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죠의 기묘한 모험에 등장하는 스탠드에 대한 내용은 화이트스네이크(죠죠의 기묘한 모험) 문서 참고하십시오.
(1987년도 멤버)[1][2]
(로고)
한국 팬카페
1. 개요
화이트스네이크는 1977년 결성된 영국의 하드 록/헤비 메탈 밴드다.2. 역사
딥 퍼플 출신의 전설적인 보컬리스트인 데이비드 커버데일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딥 퍼플 시절이 아니라 이 시절에 전설이 되었다. 특히 일본에서 만든 '5대 헤비메탈 보컬리스트' 등에 오를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이 시절의 공이다.[3]좌측부터 데이비드 커버데일,닐 머레이,이안 페이스,미키 무디, 아래 버니 마스덴,존 로드
처음에는 블루스 하드록 밴드로 시작하여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여 영국과 미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딥 퍼플 시절의 동료 존 로드와 이안 페이스의 참여도 화제였으며, 훗날 유명해지는 베이시스트 닐 머레이도 여기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80년대로 접어들면서는 레인보우를 거친 코지 파웰이 참여하기도 했다.
트윈 리드 기타리스트 였던 버니 마스덴과 미키 무디 또한 초기 화이트스네이크 사운드의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특히 버니 마스덴은 Here I Go Again 과 Fool For Your Loving 같은 밴드의 대표곡을 작곡하여 화이트스네이크의 성공에 큰 업적을 남기게 된다.
1984년 라인업. 좌측부터 닐 머레이,존 사이크스,코지 파웰,데이비드 커버데일,존 로드,멜 갤리.[4]
이후 1984년 Thin Lizzy 출신의 젊은 기타리스트 존 사이크스가 가입한후 Slide It In, 1987(Whitesnke) 등의 앨범을 발매하게 되는데, 이 때부터 화이트스네이크의 헤비메탈적인 성향이 형성되게 된다.
3. 특징
거물 혹은 나중에 더 큰 거물이 되는 기타리스트들이 많이 거쳐간 밴드로 알려져 있으며, 이 밴드를 거쳐간 기타리스트들은 존 사이크스, 아드리안 반덴버그, 스티브 바이, 비비안 캠벨, 워렌 디 마티니, 덕 앨드리치 등이다. 현재도 렙 비치 와 함께 활동중. 화이트스네이크는 아니고 개인활동으로 레드 제플린의 지미 페이지와 함께 Coverdale & Page 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도 했다.딥 퍼플 시절까지 생각해보면 오지 오스본 이상가는 기타 복 받은 보컬 아니 기타 덕후(..) 심지어는 아드리안 반덴버그와 스티브 바이 두명을 양쪽에 세워놓고 활동한 적도 있을 정도. 아래 1987년 영상에서도 양쪽에 서 있는 기타리스트는 비비안 캠벨[5]과 아드리안 반덴버그[6]로서 둘 다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이다.
80년대 헤비메탈 스럽게 사운드를 변신하기 전에도 대단한 기타리스트들이 참가했었는데, 70년대 후반에 참여한 지금은 고인이 된 멜 겔리 또한 글렌 휴즈의 트래피즈 출신의 실력파였다.
그리고 원년 멤버로 참여했던 미키 무디와 버니 마스덴, 그리고 지금은 너무나 유명해진 베이시스트 닐 머레이를 언급하지 않을수 없다. 미키 무디는 슬라이드 기타의 달인이었으며, 버니 마스덴은 딥 퍼플의 존 로드와 이안 페이스와 함께 PAL 이란 밴드에서도 활동했으며 오늘날의 화이트스네이크를 있게 한 곡 Here I Go Again 의 공동작곡가 이기도 하다. 닐 머레이는 화이트스네이크를 시작으로 바우와우, 블랙 사바스, MSG 등을 거치며 밥 데이즐리[7] 와 함께 마당발 베이시스트로 유명해진다.
딥 퍼플, 레드 제플린, 그리고 블랙 사바스 같은 밴드 때문에 거의 공식화된 1밴드 1기타의 룰을 깨고 리듬, 리드 기타를 멤버에 넣는 방법을 채택한다. 앨범 버전에선 기타를 2파트로 나눠서 녹음은 했지만 무대에선 결국 1기타리스트라 기껏 녹음한 2파트를 다 들려주지 못해 그걸 무대위에서 보여주기 위했던 선택.
하지만 초창기 키보디스트였던 존 로드는 이를 탐탁지 않아 했다고 한다. 무대위에 기타가 많으면 다른 악기의 사운드가 묻히게 되고 리듬/리드 기타의 때문에 키보디스트의 역할은 거의 줄어들고 기껏해야 배킹으로 사운드를 좀 깔아주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딥퍼플 시절 서로 각 파트들이 제때 들어오고 제때 빠지면서 전체적인 밸런스를 중요시 했던 것을 생각하면 무리도 아니다.
그외 루디 사르조와 토미 알드리지 그리고 코지 파웰도 있었고, 그 딥 퍼플의 전 멤버였던 존 로드, 이안 페이스가 같이 활동한 적도 있고 라이브 한정으로 글렌 휴즈와 조 새트리아니가 같이 활동하기도 했다(..)
1987(WhiteSnake) 앨범에서는 말이 필요없는 드러머계의 전설 에인슬리 던바가 함께 했으며 80년대 초반 합류했던 베이시스트 콜린 하지킨슨은 유명한 재즈 베이시스트이기도 했다. 화이트스네이크를 거쳐간 멤버들과 그 연관인물은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후반의 메탈 세대를 아우르는 인물들이다.
또한 커버데일은 이 나이에도 날이 갈수록 보컬 기량이 상승하고있다(...) 점점 원숙해지는 기량에 음역은 딥 퍼플 시절보다 상승했다. 화이트스네이크 버전 Burn에서는 딥 퍼플 시절엔 고음부를 글렌 휴즈가 담당했으나 지금은 본인이 직접 한다.[8] 라이브에서의 컨디션이 왔다갔다하는 게 단점이지만 컨디션 최상인 경우 디오옹에 범접하는 포스를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은 아래 2005년 영상에서도 볼 수 있다.
1987년 발매한 'Whitesnake' 앨범은 미국에서만 무려 8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 파워풀한 'Here I Go Again' 이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바 있으며, 'Is This Love' 또한 빌보드 싱글 차트 2위를 기록했다.
록발라드 풍의 편안한 곡 (Deeper The Love 등등) 부터 정통 헤비메탈을 보여주는 곡 (Still Of The Night 등등) 까지, 여러 장르의 곡을 만드는데다가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있는 밴드가 바로 화이트스네이크라 할 수 있겠다.
2011년 'Forevermore' 앨범발매 후, 내한했으며, 나이트레인저에서 활동한 조엘 훅스트라가 기타리스트로 가입 후, 2015년 딥 퍼플 시절의 명곡들을 리메이크한 The Purple Album , 2019년에는 Flesh & Blood 앨범을 발표하면서 꾸준히 헤비메탈 음악의 진수를 보여주고있다.
2022년 고별투어를 끝으로 데이비드 커버데일이 밴드를 떠난다. 2021년 7월 밴드의 코러스 역할로 가입한 디노 젤루식[9]가 보컬 자리를 이어받을 것으로 보인다.
3.1. 라이브 영상
1984년 일본 라이브. 당시 멤버였던 존 사이크스의 기타 솔로가 인상적인 라이브이다.
1987년 MTV 라이브.[10]
2005년도의 모습. 반음 다운튜닝을 하긴 했지만 엄청난 포스를 보여준다.
4. 디스코그래피
- Trouble
1978년 발매된 화이트스네이크의 데뷔 앨범.
- Lovehunter
1979년 발매된, 뱀과 나체의 여성이 함께 있는 선정적인 앨범아트가 인상적인 앨범. 이 앨범 커버는 존 로드의 솔로 앨범 Sarabande를 오마주한 것.
딥 퍼플 시절의 동료 이안 페이스가 드러머로 가입하여 화이트스네이크 초기 베스트 멤버가 확정된다. 보컬에 데이빗, 키보드 존 로드, 드럼 이안 페이스, 베이스 닐 머레이 그리고 트윈기타에 미키 무디와 버니 마스덴이 화이트스네이크의 초기 구성 멤버에 의한 정통 브리티쉬 하드록 사운드를 그리워하는 팬층도 상당히 두껍다.
- Ready An' Willing
1980년 발매. 그 들 최초의 명곡 Fool For Your Loving 이 수록 되어있다. 이 곡은 훗날 Slip Of The Tongue 앨범에서 리메이크 된다.
이 앨범으로 화이트스네이크는 영국에서 골드 앨범을 기록한다.
- Come And Get It
1981년 발매. 마찬가지로 골드 앨범
- Saints & Sinners
1982년 발매. Here I Go Again 과 Crying In The Rain 의 원곡이 수록 되어있다. 이 앨범을 끝으로 딥 퍼플 시절부터 동료였던 이안 페이스, 기타리스트 버니 마스덴이 탈퇴한다.
- Slide It In
1984년 발매. 딸의 병간호 때문에 2년 가량 활동을 접었다가 새로운 라인업으로 발매한 앨범. 귀에 익은 멜로디의 곡 'Slide It In' 이나 근사한 블루스록 곡인 'Slow An' Easy' 등이 히트했다. 화이트스네이크 최초의 플래티늄 앨범으로 등극. 영국 발매판과 미국 발매판의 레코딩이 다른데 영국판의 경우 미키 무디와 멜 겔리의 기타로 레코딩되었으나, 미국판에서는 미키 무디가 탈퇴함에 따라 존 사이크스를 가입시키고 기타연주를 리믹스하여 레코딩하고 발매되었다.[11] 드럼은 탈퇴한 이안 대신 코지 파웰이 맡았으며 베이스는 영국판에서는 콜린 하지키슨 이었지만, 미국판에서는 탈퇴했다 재가입한 닐 머레이가 재녹음했다.
이 앨범을 끝으로 기타리스트 멜 겔리와 키보디스트 존 로드가 탈퇴한다. 존 로드는 같은 해에 재결성된 딥 퍼플에 참여한다.
- 1987 (UK) / Whitesnake (US)
1987년 발매된 앨범. 영국발매판은 1987로 발매되었으나 미국발매판은 셀프타이틀 명인 Whitesnake로 발매되었다 (팬들은 주로 1987이라고 부른다.) 팬들이 보통 알고있는 'Crying In The Rain' 이나 'Here I Go Again' 등등 유명한 곡들이 많이 들어있는[12], 하드록/헤비메탈계의 명실상부한 명반. 세계 각지에서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했다. 앨범 전반에서 존 사이크스가 공동 작곡가로 큰 역할을 해내었고 베이스에는 역시 닐 머레이, 드럼에는 제프벡 그룹, 프랭크 자파, 저니, 제퍼슨 스타쉽등을 거친 명 드러머 에인슬리 던바, 키보드에는 현재 딥 퍼플 키보디스트이며, 오지 오스본 밴드, 레인보우, 게리 무어등 유명밴드를 거친 키보디스트 돈 에어리가 참여하였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존 사이크스 영입 뒤에 발표된 작품으로 거의 모든 곡에 존 사이크스의 손길이 닿아 있지만 정작 본인은 본격적인 활동 이전에 잘렸다...
- Slip Of The Tongue
1989년 발매. 에이드리언 반덴버그 와 스티브 바이 가 참여한 작품. 여전히 강렬한 헤비메탈적 성향을 띤 'Slip Of The Tongue', 밴드의 히트곡 중 하나인 'Fool For Your Loving'의 리메이크 버전외에도 록발라드풍의 감미로운 멜로디를 들려주는 'The Deeper The Love' 같은 곡이 눈에 띈다. 1987보다는 못했지만 여전히 히트.
크레딧 상에서는 두명의 기타리스트가 연주한것으로 되어있지만 실제 모든 기타연주는 스티브 바이 혼자 한 것이다.
에이드리언 반덴버그는 레코딩전 손목 부상으로 연주를 할 수가 없었다.
커버데일은 녹음 스케줄상 스티브 바이를 급하게 영입하여 레코딩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 Restless Heart
1997년 발매된 앨범으로 원래 데이비드커버데일의 솔로앨범으로 발매 될 예정이었으나 음반사의 압박으로 인하여 "David Coverdale & Whitesnake"으로 발매되면서 현재까지도 화이트스네이크의 공식음반이 되어버렸다. 직후에 발매될 Starkers in Tokyo 앨범에서 빛을 발하는 Too Many Tears, Don't Fade Away, Can't Go on 과 같은 발라드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 Good To Be Bad
데뷔 25주년을 기념하여 재결성 이후, Live: In the Shadow of the Blues 라이브 앨범을 통해 새로운 곡들을 발매하던 화이트 스네이크가 10여년만에 발표한 정규 앨범이다. (2008년 발매.) 강렬한 메탈보다는 하드록 스타일의 느낌으로 Summer Rain과 같은 발라드와 Best Years, Can You Hear the Wind Blow, Got What You Need 같은곡이 눈에 띈다. Classic Rock Award 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한다.
- Forevermore
2011년 발매. 전작에 이어 덕 앨드리치, 렙 비치, 마이클 데빈 등등 여러 밴드의 거물급 멤버들과 함께 내놓은 앨범. 타이틀곡 'Love Will Set You Free' 와 더불어 'Easier Said That Done' 'Steal Your Heart Away' 등이 익숙한 멜로디로 많은 팬들을 만족시켰다. 이 앨범 또한 어느 정도 히트.
- The Purple Album
데이비드 커버데일 재직시절이었던 딥 퍼플 MK3, MK4시절의 노래들을 리메이크한 앨범으로 드러머 토미 알드리지가 복귀한 것 치고는 크게 이슈가 되진 못했다. 딥퍼플 시절 노래는 오래전부터 라이브에서 불러왔지만 앨범으로 낸건 처음. 팬들은 기존의 곡에 비해 아쉽다는 평을 남겼다. 사람들이 흔히 알고있는 딥퍼플의 명곡들은 데이비드의 재직시절이 아닌 이안 길런의 재직시절이던 MK2때 나왔것도 있다.
- Flesh & Blood
2019년에 발매한 앨범으로, 과거 전성기 시절을 연상케 하는 앨범 커버를 통해 강렬한 메탈음반임을 암묵적으로 보여줬다. 이전 음반들에 비해 시원한 메탈음악을 선보이면서 팬들에게도 평가가 좋았다. Shut Up & Kiss Me, Trouble Is Your Middle Name 같은 곡을 추천
5. 여담
화이트스네이크는 데이비드 커버데일의 오너 밴드로 다른 멤버들을 고용하고 유지하는 계약 관계형 밴드였는데, 1987년에 저 1987(White Snake) 앨범이 대박을 터뜨릴 것 같자 흥행 보너스를 주기가 아까워서 그 전에 멤버들을 전부 해고했다는 썰이 있다. 이는 데이비드 커버데일 얘기가 나오면 메탈 팬들이 두고두고 씹는 안주거리다. 그 외에도 존 사이크스와 밴드를 했을 때, 존 사이크스의 보컬, 기타, 작곡위에서 전부 해고할 때 짤린 기타리스트가 바로 존 사이크스인데 존 사이크스는 해고 이후 블루 머더[14]라는 트리오 슈퍼 밴드를 만들어 활동. 때문에 데이비드 커버데일의 실력은 나무랄데 없지만 인간성에선 좀 까이기도 했다. 사실 오너 밴드라는 개념이 문화, 예술계에선 너무 돈미새같이 보이는 편견도 있긴 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 당사자간 주장이 엇갈린다. 커버데일이 사이크스를 해고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1987(White Snake) 앨범에 상당수의 곡을 사이크스가 만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밴드가 갈린 유력한 썰로는 커버데일의 건강문제로 촉발된 커버데일과 사이크스의 밴드 내 알력싸움 폭발로 꼽힌다. 이미 곡들은 상당히 이른 시기에 완성이 되었는데, 앨범 발매 전인 1986년에 커버데일이 보컬에 큰 문제를 갖게 되는데 다들 성대결절로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성대결절이 아니고 비중격만곡증으로 중격이 주저앉아 코 수술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그래서 커버데일은 이전까지 사용하던 보컬 스타일을 버릴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른바 메탈 매니아들이 환호하는 1987년 이후의 스타일이 이때 정립된 것이다. 당장 데뷔~1985년까지의 보컬과 1987년 이후의 보컬은 특히 고음처리만 들어보면 완전히 다른 사람 수준이다. 문제는 커버데일의 수술로 화이트스네이크 활동에 빨간불이 들어오면서 대부분 비즈니스 관계였던 멤버들이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데 당시 커버데일의 절친이자 리더인 커버데일 다음으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존 사이크스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사이크스는 당시 인터뷰에서 커버데일이 신경종을 앓고 있을 뿐 보컬 녹음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을 정도. 사이크스는 과거 커버데일이 건강이나 가족문제로 밴드를 해체한 경험을 알고있으며, 설사 커버데일이 수술이 잘됐다고 해도 보컬 스타일이 바뀔 것이고 새로운 스타일이 원래 커버데일의 음역대에 맞게 작곡한 곡에 제대로 사운드와 매칭이 되겠느냐같은 문제로 고민했던 것이다.
이미 곡은 만들어 두었고 이대로 밴드를 사장시킬수 없었기에 사이크스는 이른바 Plan B를 준비하였는데 문제는 바로 이것이 커버데일이 모르는 상황으로 진행되었고 또 그것 재기를 위해 준비중이었던 커버데일의 심기를 많이 불편하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이크스는 블루 머더로 활동하려던 시기에 예정에 두었던 보컬리스트 레이 길런을 화이트스네이크의 새 보컬리스트로 고용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블루 머더에 대해 좀 많이 아는 팬들은 레이 길런이 보컬을 하려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도주를 하고 어쩔수 없이 사이크스가 보컬을 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앞서 나열된 사건들을 살짝 이어보자면 1987 앨범을 준비하던 화이트 스네이크가 리더인 커버데일의 코 수술로 활동이 불분명해지자 2인자였던 존 사이크스가 플랜 B를 가동하여 새로운 보컬로 앨범 발매를 강행하려던 걸 리더인 커버데일이 모르는 상황에서 진행되다가 커버데일에게 알려지게 되어 이에 격노한 커버데일과 사이크스간에 불화로 밴드가 아작이 난 스토리가 된 것으로 정리가 된다.[15]
그렇게 대다수가 알고 있듯이 분노에 휩싸인 악덕사장(?) 커버데일은 일종의 반란세력인 사이크스,머레이,던바까지 기존 멤버를 모조리 해고하고(존 로드는 이전에 탈퇴) 새로운 밴드멤버들로 구성하여 1987 앨범을 발표하는데 이게 화이트스네이크 역사상 최고로 히트하게 되는 스토리로 이어지게 된다. 먼저 말했던 문제로 멤버들이 모두 해고 되고 기타리스트인 비비안 캠벨과 아드리안 반덴버그, 베이시스트는 루디 사르조, 드럼에는 토미 알드리지를 새롭게 영입하였다.[16] 사르조나 알드리지 같이 이런 상황에 익숙한(?)[17] 전문가부터, 젊은 나이에 이미 로니 제임스 디오의 홀리 다이버를 연주하며 실력을 인정받은 비비안 캠벨, 밑바닥에서 착실하게 자신의 색깔을 잡아온 아드리안 반덴버그등 이미 떠난 밴드멤버들의 역량에 뒤처지지 않는 뛰어난 아티스트들을 즉시 다시 모을수 있었다는 점도 커버데일의 카리스마와 친화력, 운빨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커버데일은 종종 과거에 자신의 밴드에 있었던 멤버와 세션들을 자신의 공연장에 불러 우정을 과시하곤 한다. 존 로드같은 데뷔 초에 모셨던 대선배서부터 업어키운 후배들까지. 그런데 유독 존 사이크스는 눈에 띄지 않는다. 초창기 멤버들까지 부르고 심지어 딥 퍼플 시절 고음이 안되어 고음을 채워주던 글렌 휴즈와도 협연을 하는 등 커버데일의 인스타그램에 가보게 되면 지난날의 추억을 하는 듯 과거 멤버들과의 사진을 종종 올리는데 그 수많은 과거 멤버들 중에 존 사이크스만 없다.
[1] 좌측부터 루디 사조, 토미 알드리지, 아드리안 반덴버그, 데이비드 커버데일, 비비안 켐벨이다.[2] 중앙 상단이 아즈리안 반덴버그이고 하단이 데이비드 커버데일이다.[3] 딥 퍼플 시절의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너무 심각한 사투리와 고음불가로 이름이 높았으며(그래서 Burn같은 곡은 베이스를 가장한 보컬리스트인 글렌 휴즈가 고음 파트를 맡았다), 성대결절 이후로 오히려 노래가 일취월장해서 80년대에 보컬로 꽃을 피우게 된다.[4] 멜 갤리는 1984년 월드투어때는 동참했지만 이 라이브 앨범 발매 전 그룹을 탈퇴해서, 해당 음반 커버에서 잘렸다.[5] DIO, 데프 레퍼드 등에서 활동[6] 본인의 이름을 딴 Vandenberg라는 밴드로 메이저에 입성하였고 이후 드러머인 토미 알드리지와 함께 Manic Eden이라는 밴드로 활동. Peavey Vandenberg라는 시그니쳐 기타도 유명하다.[7] 레인보우 등 에서 활동[8] 1987(WhiteSnake) 발매전 성대결절로 인해 보컬생명이 끝날수 있었는데 수술 후 상태가 오히려 호전되어 오히려 못부르던 고음부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9] 크로아티아 출신으로 주로 파워 메탈 곡에 피처링 보컬로 자주 기용됐었다. 본인 솔로곡은 발라드 성향이 강한 편[10] 곡의 이름은 'Still Of The Night'이다[11] 리믹스를 한 이유는 미국시장 공략을 위해 한것이다.[12] 아울러 'Is This Love'도 메탈밴드 답지 않은 서정적인 곡으로 인기를 끌었던 곡이다. 성급하게 연인과 이별을 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심정을 대변하는 곡으로 더할 나위 없는 곡이다.[13] 거기에다 잘생김(...)[14] 베이스는 데이빗 길모어, 지미 페이지, 콰이어트 라이엇, 데릭 셰리니언과 활동했던 토니 프랭클린, 드럼은 제프 벡과 활동했던 카마인 어피스. 그 외에도 코지 파웰이니, 보컬리스트 레이 길런이니 하는 당대의 테크니션들이 거쳐간 밴드[15] 일썰로는 평소 커버데일을 존경하던 레이 길런이 사이크스의 추천으로 화이트 스네이크 곡을 부르게 되어 영광으로 알고 있다가 난데 없이 격노한 커버데일과 맞닥뜨리게 되어 그곳을 황급히 빠져나왔다라는 식 - 그렇지 않고서는 블루 머더 초기 보컬로 배정된 그가 이유없이 도주한것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 후 레이 길런은 자신의 밴드 Badlands를 만들어 활동함.[16] 이 시기에는 키보디스트를 새로 안 뽑았기 때문에 1987년~1988년 라이브에서는 비비안 캠벨과 아드리안 반덴버그, 루디 사르조가 번갈아가면서 키보드를 맡았다.[17] 이런 짓 자주하는 양반으로 끝판왕인 오지 오스본까지 겪어본 사람들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