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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9-03 09:44:40

XC-2

AIDC XC-2

1. 제원2. 대만의 수송기 개발 사업3. 탄생4. 구조5. 좌절된 처녀비행6. 운용

1. 제원

개발 : AIDC(漢翔航空工業)
초도비행 : 1979년 2월 26일
생산 개시 : 1976년 4월 19일
퇴역 시기 : 1980년
승무원 : 2명 + 38명
유효 페이로드 : 3,850 kg
전장 / 전폭 / 전고 : 19.74 m / 24.9 m / 7.72 m
익면적 : 65.4 m2
익형 : NACA63-218
중량 : 5,896 kg~11,340 kg
동력 : 라이커밍 T53-L-701A 터보프롭 엔진 (1,451hp) 2기
연료 탑재량 : 3,082 ℓ
최대속도 : 392 km/h
순항속도 : 324 km/h
항속거리 : 2,131 km
상승한도 : 8,352 m
상승률 : 564 m/min
이륙활주거리 : 534 m
착륙활주거리 : 358 m
생산수 : 1대

2. 대만의 수송기 개발 사업

중화민국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부터 40명의 병력을 실어나를 수 있는 규모의 중형 수송기를 자체적으로 개발해 생산하는 계획을 세웠으나, 기술적인 장벽을 넘지 못해서 좀처럼 진행이 되지 않고 있었다. 대만 정부는 일단 군의 요구에 맞춰 미국으로부터 중고로 남아돌던 더글라스 C-47을 양도받고, 페어차일드 C-119를 구입해 공군에 편입시켰다. 중화민국은 보급품을 실어나르는 한편 병력의 공수 능력까지 갖춘 수송기를 원했지만, C-119만이 그런 요건을 충족시키고 있었고, 그나마 C-123이나 C-130 같은 차세대 수송기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구식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대만은 미국의 록히드 사로부터 C-130의 구입을 시도했지만 마오쩌둥의 견제로 말미암아 손에 넣지 못하고 있었다.

록히드는 이런 중화민국에 대하여 그나마 차선책으로 C-130의 탑재량과 항속거리를 줄인 염가판의 수출을 제안했지만, 이것으로는 대만 공군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이에 AIDC는 T-CH-1 중흥(中興號)라는 계획 명칭 아래 개발하고 있던 터보프롭 훈련기와 함께 1972년 10월부터 수송기 국산화 계획안을 세우고 같은 해 12월부터 80억 대만 달러의 개발 예산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아 자국산 수송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3. 탄생

XC-2는 T-CH-1 훈련기의 엔진과 같은 라이커밍 T53-L-701 터보프롭 엔진을 채택했고 높이 붙여진 고익 배치의 주날개, 위로 치켜 올라간 한 장의 수직 미익과 거기에 십자형으로 가로지르는 수평 미익을 가졌으며, 동체 후방에는 C-130을 참고하여 아래 위로 열리는 카고 도어를 마련해 공수 병력을 강하시키거나 화물 투하를 가능하게 설계했다. 대만 공군을 위한 수송기는 이렇게 해서 1974년부터 세부 설계의 윤곽이 드러나게 된다.

AIDC가 XC-2 사업을 진행하던 도중인 1975년에는 정부에 의해 제트 훈련기 개발 사업이 추가되어 잠시 수송기 제작은 미뤄져야만 했는데, 설계와 기체 제작에 필요한 엔지니어 인력이 부족했던 탓이었다. 그러나 얼마 안가 제트 훈련기 AT-3프로펠러 수송기보다 기술적으로 더 까다로운 과제라는 것이 밝혀졌고, AIDC는 다시 XC-2 계획을 선행하게 된다. 1976년 4월 19일부터 원형 1호기의 제작을 위한 강재 절단이 시작되었다.

4. 구조

XC-2는 설계 자체는 당시 수송기에서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던 랜딩기어를 기내에 수납하지 않고 동체 양쪽의 벌지에 접어넣는 방식과 일체형 후방 도어와 화물 탑재용 인입식 램프 같은 요소들을 충분히 반영시켰다. 각각 1,451hp을 내는 2기의 터보프롭 엔진은 그루먼 OV-1 모호크에 달린 것과 같은 제품이었는데, 장차 출력 증강을 위해 교체하기 쉽도록 처음부터 고려하고 있었다. 주날개의 에어포일은 일종의 층류익인 NACA63-218를 도입했으며, 파울러 플랩을 추가해 단거리 이착륙 성능도 추구하고 있었다.

5. 좌절된 처녀비행

1978년 10월 31일, 정부 관계자들이 배석한 가운데 출시 행사를 치룬 원형기 68-5001호기가 지상 활주로에서 택싱을 시작했다. 그러나 곧바로 착륙장치에서 결함이 발견되어 이륙 시도는 즉시 중단되고 첫 비행은 연기되었다. 조사 결과, 이때 원형기에 조립된 노즈 기어는 퇴역한 F-86 세이버 전투기에서 떼어온 것이었고, 그 기체는 이전에도 비슷한 사고를 일으킨 전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기술진들은 그루먼 알바트로스(Grumman HU-16 Albatross) 비행정의 오레오 링크를 가져와 노즈 기어를 개선했으며, 이런 개량 작업 때문에 시제기 완성은 1979년 2월에야 마무리될 수 있었다고 한다.

6. 운용

2월 26일에 처녀 비행에 성공한 시제기는 테스트 비행을 반복했다. 해가 바뀐 1980년 2월 1일, 지상 대기 중이던 기체의 왼쪽 랜딩기어가 갑자기 저절로 접히는 바람에 기체가 지면에 부딛히면서 손상을 입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는 어이없게도 시험 요원들이 조종실에서 의도하지 않게 스토리지 스위치를 잘못 건드려 일어난 사고였다. 3월에 수리가 끝날 때까지 계획은 재검토에 들어갔다. 개발진의 사전 연구가 미흡했던 탓에 그로 인하여 기체의 중량은 예정을 초과한데다, 비행 중에 일어날 미지의 문제가 남아 있는 점이 지적되었고, AIDC는 XC-2가 실용화까지 넘어야만 할 장애물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대만 정부는 예전에 개발을 연기했던 제트 훈련기 AT-3의 완성을 재촉하고 있어 기술진들은 또다시 XC-2를 방치해둔 채 전혀 다른 성격의 기체 개발을 진행하게 된다. 1980년 4월에 계획에 필요한 인원을 충원할 수 없다는 점과 원래 예산을 넘긴 개발 비용을 고려하여 XC-2는 개발 중지가 결정되었다. 어쨌든 비행이 가능한 상태로 완성된 기체였던 탓에, XC-2는 현재 AIDC의 비기 공원(飛機公園)에 야외 전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