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tion française de l'Internationale ouvrière (SFIO) | |
슬로건 | |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ff0000> 영문 명칭 | French Section of the Workers' International |
한국어 명칭 | 노동자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 |
창당일 | 1905년 4월 25일 |
해산일 | 1969년 5월 4일 |
전신 | 프랑스 사회당[1] 프랑스 사회주의자당 |
후신 | 사회당 |
대표 | XX |
이념 | 사회주의 |
정치적 스펙트럼 | 좌익 |
당 색 | 적색(#FF0000) |
당원 수 | XXXX명 |
의회 | 57석 / 487석 (1968년) |
당가 | 한국어 이름 (원어 이름) |
국제조직 | |
국내조직 | |
청년조직 | 한국어 이름 (원어 이름) |
기타 조직 | 한국어 이름 (원어 이름) |
기관지 | 인민 (Le Populaire) 뤼마니테 (L'Humanitè) |
당기 |
[clearfix]
1. 개요
오늘날 사회당과 공산당의 전신이 되는 정당으로 1905년부터 1969년까지 이어진 정당이다.2. 역사
1905년 프랑스 사회당과 프랑스 사회주의자당을 중심으로 노동자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가 결성되었다. 1911년 뤼마니테를 정당의 기관지로 편입하였다. 이때 당 내의 계파는 혁명파와 개량파로 나뉘었는데, 제1차 세계 대전과 러시아 혁명을 거쳐 개량주의 노선에 반대한 당원들이 탈당하여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SFIC)를 창당했으며, 이때 뤼마니테도 SFIC의 기관지로 재편되었다. 이 정당은 프랑스 공산당으로 이어진다.SFIO는 당세를 서서히 회복하여 1936년 급진당, 공산당과 함께 정당연합 인민전선을 결성하고 연정에 참여했으며, 레옹 블룸이 총리가 되었다. 그러나 스페인 내전 개입을 놓고 급진당과 공산당이 대립하면서 연정은 붕괴했고 이합집산을 반복하던 사이 제2차 세계 대전으로 프랑스 제3공화국이 붕괴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프랑스 공화국 임시정부에서는 3당 체제(tripartisme)라고 하여 프랑스 공산당, 대중공화운동과 함께 정국을 주도했지만 정국의 주도권은 프랑스 공산당이 쥐고 있었다. 프랑스 제4공화국에서는 공산당이 배제되고 드골파가 정권에서 이탈하면서 급진공화당, 대중공화운동과 함께 연정을 통한 집권을 도모했다. 하지만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제2차 중동전쟁, 알제리 전쟁에서 발목이 잡히면서 연정은 위기를 맞이했고, 제5공화국이 세워진 뒤에는 오락가락하는 행보로 인해 선거에서 연달아 패배했다.
그럼에도 1965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는 프랑수아 미테랑이 좌파의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서 결선까지 진출했고 1967년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에서는 어느정도 지지를 회복했다. 하지만 1968년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에서는 우파의 결집으로 참패해버렸고 1969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는 가스통 드페르가 출마하였으나 역시 참패하였다. 결국 기 몰레의 퇴진을 기점으로 SFIO는 좌파 혁신을 위한 연대, 사회주의 연대와 함께 사회당으로 통합되었다. 프랑수아 미테랑의 공화헌법회의는 1971년 사회당에 합류했다.
[1] 이 정당은 1902년에 출범한 정당으로 오늘날 프랑스 사회당과 다른 정당으로 약칭은 PSF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