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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5 14:51:51

융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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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823988.jpg
정석비행장에 주기중인 모습[1]
파일:35FC1CDD-AA44-4020-AF53-204AED58C502.jpg
1989년 8월 23일, 김포국제공항에서 출발하여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막 도착한 모습

1. 개요2. 상세3. 기타4. 관련문서

1. 개요

HL7463[2]
세부기종 Boeing 747-2B5B
제작일자 1973년 4월 16일
등록일자 1973년 5월 2일
퇴역일자 1999년 2월 5일[3]
기령 [age(1973-04-16)]년[4]
시리얼넘버 20770/213

대한항공이 처음으로 도입한 보잉 747이자 대한민국 최초로 도입된 보잉 747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최초의 광동체 항공기이기도 하다. 세부 기종은 보잉 747-2B5B[5], 일련번호 20770, 라인번호 213. 원래 등록번호는 HL7410이었지만, 후에 HL7463으로 변경된 것이다.

2. 상세

파일:HL7410_에버렛.jpg
페인 필드에서 공정 중에 촬영된 사진
파일:KAL 747 첫 취항.jpg
1973년 5월 16일, 김포국제공항에서 열린 취항식[6]

1969년 3월 1일에 국영이던 대한항공공사(KNA)를 인수하여 민영인 대한항공(KAL)으로 개편한 조중훈은 '앞으로 3년 내에 보잉 747의 항공기 날개에 태극 문양을 그려 넣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당시 시점으로 대한항공은 항공기가 겨우 8대에 제트기는 DC-9 1대밖에 없던 초라한 항공사였기에 조중훈의 다짐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조중훈은 바로 다음 해인 1970년에 '보잉 747 도입 추진위원회'를 구성한 후 보잉사와 보잉 747 2대를 7천만 달러[7]로 구매하는 가계약을 체결했다. 엄청난 계약 금액으로 인한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조중훈은 747 구매가 장기적으로 KAL의 운명이 걸린 중요한 선택이라는 입장으로 이 결정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결국 1972년 9월 5일에 KAL은 보잉과 보잉 747-200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KAL이 주문한 747-200은 1973년 4월 16일에 완성된 후 같은 해 5월 2일에 대한항공에 인도되었으며, 같은 해 5월 16일 오후 7시에 KE001/002편 노선에 첫 투입되면서 데뷔하였다. KAL의 747이 처음으로 취항한 노선은 서울-도쿄-호놀룰루-로스앤젤레스를 연결하는 17시간 가량의 장거리 노선이었으며, 첫 비행에서 융비호는 16일 오후 8시 5분(현지시간)[8]에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다.[9] 도입 당시에는 매주 수요일, 토요일에 취항했으며, 박종화 한국예술원 원장과 소설가 최정희 같은 명사 40여 명을 포함한 승객 317명[10]과 스튜어디스 9명이 탑승했다.
파일:HL7410.jpg
HL7410 시절, 대한항공 구도색[11][12]

첫 운항 당시 테일넘버는 HL7410이었다. 그러나 HL7410은 1981년 4월 15일에 차관 만료로 잠시 보잉에 가 있었으나 1982년 7월 27일에 되찾아오는 데 성공하고, 테일넘버도 HL7463으로 바뀐다.
파일:융비호.jpg
HL7463 시절, 대한항공 현도색[13]

1997년에 있던 운항을 끝으로 보존 중이던 이 항공기는 1998년 12월 17일에 퇴역식을 가졌다. 대한항공은 사실 융비호를 당초 보존하려고 했으나 전년도에 벌어진 외환위기 여파에 따라 보존할 여력이 부족해 눈물을 머금고 제조사 보잉에 1600만 달러에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체를 인수받은 보잉은 이 항공기가 대한항공은 물론 한국 항공사 전반을 통틀어도 상당한 의미를 가지는 역사적인 기체인 것을 이해했는지 한국에 보존하라는 뜻에서 기체를 다시 되돌려주었다.

보잉이 융비호를 다시 돌려준 것에는 단순한 호의나 선심도 없지는 않았겠으나, 외환위기로 어려운 시기임에도 대한항공이 당시 신기종이었던 보잉 737 NG보잉 777을 대량 구매하기로 결정한 데 대한 보답과 향후 한국 경제가 회복되었을 때 잠재적 메이저 고객이 될 가능성이 다분한 대한항공과의 관계 등 비즈니스적인 사안을 다분히 고려한 결정이었다[14] 이후 보잉에게 돌려받은 융비호는 1999년 제주도에 위치한 정석비행장에 영구 전시되었으며, 아직까지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3. 기타

4. 관련문서


[1] 위 사진(2010년 2월 8일 촬영)에는 스카이팀 로고가 없으나 지금은 칠해졌다. 현역 시절엔 스카이팀이 있지도 않았으니 당연히 없었으며 정태보존된 후 재도색을 하면서 추가했다. 그리고 아래 사진과 비교해보면 동체의 로고가 살짝 앞으로 당겨졌다. 참고로 뒤에 있는 비행기는 HL7219로 대한항공이 2번째로 도입한 에어버스 A300B4-2C이다.[2] 테스트 비행 당시 등록번호는 N1798B.[3] 퇴역 당시 기령 25.8년[4] 1999년부터 제주도 정석비행장에서 영구 정태 보존중이다.[5] 원 기종명은 B747-200B. B5는 대한항공의 보잉 커스터머 코드이다.[6] 중앙에는 김종필 국무총리(왼쪽 3번째)와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왼쪽 4번째)이 있다. 이때 B747 미주 노선 취항 기념식은 국무총리, 김신 교통부장관, 옥만호 공군참모총장을 비롯한 정부 요인과 주한 외교사절, 주요 기업 대표들을 포함한 800여명이 참석할 정도로 국가적 행사처럼 여겨졌고, 어려운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간 1세대 재미교민들은 한글로 '대한항공'이 새겨진 보잉747이 운항을 오는것 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고 한다.[7] 2023년 환율로는 5.4억 달러다.[8] 한국시간 17일 오전 11시 5분[9] 대한민국-미국간의 첫 직항노선은 1979년 3월 29일에 개항된 서울-뉴욕 노선이었으며, 서울-로스앤젤레스 노선은 1979년 9월에 개설되었다. 서울-뉴욕 노선 운항도 융비호가 맡았다. 대한항공의 뉴욕 취항 당시 모습[10] 1등석 탑승객 10명을 제외하면 모두 이코노미석(당시에는 2등석)에 탑승했다.[11] 해당 사진은 1977년 3월에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촬영되었다.[12] 사진에선 안 보이나 우측 후방 동체 부분에 대한항공의 뉴욕 취항을 기념하는 I ❤ NEW YORK 기념도장을 작게 그린 채로 운항했다. 이 I ❤ NEW YORK 도장은 융비호 외에도 HL7411(융비호를 따라 반납됐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HL7464로 재등록), HL7440, HL7441, HL7442, HL7443, HL7445(이상 보잉 747-200), HL7315, HL7339(이상 DC-10), HL7433(보잉 707-338C)에 칠해졌으며 그중 HL7411에 적용된 도장은 ❤ 대신에 🍎가 그려져 있고 그 안에 LOVE가 쓰여져 있는 형태였다.#[13] 해당 사진은 1985년 2월 21일에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서 촬영되었다. 해당 사진이 촬영된 시점은 대한항공이 현도색을 도입(1984년 6월 29일)한 지 고작 8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으며, 촬영된 날짜는 정확히 전두환 정부에 의해 국제그룹 해체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14] 그리고 대한항공은 보잉이 마지막 최후로 개발하고 제작한 최신형 보잉 747-8i의 마지막 기종의 운영사가 되었다.[15] 1970년에 만들어진 보잉 727기인 HL7350이 인하공전에서 실습용으로 사용되고 있었지만 기령이 53년이나 되어서 실습용으로도 쓰기에 무리가 있어 2023년 7월에 스크랩되었다. 현재는 융비호가 국내에 존재하는 은퇴한 제트 엔진을 장착한 여객기 or 현역 제트여객기 통틀어서 제일 오래된 제트 엔진을 장착한 여객기가 되었다.[16] 0:34~0:40에 당시 747의 기내 모습도 나온다. 참고로 이 부분을 제외하면 현존하는 70년대 후반 이전 대한항공 747의 기내 사진은 극히 드물다. 그나마 남아 있는 게 당시 어퍼덱 사진1973년 5월 1일 동아일보에 실린 광고 내 사진 정도.[17] 대한항공의 첫 747 화물편 운항을 맡은 기체는 여객/화물 전환이 가능한 컨버터블형인 N749WA이다. 이 N749WA를 이어 두번째로 들어온 747 화물기가 HL7441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