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皇龍寺 大鐘신라의 국가사찰 황룡사 종각에 걸려있던 매우 거대한 종.
2. 상세
현존하는 신라 범종 중 최대 규모인 에밀레종[1]의 4배가 넘는 크기의 범종이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서는 경덕왕 13년(754)에 구리 49만 7581근을 사용해 길이 1장 3촌, 두께 9촌 규모로 만들었으며, 시주자는 효정 이찬(孝貞伊王干)[2]과 삼모부인(三毛夫人)[3], 종 제작을 주도한 장인은 이상택(里上宅)[4] 집안의 하인이었다고 한다.황룡사가 1238년 고려-몽골 전쟁 와중에 소실되면서 종의 행방도 지금까지 불명이다. 다만 몽골군이 대종을 전리품으로 가져가려고 했는데, 너무 무거워서 일단 바다로 옮겨 배에 태워 운송하려고 했는데 동해안 대왕암 근처에 왔을 때 폭풍이 불어 물에 빠트려버렸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대종을 빠트린 강이라 해서 지금도 이름이 대종천이고 인근 지역에는 태풍이 불면 종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가 남아있다고 한다.
아무튼 이 설화대로라면 대종천에서 감포항 앞바다 정도 범위의 물 속에 지금도 있을 수 있다는 뜻이고 국보급 문화재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여러 차례 수중 문화재 탐사를 진행했다. 1980년에 문화재관리국이, 1997년에는 해군 탐사팀이 해저탐사를 하였으나# 소득이 없었다. 2013년 5월에도 한 조개잡이 어민 김기창이 경북 경주와 포항 경계지점의 바닷속에 2 m쯤 되는 청동 금속류 물건이 있더라는 신고를 접수하여 문화재 발굴탐사가 진행되었다.# 김씨는 "뭔가 둥그스름한 물체가 바다 밑에 누워 있었다.", "당시엔 선박에 달린 연기 나가는 원통형 환기구인가 생각했다."라고 증언했다. 입구는 자신의 키보다도 더 컸다고 한다. 물체를 더듬었더니 두께는 한 뼘이 넘어 손에 안 잡힐 정도였다. 외관은 깨끗한 편이었으나 머리 쪽은 부식되고 이물질이 많이 붙어 물체의 정체는 알아내지 못했는데, 몇 달 뒤 TV에서 우연히 황룡사 대종에 관한 프로그램을 보고 제보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인근 해역이 탐사가 어려운 환경이 겹쳐서 한 달 정도 탐사하다 그만두었다고 하고, 제보자 김기창은 이후로도 개인적으로 탐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실제로 동해 연안 해저에서 신라 대종이 발견되어도 황룡사가 아니라 감은사 대종일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감은사종은 제작연대와 규모 등에 관한 기록은 없지만, 이것도 임진왜란때 일본군이 일본으로 반출하려다 역시 배가 침몰하면서 수장됐다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