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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교토 선동어소([ruby(京都仙洞御所, ruby=きょうとせんとうごしょ)])는 일본 교토부 교토시 가미교구 교토어원 내에 있던 선동어소의 유적으로, 현재 정원만이 남아 있다. 교토 어소의 동남쪽에 위치하였으며, 조성당시 정식명칭은 사쿠라마치도노([ruby(桜町殿 ,ruby=さくらまちどの)])였으나 아키히토 천황의 양위 이후 황거내부에 위치한 후키아게 선동어소와의 구별을 위해 교토 선동어소(京都仙洞御所)로 개칭하였다.2. 역사
원래 이 곳은 도요토미 가문의 성이었던 교토신성(京都新城)이 위치하였던 지역으로, 당시에는 태합어소(太閤御所)라는 별칭으로 불리었다. 그러나 도요토미 가문이 에도 막부에 의해 멸문당한 이후 네네의 사저로 이용되었고, 이후 아시모리번주이자 궁내소보였던 기노시타 도시후사(木下利房)의 저택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1627년, 고미즈노오 천황를 위해 에도 막부가 선동어소로 조성하였으며, 당시의 황궁이었던 교토어소보다 크게 짓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고 한다.막말의 교토 선동어소·교토 대궁어소 및 교토 어소와 그 주위의 구게마치 |
선동어소의 건물들은 1854년 화재로 몇몇 건축을 제외하고 소실되었다. 선동어소의 바로 서북쪽에 교토 대궁어소가 인접해 있는데, 대궁어소와 경계 짓던 담장도 이 화재로 일부 사라지면서 선동어소는 대궁어소와 같이 묶여서 취급받게 된다. 메이지 유신 이후 생전퇴위가 법적으로 금지되면서 재건될 이유가 없어져 다시 재건되지 않고 현재는 정원과 정자 몇 동만 남아 있다. 이 정원은 고보리 마사카즈가 설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