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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6 12:09:17

가을밤

1. 개요2. 역사
2.1. 노래방 관련
3. 리메이크
3.1. 앨범 소개3.2. 드라마&음원
3.2.1. 드라마 속 가을밤3.2.2. 가을 밤

1. 개요

1920년 아동문학가이자 시인인 윤복진(1907~1991)이 필명 '김수향'으로 한 작사와 오빠생각 등을 작곡한 작곡가 박태준이 만든 동요 <기러기>에 이태선(1913~2002)의 개사를 기반으로 1950년대에 만들어진 한국의 동요. 기록대로라면 곡은 반달등과 더불어 한국 동요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제목의 다른 곡도 있으니 확인해볼 것.

2. 역사

네이버 블로그에서 정리된 가을밤의 역사
일각의 주장에 따르면, 이 곡의 첫 등장은 1920년이라고 한다. 반달의 발표가 1924년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최소한 4년은 앞선 셈이다. 참고로 당시 가사는 이랬다고 한다.
1. 울 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
길을 잃은 기러기 날아갑니다
가도가도 끝없는 넓은 하늘을
엄마엄마 찾으며 날아갑니다
2. 오동잎 우수수 지는 달밤에
아들 찾는 기러기 울며 갑니다
엄마엄마 울고간 잠든 하늘로
기럭기럭 부르며 찾아갑니다
그러나 가을밤의 1920년 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근대 최초의 창작 동요로 반달이 꼽히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1. 기록대로라면 작사가 윤복진이 이 가사를 붙인 것이 14살이라는 것,
2. 윤복진의 등단이 1926년인데 그보다 6년 전에 작곡가와의 접점을 찾기 어려워 신뢰성이 떨어지고,
3. 그나마도 1920년 판은 작곡가가 박태준인지 정순철[1]인지도 혼동을 보이고,
4. 작곡가 박태준의 첫 곡 모음집인 '중중 때때중'은 1929년에야 나오며,
5. 작사가가 아나키즘에 경도된 채 광복 이후 월북하면서 가사를 다 뜯어 고친 것까지.

... 이쯤되면 아예 다른 곡일 수도 있는 상황이다.[2] 가을밤이 지금 우리가 아는 형태로 잡힌 것은 윤복진이 월북하고 이태선이 새로이 가사를 붙인 시점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 시기는 아무리 이르게 잡아도 1950년 이후로 추정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이연실의 개사로 찔레꽃으로 불리기도 했다.

2.1. 노래방 관련

참고로, 노래방에서 선곡을 할 수가 있지만, 일반적인 동요로 나온다. 금영에서는 전모델 모두 60114로 선곡 가능하나, TJ미디어에서는 60시리즈 이상 모델 한정 47724로 선곡 가능하다. 50시리즈 이하 모델이라고 아예 선곡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우회선곡이 가능하다. 이연실 - 찔레꽃(35761)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우회하면 된다. 다만 정밀채점 기능 적용시, 점수에 주의할 것.

3. 리메이크

가을밤
파일:오연준 가을밤.jpg
<colbgcolor=#D19B54> 발매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7년 10월 26일
(발매일로부터 [dday(2017-10-26)]일/[age(2017-10-26)]년째)
가수 오연준
프로듀서 -
분야 드라마음악
기획사 파일:지니뮤직 로고.svg
발매사
파일:지니뮤직 로고.svg
곡 수 1곡
재생 시간 -
타이틀곡 가을 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가을밤(오연준)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1. 앨범 소개

오연준 - 가을밤(부암동 복수자들 Part.2)

3.2. 드라마&음원

3.2.1. 드라마 속 가을밤

{{{#fff 드라마 속 가을밤 }}}

3.2.2. 가을 밤

{{{#fff 가을밤 }}}

가을 밤
가을 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초가집 뒷 산길 어두워질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가을 밤 고요한 밤 잠 안 오는 밤
기러기 울음 소리 높고 낮을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가을 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초가집 뒷 산길 어두워질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1] 마해송, 윤극영, 윤석중, 방정환 등과 더불어 한국 동요와 아동문학의 모태가 되는 색동회의 멤버이자, 가을밤과 더불어 근대 최초의 동요라는 설이 있는 방정환 작사의 <형제별>(1923)의 작곡가였다.[2] 이에 비해 반달은 1924년에 작성한 악보와 1926년 발표한 노래 그대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고 볼 수 있으니, 한국 최초의 동요를 반달로 여기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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