한 차이들이 존재하고 이는 사수가 자신에 맞추어 선택하면 될 문제이다.
상기 지적한 문제들은 공통적으로 '논리적 과학적' 접근이 결여된 데서 유래한다. 과거에는 특정 고수나 스승의 가르침을 교조화해 그대로 따르는 것이 일정한 수준에 오르는 첩경(捷徑)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대는 어떤 무예나 스포츠도 철저히 논리적 계량적인 분석과 개량의 대상이어야 한다. 영국 젠트리 계층의 롱보우 활쏘기가 100여년의 기간 동안 현재의 올림픽 타겟 리커브가 된 과정이 그러한 '과학화'이다. 물론 어떠한 부가장비나 외형의 변형 없이 국궁의 원형을 유지하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재래식 한국 활'의 범주 내라면 사법에 대해서도 비교 분석을 통한 검증과 개선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선의 궁술 내용은 이렇다" "정사론에서는 이렇게 썼다"는 논쟁은 분석적인 논쟁이 아니다.
활쏘기도 전통문화의 일부이지만 전통은 본질상 끊임없이 바뀌어 간다. '조선의 궁술'에 묘사된 활쏘기도 2021년의 시점에서 바라보면 90년 전의 전통이지만 1929년 당시에는 '당대(contemporary)' 문화였을 뿐이다. '정사론'이든 '사법비전공하'든 모두 마찬가지로 그 시대의 당대 활쏘기 문화인 것이다. 한국의 활쏘기가 역사 속에서 보인 모습의 일단편을 잘라내어 무조건적인 답습의 대상으로 삼는 태도는 전통의 계승과는 다름을 논쟁자들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인식 위에서 일정한 자세와 동작이 어떤 효과로 이어지는지 개인별로 분석하여 사수에게 맞는 사법을 선택하면 될 문제이다. 현대의 양궁 선수들도 제각기 활을 당기는 손과 스탠스가 제각각인데 고대의 궁수들이라고 모조리 한가지 자세로만 쏘았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선택의 문제일 뿐인 사법에서 '정통과 이단'을 나누며 비난하기보다는 열린 자세로 다양한 가능성을 분석하는 활쏘기가 필요하다.
[1] 이를 '거궁'이라고 한다. 혹자 중엔 이 자세가 일본 궁도의 우치오코시(打起し)의 영향이고 전통이라 보긴 어렵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 근력이 약한 사람이 활을 들었다 내리며 넓은등근의 도움을 받아서 부족한 근력을 극복하는 사법은 일본 궁도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문화권의 활쏘기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팔을 편 채 올리는 우치오코시와는 달리 거궁은 깍지손 쪽 팔을 굽힌 채 올린다는 차이가 있는 등 같은 자세라고 보긴 어려운 점도 많다. 물론 거궁이나 우치오코시는 장전속도가 워낙 느리기 때문에 비교적 실전성이 떨어지는 사법인 건 맞다.[a] 이 움짤은 원래 좌우가 뒤바뀌어 있지만, 오른손 깍지가 주류인 현대 궁사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뒤집음.[3] 대한궁술원 쪽에선 옛 그림이나 기록 등을 토대로 복원했고, 온깍지궁사회 쪽에선 노궁사들의 증언들을 토대로 복원한 것이라 온깍지궁사회 쪽이 좀더 신뢰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4] 물론 국궁은 활치곤 진짜 최근까지 군용으로 쓰였던 케이스다. 그랬으니까 실전사법도 1960년대까지 남아있었겠지만... 다른 나라들은 화승총이 도입된 이래 일찌감찌 활이나 석궁을 모조리 전장에서 퇴역시켰고, 한국만큼 군용활을 오래 썼던 나라는 부탄과 영국 정도밖에 없다.[5] 물론 얘넨 전부 실전되었다.[6] 예로 들면 중국과 몽골은 청나라 때 고자채기를 하지 않는 만주활의 영향을 받으며 별절사법이 실전되었고, 인도와 튀르키예, 이란은 화승총의 도입 이후 말 그대로 궁술 자체가 실전되었다. 참고로 튀르키예는 사법이 비슷한 국궁 관계자들의 자문을 받아 자신들의 전통 궁술을 복원했고, 중국의 경우 칭화대에서 전통사법을 복원한다고는 하는데... 일본 궁도 비스무리하게 엉터리로 복원하는 중이라 별절사법 같은 건 당연히 고증을 못하고 있다.[7] 비슷한 케이스로는 석장이 있는데, 원래 석장은 한중일에서 모두 널리 쓰이던 법구이지만 한국, 중국에선 실전되면서 현재는 일본 불교를 상징하는 아이템으로 인식되고 있다.[a] [9] 쉽게 말해 손바닥을 폈을 때 엄지가 있는 방향으로 손목이 꺾인다고 보면 된다.[a] [11] 깍지손을 빼지 않고 당길 때의 자세 그대로 유지한 채 손가락만 떼는 주류사법의 자세.[12] 참고로 현대의 궁사들도 100lb가 넘는 강궁을 쏘게 되면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아도 자연스럽게 깍지손을 뒤로 크게 뺀다. 당연하지만 이게 가장 편한 자세이기 때문.[13] 당연한 얘기지만 화망을 짜서 쏘게 되면 정확도는 떨어져도 상관없으며, 적의 사거리 밖에서 쏘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14] 이는 북관대첩도에 이런 식으로 그려져 있어서 그런 것으로 추정된다.[15] 예로 들면 일본 궁도의 잔신.[16] 정확히는 팔뚝이 도는 느낌에 가깝다.[17] 예로 들면 중국식 사법은 중국식 사법은 활을 당길 때 깍지손 손등이 위를 보기 때문에 뒷손을 뗄 때도 손등이 위를 보고, 중국식 사법은 활을 당길 때 깍지손 손등이 위를 보기 때문에 뒷손을 뗄 때도 손등이 위를 보고, 일본식 사법은 활을 당길 때 깍지손 손등이 옆을 보기 때문에 뒷손을 뗄 때도 손등이 옆을 본다.[18] 예로 들면 수렵도에 묘사된 형태.[19] 철전사법연구회에선 이걸 확대해석해서 발시할 때 아예 차렷 자세를 취하는데, 이런 식으로 쏘는 건 본인 자유긴 하지만 문제는 이런 본인들 사법만이 진짜 전통사법이고, 나머지 사법들은 개족보사법이라고 하도 시시비비를 따지고 다녀서 대한궁도협회와 대한궁술원이 철전사법연구회만큼은 위 아더 월드로 하나되어 깔 정도로 국궁계의 공공의 적으로 단단히 찍혔다.[20] 철전사법에서 양팔이 차렷자세로 떨어지는 것은 특유의 11자 발모양과 연관이 있다. 같은 방식으로 양팔을 떨어뜨릴 때, 배꼽이 보는 방향에 따라 팔이 떨어지는 각도가 정해진다. 측면을 볼 수록 각도가 45도에 가깝고, 정면을 볼 수록 차렷자세에 가까워진다. 다만 11자 발디딤 자체가 사예결해 요결 15조 1장의 족 비정비팔 편임전족(발은 정자도 팔자도 아니게 서고, '앞발'로 디딤틀을 이끌어간다)이라는 문구와 상충된다.[21] 사격에 비유하자면 (활을 쏠 때) 팔을 45°로 떨구는 건 (총을 쏘고 나서) 반동 그대로 총을 들어올리는 방식이고, (활을 쏠 때) 팔을 앞뒤 90° 유지하는 건 (총을 쏘고 나서) 반동을 제어하며 조준점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후자가 전자보다 영점을 잡기 쉽단 건 말할 필요도 없다.[22] 내용은 대략 선비들이 활을 쏴 무인의 전투활쏘기가 실전되고 있다는 데 개탄하는 내용[23] 步射, 서서 쏨. 현재 모든 국궁 단체들에서 쓰는 사법이다.[24] 줌손과 깍지손을 크게 떼는 사법으로, 결국 별절과 같은 사법이다. 영상 13:50부터https://youtu.be/MG-eZzsmZ-w?si=CigMBDG-dWTvqDS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