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 MBC배 우승팀: 연세대학교 MVP: 이상범 | → | 1991 MBC배 우승팀: 중앙대학교 MVP: 정경호 | → | 1992 MBC배 우승팀: 연세대학교 MVP: 문경은 |
1. 개요
1991년 5월 20일부터 29일까지 진행된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에 대해 소개한다.대학농구연맹 소속 1부 12개의 남자부 팀들 중 11팀 [1] 및 대학 2부의 청주대[2]까지 1부로 참가하여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1991 고베 아시아선수권을 대비한 남자농구국가대표팀에 3명의 주전선수[3]가 차출된 연세대는 이들이 불참했던 4월 춘계연맹전 공동 2위의 충격이 컸던지, 전대회(1990 MBC배) 우승팀임에도 이번 대회는 아예 불참하였고 연세대를 대신하여 2부리그의 청주대가 이번 대회에 한해 1부로 참가하였다.
4월 춘계연맹전 우승팀 중앙대 역시 주전센터 표필상(4년,200cm)이 연이어 국대에 차출되었지만, 지난해보다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3학년 센터 정경호(202cm)의 활약으로 대회 우승까지 차지했다.
2. 운영 방식
MBC배만의 특수한 방식인 "토너먼트 & 패자부활전"이 적용되었다.- 이 복잡한 토너먼트 방식의 목적은 대회는 토너먼트로 진행하되 모든 팀은 한번까지는 패해도 부활할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이다.
- 총 12개 참가팀들이 토너먼트를 거치고, 여기서 4강에 가지 못한 총 8팀은 "패자부활전 예선"에 다시 참가하여 토너먼트로 최종 2팀에게 "패자부활권"을 주었다.
- 1차 토너먼트 4강에서 승리한 두 팀은 승자결승전을 치르고, 4강에서 패한 두팀은 "패자부활권"을 얻은 두 팀들과 "패자 3회전" 및 패자준결승전을 치른다.
- 승자결승전의 승리팀은 최종결승에 진출하고 패배한팀은 패자준결승전 승리팀과 대결(패자결승)하여, 여기서 승리한 팀이 역시 최종결승에 진출한다.
- 기본적으로 모든 경기는 단판이나, 승자결승전 승리팀의 경우 "최종결승" 이전까지 단한번도 패하지 않은게 되므로, 만약 승자결승전 승리팀이 최종결승에서 한번 진다면 재대결할 기회를 갖는다.
3. 대회 결과
3.1. 승자 토너먼트
1회전 | 2회전 | 승자준결승 | 승자결승 |
국민대: 승 한양대※1): 패 | 국민대※1): 패 중앙대: 승 | 중앙대: 승 홍익대※2): 패 | 중앙대※3): 패 경희대: 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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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 승 청주대[4]※1): 패 | 홍익대: 승 고려대※1): 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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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 승 건국대※1): 패 | 명지대※1): 승 경희대: 승 | 경희대: 승 동국대※2): 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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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승 단국대※1): 패 | 동국대: 승 성균관대※1): 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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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승자 준결승전 패배팀은 패자부활 준준결승전 출전: 홍익대, 동국대
※3) - 승자결승전 패배팀은 패자부활 준결승전 출전: 중앙대
* 승자 2회전에서 단신군단 홍익대가 가드 문필호(3년,182cm)와 1학년 포워드 김대현(1년,190cm)의 활약으로 대어 고려대를 잡았다. 다만 이때 고려대는 지난해의 주전 3인방 김상식(G,183cm)-김지홍(G,187cm)-서동철(F,184cm)이 모두 졸업하여 정인교(3년,F,182cm)가 외롭게 팀을 이끌고 있던 사상 최약체 시절이었다.
3.2. 패자부활전
패자 1회전 | 패자 2회전 | 패자 3회전 | 패자 준준결승 | 패자 준결승 |
한양대※1): 승 건국대※1): 패 | 한양대: 패 고려대※1): 승 | 고려대: 승 단국대: 패 | 고려대: 승 동국대※2): 패 | 고려대: 승 명지대: 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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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1): 승 청주대※1): 패 | 단국대: 승 국민대※1): 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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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1): 승 인천전문대[5]※3): 패 | 명지대: 승 성균관대※1): 패 | 명지대: 승 홍익대※2): 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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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승자 토너먼트 1, 2회전 패배팀 (패자부활전 예선 출전): 국민대, 한양대, 고려대, 건국대, 명지대, 단국대, 성균관대, 청주대 (8팀)
※2) - 승자 8강전 패배팀 (패자부활전 준준결승 출전): 홍익대, 동국대 (4팀)
※3) - 인천전문대(당시 대학 2부 소속이며, 청주대와는 달리 승자토너먼트에도 출전하지 않았다.)
- 명색이 토너먼트 패자부활전인데, 일정 밸런스가 개판이다. 단국대의 경우 두경기나 치르고서야 패자 3회전에 올랐는데, 성균관대는 패자부활 첫경기가 3회전이다. (결국 둘다 3회전에서 탈락했지만..) 일정 작성 담당자가 전날 술먹고 짠듯한 지극히 아마추어스러운 대진표다.
3.3. 패자결승
중앙대학교 (승자결승 패) | 79 : 70 | 고려대학교 (패자준결승 승) |
3.4. 최종결승[6]
1차전 | 중앙대학교 | 60 : 54 | 경희대학교 |
2차전 | 중앙대학교 | 82 : 73 | 경희대학교 |
3.5. 대회 결산
- 최종 순위
- 우승: 중앙대 / 준우승: 경희대 / 3위: 고려대 / 4위: 명지대
- 개인부문 수상자
- 최우수선수: 정경호 (중앙대)
- 장신군단 중앙대는 표필상이 국대 차출로 빠졌음에도 불구, 2학년때까지 내내 표필상의 백업 수준이던 정경호가 갑자기 스텝업!!하며 대회 내내 더블더블에 가까운 활약을 펼치면서 다시한번 장신센터 유망주로 발돋움한다. 여기에 1학년 포워드 듀오 김영만(193cm),
양경민(193cm)까지 주전으로 발돋움하며 당시 라이벌 연세대를 제외하곤 암흑기 수준이던 대학농구계를 또한번 제패하고, 춘계연맹전에 이어 시즌 2관왕째에 오른다.[7] - 기존 김영주(4년,G,180)-김현국(3년,F,188)-이창수(4년,C,196) 라인에 신입생 최명도(G,180), 장창곤(C,194)이 가세한 경희대는 승자결승전에서 중앙대를 꺾는등 지난대회에 이어 연속 준우승을 차지한다. 1,2번을 겸할수 있는 최명도와 슛거리가 긴 센터 장창곤이 가세한데다, 일약 대학 최고 센터의 반열에 오른 이창수의 성장으로 인해, 경희대는 중앙대, 연세대와 함께 일약 대학 3강의 반열에 오르며 최부영 감독 부임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달린다.[8]
[1] 연세대가 선수 부족을 이유로 불참[2] 당시 대학농구 2부 소속이었으며, 현재는 농구부가 존재하지 않는다.[3] 지난 1990-91 농구대잔치에서의 맹활약 덕분에 (연세대 4위) 오성식-문경은-정재근이 모두 국대에 뽑혔다.[4] 당시 남자 대학 2부 소속[5] 당시 남대 2부 소속.[6] 1패를 안고 올라온 중앙대가 1차전을 이겼기때문에 2차전까지 진행되었다.[7] 다만 4월 춘계연맹전과 마찬가지로 국대 3인방이 없는 연세대를 제친 빈집털이나 다름없는 결과다보니 의미가 다소 퇴색되긴 했다. 당시 대학농구는 중앙대, 연세대, 경희대를 제외하곤 도토리키재기 수준(고려대 포함)이라..[8] 그러나 1991년도 경희대는 춘계연맹전, MBC배, 추계연맹전까지 세개 대회에서 모두 준우승에 머물며 제대로 콩라인의 반열에 오른다. 다행히 10월에 열린 전국체전에서는 중앙대를 꺾고 금메달을 차지하며 위안을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