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조의 정변 당시 기록은 없으나 강조의 도당으로 몰려 유배를 간 점으로 보아 강조의 정변 당시 참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2]
1011년 8월, 박승(朴昇)·최창(崔昌)·위종정(魏從政)[3]·탁사정과 함께 강조의 도당으로 몰려 해도로 유배되었다.
[1]본관이나 강조와의 관계는 기술되진 않았지만 신천 강씨로 강조의 친척일 가능성이 있다.[2]강조의 정변 당시 최창, 위종정은 강조를 부추겼던 인물들이고 탁사정은 원래 목종을 호위했으나, 하공진과 함께 강조의 편에 섰다. 박승, 강은 역시 강조의 정변 당시 강조의 편에 섰을 가능성이 높다.[3]본관은 수녕 위씨. 현종 대 내사주서(內史主書)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