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ddd,#000><colcolor=#000000,#dddddd> 거스 할 Gus Hall |거스 홀 | ||
원명 | 아르보 쿠스타 할베르그 Arvo Kustaa Halberg[1] | |
출생 | 1910년 10월 8일 | |
미국 미네소타 주 체리 타운십 | ||
사망 | 2000년 10월 13일 (향년 90세) | |
미국 뉴욕 주 뉴욕 시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
학력 | 국제 레닌 학교 (졸업) | |
종교 | 무종교[2] | |
정당 | ||
병역 | 미합중국 해군[3] |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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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공산주의자이자 미국 공산당 14대 서기장.[4]이름의 한글 표기는 거스 홀, 거스 할 두 가지가 쓰인다.
소련이 글라스노스트 ·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펼치자 반수정주의 노선을 고집한 인물로 유명하다.
2. 생애
미네소타 주 북부에 있는 체리 타운십[5]에서 핀란드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급진적인 성향을 띠던 부모 아래서 자라[6] 자연스레 공산주의, 공산당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홉 형제자매들과는 부모의 모어인 핀란드어로 대화했지만 핀란드어로 정치적인 표현을 하지 못해서 핀란드의 공산주의자들과 만났을 때는 영어를 사용했다.
아버지가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광산에서 해고당한 후 가족 모두가 통나무집에서 굶어죽기 직전의 상태로 살아야만 했다.
15살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목수 일을 하기 시작했으며 2년 후에 아버지의 설득으로 공산당원이 되었는데 청년조직에서 활동하게 되었고 이때의 경험으로 모스크바에 있는 국제레닌대학에 합격해 2년간 수학했다. 이후 미네소타로 이사해 공산주의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단식, 농부들을 위한 시위, 그리고 대공황 도중의 파업 등의 활동을 이유로 1934년에 수감되었다. 수형 후 본명으로 구직을 비롯한 모든 활동을 할 수 없어서 거스 할로 개명하였는데 이는 1935년에 받아들여졌으며 이후 오하이오로 이사해 철강 산업 쪽에서 일했는데 이때 철강산업 파업을 주도했다.
오하이오에서 일하다가 엘리자베스 메리 터너와 결혼하여 두 남매를 가졌는데 이름은 각각 바바라[7], 아르보[8]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해병으로 자원입대했는데 해병 근무 시절에 공산당의 국내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946년 3월 6일에 명예전역했다. 이후 공산당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할의 머그샷.
1972년부터 1984년까지 미국 공산당의 대선 후보로 출마하였다. 또한 5년간 수감[9]된 후 풀려나고 미국 공산당의 서기장직에 올랐다.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자면 소련 해체 이후, "나는 내 신념대로 살아왔고, 사회주의 없이 역사의 전진도 없다고 믿는다. 일보 후퇴는 대세를 바꾸지 못한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2000년 10월 13일 뉴욕시에서 당뇨병으로 병사했다. #
3. 비판
그는 좌우를 막론하고 비판을 받았다. 1941년 트로츠키주의 성향을 가진 사회주의노동자당[10]의 당원들이 체포당했을 때 정부의 대처를 옹호했다가 이후 자신이 스미스법으로 인한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수감에 반대하지 않은 건 자신의 실수라고 인정하였고[11] 그가 죽었을 때 트로츠키주의 성향의 웹사이트에서는 노동자 계급을 배신했다고 비판하였다.그가 따르던 소련에서도 미국 공산당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다고 비판을 받았다.[12] 해당 비판자들은 미국의 젊은 세대 공산주의자들에게 FBI로부터 감시를 받고 있으니 미국 공산당으로부터 거리를 두라고 조언하였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공산당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1990년대 초반에 글라스노스트 ·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접한 당원들이 당 내의 민주화와 개방을 요구하였으나 이를 묵살하고 반수정주의를 고집하여 미하일 고르바초프 정권 하의 소련에서 지원을 끊어 버렸다.
폴 포트를 옹호하여 비공산주의 계열의 좌파들에게 폴 포트의 킬링필드를 옹호하는 것과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옹호가 무엇이 다르냐고 비판을 받았다.
4. 여담
라는 대화가 오간 적이 있다고 한다.
- 김일성,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와 친했다. 두 사람이 그에게 선물을 주었을 정도다. 출처, 미국 공산당 당수 거스 홀 사망, 2000년 10월 18일자 중앙일보.
- 개명 전 이름으로 보아 핀란드-스웨덴계 혼혈임을 알 수 있다. Gustav/Kustaa는 스웨덴 이름이고 Arvo는 핀란드 이름이며 Halberg는 Hallberg의 다른 표기로, 스웨덴의 성씨다. 찰스 린드버그와 비슷한 사례다. 성씨의 접미사인 -berg 때문에 유대계로 오해받기도 한다.
[1] 이후에 개명했다.[2] 본인은 무종교지만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존중한다고 말하였다.[3] 기간은 1942년-1946년[4] 재임기간은 1959년-2000년으로 최장기 재임자다.[5] Township.[6] 부모 모두 세계산업노동자연맹의 일원이었고 공산당원이었다. 아이러니하게 라푸아 지역 출신인데 해당 지역은 라푸아 운동 같은 파시즘 운동까지 벌어졌을 수준으로, 굉장히 극우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을 띤다.[7] 1938년생[8] 1947년생[9] 1954년 스미스법 재판으로 수감-1959년 보석금으로 석방.[10] Socialist Workers Party(SWP)[11] 이후 미국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할에 대해 부정적인 관점을 가지게 된다.[12] 국가 차원에서의 비판은 아니고 몇몇 정치인들이 비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