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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u'l-Walid Hisham II al-Mu'ayyad bi-llah
생몰년:(966~1013) 재위 : 1차: 976~1009.2.15 2차: 1010.7~1013
1. 개요
후우마이야 왕조의 3대 칼리프, 알 하지브 알 만수르의 집권기 전체의 칼리프로 그의 꼭두각시로 평생을 살다가 그의 아들이 실각됨과 동시에 폐위당하고 재기를 노렸으나 결국 처형당한다.2. 981년 이전
알-하캄 2세의 아들이자 아브드 알 라흐만 3세의 손자, 966년 알-하캄 2세와 나바라의 수브의 아들로 태어난 장남이었다.아버지가 976년 그가 겨우 10살때 사망하자, 그의 뒤를 이어 칼리프위에 즉위하였지만, 당시 그의 나이가 너무 어려 어머니인 나바라의 수브는 장관 하지르 알-무샤피의 추천으로 알만조르 아니 Abu ʿĀmir Muḥammad ibn ʿAbdullāh ibn Abi ʿĀmir al-Maʿafiri를 집사장으로 임명한다. 당시 후우마이야왕조의 실권은 갈립 이븐 아브드 알라흐만이라는 장군이 잡고있었는데, 981년 알 만조르는 그와 내전을 벌여 승리하여 그를 죽이고 칼리프로부터 전권을 위임받게된다.
2.1. 치세
자세한 이야기는 알 하지브 알 만수르 문서를 참고하시오2.2. 폐위
알 하지브 알 만수르가 1002년 사망한후 그의 아들 압둘 알말리크가 정권을 이어받아 아버지의 성세를 이어나갔지만 아버지만큼 완벽하지 못했고 1008년 협심증으로 사망하면서 구심점을 상실한 후우마이야 왕조는 걷잡을수 없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의 동생 압드 알라흐만이 뒤를 이었으나 1009년 3월 무함마드 2세의 쿠데타로 폐위되어 처형당했고, 이윽고 아미르 가문을 몰락하게 된다.결국 알 하지브 알만수르의 카리스마로 유지되던 제국은 1009년 서쪽의 대아미르 바다호스 토후국의 독립과 함께 몰락의 길로 나아간다.
압드알라흐만과 함께 히샴2세도 폐위를 당한다.
2.3. 복위와 최후
이듬해(1010년), 무함마드 2세를 폐위하고 슐레이만을 즉위시키는데 결정적 역활을 한 용병들이 슐레이만의 대우에 불만을 품고 히샴 2세를 복위시키고 슐레이만을 폐위하나, 슐레이만은 베르베르족의 도움을 받아 1013년 복위에 성공하고 히샴 2세를 처형하게 된다.2.4. 타이파 시대 개막
그가 사망한 1013년 에는 이미 서부의 바다호스, 동부의 사라고사-타라고나-발렌시아-데니아일대를 비롯하여 지리왕조의 방계가 점령한 그라나다마저 그해 독립을 선포하고 떨어져 나가면서 후우마이야 왕조의 종막은 이미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이 당시 후우마이야 왕조에게 남은 땅이란 코르도바-세비야-말라가-지브롤터 일대로 축소된 상태였고 얼마안가 세비야 토후국의 독립과 함무드 왕조의 찬탈로 방어전에 돌입하면서 후우마이야 왕조는 다시는 회복하지 못하고 1031년 멸망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