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AT C.29
1. 제원
형식 : 수상기 레이서초도비행 : 1929년 6월
승무원 : 1명
전장 : 5.45 m / 전폭 : 6.6 m / 전고 : 2.75 m
익면적 : 8.0 m2
최대이륙중량 : 1,160 kg
동력 : Fiat AS.5 수랭식 V-12 엔진 (1,050마력) 1기
최대속도 : 560 km/h
2. 소개
이탈리아 왕국이 1929년에 슈나이더 트로피 레이스에 참가하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수상기 레이서이다. 훗날 이탈리아의 저명한 항공기 설계자로 명성을 날리게 되는 첼레스티노 로사텔리(Celestino Rosatelli ; 1885~1945)가 설계하고 피아트 항공(Fiat Aviazione)에서 단 3대만 제작되었다.3. 기체 구조
기체의 형태는 당시 수상기 레이서에서 유행하고 있던 트윈 플로트가 달린 단엽 수상기로, 기수를 제외한 다른 부분은 나무를 깎아 만든 골조에 얇은 두랄루민 외피를 씌워서 제작되었다. 엔진은 이 스피드 레이서를 위해 피아트 2사에서 특별히 정교한 튜닝을 거쳐 만들어낸 피아트 AS.5 수랭식 엔진이 올려졌다. 배기량 25.13 L에 12기통 실린더를 V자 형태로 배치한 이 엔진은 가솔린과 벤졸을 50%씩 혼합한 전용 연료를 주입하면 당시 수준으로서는 믿기지 않을 만큼 높은 출력인 1,050마력을 낼 수 있었다.[1]C.29는 강력한 심장을 갖게 되었지만, 이 엔진이 제 출력을 발휘하려면 대량의 냉각수를 순환시켜야만 해서 보통 라디에이터 1개로는 어림도 없었다. 따라서 로사텔리 주임은 주날개 상면을 절반 이상 넘는 면적에 걸쳐 표면 냉각기를 설치해서 공기저항을 줄이게끔 만들었다.
4. 시험비행
1929년 6월 초에 먼저 완성된 1호기는 이탈리아 북부의 데센자노 델 가르다(Desenzano del Garda)에 있는 가르다 호수(Lake Garda)에서 프란체스코 아겔로(Francesco Agello : 1902~1942)가 조종해 물 위로 떠올라 처녀 비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로부터 며칠 후인 6월 12일에 2차 테스트 비행을 마친 C.29는 착수할 때 배의 항적에 플로트가 부딛히면서 튀어올랐다가 그대로 실속에 빠지면서 기수부터 호수에 처박히는 큰 사고를 일으켰다. 이때 콕핏에서 몸이 반쯤 튕겨나간 아겔로 비행사는 큰 부상을 입지 않고 무사히 구출되었지만 기체는 깊은 물속에 가라앉아 버렸다. 서둘러 안정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꼬리날개의 면적을 넓힌 2호기가 만들어졌다.5. 두 번째 사고
1929년 8월 12일, 2호기에 탄 프란체스코 아겔로는 취재를 나온 영국의 항공잡지 기자 앞에서 비행 시범을 보이다가 또 다시 사고를 일으켰고, 이번에도 파일럿은 무사했지만 기체는 부서져 수심 90m의 호수로 가라앉아 버렸다. 공군 장관 이탈로 발보(Italo Balbo : 1896~1940)는 지체없이 3호기 제작을 명령했고, 팀은 곧바로 새 엔진을 수령해 코앞에 닥친 대회 스케줄에 쫓기며 3호기를 급하게 만들어 냈다.간신히 경기가 열리기 직전에 마무리가 끝난 3호기는 비행 시험도 거치지 않고 슈나이더컵 레이스가 열리는 개최지인 영국 남부의 RAF Calshot으로 보내졌다. 스탭들은 고심했지만 강도 테스트조차 받지 않은 기체를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속도 경기에 내보낼 수는 없어 대회에 직접 참가하지는 못했다. 이탈리아 팀은 대신 마키 M.52와 마키 M.67로 레이스에 도전했고, 각각 2위, 4위, 6위를 마크했지만 트로피는 영국 팀이 출전시킨 수퍼마린 S.6에게 돌아가버린다.
경기가 끝나고 더 이상 레이서로서의 가치가 없어져버린 C.29의 마지막 남은 3호기는 브라차노 호수(Lake Bracciano) 기슭에 건립된 이탈리아 공군 박물관으로 옮겨져 실내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