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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5 11:16:40

고운봉

고명득에서 넘어옴
고운봉
高雲峰
파일:가수고운봉.png
<colbgcolor=#878787><colcolor=#fff> 본명 고명득 (高明得)
본관 제주 고씨
출생 1920년 2월 9일
충청남도 예산군
사망 2001년 8월 1일 (향년 81세)
서울특별시
학력 예산공립농업학교 (졸업)
가족 배우자, 고아진
종교 개신교
데뷔 1939년 '국경의 부두'

1. 개요2. 생애3. 대표곡4. 여담5.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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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제강점기에 주로 활동했던 대한민국가수이다.

2. 생애

1920년,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태어났다.

17살이 되던 1937년 예산공립농업학교(현 국립공주대학교 예산캠퍼스)를 졸업하고 서울특별시로 올라온다.

평소 자신이 존경하던 가수가 소속되어 있는 태평레코드에 찾아가는데, 그를 첫눈에 알아본 문예부장 박영호에 의해 "고운봉"이라는 예명을 얻고 전속 가수로 활동하게 된다.

이후 '국경의 부두'와 '아들의 하소'가 알려져 인기 가수가 되었다.

1941년 발매한 선창도 큰 인기를 얻게 된다.

하지만 1942년에는 콜럼비아레코드로 이적했다.

종전 후에는 일본에 건너가 활동을 하다가 1958년 귀국한다.

이후 대표곡 중 하나인 '명동 블루스'를 크게 히트시킨다.

2000년에는 고향인 예산에 그를 기리는 선창 노래비가 세워졌다. 자신이 직접 제막식에서 선창을 불렀다.

2000년까지는 가요무대에도 손수 출연하는 등 팔순이 넘은 몸에도 정정했으나[1], 이듬해인 2001년 3월에 뇌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졌고, 8월 1일 오후 2시 20분, 서울특별시 강동구 성심병원에서 노환에 따른 뇌경색 투병 끝에 별세했다.

3. 대표곡

4. 여담

조영남은 이때를 대비해 자신의 노래 모란동백을 불러주길 바란다고 가요무대에서 언급했다.

5. 수상



[1] 1999년~2000년 경에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현인이 건강해져서 다시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다는 말을 여 러번 했다.[2] 그 외에도 김정구가 지나갈땐 "눈물젖은 두만강 지나간다.", 현인이 지나갈땐 "신라의 달밤 지나간다." 등으로 불렀다고 한다.[3] 원래 제목은 '즐거운 잔칫날'. 첫 소절의 '잔치 잔치 벌렸네~ 무슨 잔치 벌렸나~' 가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