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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5 22:17:34

곽락라 명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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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먼치킨3. 작중 행적
3.1. 마이태 자매와의 악연3.2. 8황자를 향한 일편단심3.3. 비극적인 최후
4. 여담

1. 소개

보보경심의 등장인물. 배우는 석소군.

제 8황자 윤사의 적복진으로 곽락라 명옥의 친언니이고 강희제의 육촌인 정공주와 명상 부마의 딸이며[1] 순치제의 사촌인 안친왕 악락의 외손녀이기도 하다. 이렇게 적으면 족보가 꽤나 복잡한데 황실을 제외한 청나라 신분의 최상류층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중의 명문가의 영애라고 생각하면 된다.

2. 먼치킨

단순히 신분만 높은 것이 아니라 본인의 능력도 상당한데, 어릴 적부터 남다른 정치적 식견을 보여 외조부 안친왕과 백부들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안친왕이 측근들과 모여 정사를 논할 때도 명혜를 무릎 위에 앉히고 참석할 정도였다고. 이름의 ‘혜(慧)’자도 그녀의 재능을 몹시 아낀 외조부가 ‘명확히 시비를 판단하고 사라지지 않는 지혜로 거짓을 안다’는 의미를 담아 직접 바꿔준 글자라고 한다.그럼 원래는 무슨 글자였던 거지? 명혜의 아버지 명상 부마도, 다른 자녀들과는 달리 명혜의 말만은 무조건 따라주었으며 명혜에게 각별한 기대(아마 황후의 자리였을 것이다)를 걸었다고. 기마술 역시 어려서부터 안친왕의 엄격한 훈련을 받아 약란[2]을 능가하는 것은 물론 남자들에 근접하거나 그 이상이라고 한다. 청나라는 소위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은' 만주족의 국가였던 만큼, 극중 강희제는 명혜에게 곽락라 가문의 딸들이야말로 만주족 귀공녀의 품격을 갖추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명옥의 말에 따르면 서예 실력 또한 뛰어나다고 하는데, 특히 8황자를 좋아한 이래 열심히 실력을 연마하여 필체가 좋아졌다고 한다. 게다가 적복진으로서 왕부를 빈틈없이 운영하여 동생 명옥의 감탄을 듣고, 시어머니 양비에게도 신임을 얻고 있다.

3. 작중 행적

집안 배경도 좋고 개인의 능력도 높은 인물이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사랑 하나만 바라보는 굉장한 로맨티스트로 그려지지만 약희 입장에서는 자신의 언니인 약란을 8황자의 사랑을 받는다는 이유로, 줄곧 질투하고 괴롭히는데다 결국 본인의 인생도 꼬이게 만든[3] 장본인인지라 악연으로 얽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추후 곽락라 명혜가 8황자를 위해 직접 나서서 갖은 수모를 견디는 모습을 본 약희는 그녀를 인정하게 되고, 곽락라 명혜는 사랑이 있으면 이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바로 그 8황자를 향한 헌신적인 사랑이 명혜의 인생을 비탄으로 몰아넣는다.

8황자에게 한눈에 반해 다른 왕손공자들을 마다하고 조건이 빈약한 8황자와 혼인했고,[4] 8황자와 고락을 함께하며[5] 사랑하는 8황자의 뜻을 온전히 존중해주고, 8황자의 행복을 바라는 등, 8황자만 평생 사랑했다.

3.1. 마이태 자매와의 악연

하지만 8황자를 사랑한 만큼 그의 사랑을 받는 마이태 약란마이태 약희를 싫어했고 간접적이지만 약희의 인생을 꼬이게 만들었다.

8황자를 독차지하길 원했지만 8황자는 명혜를 우연찮게 터진 로또로 생각하며 정략적인 가치를 더 높이 쳐주었기에 둘 사이의 관계는 갈수록 겉돌았다. 만약 약란과 약희가 명혜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면 칼부림을 내는 얀데레가 되었을 거란 게 통설. 명혜가 엇나가지 않은 것은 약희를 어전 궁녀로 만든 장본인이 본인이란 책임을 느끼긴 했고, 8황자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했기 때문이다.

약희 입궁 당시, 8황자와 14황자는 약희를 위해 각각 생모인 양비와 덕비를 찾아가 약희를 양비/덕비 처소의 궁녀로 빼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약희가 후궁으로 간택되면 자매인 약란의 입지가 커진다는 점을 우려한 명혜가 평소 친분이 있던 혜비[6]를 찾아가 약희를 혜비 처소의 궁녀로 빼달라고 부탁하는 트롤링을 저지른것. 다만 이로 인해 양비-덕비-혜비가 모두 황후[7]를 찾아와 약희를 자기 처소로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구도가 되어버렸고, 황후는 약희를 어전 궁녀로 보내는 것으로 상황을 수습하게 되었다.

약희가 어전 궁녀가 된 것은 사실 이렇듯 여러 사람이 복잡하게 얽힌 과정 속에서 빚어진 결과이기 때문에, 명혜 한 명의 책임으로 보기는 힘들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명혜로 인한 혜비의 개입은 8황자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고, 결과적으로 약희를 양비나 덕비 처소로 보내 일찍 출궁시키겠다는 8황자의 계획은 실패했다. 어머니 양비에게 듣고 전말을 알게 된 8황자는 당연히 명혜에게 화를 냈지만, 명혜가 자신을 위해 매일 같이 탕을 끓이다가 실수로 손에 화상을 입었다는 사실과, 장기적으로 보면 8황자의 빈약한 배경[8]문제 등이 모두 엮여있다는 것을 깨닫고 화를 풀게 되며 일은 얼추 마무리 된다. 하지만 8황자의 명혜에 대한 경계심은 좀더 올라갔다.

작중 꾸준히 묘사 되지만 명혜는 어디까지나 한명의 여자로서 마이태씨 자매를 견제하고 꺼렸을 뿐, 8황자의 뜻을 거스르는 짓은 되도록이면 하지 않으려 했고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바꿔 말하면 안 들킬 것 같으면 사정없이 후려쳤단 소리다 후에 8황자가 약희에 대한 마음을 확고히 나타내자 모든 걸 수긍하고 약란에게 약희를 측복진으로 데려오라고 부탁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3.2. 8황자를 향한 일편단심

8황자가 강희제의 미움을 받아 직위에 녹봉까지 빼앗기는 순간에도, 끝까지 8황자의 곁을 지키며 위로해준다.

명혜는 8황자에게 "직위 따위는 자신이 당당하면 되고, 가산은 아직 넘쳐난다. 돈이 떨어져도 우리 아빠가 있다. 아빠가 외면해도 내가 있다" 라며 배경 든든한 부잣집 딸의 자신감을 자랑하고 설날 기념축식사에선 병이 난 8황자를 대신해 문안인사를 가서 특유의 대범함을 발휘했다.

당시 강희제는 새해 선물로 아들들에게 짧은 글을 써주었는데, 다른 황자들에게 '새해에는 화목하게 지내라' 등의 덕담을 내린 것과는 달리, 8황자에게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라' 라는 권고문을 내리자 다른 황족들이 이를 빌미로 조롱거리로 삼는다. 하지만 명혜는 품위를 잃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른 황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의연하게 대처한다.

그런 명혜의 대처에 감탄한 약희에겐 "너도 이렇게 할 수 있다. 네 마음 속에 그분이 계시다면" 라고 답해주며 로맨티스트로서의 위용을 한껏 과시했고 이 사정이 알려지자 명혜를 정략적으로만 대했던 8황자도 그녀의 진심을 절감하고 마음을 열게 된다.

병으로 위독해진 마이태 약란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죽은 연인 청산과 고향인 사막을 그리워하자, 약희는 8황자를 찾아와 약란과 이혼해달라고 애원한다. 그러자 명혜는 망설이는 8황자를 대신해서 "나는 지금껏 약란과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에게 그럴 마음이 전혀 없는 줄 몰랐구나, 얼마나 우스운 일이냐? 그동안 허상과 싸우고 있었다" 라며 허망하게 웃으며 이혼서를 작성해준다[9]

3.3. 비극적인 최후

옹정제가 즉위한 후 8황자의 입지가 날이 갈수록 위태로워지자, 명혜는 옹정제와 연인이 되어 그의 아이도 회임한 약희를 찾아간다. 약희와 단 둘이 만나게 된 명혜는 어떻게든 8황자를 구해야된다는 일념에 눈이 멀어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고 마는데, 약희가 과거 8황자와 연모하던 사이였으며 8황자가 4황자(현재의 옹정제)를 공격한 것은 다 약희의 말[10]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있다고 협박한다. 약희는 자신이 대규모 사건을 일으키는데 일조했다는 사실에 멘붕하게 된다. 13황자가 양봉협도로 유배간 것도 본인이 원인이였다는 사실을 깨닫게된 약희는 그 쇼크로 유산하고 이후 불임이라는 판정이 떨어진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약희를 공격한 명혜의 행동은 가히 엄청난 대가로 돌아온다.

가뜩이나 황궁에 밀정을 심고 혼란스럽게 하며 사사건건 자신을 방해하는 눈엣가시같은 8황자였는데, 그의 아내인 명혜까지 약희를 유산시키고 불임으로 만들자 엄청나게 격노한 옹정제는 8황자에게 명혜와 이혼하라는 황명을 내린다.[11] 하지만 명혜의 진심을 알고 그녀를 받아들이게 된 8황자는 이혼 명령을 거부하며 "꼬우면 호적파내라"라고 대놓고 황명에 불복한다. 당연히 옹정제는 8황자 일가에 대해 더욱 분노하고 8황자에게 황궁 앞에서 하루종일 무릎꿇고 앉아있으라는 명을 내린다. 만신창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8황자의 옷을 정리하던 명혜는 옹정제가 내린 이혼장을 보고 자신이 어떤 상황을 초래했는지 깨닫게 된다. 이후에도 계속되는 8황자의 황명불복으로 인해 옹정제의 위협이 점점 더 심해지고 주변의 상황도 갈수록 살얼음판을 걷게 되자, 결국 명혜는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해 책임을 지고 8황자와 가족부터 8왕부의 식솔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혼하겠다는 의사를 스스로 밝힌다.

황명과 명혜의 의지부터 가족의 죽음 등으로 인한 압박으로 8황자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자, 명혜는 결심한 듯 말 없이 이혼장을 작성하여 도장을 8황자의 손에 쥐어준다. 8황자는 오열하며 이혼장에 도장을 찍은 뒤 이혼장을 가지고 돌아가는 명혜를 뒤에서 껴안고 "더 이상 도마 위 생선처럼 걱정하며 살지 말라"라고 말하며 그녀를 배웅해준다. 하지만 친정으로 돌아간 명혜는 8황자의 곁을 떠나게 된 이상 더 이상 살 필요가 없다며 자살하고 만다. 명혜마저 지켜주지 못하고 떠나보낸 8황자는 절망에 빠지지만 약희와 13황자가 찾아와 명혜의 본심을 알려주자, 그제서야 8황자는 명혜가 자살할 것을 예감하고 이를 막기 위해 그녀의 친정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 불길 속에서 타오르는 목매단 명혜의 시신을 본 8황자는 슬픔과 분노에 휩싸인다. 명혜의 죽음은 남편인 8황자는 물론 여동생 명옥마저 절망케 한다.

명혜의 죽음 이후에도 8황자 일가에 대한 옹정제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에, 명혜가 이혼까지 불사하며 살리고자했던 8왕부는 훗날 약희까지 사망한 후 아예 풍비박산난다. 8황자는 9황자와 함께 황족 작위를 박탈당하고 만주어로 개, 돼지라는 뜻의 욕으로 개명당한 뒤 대동보에 유폐되었으며, 명혜의 아들 홍왕을 포함한 8황자의 가족과 일가 식솔들까지 모두 하루아침에 노비로 격하되었다. 그렇게 차라리 죽는 게 나은 신세가 되어 감옥에 갇힌 8황자를 보다못한 13황자가 직접 감옥에 찾아와, 약희가 죽기 직전에 남긴 부탁으로 이제 그만 고통을 끝내라고 독약을 주면서 결국 8황자도 명혜처럼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나마 8황자가 자결하기 전 명혜와의 인연을 내세에도 이어가겠다고 다짐한 게 위안이었다.

4. 여담

보보경심 등장인물들 중에서 주인공인 마이태 약희를 제치고 가장 먼저 항목이 작성되었다.

실제 역사에서도 강희제의 황8자 애신각라 윤사의 적복진은 곽락라씨이며 안친왕의 외손녀이자, 명상부마의 딸이었지만 그녀의 동생이 강희제의 황10자 애신각라 윤아의 적복진은 아니었다.[12] 한편 곽락라씨의 외조부 안친왕[13]은 외손녀인 곽락라씨가 일찍 고아가 되자 왕부에서 길렀고 오래지 않아 사망했다.

실제 역사에서 홍왕은 곽락라씨의 소생이 아니라 첩 장씨의 소생이었다.

한국판 리메이크 드라마인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에서는 명혜가 그렇게 질투했던 마이태 약란과 합쳐진 해씨 부인이란 캐릭터로 나온다. 8황자의 정실부인인 점과 그를 사랑하여 집안의 반대에도 8황자에게 시집온 점, 8황자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점이 명혜와 비슷하다. 자식이 없고 여자 주인공인 해수를 8황자의 집에 데리고 왔다는 점(원작은 친자매지만 달의 연인에서는 6촌으로 나온다.),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점은 약란과 비슷하다.

[1] 남편 윤사가 강희제의 아들임을 생각하면 명혜와 윤사는 팔촌지간이기도 하다.[2] 약란의 기마술은 상당한 수준이다. 기마술이 뛰어난 황자들이 모두 감탄했고, 콧대 높은 명옥마저 인정할 정도. 그런데 그런 약란보다도 실력이 뛰어난 것.[3] 사실 간접적인 영향이 크긴 했지만 어쨌든 명혜가 약희의 고생길이 열리게 만든 나비효과의 시발점인 것은 분명했다.[4] 만주족은 모친의 신분을 중시하는데, 8황자의 생모 양비는 포의 출신이기 때문에 다른 황자들보다 매우 불리한 처지였다. 그런 점을 다 감수하고 8황자와 혼인한 것.[5] 특히 명혜는 남편의 운명이 곧 아내의 운명이라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약란에게도 동생 명옥에게도 그렇게 얘기한다. 실제로 그 시대는 그것이 현실이기도 했고...[6] 명혜의 오빠가 혜비의 아들 1황자와 함께 수학해서 친하다고 한다.[7] 원작에서는 귀비 동가씨로 나온다. 아마도 효의인황후 사후 후궁을 통솔한 각혜황귀비를 말하는 듯하다.[8] 8황자의 모친은 포의 출신이라 신분이나 배경이 많이 딸린다[9] 8황자는 약란을 크게 총애했고, 때문에 명혜는 약란을 질투하며 견제했지만 정작 약란 본인은 8황자의 마음을 전혀 받을 생각이 없었다[10] 과거 약희가 8황자에게 4황자와 주위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했던 그 얘기.[11] 이때 옹정제는 자신의 앞에 불려온 8황자에게 "악처는 황가에 필요 없다"라고 일갈하며 삼일 내로 명혜를 내치라고 이혼을 명한다. 그럼에도 8황자는 전부 아내를 가르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고 아내의 죄도 자신이 지고가겠다며 거부한다.[12] 실제 역사에서 윤아는 적복진을 두명 들였는데 첫 복진은 보르지기트씨였고 계복진은 효성인황후의 친정조카인 허서리씨였다.[13] 본명은 애신각라 악락(愛新覺羅 岳樂)이고 청 태조 누르하치의 7남 화석요여민친왕 아파태(饒餘敏郡王 阿巴泰)의 4남이다. 즉, 누르하치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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