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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20 16:16:01

앙골라 해방인민운동

MPLA에서 넘어옴
파일:앙골라 해방인민운동 당기.svg
Movimento Popular de Libertação de Angola
약칭 MPLA
한글명칭 앙골라 해방인민운동
상징색
빨강색
슬로건 Paz, Trabalho e Liberdade
(평화, 노동, 자유)
당수 주앙 로렌수
창당일 1956년 12월 10일
주소 앙골라 루안다
이념 사회민주주의[1]
민주사회주의[2]
1991년까지 :
수정주의[3]
반스탈린주의[4]
비동맹주의[5]
정치적 스펙트럼 중도좌파
청년 조직 MPLA 청년단
국제 조직

국회 의석 수
124석 / 220석
기관지 Jornal de Angola
웹사이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6]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3. 역대 당수
3.1.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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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앙골라사회민주주의 정당이자 현재 집권당이다. 독립 이전에는 포르투갈의 살라자르 정권과 독립 이후에는 앙골라 내전에서 FNLA와 UNITA를 상대로 싸웠다.

2. 역사

앙골라 해방인민운동(MPLA)은 암분두족과 지식인을 기반으로 1956년에 독립운동 단체로 설립되었으며, 그해 의사이자 시인인 아고스티뉴 네투가 당수로 지명되었으며, 비리아토 프란시스쿠 클레멘트 다 크루스와 루시우 라라 등 앙골라 공산당 출신 인사들도 합류했다.[7]

기니카보베르데 아프리카독립당과 유대관계를 맺고 1979년까지 포르투갈 식민지 국민주의 조직 회의를 개최하였다.

1961년부터는 소련의 지지를 받고 단독 무장투쟁에 돌입하여, 포르투갈 식민당국의 기지를 공격하며 앙골라 독립전쟁에서 활약했다. 이 무렵 MPLA당은 유고슬라비아이집트등 비동맹운동 회원국에 접근하여 지지를 얻기도 했다.

1974년 포르투갈에서 카네이션 혁명이 일어나자 MPLA는 즉각 독립을 요구했으며 무장투쟁을 중단하였다. 이후 1975년 11월 11일에 앙골라는 포르투갈로부터 공식적으로 독립하였다. MPLA는 앙골라를 건국하고 아고스티뉴 네투가 앙골라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1977년부터 MPLA당은 사회주의를 공식 이념으로 선언하고 앙골라 해방인민운동-노동당으로 개칭하였다.[8] 하지만 발생한 쿠데타에 긴장한 MPLA는 반대파 학살을 단행했으며, 18,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주요 희생자는 반수정주의자이자 스탈린주의자인 시타 마리아 디아스 발르스와 니투 알브스 등 앙골라 공산당 동맹(Organização Comunista de Angola, OCA)의 당원이었다.[9] 비판자와 반대파를 제거를 빌미로 한 MPLA의 학살은 1979년까지 지속되었다.

1979년 네투가 지병으로 사망하자 조제 에두아르두 두스 산투스가 권력을 인계받고 앙골라의 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당의 수정주의와 반스탈린주의 풍조가 더 강해졌다.[10]

한편 1980년대 MPLA는 앙골라 내전에서 UNITA와 전투를 했으며, 미국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국민당 정권의 공작으로 내전이 격화되자 사망자는 겉잡을 수 없이 늘어났고, MPLA와 UNITA모두 교착상태에 빠졌다.

1991년 MPLA는 사회주의 지향을 포기했으며, 신자유주의 등 우익 이념을 일부 채탁했다. 이 기간 동안 앙골라는 더욱 빈곤해졌고, 관리의 부패도 막심해지는등 앙골라의 정치와 경제 모두 매우 심각해졌다.

2002년 UNITA 극우파인 조나스 사빔비가 제거된 이후 MPLA 지도부는 UNITA와 평화협정을 채결해 공식적으로 앙골라 내전을 종식시켰다.

2008년 조제 에두아르두 두스산투스의 연임이 확정되어 최종적으로 40년동안 집권하게 된다. 2017년부터 당수가 주앙 로렌수로 교체되는 등 MPLA 내부에서 대통령 교체 여론이 발생했고, 두스산트스가 퇴임하면서 지도부 교체가 이루어졌다.

2017년 주앙 로렌수가 조제 에두아르두 두스산투스의 대통령 직위를 계승하면서 앙골라 공화국 제3대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2022년에 다시 재선되어 2023년 기준으로 MPLA는 도합 48년동안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3. 역대 당수

3.1. 대통령



[1] #[2] #[3] #[4] #[5] #[6] 접속불가[7] 1966년에 비리아토 다 크루즈는 네투와의 불화로 인해 앙골라를 떠나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망명했으며, 1980년 루시우 라라도 실각되었다.[8] https://books.google.co.kr/books?id=Ghah5S3usnsC&pg=PA480&redir_esc=y[9] https://books.google.co.kr/books?id=8BlJAwAAQBAJ&redir_esc=y[10] MPLA는 이러한 경향을 실용주의로 부르며 미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