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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4 13:12:24

황재


1. 개요2. 만화방 시절3. 기타4. 주요 캐릭터(스타 시스템)

1. 개요

본명 : 황태효(1949~ ), 한국 무협 만화가.

1974년, 빼앗긴 일요일이란 작품으로 등장. 당시 최고 인기 만화가이던 임창 선생 밑에서 5년 정도 수업을 받다가 데뷔했다고.
이후 흑나비 시리즈로 입지를 다졌으며 이로인해 흑나비 프로덕션이 만들어졌다(나중에 나온 만화들을 보면 표지에 '흑나비 프로덕션'이라는 워터마크가 거의 찍혀있다).

1980~1990년대 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여러 종류의 만화를 그렸지만 특히 무협 쪽을 많이 그려 우리나라 만화방(대본소)의 무협 만화 붐을 일으키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독특한 그림체와 자신만의 캐릭터을 확립하고 나름 탄탄한 줄거리를 통해 이름을 날렸다. 이를 후배 무협 만화가들이 모방하고 벤치마킹 하면서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무협을 이루는데 일조했고 한국 무협 만화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2. 만화방 시절

초기 만화방을 유행시키는데 공헌 했지만 나중엔 대본소 체제(공장식 체제)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한다(이런 대본소 체제를 못따라간 대표적 작가 중 한 명이 바로 장태산).
당시 본인 이름으로[1] 나가던 만화는 다 검토를 하고 나서야 내보냈는데, 출판사들 요구량이 늘어나자[2] 결국 손을 못보고 넘긴 만화책이 늘어났고 이후 자포자기 상태로 계속 넘겨줬다고 한다. 본인은 한달에 최고로 해야 권당 100쪽인 8권 정도가 한계였지만 10>12>15권 상태로 억지로 권수를 늘렸다가 결국 질적 저하로 독자들에게 잊혀졌다고 회고했다(1980-1990년대 초반 그림체와 1990년대 후반 - 2000 년대 그림체를 비교해보면 차이가 꽤 난다).

이와 관련있기 때문인지 나름 탄탄한 스토리가 진행되다가 급작스레 대충 종결을 맺는 작품도 많았다.

권수를 늘려야 해서 스토리 작가를 찾았지만 그 사람이 자기가 원한 수량 보다 왕창 가지고 오는 바람에 도저히 자기가 소화할 양이 아니여서 딴 작가에게 소개해줬는데 그 첫 작품이 SF물이었다고 한다.

3. 기타

1980년대 당시까지도 한국 문화계나 산업계 전반의 저작권 의식이 미비했었고 90년대까지도 그 영향이 남아있었기 때문에[3] 표절 문제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예를 들어 주인공 태풍과 팔계, 숙하, 염가비 등 레귤러 멤버를 제외한 조연엑스트라들은 고르고13으로 유명한 사이토 타카오의 그림을 그대로 베껴온 것을 찾을 수 있다. 저작권 개념이 없던 시절이고 일본 만화를 우리나라 캐릭으로 바꿔서 그대로 들여오던게 허다했던 시절인데다가[4] 황제 자신 그림체도 초기엔 일본 만화 영향을 많이 받은 상태였다가 1980년 이후 본인 그림체를 정립하는 지라...

계절풍이란 작품은 타카하시 루미코의 메종일각을 캐릭터만 바꿔 그려 표절했다고 하고[5] 푸른 교실 시리즈는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를 번안한 것이라고 한다. 토쿄맘모스를 표절한 작품도 있었다. - 다른 등장 인물은 원작과 흠사하게 그렸는데, 주인공만 원래 황재의 캐릭터인 태풍으로 바꿔 그린 일도 있다. 미츠루의 H2시리즈가 그랬다.

나중에 일본 만화가 해적판이나 정식 수입으로 들어와서 그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많이 실망했다고. 그런데 정발 된 것 보다 황재가 그린 게 더 번역이나 분위기가 자연스럽다는 말도 있다.[6]

역시 외국 영화들도 만화로 많이 그렸는데 007을 태풍으로 바꿔서 그린 것도 있다. 1900년대 이후에는 외국 영화가 직배급되며 전세계 동시 개봉되지만, 당시에는 헐리우드 영화가 그 다음 해 쯤에 일본에, 그 이후 1-3년 후에 국내에 개봉되는 일이 흔했기 때문에 영화를 바탕으로 그대로 만화를 그려 내어도 일반인이 알기가 어려웠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국내 개봉 안 한 영화나 유럽, 제3세계 영화야 말할 것도 없었다.

4. 주요 캐릭터(스타 시스템)


[1] 초창기 필명은 황였다. 그러다가 당국의 문화 검열로 외국어 이름이나 지명 등을 따서 기억하기 쉽고 재미나게 지은 필명을 쓰지 못하게 되었고, 황재로 바꾸었다. 지명에서 딴 조치원은 조치운으로 바꾸는 등, 여러 작가가 같은 일을 당했다.[2] 출판사에선 달마다 20권 이상을 요구했다고 한다.[3] 아닌게 아니라 나름대로 메이저라고 할수있었던 방송계에서 조차도 외국 프로그램 포맷을 무단으로 베낀다거나 하는 일이 빈번했고 출판계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4] 당시 출판사가 작가들 명줄을 쥐고 흔들던 때라 그리라하면 거절하기 힘들었다.[5] 황재 작가 홈페이지에서 ‘연애의 품격’이라는 제목으로 2020년 현재도 유료로 서비스되고 있다(...)[6] 이런 표절작이나 해적판의 번역이 더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건 그 당시 일어 능력자들이 번역을 제대로 했고 그걸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현지화를 하면서 더 다듬어졌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기 개나 소나 일본 해적판 판매했을땐 번역 상태가 바닥을 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