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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2, 1946년 월드컵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 [1]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에서도 일부 경기 개최 | }}}}}}}}}}}} |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 ||
Copa Mundial de Fútbol México 70 1970 FIFA World Cup Mexico™ | ||
대회 기간 | 1970년 5월 31일 ~ 1970년 6월 21일 | |
개최국 | [[멕시코| ]][[틀:국기| ]][[틀:국기| ]] | |
마스코트 | 후아니토 (Juanito) | |
주제가 | Fútbol México 70 | |
공인구 | 텔스타 (Telstar) | |
본선 진출팀 | 16개팀 | |
대회 결과 | ||
우승 | 브라질 (세 번째 우승) | |
준우승 | 이탈리아 | |
3위 | 서독 | |
4위 | 우루과이 | |
수상 | ||
신인상 | [[페루| ]][[틀:국기| ]][[틀:국기| ]] 테오필로 쿠비야스 | |
득점왕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게르트 뮐러 | |
이전·이후 대회 | ||
1966년 잉글랜드 | 1970년 멕시코 | 1974년 서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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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0년 멕시코에서 개최된 9번째 FIFA 월드컵. 1970년 5월 31일부터 6월 21일까지 멕시코에서 열렸다. 멕시코 시티 등 5개 도시의 5개 경기장에서 16개국이 총 32경기를 치렀다. 브라질은 이 대회에서 펠레, 자이르지뉴, 호베르투 히벨리누, 토스탕 등 당대 최고의 선수진을 앞세워 최초의 3회 우승을 달성하며 쥘 리메 트로피를 영구 보관하게 되었다.
컬러 TV 생중계가 최초로 이뤄진 대회로[1][2] 이는 월드컵의 열기가 전세계로 확산되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브라질의 경기가 전 세계에 중계되며 '축구는 브라질'이라는 그들의 명성을 알린 대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대회에서 최고의 폼을 보여준 펠레가 축구 황제의 자리에 등극한 대회이기도 하다.
경기 내적으로도 변화가 많았는데, 옐로 카드와 레드 카드의 도입이라거나 선수 교체 제도 등 선수 보호를 위한 제도들이 도입된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선수 교체 제도는 잉글랜드 리그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던 제도[3]를 확대하며 가져온 것이고, 카드 제도는 1966년 월드컵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 주장 안토니오 라틴과 루돌프 크라이틀라인 주심 간에 있었던 '언어 폭력' 퇴장 판정 때문에 도입된 것이다.[4]
참고로 이 대회에서 레드 카드는 단 한장도 나오지 않았다.[5]
최초의 월드컵 공인구가 도입된 것도 이 대회로, 아디다스에서 제작한 텔스타가 공인구로 사용되었다. 특히 이 공이 우리가 생각하는 축구공의 이미지와 일치하는 최초의 공인구로 검은 오각형과 흰 육각형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규정 상으로, 8강 토너먼트 스테이지부터는 연장전까지 진행된 이후에도 승부가 가려지지 않았을 경우 추첨으로 승리팀을 결정하기로 되어 있었다. 단 결승전의 경우 무승부로 끝날 시 이틀 뒤 재경기를 하는 예외를 뒀다. # 다만 실제 토너먼트 경기들은 전부 연장전 안에 결판이 났기에 실제로 추첨까지 간 경우는 없었다.
그 외에 기존의 득점과 실점의 비율을 따지는 득실비 제도 대신 득점에서 실점을 뺀 현대적인 득실차 제도가 도입된 첫 월드컵이기도 하다. 단 다득점 제도는 도입되지 않았고, 승점과 득실차만 같으면 순위 결정을 추첨으로 해야 했다.# 다만 추첨까지 가는 상황은 1-2위와 2-3위간의 순위를 정할 때 한정이었고, 3-4위 팀들끼리의 승점과 득실차가 모두 같으면 추첨 없이 그냥 공동 3등으로 처리했다.
2. 인트로
https://youtube.com/watch?v=RRbmQciM4-k00:32에서 01:13
3. 개최지 선정
1964년 10월 8일 도쿄에서 열린 FIFA 총회에서 개최지가 결정되었다. 멕시코와 아르헨티나가 경합하여 투표 결과 멕시코가 56 : 32로 아르헨티나를 여유있게 따돌리고 개최를 확정지었다. 북아메리카 최초의 월드컵이자 남미/유럽 개최지 징크스를 깬 최초의 월드컵이다. 이 계기로 아프리카 대륙권과 아시아 대륙권에도 개최를 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4. 지역예선
자세한 내용은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지역예선 문서 참고하십시오.5. 경기장
월드컵이 열린 구장이 있는 도시와 구장 이름은 다음과 같다. 총 5개의 도시와 5개의 구장에서 열렸다.- 멕시코 시티 - 에스타디오 아스테카 (Estadio Azteca) (107,247명) - 개막전, 결승전 개최
- 과달라하라 - 에스타디오 할리스코 (Estadio Jalisco) (71,100명)
- 푸에블라 - 에스타디오 콰우테모크 (Estadio Cuauhtémoc) (35,563명)
- 톨루카 - 에스타디오 루이스 도살 (Estadio Luis Dosal) (26,900명)
- 레온 - 에스타디오 노우 캄프 (Estadio Nou Camp) (23,609명)
6. 참가 감독
{{{#!wiki style="color:white; 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or:#181818" | <colbgcolor=#519cd5,black> 1조 | 라울 카르데나스 | 가브릴 카찰린 | 레몽 후탈스 | 에르난 카라스코 |
2조 | 페루초 발카레지 ☆ | 오르바르 베르마르크 | 후안 호베르 | 엠마누엘 셰이퍼 | |
3조 | 마리우 자갈루 ★ | 알프 램지 | 요제프 마르코 | 안젤로 니쿨레스쿠 | |
4조 | 헬무트 쇤 | 지지 | 슈테판 보즈코프 | 블라고예 비디니치 | |
역대 대회의 참가 감독 1930 | 1934 | 1938 | 1950 | 1954 | 1958 1962 | 1966 | 1970 | 1974 | 1978 | 1982 1986 | 1990 | 1994 | 1998 | 2002 | 2006 2010 | 2014 | 2018 | 2022 | }}}}}}}}} |
7. 참가 선수
8. 대회 진행
8.1. 조별 리그[16강]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조별 리그 1조&2조1970 FIFA 월드컵 멕시코/조별 리그 3조&4조
조편성은 다음과 같다. 굵은 글씨가 결선 토너먼트 진출팀.
- 1조: 소련, 멕시코, 벨기에, 엘살바도르
- 2조: 이탈리아, 우루과이, 스웨덴, 이스라엘
- 3조: 브라질, 잉글랜드,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 4조: 서독, 페루, 불가리아, 모로코
8.2. 결선 토너먼트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8강 이후 참고.<colbgcolor=#000><rowcolor=#fff><colcolor=#fff> 경기 | 대진표 | 경기 | 대진표 | 경기 | 대진표 |
A | 8강 1경기 소련 0:1 우루과이 | E | 4강 1경기 우루과이 1:3 브라질 | G | 결승 브라질 4:1 이탈리아 |
B | 8강 2경기 브라질 4:2 페루 | ||||
C | 8강 3경기 이탈리아 4:1 멕시코 | F | 4강 2경기 이탈리아 4:3 서독 | ||
D | 8강 4경기 서독 3:2 잉글랜드 | H | 3·4위전 우루과이 0:1 서독 |
8.3. 우승
1970 FIFA 월드컵 우승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000000 브라질}}}]] |
세 번째 우승 ★★★ |
9. 최종 순위
순위 | 국가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득실 | 승점 | 비고 |
[[틀:깃발|브라질 | ]][[틀:깃발| ]][[브라질 군사정권| ]]6 | 6 | 0 | 0 | 19 | 7 | +12 | 12 | 우승 | |
[[이탈리아| ]][[틀:국기| ]][[틀:국기| ]] 이탈리아 | 6 | 3 | 2 | 1 | 10 | 8 | +2 | 8 | 준우승 |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서독 | 6 | 5 | 0 | 1 | 17 | 10 | +7 | 10 | 3위 | |
4 | [[우루과이| ]][[틀:국기| ]][[틀:국기| ]] 우루과이 | 6 | 2 | 1 | 3 | 4 | 5 | -1 | 5 | 4위 |
5 | [[소련| ]][[틀:국기| ]][[틀:국기| ]] 소련 | 4 | 2 | 1 | 1 | 6 | 2 | +4 | 5 | 8강 |
6 | [[멕시코| ]][[틀:국기| ]][[틀:국기| ]] 멕시코 | 4 | 2 | 1 | 1 | 6 | 4 | +2 | 5 | |
7 | [[페루| ]][[틀:국기| ]][[틀:국기| ]] 페루 | 4 | 2 | 0 | 2 | 9 | 9 | 0 | 4 | |
8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잉글랜드 | 4 | 2 | 0 | 2 | 4 | 4 | 0 | 4 | |
9 | [[스웨덴| ]][[틀:국기| ]][[틀:국기| ]] 스웨덴 | 3 | 1 | 1 | 1 | 2 | 2 | 0 | 3 | 조별리그 |
10 | [[벨기에| ]][[틀:국기| ]][[틀:국기| ]] 벨기에 | 3 | 1 | 0 | 2 | 4 | 5 | -1 | 2 | |
10 |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틀:국기| ]][[틀:국기| ]] 루마니아 | 3 | 1 | 0 | 2 | 4 | 5 | -1 | 2 | |
12 | [[이스라엘| ]][[틀:국기| ]][[틀:국기| ]] 이스라엘 | 3 | 0 | 2 | 1 | 1 | 3 | -2 | 2 | |
13 | [[불가리아| ]][[틀:국기| ]][[틀:국기| ]] 불가리아 | 3 | 0 | 1 | 2 | 5 | 9 | -4 | 1 | |
14 | [[모로코| ]][[틀:국기| ]][[틀:국기| ]] 모로코 | 3 | 0 | 1 | 2 | 2 | 6 | -4 | 1 | |
15 | [[체코| ]][[틀:국기| ]][[틀:국기| ]] 체코슬로바키아 | 3 | 0 | 0 | 3 | 2 | 7 | -5 | 0 | |
16 | [[엘살바도르| ]][[틀:국기| ]][[틀:국기| ]] 엘살바도르 | 3 | 0 | 0 | 3 | 0 | 9 | -9 | 0 |
10. 수상
10.1. 베스트 골
11. 기타
쥘 리메 컵이 사용된 마지막 월드컵이다. 이 월드컵이 끝나자 우승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영구 증정되었는데, 1983년에 도난당했다.
- 이 때 브라질 대표팀의 감독이었던 마리우 자갈루는 선수로도 1958년과 1962년에 이미 월드컵 우승을 했었기에 선수와 감독으로 월드컵 우승을 경험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기준으로 선수와 감독으로서 월드컵을 모두 우승한 인물은 이 사람과 프란츠 베켄바워, 디디에 데샹까지 총 세 명이다.
-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은 축구에서 경고와 퇴장을 알려주는 옐로우 카드와 레드 카드 제도가 처음으로 적용된 대회이기도 하다. 이 제도는 영국의 축구 심판 조지 케네디 애스턴의 아이디어로 1970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처음으로 도입되었는데 신호등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카드가 도입되기 이전에는 심판이 직접 이유를 설명하면서 경고와 퇴장을 명령했지만, 길게 이야기를 하지 않고 간결한 수신호로 쉽게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는 표현을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 후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하는 아나톨리 비쇼베츠는 이 대회에 소련 대표팀 선수로 출전했고, 무려 4골을 기록했다.
- 브라질은 이 대회 이후 펠레가 은퇴하면서 결승 문턱이나 8강에서 물을 먹는 등 오랫동안 암흑기를 겪다가 24년 후 1994년 미국 월드컵을 통하여 24년 만에 정상에 등극한다. 공교롭게도 24년 뒤에 열린 월드컵 결승 상대 역시 이탈리아였으며, 경기에서 이긴다면 월드컵 무대메서 인류 최초의 기록 달성을 할 수 있었다.[7] 그리고 1994 월드컵 결승전 당일에 브라질이 이탈리아를 승부차기에서 꺾고 이기는 데 성공하면서 24년전의 데자뷔를 이뤄냈다.
- 브라질의 마리우 자갈루 전 감독은 주 국적과 복수국적을 통틀어 최초이자 유일하게 아시아 국가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감독으로서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는데 그는 레바논 이민자의 후손이라 레바논 복수국적을 가지고 있다.
[1]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은 딱 1년차로 컬러중계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영국의 컬러방송이 시작된 시점이 1967년이기 때문.[2] 참고로 올림픽은 1964 도쿄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컬러중계되었다.[3] 다만 잉글랜드 풋볼 리그의 경우 교체 선수가 각 팀 당 1명으로 제한되어 있었다.[4] 카드를 노란색과 빨간색으로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영국 심판 조지 케네디 애스턴의 아이디어인데, 1966년 라틴 퇴장 사건 당시 중계석에 대기하다가 경기가 너무 지연되자 필드에 내려가서 몸소 라틴을 설득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고 (당시 경기 중계화면에도 등장한다), 1962년 월드컵의 그 유명한 '산티아고 전투' 당시 직접 주심을 맡았던 인물인지라 '선수-주심 간 의사소통'에 대해 상당히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다. 여러모로 축구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인데 현대에 이르러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다.[5] 월드컵에서 최초로 레드 카드를 받으며 퇴장 당한 선수는 1974년 월드컵에서 나왔는데 칠레의 카를로스 카셀리 선수였다.[16강] [7] 본 대회 결승전에서 이긴 팀은 최초의 월드컵(초대 대회부터 1970년 대회까지는 쥘 리메컵) 3회 우승과 쥘 리메 컵의 영구 수여 자격을, 1994년 대회 결승전에서 이긴 팀은 인류 최초의 월드컵 4회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달성할 수 있었다.[8] 1929년생, 40세.[9] 1951년생, 19세.[10] 1935년생, 35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