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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38:22

홈월드 시리즈/종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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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히가라(Hiigara)
2.1. 카락의 사회 구조2.2. 북부 연합과 폭풍방패 프로젝트2.3. 거친 각성 (홈월드 본편 엔딩 이후~홈월드: 카타클리즘 켐페인 시작 이전)2.4. 쿠샨(Kushan)
2.4.1. 키스 스젯(S'jet)2.4.2. 키스 갈시엔(Gaalsien)
2.4.2.1. 위협 분석 - 다이아미드 안전보장의사회 브리핑 AX-4, 비공개 세션
2.4.3. 키스 나발(Naabal)2.4.4. 키스 팍투(Paktu)2.4.5. 키스 소반(Soban)2.4.6. 키스 마나안(Manaan)2.4.7. 키스 시딤(Siiddim)2.4.8. 키스 흐랄(Hraal)2.4.9. 키스 솜타우(Somtaaw)
2.4.9.1. 홈월드: 카락의 사막 시점2.4.9.2. 가이드스톤의 발견 ~ 모선의 발진 이전 (홈월드 본편 시점)2.4.9.3. 히가라로의 귀환 이후 (홈월드: 카타클리즘 시점)
2.4.10. 카네프(Khaaneph)
2.5. 카데시(Kadesh)
3. 타이단(Taiidan)4. 튜라닉(Turanic)5. 벤투시(Bentusi)6. 베이거(Vaygr)7. 화신(Incarnate)8. 고대인(Progenitor)

1. 개요

홈월드 시리즈에 나오는 모든 종족들을 서술하는 문서.

2. 히가라(Hiigara)

파일:external/img2.wikia.nocookie.net/Hiigaran.jpg
히가라 행성에 거주하던 종족으로, 더스트워 이후 카락에 유배되었으며, 쿠샨의 경우 홈월드1의 이야기를 통해 히가라로 귀환하였다.

2.1. 카락의 사회 구조

카락의 사회는 느슨한 가문 관계로 조직되어 있으며 많은 조직이 수만 명을 구성원으로 두고 있다. 이런 거대한 가문 구조는 키스(kiith, 복수형:kiithid) 라고 불리며 많은 고고학자들은 기록된 역사 이전의 시대에서 유래한 사회적 유물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키스는 각 개인이 그 가문 내에서 가지는 사회적 지위에 근거한 느슨한 체계로 이루어진다. 본디 이는 주로 나이에 기반한 체계였으나 기술의 진보가 카락에서의 삶을 변화시켰고 그에 따라 키스들 또한 바뀌었다. 그리고 이제 키스 내에서의 지위는 나이보다는 부나 개인적인 영향력으로 결정된다. 그리고 이러한 키스 내의 조직 또한 최소 단위를 가족으로 한 재귀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각 단일 가족은 각자 핵심 지도자, 보조 지도자, 그 외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윗단계의 키스 조직 또한 비슷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즉, 그리고 정치적인 결정을 내리는 "핵심 가족"이 있고 또 논의를 듣고 조언을 하는 "보조 가족"이 있으며 그보다 낮은 권력을 가진 가족들이 이 핵심 가족에게 충성을 바친다. 그리고 키스 내의 이러한 핵심 가족은 키스-사라 불린다.

이 구조는 언제나 동적이며 중대사이기는 하나 각각의 소속 가족들은 자신의 충성대상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 한 키스 내에서의 가족의 지위는 그 가족에게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충성을 바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비록 드문 경우이긴 하나 때때로 한 가족이 다른 키스로 이전하거나 필요성을 느껴 자기 스스로 독립된 키스를 세우는 경우도 있다.

고대의 시기에 있어 키스-사는 키스 전체를 전쟁으로 이끌 수도 있었으며 특정 가족을 특정 프로젝트에 시간과 자원을 집중하도록 명령하거나, 심지어 키스 전체를 다른 지방으로 이주하게 할 수도 있었다. 현대 사회에 있어 키스-사는 오로지 정치적, 재무적인 입장에서의 지도자로 투표로 선출되어 오로지 키스 전체의 의지를 대변하는 존재이다.카락 전체의 키스-사들은 티르의 수도에 자리잡은 대 다이아미드(Great Daiamid)에 모여 전지구적 정책과 각 키스간의 법적 분쟁을 해결한다.

전통적으로 각 키스들은 하나 혹은 두 개의 전문 분야에 힘을 집중하며 그 특정 분야에 있어 가장 진보된 최적의 곳임을 알리며 다른 가족들을 자신들의 휘하로 모은다. 예를 들어 키스 스젯은 수천 년간 카락에 있어 과학을 관장했으며 행성 내에서 가장 뛰어난 컴퓨터 연구실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커플들이 이런 연구소에 들기 위해 스젯 가문에 합류하고자 지원하기도 한다. 또한 키스 간의 동맹 또한 상호의 이익에 기반해 이루어지며 이러한 동맹으로 결속력이 더욱 강화되거나 아예 완전히 구조가 재개편되기도 한다.

현대 시대에 있어 키스들의 권력은 점차 각각의 개인들에게 분산되고 있으나 여전히 키스는 사회 내 지위에 있어 강력한 수단이다. 카락 사회는 이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며 종족의 미래에 대한 생각은 카락인들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키스 내의 가문임을 일깨웠다. 그러나 카락인들의 이러한 단합에 불구하고 전통은 잘 사그라들지 않으며 각각의 카락인들은 여전히 카락 전체보다는 자신의 가족을 먼저 생각하곤 한다.

2.2. 북부 연합과 폭풍방패 프로젝트

사주-카가 파괴되고 키스 갈시엔이 사막으로 퇴주한 뒤 시간이 흐르고, 남은 키스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레 서로 가까이하고자 하는 경향이 생겼다. 먼저 그들은 각각의 연줄을 통해 사주-카의 생존자들을 정착시켰고, 이후로는 물과 자원을 노린 갈시엔의 습격에 대응해 공동 군사작전을 펼쳤다.

그 후 350년간 갈시엔 약탈자들은 나이든 이들이 말을 안 듣는 어린이들에게 침대 맡에서 들려주는 존재 정도의 과거가 되고, 이 서로 의지하는 느슨한 연합은 서서히 사그라들었지만 결코 완전히 잊혀지지는 않았다.

한 때 비상 시의 공동 대응을 위한 관계망은 곧 개발과 무역을 위한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물론 키스간의 경쟁도 여전히 카락 사회 내부의 한 요소로 남았지만 상호이익이 기반한 합종연횡은 곧 북부의 경제적, 정치적 삶의 유기적인 부분이 되었다.

이 새로운 삶의 방식은 한 키스만으로는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위협에 대한 새로운 연합의 발흥이 가능하게 되는 단초가 되었다.

1057 KDS의 마지막 1/3분기 무렵, 키스 스젯은 티르의 다이아미드에 전원을 소집해 북부 사막의 흐름 양상에 대한 첫 분석 결과와 이 속에 숨겨진 괴멸적인 의미를 알렸다. 모래의 흐름과 날씨의 패턴에 대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태껏 폭풍과 모래에 대해 오랜 시간 동안 굴하지 않고 북극지방을 보호해왔던 대장벽(Great Barrier) 산맥은 무언가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백년 내로 잠식당하고 말 예정이었다.

이에 필요한 대응으로 북부 키스들은 연합해 1km 폭의 거대한 모래막이 벽을 대장벽 산맥의 아랫면 전체에 둘러세우기로 한다. 폭풍방패 프로젝트는 북부의 문명을 구원하기 위한 수천 킬로미터 길이의 벽이었다.

키스 스젯에 의해 구조 계획과 시스템 설계가 고안되었고, 나발은 다이아미드의 정치판의 전면으로 복귀해 이 거대한 프로젝트에 공학적 재능을 보탰다. 흐랄의 공업 노하우와 건설 장비들은 거대한 블록들을 공장에서 제작해 현장으로 운송해 조립했다. 키스 솜토우는 이 프로젝트의 진행 기간 전체동안 광업 산출량을 두 배로 늘려 흐랄의 공장들에 원재료를 계속 공급했고, 시딤의 군단병들은 수없이 오고가는 물류들을 보호했다. 마나안의 자금과 정치수완은 북부 키스들간의 긴장과 불안감 속에서도 이 프로젝트를 계속 끌고 나갔다.

폭풍방패 장벽은 거의 10년에 다다르는 시간에 걸려 완공되었으며, 그 시기 동안 키스 갈시엔은 다시 한 번 수 백년 동안의 침묵을 깨고 열도 지방에서 재등장했다. 맨 처음 그들의 귀환은 온 건설 현장에 붙여진 성명서와 황무지로부터 통신망으로 흘러들어오는 설교자들의 설교였다. 무슨 방법과 수단이든, 그들의 메시지는 같았다. 필멸자 키스들은 결코 신의 의지에 저항할 능력도 권리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북부가 이런 길을 계속 간다면 장벽 또한 고대의 사주-카가 그랬듯 무너지리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의 말이 공포와 복종을 이끌어내지 못하자 갈시엔의 키스-사는 북부에 대한 성전을 선포했고, 이 성전은 지금까지도 쭉 내려져 오고 있다.

건설 현장에 대한 소규모 습격들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역사적 시점에 따르면 갈시엔들은 이 때 현대 군사 전술을 연마하고 있었음이 명확하다. 수효는 많으나 분산된 적에 대해 최대의 피해를 입히는 지 연구하는 바가 그들의 목표였다. 습격은 점차 대담해졌고 더욱 더 건설 계획에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매 분기가 흐를 때마다 모래는 더욱 더욱 빨리 흘러들어왔다.

물론 갈시엔만이 전쟁기술을 가다듬고 배우는 건 아니었다. 장벽을 짓는 이들 또한 과거를 결코 잊지 않았다. 폭풍방패는 모래방벽을 쌓고 모래길을 만드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발흥하는 연합의 군사부문은 이 프로젝트가 모래폭풍 외의 것들 또한 방어할 수 있어야한다고 주장했고, 그에 따라 방벽은 여러 화력기지와 요새화된 지휘소가 증축되었다. 이런 방어시설들은 가동한지 얼마되지 않아 수십 회의 갈시엔 습격을 막고 그들의 악명높은 "신의 철권(Fist of God)" 전사들의 시체를 모래 위에 남겼다. 그 후 몇 달간, 그들은 잠잠했고 방벽은 완공되어갔다... 그러나 이 때 갈시엔-사는 이 방벽이 완공된다면 티르를 위협하는 일은 오랜 시간 동안 요원하리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시파 코셰시(Siifar Kor'shesh) - 맹렬한 단검의 밤"를 명한다.

1074년의 첫날 밤, 만명의 갈시엔 신의 철권 전사들이 방벽 내부로 향하는 주 경로의 골짜기를 지키는 쌍둥이 관문의 방벽 요새를 습격했다. 그들은 이 요새들을 불태우고 비옥한 내지로 돌파하고자 했다. 수호자(Guardian) 요새들은 아직까지 미완공 상태였지만 500명의 전사와 600명의 기술자 및 노동자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피말리는 교차사격이 이 광신도들을 수백 명 쓰러뜨렸지만 밤이 지나며 북부의 방어자들은 점차 스러져갔다. 그리고 새벽녘이 되자 주 관문으로 싸움이 번졌다. 마지막 시딤 전사들이 싸우다 죽어갔고 스젯 기술자들과 흐랄 노동자들이 기꺼이 희생하며 위치를 사수했다.

그리고 갈시엔의 마지막 예비 병력이 이 돌파구로 몰려들었을 때가 바로 나발-사가 마침내 숨겨둔 함정을 발동시킬 때였다.

관문의 통신 타워에서 하나의 신호가 울려 퍼졌다.

"용병(소반)들을 풀어라!(Bring the Red[1]!)"

그러자 완편된 두 개의 소반 용병 군단들이 사막의 바닥에서 불쑥 솟아나 갈시엔 병력들을 관문의 석벽으로 몰아붙였다. 나발은 많은 목숨들을 버려가며 갈시엔 병력을 끌어들였고 갈시엔을 최소 한 세대 동안은 무력화시키고자 했다. 그리고 나발의 계책은 성공했다.

폭풍방패는 굳건히 버텼고, 북부 연합도 단단히 결속되었다.

그렇게 세계는 다시 한 번 바뀌었다.

2.3. 거친 각성 (홈월드 본편 엔딩 이후~홈월드: 카타클리즘 켐페인 시작 이전)

모선에 승선해 있던 동면자(Sleeper)들은 히가라로의 여정이 끝날 때까지 카락이 파괴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히가라 착륙 당시 있어 가장 힘들었던 일 중 하나는 “동면자 키스”들을 깨우는 것이었다. 카락으로부터 히가라로 여행해 온 카락 인구의 총 92%가 동면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히가라에 도착한 이후, 동면자들 대부분은 매우 거친 각성을 겪어야 했다. 귀환 직후 수십 년간 히가라 사회는 극저온 동면에서 깨어나자마자 들은 충격적인 사실에서 헤어나고자 몸부림쳤다.

물론 좋은 소식도 있었다. 모든 동면자들은 모선과 모선의 승무원들이 정말 고향 행성에 안전하게 도달했고, 카락인들의 기원에 대한 비밀이 밝혀졌으며, 카락인들을 우주 저 너머의 변방으로 추방했던 압제 정권이 전복되었음에 환호했다. 그러나 아주, 아주 나쁜 소식도 함께 뒤따랐다. 각성 상태로 6개월간 악전고투했던 승무원들과 달리 동면자들은 카락이 파괴됐다는 끔찍한 소식에 뒤따른 충격을 극복할만한 틈이 없었다.

히가라에 도달한 그 누구도 슬픔과 상실감, 때때로의 죄책감과 분노를 안고 각성하지 않은 이들이 없었다. 그들이 동면에 들었을 때, 대부분의 동면자들은 그들이 사랑하던 이들을 결코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알고 그 위험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모선에 탑승할 이들보다 남겨진 이들이 더욱 거대한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동면자들은 스스로를 희생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임무에 임했고, 최악의 상황에 치달아도 그들에 대한 기억을 그들의 가문과 친척들이 영원히 안고 기억해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모선의 탑승자들만이 유일한 카락의 생존자들이 되었다는 사실은 거의 모든 이들이 납득하기 힘든 것이었다. 착륙 이후 몇 주간 수십 건의 자살이 발생했다.

모선이 발진할 당시 고작 전체 카락인의 60분의 1만이 탑승한 상태였다. 동면 자원자들은 먼저 유용한 기술 보유, 나이, 건강 등의 기준을 먼저 통과해야 했다. 선발 당시에야 이 기준은 극히 이성적이고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평범한 결정이 예기치 못한 잔인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예를 들어 오로지 17세 이상 50세 미만의 인원에게만 탑승 자격이 주어졌다. 동면 과정은 최적의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인원들에겐 너무 위험하다고 취급되었다. 모선에는 그 어떤 어린이도 그 어떤 노인도 없었다. 카락이 불타던 그 때 동면자들 대부분은 과거와 미래에 연결된 자신의 혈연이 영원히 끊어졌다. 그들에게 남겨진 것이라곤 타이단 제국에 의해 사랑하던 이들이 송두리째 불타오르는 참극이 담긴 몇 십 초간의 고통스러운 위성 영상 뿐이었다.

카락의 파괴는 카락인들에게 거대한 증오를 심었고,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카락과 동면자 수용 유닛에 대한 제국의 잔인한 공격은 동면자들에게 피가 끓어오른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수준의 증오심을 일깨웠다. 히가라인들은 이 분노를 여러 방식으로 풀어 나갔지만 수십 년이 지나서도 히가라 사회는 타이단에 대한 대중적인 반감으로 끓어올랐다. 물론 대부분의 히가라인들은 카락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제국과 그 후 새로이 세워져 히가라로의 귀환 당시 그들을 도운 반란세력에 의해 통치되는 공화국을 구별할 줄 알았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이런 분별력을 가진 건 아니었다. 제국 잔당파의 지속적인 위협 아래 상당수의 히가라인들은 모든 타이단인에 대한 격렬한 반감을 품으며 심지어 중도파들조차 히가라의 안전을 위해 옛 타이단 소속 행성들을 합병하자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카락인들 모두는 어떤 식으로든 과거로부터 벗어나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나아가야 했다. 일부는 건설의 격무에 뛰어들어 그들이 잃어버린 것들을 한 줌이나마 다시 만들어내고자 했다. 다른 일부는 자손을 많이 낳아 수가 확 줄어든 키스들을 충당시키고자 했다. 또 어떤 이들은 군에 투신해 히가라의 영공을 침범하는 제국 잔당파와 해적들을 막아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 어떤 평범한 수단으로도 과거를 떨쳐내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프리트 탐부르-사(Iifrit Tambuur'sa)란 이름의 남자만큼이나 제국 잔당파에 대한 쿠샨인의 증오를 잘 대변하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 이프리트는 탐부르 키스의 마지막 생존자로서, 그는 착륙 이후 12년간 신생 타이단 공화국에서 생활했다. 탐부르사와 그의 젊은 아내 다바(Dava)는 키스 탐부르에서 유일하게 모선 탑승이 허락된 사람이었다. 모선 발진으로부터 몇 달 이전, 두 명은 동면자로서 서로 나란히 배우자의 옆에서 동면에 들어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타이단이 카락을 불태웠을 무렵, 타이단 병력은 궤도 상의 동면자 수용 유닛에 포화를 쏟아냈다. 그리고 다바 탐부르의 동면 포드는 그 와중에 수리할 수 없을 지경으로 대파된 불운한 포드 중 하나였고, 그녀는 히가라로의 여정 와중에 사망했다. 이프리트 탐부르가 동면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의 키스 전체뿐만 아니라 사랑하던 아내마저 잃고 말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타이단 제국에 대한 파우라(Paaura)를 선포했고, 그에게 공감한 히가라인 생존자들은 키스 탐부르의 명예 소속원으로 합류해 그의 “영원한 복수”에 함께했다. 파우라의 고대 율법을 존중해 탐부르사와 그의 휘하 사람들에겐 작은 프리깃 한 척이 주어졌고, 그렇게 그는 은하계의 이 사분면에서 가장 유명한 현상금 사냥꾼이 되었고 300명 넘는 제국 잔당파 전범의 머리를 수집했다.

2.4. 쿠샨(Kus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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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Kiith)라 불리는 느슨한 가족연합을 바탕으로 한 여러 세력으로 나뉘어져 있다. 쿠샨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고대 인도의 쿠샨 왕조.

2.4.1. 키스 스젯(S'jet)

파일:external/vignette2.wikia.nocookie.net/Kiith_Sjet.jpg

대표 인물로 홈월드1홈월드2에 나오는 카란 스젯과 홈월드 데저츠 오브 카락에 나오는 레이첼 스젯이 있다.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정치에는 무관심하며 과학의 탐구에 집중하는 키쓰이며, 카락에서 우주시대로 진출하기 직전에는 나발, 소반과 함께 영구 동맹을 맺고 카락을 탈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홈월드 본편 시대에도 당당히 주역을 맡고 있는 유력 키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2.4.2. 키스 갈시엔(Gaalsien)

파일:external/vignette3.wikia.nocookie.net/Kiith_Gaalsien.jpg
모든 키스들을 통틀어 키스 갈시엔만큼 세기에 걸쳐 많은 것을 잃은 키스는 없다. 갈시엔 키스는 아주 오래된 존재로 가장 오래된 문서들 일부에서도 그들의 문장이 확인된다. 카락에서의 기록 된 최초의 역사 이래 갈시엔 키스인들은 이미 영적이자 정치적으로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여러 가지 종교가 흥망했지만 카락인들 대다수는 언제나 "만물을 만드는 자" 위대한 창조주 사주크를 믿었다. 그리고 이 종교의 다수는 사주크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해서는 동의했으나 사주크의 성정, 그리고 자신들을 이 카락으로 데려온 이유에 대해서는 이견이 갈렸다. 이성의 시대 이전 대다수의 의견은 "징벌"의 범주에 속했다. 자신들이 커다란 죄악을 저지르지 않았음에야 이리도 살기 힘든 곳에 신이 자신들을 살게했을 리가 없다고 봤다. 수많은 필수적인 생존술, 예를 들어 자원의 보존이나 그리고 함부로 전례없는 방식을 써서 키스의 미래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행동을 막는 것들에 있어서는 고대 카락에서 이 교리는 유용했다. 달갑지 못한 행동들은 언제나 처벌받을 수 있는 오만으로 비춰졌다. 이러한 믿음들이 중앙 사막의 대여정에서 카락인들의 목숨을 보장해준 것은 맞다. 그러나 온화한 극지방에서 이러한 믿음은 좀 더 살기 좋은 환경 속에서 가능했을 유용한 혁신을 도로 막는 결과를 가져왔다. 보통 사주크가 분노했다고 믿는 이러한 믿음은 문화적, 기술적 진보에 대해 몹시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세 개의 종교적인 거대 키스 갈시엔, 페릴, 그리고 솜타우 중 가장 징벌에 대한 메시지를 강하게 전파한 곳은 갈시엔이었다. 정당한 고통과 굴욕에 대한 이 교리에서는 사주크가 카락인들의 오만함을 속죄케 하기 위해 어떤 천상의 낙원에서 이 카락으로 그들을 추방했다고 했다. 갈시엔 신학자들은 가장 대중적이고 예식화된 생존 방법에서 벗어남은 곧 천상으로의 복귀를 더욱 유예시킬 뿐이라고 설파했다. 초기에 있어 이러한 엄격한 교리는 그 빛을 보여 갈시엔이 75~250 KDS 동안의 다양한 환경 재난에서 살아남고 번성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 재난의 시기가 끝나고 사람들이 온화한 극지방으로 퍼져 나간 이후로는 좀 더 진보적인 사상의 키스들이 힘을 얻고 갈시엔은 점차 사그러들기 시작했다. 많은 고고학자들은 키스 갈시엔이 이러한 상황을 막고 다른 키스들을 다시 휘어잡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단 전쟁"을 시작했을 거라 믿는다.

지금의 카락인들에겐 다행스럽게도, 키스 나발이 이단 전쟁의 승자로 부상하며, 이 회개와 억압의 교리는 카락인들의 마음 속에서 점차 사라졌다. 그러나 근 300년간의 전쟁으로 영영 그 권력을 잃어버린 갈시엔은 오히려 이 '죄악의 행성'의 나머지 사람들이 잃어버린 믿음을 벌충하듯 더욱 더 극단주의로 물들었다. 이성의 시대가 710 KDS에 절정으로 치달을 무렵 갈시엔은 휘하에 30 가문 정도만이 남을 정도로 쪼그라들었으며 오로지 위대한 사막의 신전 도시 사주-카(Saju-Ka)만이 그들의 지배 아래 있을 뿐이었다. 역사가 흐르며 그들의 이성도 흘러가버린 것인지, 그도 아니면 사주크의 총애를 다시금 받고자 한 거대한 희생제물의 일환이었는지는 모르나 갈시엔의 키스-사는 717 KDS, 영원히 악명을 얻을 끔찍한 명령을 내린다.

그 당시 사주-카는 카락의 예술적인 보석이었다. 사주-카의 위대한 사원과 홀은 사주크의 이름 아래 지어진 가장 위대한 유적들이었으며 그곳에 있는 도서관에는 사주크가 보고 카락인들을 공정히 판결할 수 있도록 카락인들의 온갖 작품이 모여있었다. 700 KDS대에 들어 사막은 사주-카가 있는 지역까지 잠식해 들어와 사주-카는 모래 속에 파묻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지만, 위대한 공학자 가 나발에 의해 고안된 방풍제, 둑, 모래길이 이를 든든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하룻밤 만에 이 위대한 도시는 영영 지도 상에서 지워졌다. 종교적인 광기에 휩싸인 미르펫 갈시엔-사는 갈시엔인들에게 명령해 모래를 막고 있던 이 모든 시설을 파괴하도록 명령했다. 사주-카의 거리로 굶주린 모래가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수 백개의 폭발이 여전히 보일 지경이었다. 단 2일 만에 도시는 모래 속에 완전히 파묻혔고 대규모 탈출 속에서 수천 명이 또 죽었다.

이 일로 키스 갈시엔 전원은 티르의 다이아미드에서 "존재하지 않는 자"들로 선고받고 무법자 키스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이 처벌은 갈시엔들 자신들에게 미미한 효과밖에 주지 못했다. 그들은 그 끔찍한 밤에 황무지로 달아났다. 그들 눈에는 다른 키스들이 이룬 진보가 그저 신의 진노를 불러올 타락으로밖에는 비치지 않았다.

그 이후 키스 갈시엔은 거대한 중앙 사막을 떠돌며 그들이 그리도 감싸고 돌던 생존술과 의식을 통해 살아남았다. 때때로 그들은 황무지에 있는 과학 단체나 거점을 습격해 그 존재감을 알렸으며 그 때마다 신학 문서를 잔뜩 남겨 종말이 도래하고 있음을 주장했다. 그들을 추적하려고 했던 그 모든 군사 원정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그들은 점차 신화적인 존재로 남았으며 아직도 현대의 카락인들 마음 속 한켠에서는 정말 그들이 사주크의 총애를 받지 않고서야 그렇게 사막에서 살아남았을 수는 없다는 의혹이 있다.

혹자는 그들이 정말 잃어버린 사주크의 성도를 찾았다고도 하며, 간간히 몰래 옛 도시 사주-카가 기도 속에 언급되고 공양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지금도 어쩌면 이 고대의 종교 키스에 비밀리에 동조하는 가문들이 있을 확률은 높다.

아마도 갈시엔의 교리는 선조들이 타이단과의 조약[2]을 지켜서 침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갈시엔의 기술 진보에 대한 신중함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동족의 생존을 위해 그토록 기술의 진보를 억제했건만, 그것이 오히려 종교에 대한 맹신과 히가라 사회의 주류층으로서의 권력욕이 점철되면서 타 키쓰들의 반발을 사게 된 것이다. 아마도 선조들이 자세한 내막을 전승해 주지 않은 거 같은데 여러모로 비극적인 가문. 모선제작에 테러를 시도하기도 한 모양인데 우주 진출 이후로는 카락을 떠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타이단 제국의 공격에 전멸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인게임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 종족 중 하나.

데저트 오브 카락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정작 이들도 우주에서 내려온 각종 유물들을 분석해서 기술력을 진보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우주에만 안 가면 된다는 논리하에 내로남불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2.4.2.1. 위협 분석 - 다이아미드 안전보장의사회 브리핑 AX-4, 비공개 세션
홈월드: 카락의 사막 당시의 북부 연합 정보부의 갈시엔에 대한 분석 자료이다. 북부 연합은 불모지로 쫓겨난 키스 갈시엔이 쇠퇴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오히려 관측되는 군사 기술 수준과 그 수가 증가하는 상황에 당혹해하고 있다.

발표자: 장교 크나살 네 팍투, 다이아미드 정보 부서

AX-3 브리핑에서 이미 결론지었듯 키스 갈시엔은 아무리 단단히 대비가 되어 있어도 남아있는 전방 기지를 포함해 극지방의 모든 동맹 거점에 대한 즉각적인 최고 등급의 위협이 되었음은 자명합니다. 키스 솜타우는 올해의 첫 1/3 분기만에 3개의 광물 호송대를 잃었음을 보고했으며, "장벽"의 요새에 대한 무장 시위는 매달 가면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가장 문제되는 점은 그 어떤 시뮬레이션과도 달리 갈시엔의 무장 병력은 점점 발전하고, 그 수도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모든 스젯 전략 시뮬레이션에서는 갈시엔 추방시대의 주거지와 생산거점들이 점점 낙후되며 이것과는 반대의 결과가 나타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내부 동조자 가문들과의 불법 거래를 반영한 결과에서도 여전히 갈시엔은 군사적인 행동이 불가능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죠.

이 브리핑은 3가지의 질문과 거기에 대한 가장 가능성 있는 해답을 다룹니다.

1. 어떻게 갈시엔은 여전히 활동하는가?
2. 어떻게 갈시엔은 새 기술을 연구하고 있는가?
3. 갈시엔의 생산, 인구 거점은 어디에 있는가?

1. 갈시엔은 추방된 무법자 키스 상태에서도 어떻게 여전히 활동할 수 있는가?

짧게 말하면,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현 상황에 대해서 이해하는 바에 따르면 최소한 여기에는 숨겨진 요소가 하나 이상 존재합니다. 갈시엔은 현재 전쟁을 벌이고 인구를 지탱할 수 있는 충분한 자원을 어디에선가 얻고 있습니다. 가장 가능성 있는 답변은 이 다이아미드 의회에 있는 어떤 거대 키스가 비밀리에 그들의 동맹이라는 거겠죠.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동맹의 결속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여기 계신 그 어떤 분들께서도 예기치 못한 자원이나 통신의 이상 기류의 충분한 증거는 확보되지 않았습니다. 혹시 제가 했던 제 출신 키스에 대해 했던 모든 충성 포기 맹약을 의심하실 경우에 대비해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팍투는 평상시보다 많은 보안 통신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발과 시딤도 마찬가지죠. 허나 그들 중 누구도 갈시엔을 지원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자원 공급 작전을 수행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통신량은 없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갈시엔이 정말 신에게서라도 은혜를 받고 있지 않는다면 그들이 우리의 고출력 센서 어레이의 거리를 벗어난 남반구 깊숙히 어디인가에서 새로운 풍부한 자원을 찾았다는 겁니다. 가장 가능성 있는 답변이기도 하며,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갈시엔을 이 새로이 찾아낸 자원 산출처로부터 신속히 떼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2. 어떻게 갈시엔이 새로운 기술을 연구하고 있는가?

그들이 연구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는 증거로는 요 최근 몇 년간 목격된, 완전히 새로운 갈시엔 차량의 디자인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습격 이후 남은 잔해를 분석한 결과 갈시엔 병력은 최근들어 야금학이나 에너지 계통에 있어 약진을 거듭해 심지어 키스 스젯의 똑똑한 친구들조차도 뒤쳐질 지경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번에도 내부 배신의 가능성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정도로 기술 혁신을 이룬 분들이 여기에 계시다면 분명 그걸 그 분들끼리만 쓰시거나 직접 그걸로 이윤을 누리시겠지, 사막에서 떠돌아다니는 약탈자들에게 건내 주실 것 같지는 않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기술적인 광신도 집단이 저렇게 기술적인 혁신을 자꾸 이룬다는 점은 이러한 신기술의 출처가 그들의 학교나 연구실에서 오는게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갈시엔은 분명 그 자체로 동작하거나 혹은 그대로 탑재할 수 있는 어떤 기술의 출처에 손을 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 중 한 명이 갈시엔에게 그걸 건네주는 게 아니라면 그 출처는 아마도 황무지 저 편 어디인가에 있을 겁니다.

3. 갈시엔의 생산, 인구 거점은 어디에 있는가?

전면전 준비는 곧 집중된 인구 및 생산 거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생산이나 인구 두 분야 중 그 어느 것도 지난 10년 간 활동이 증가한 곳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카락은 탐색하기 결코 쉬운 행성은 아닙니다만, 최근의 탐색 위성의 발전으로 우리는 이 행성의 상당부분을 감시 하에 둘 수 있게 되었죠. 우리는 다이아미드의 대중에 알려진 것보다도 조금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걸로도 갈시엔의 거점이나 수송선을 추적하는데에는 충분치 않았습니다. 따라서 아마도 언제나 태풍이 몰아쳐 광학 및 전파 정보 센서들이 교란되는 남반구 깊숙히에 이러한 거점들이 있지 않나 추정됩니다.

점차 장관님들께서 내시는 웅성거림이 커지는 걸로 보건대 장관님들께서도 정보부와 같은 달갑지 않은 결론을 내리셨을 꺼라 추정됩니다. 키스 갈시엔은 분명 대사막 어디인가에서 자원과 기술의 출처를 찾았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들이 자라키 이상물체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무엇인가를 찾았을 확률도 높습니다.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최대한 빨리 카딤 작전을 수행해야 합니다. 함부로 준비를 서두를 때 따를 수 있는 대가로 물론 스칼 브릴 작전의 실패와 관련 인원의 전몰을 반드시 굳게 유념해야 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굳건한 방벽과 요새와 센서탑들로 둘러싸인 채로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 또한 유념해야 합니다. 현재의 전망으로 추정컨대 언젠가 갈시엔이 우리가 견딜 수 없는 공격을 가해오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합니다.

결론내리자면, 정보부는 카딤 작전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 모함 카피시를 완전히 전투준비시켜 발진시키기를 강력히 권장합니다.[3]

2.4.3. 키스 나발(Naab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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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전쟁의 끝무렵에 혜성처럼 극적으로 등장하기 이전의 키스 나발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다. 첫 시대 와중 거대 키스들의 기록 속에서 그들에 대해 산발적으로 아주 조금씩 언급된 문건은 있으나 오로지 나발이란 이름은 상인이나 이교도로서만 언급되었다. 키스 갈시엔은 나발의 이름 하에 있는 가문들을 핍박하는데 있어 특히 열성이었다. 이를 보건데 나발이 북극의 조그마한 만년설 지역 끝자락에 있던 이 계곡 속 숨겨진 피난처로 숨은 이유는 바로 이 박해 때문이 아닐까 추정된다. 하지만 고작 이렇게 검증이 부실한 문건들만이 이 강대한 키스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진 모든 증거다.

키스 나발 그들 자신은 아득한 과거에 대해 밝히는 데에 관심이 없어 보이며, 그들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오로지 키스 나발이 마침내 본격적으로 활동해 이단 전쟁을 끝내고 다이아미드를 설립하기 몇 년 전부터야 시작된다. 이 3세기에 걸친 혼돈의 시대 속에서 키스 나발은 다른 모든 카락인들과 소식을 끊고 지냈다. 우연히 이 계곡에 들어오게 된 피난민이나 행상인들은 모두 환대받고 그들이 새 삶을 시작할 장소가 주어졌다. 이 제안을 거부한 사람에 대한 기록은 아무도 없는 것으로 추정컨데, 이 새 출발 외의 선택권이 어떤 것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오로지 키스-사에게 직속으로 충성을 맹세한 가문들만으로 구성된 작은 그룹들이 때때로 밖으로 배치되어 수시로 약탈당하는 도시에서 파괴될 위험에 처한 문건들을 회수해올 뿐이었다. 때때로 이런 행동 그룹들이 이단의 혐의로 투옥된 학자들을 해방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모든 일련의 행동은 고립주의로부터 점차 멀어지려는 이 키스를 이프리트 나발-사(Ifriit Naabal-Sa)가 지도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이프리트는 지속되는 종교 전쟁이 카락인들의 목숨을 유지해주던 마지막 보루마저 파괴하기 직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적에게 유용한 자원줄을 차단한다는 명목하게 경작지는 불타고 댐은 폭파되었으며 모래덫은 부숴졌다. 이런 극한의 분쟁 속에서 카락의 문명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거나 다름없었다.

물론 키스 나발은 그들 스스로도 평화주의자로 말해왔지만, 그들이 그 때까지 발견하고 또 모아온 군사 지식은 어마어마했고 이프리트 나발-사가 마침내 이 전쟁을 중재하자는 제안을 낸 후 몇 년만에 그럴듯한 병력이 만들어졌다. 나발은 그 때까지 쭉 폭약, 증기력, 제련 기술을 수백 년간 숨겨왔고, 그렇게 그들이 숨겨진 도시 티르를 박차고 나타났을 때 그들은 마치 자쿨(Jaakul) 그 자신의 직속 천사들처럼 빛났다. 증기력 차량에 의해 움직이는 대포가 포악한 키스들의 장벽을 무너뜨렸고 리피터 라이플(repeater rifle)와 중갑으로 무장한 소수의 병사들이 20배에 넘는 약탈자의 군세를 압도했다. 이프리트 나발-사는 그의 군세가 해방시키는 모든 거주지마다 제안을 했다. 이제 그만 무기를 들고 무의미한 파괴를 그만둔다면 이 모든 나발의 과학과 기술력의 과실을 함께 나누겠다는 제안이었다. 이단 전쟁의 다른 거대 파벌들과는 달리 나발-사는 제안받은 자들이 그들의 키스에 대한 맹약을 철회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그가 요구한 것은 무의미한 전쟁의 종식이었다. 300년에 걸쳐 고통당한 중소 키스들은 모두 기쁘게 그의 제안을 수락했고, 종전의 열망에 찬 이 키스들이 모여 나발의 군세는 50배 가량 불어냈다. 그리고 단 3년만에 그들은 정말 종전을 이뤄냈다. 이프리트 나발-사가 사(Sa)의 직위에서 내려오기 직전 마지막으로 한 일은 티르에 다이아미드를 세워 강대하건 약소하건 모든 키스가 모여 토론하고 카락의 모두를 위한 정책을 세우도록 한 것이었다.

그 후 수십 년에 걸쳐 나발은 카락의 파괴된 기반시설을 새로 짓고 더 이상 비밀이 아닌 그들의 건설 몇 야금 기술로 더욱 더 향상시켰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위해 합류하려는 모든 중소 키스들도 나발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키스들은 원한다면 언제든 독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며, 이렇게 현재 나발의 이름아래 모인 거대한 산업 키스 다수가 유래했다. 200년 후 이성의 시대에 키스 나발은 남쪽으로 향하는 위험한 모래 항해길을 선로가 깔린 증기차로 대체했고 남극지방의 키스 팍투에게 언제나 다이아미드에 참가할 수 있는 길을 제공했다.

키스 나발은 본디 오랜 시간에 걸쳐 다시금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데에 별 불만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최근들어 발생한 카락 사회의 문제들, 특히 북극의 수많은 정착지로 다가오는 사막화의 위협과 증가한 키스 갈시엔의 위협으로 인해 나발은 다시 한 번 정치의 전면으로 나서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나발은 스젯과 소반 키스와 영구 동맹을 맺었으며 자레시 이상물체에 대한 양 원정대의 조직을 선도했다. 또한 재무 분석가들은 카락 저궤도와 그 이상에 대한 분야의 항공 및 우주 분야에 대해 나발이 큰 투자를 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 비밀스러운 키스의 자세한 계획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정치계의 모든 이들은 나발은 언제나 미래를 향해 있으며 그 미래를 다듬는데 있어 항상 최첨단에 서고자 노력함을 알고 있다.

히가라 도착 이후에도 유력 키스로 남았다. 이들의 기원은 본래 카르 토바의 기술지원팀의 후손인 것으로 보인다고.

2.4.4. 키스 팍투(Pak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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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2 KDS 이전 키스 팍투는 염해(Salt Sea) 위의 경사지에서 먹고 사는 약소한 농업 키스에 불과했다. 그들의 가장 유명한 지도자 마지르 팍투(Majiir Paktu)가 태어났을 때 당시 북지에서 최강의 키스였던 키스 시딤과 키스 갈시엔의 종교 지도자간의 길고 긴 균열이 마침내 돌아올 수 없는 지평선을 건넜다. 462 KDS, 유명한 키스 시딤 의회는 새로운 교리를 선포했다. 과거의 시딤의 우주론, 즉 카락의 모든 키스들이 천상의 낙원에서 추방당한 존재라는 설이 폐기되었다. 462 KDS의 새로운 선언에 따르면 시딤만이 오로지 신성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외의 모든 키스들은 카락에 원래 있던 존재로 열등하며 모래에 의해 더럽혀진 존재라고 선포되었다.

그리고 이 새 교리에 따라 다른 키스들에 대한 잔인한 학살이 자행되었다. 이들은 "그리티딤(Gritiidim) - 모래인종"이라는 비칭으로 불렸다. 이렇게 시행된 박해 중 가장 가혹한 것이 바로 "수질 정화 포고령(Clean Water Act)"일 것이다. 이 포고령에 따르면 시딤이 아닌 키스들은 아래쪽에 사는 시딤들이 마실 물을 오염시킬 수 있으므로 강이나 개울의 상류에 사는 것이 금지되었다. 수 백 가구의 가문들이 시딤의 사원 병사들에 의해 강제이주당했으며 그들이 대대로 살던 터전에서 쫓겨나 들 수 있는 만큼의 재산만을 챙겨 하류로 이주해야 했다. 488 KDS에 키스 팍투 또한 이러한 운명에 처해졌다.

그리고 똑같은 시기에 근처의 키스 갈시엔 사원들은 오만함의 죄악과 고통을 통한 카락의 구원에 미쳐있었다. 당연히 시딤은 갈시엔의 사제들에게 있어 설교할 대상이었다. 이 사제들은 모든 시딤의 오만이 지은 죄악에 따라 카락의 신들에 의해 더욱 잔혹하고 고통스러운 속죄가 필요하다고 부르짖었다. 북극의 군소 키스들은 이미 시딤의 압제에 고통받고 있었고 때때로 시딤에게 거주지를 넘길 바엔 갈시엔에게 스스로 투항하는 경우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갈시엔의 병사와 사제들을 그들의 거주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대가는 그들에게 겨눠진 칼끝과 신들을 기쁘게 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죄악"이 담긴 책과 소유물들이 불살라지는 광경이었다. 갈시엔 병력을 위해 가혹한 식량과 사료 공출이 이뤄졌고 심신 모두의 고통이 필요하다는 갈시엔 사제들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시딤과 갈시엔간의 충돌은 날이 가면 갈수록 격해졌고 변방의 동떨어진 키스들조차 한 편을 고르도록 강요받았다. 거대한 두 키스 모두 다른 작은 키스들이 스스로 도전하기에는 너무나 강대했다. 옛말 그대로 진퇴양난의 상황 속에서 이 군소 키스들은 마침내 엄두도 못 내던 일을 시도했다. 바로 "거대한 띠 사막(Great Banded Desert)"을 건너 남쪽으로 가 새 땅을 찾기로 한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마지르 팍투는 팍투의 키스-사가 되었다. 비록 "첫 이주(First Migration)"는 그의 전적인 생각은 아니었지만 키스 팍투의 모든 사람들의 운명이 그의 손에 달린 것만은 확실했다. 사막의 변두리에서 그의 휘하 사람들이 처음으로 거대한 모래항해선을 만드는 동안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지는 지금와서 상상키 어렵다. 수많은 카락인들은 분명 남극 또한 사람이 살만한 땅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해왔지만, 막상 거대한 띠 사막을 가로지르고 돌아와 이야기를 전할 엄두를 못 냈다. 사막 남쪽의 땅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거라고는 "지평선까지 쭉 뻗어있는 풀밭"과 끝없는 바다를 뇌까리는 미치광이 마나안 여행자들 뿐이었다.

처음에 이 이주는 가망이 없어보였고 그랬기에 그 때까지 그 어떤 카락인도 전혀 남은 희망이 없을 때까지는 위험을 무릎쓸 각오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도 옛말이 되었다. 490 KDS, 알베기도(Albegiido)의 평원에서 거의 50개의 키스가 거대한 띠 사막으로 여정을 꺼냈다. 계절을 따라 몰아치는 폭풍인 차크 핫(Chak m'Hot)과 타는듯한 모래를 헤치며 그들은 나아갔다. 첫 이주에 오른 남녀노소가 휴논(Hunon) 산맥의 해안가에 닿았을 때 오로지 17개의 가문만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들 중 여정 와중에 목숨을 잃은 구성원이 없는 가문이 없었다. 그리고 휴논 산맥을 타고 오르며 또 그들은 죽어갔다. 가장 쉬운 길로 그들을 안내해줄 가이드도 없는 와중에 독이 든 물과 낙반, 갈증, 그리고 도마뱀의 공격으로 사람들은 계속 죽어갔다.

그렇게 점차 지나며 첫 이주에 오른 사람들 대부분이 절망에 빠져 휴논의 작열하는 붉은 계곡 속에서 더 이상 나아가기를 거부했다. 그가 이주 처음부터 이주민들의 지도자였는지는 모르나, 그날만큼은 마지르 팍투는 분명 그들의 지도자였다. 그는 무리의 선두에 서서 사람들을 독려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바다내음이 나는군요. 조금만 더 갑시다."

사람들은 그를 믿지 않았다. 그리고 꽤 많은 사람들이 뒤돌아 다시금 모랫가에 정박해있던 모래배로 힘들게 돌아가려던 무렵이었다. 그런데 전설에서 말하기로는 갑자기 그 때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에서 새- 바다의 영혼 -가 나타나 뜨거운 해 주변을 맴돌았다고 한다.

그리고 첫 이주의 키스들은 그 바다의 영혼과 마지르 팍투를 따라 산맥을 넘었고 그들이 적색의 마지막 언덕 꼭대기에 섰을 때 그들의 눈 앞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회색빛 바다의 찬란하게 부서지는 파도였다. 바로 그렇게 그 바다의 이름은 그들을 이끌어 온 사람의 이름을 따 마지르 해(Majiirian Sea)로 붙여졌다.

첫 이주민들은 마지르 해의 해안가에 정착했고 북극의 사람들은 이주민들이 거주지를 짓는 근 2년간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후 3번째 해의 봄이 되자 마지르 팍투는 자원자를 받아 다시금 거대한 띠 사막을 건너 이 소식을 아직도 전장과 폭정의 악몽에 시달리는 북극의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다.

마지르 팍투는 이 귀환 여정 와중에 사망했지만 그의 추종자 중 7명이 생환했다. 이 7명의 팍투인들은 북극의 땅을 지나며 그들이 간 모든 곳마다 새로운 땅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그렇게 소문이 전해지자 아무도 이주의 물결을 막지 못했다. 수많은 가문들이 모래배를 만들어 알베기도의 유명한 평원을 매년 떠나 이단 전쟁과 시딤, 갈시엔의 폭군에게서 벗어났다.

안타깝게도 시딤과 갈시엔은 폭정을 떠나 도망간 사람들을 가만히 놔 둘 생각이 없었다. 비록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이주민들을 무시해왔지만 두 키스는 오랜 전쟁동안 너무 많은 경작지와 거주지를 잃었다. 그리고 650 KDS가 되자 이 두 거대 키스는 남극으로 도망친 키스들을 여전히 그들의 종속 키스로 간주하고 그들이 여전히 땅과 공물을 바칠 의무가 있다고 봤다.

652~700 KDS간 남극에 대해 최소 3차례의 대규모 원정 시도가 있었다. 그들 중 마지막 원정이 그나마 제일 성공적이었다. 리암 갈시엔의 군사는 정말 휴논 산맥의 입구에 698 KDS의 봄에 거의 멀쩡한 상태로 도착하는데 성공했으며, 남극의 무례한 키스들과 그들의 키스-사를 복속시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날, 마지르 팍투와 팍투 키스-사의 손자인 킴 팍투가 30,000자루의 칼로 무장한 군대를 마지르 해안가에 포진시켰다. 그들 모두가 키스 팍투의 색을 하고 있었으며 모든 기수는 키스 팍투의 문장을 들고 있었다.

킴 팍투는 선언했다. "저들은 나의 사람들이오. 그리고 이 땅은 우리의 것이오. 당신의 종속 키스는 여기에 없소."

수적으로도 체력면으로도 우세하고 잘 무장된 군사에 맞서 결국 리암 갈시엔은 무모하게 병력을 이끌고 전투에 돌입했다. 그리고 그날 아주 적은 수의 갈시엔인만이 그들의 목숨을 부지해 달아날 수 있었다. 비록 수백 명의 팍투인들 또한 죽었지만, 결국 남극의 키스-사는 승리했으며 그 이후 그 어떤 원정도 시도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팍투의 문장은 거대한 띠 사막을 가로질러 사람들을 실어나른 모래돛의 흰 색 위에 자유를 찾고 수호하며 죽어간 사람들의 피로 붉게 물든 해를 표식화되어 그려진 모습이다. 그리고 이 해에 맞서 서 있는 형상은 바로 그 바다의 영혼으로, 영원한 희망과 신념의 상징이다.

팍투는 독립에 대해 열정적인 믿음을 지니며 독재자와 사제들을 혐오한다. 팍투의 사람들은 긍정적이고 혁신적이며 대담하다. 암울한 시기에 걸쳐 누군가는 언제나 키스의 모토를 읖조릴 것이다. "바다내음이 나는군요."

2.4.5. 키스 소반(S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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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인물로 홈월드2에 나오는 소반 함장[4]이 있다. 전사 키스로 용병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히가라 도착 이후에도 첫 무역선을 보호하는 등 작중 무력 담당이다.

현대 카락의 사회 속에서 대부분의 카락인들은 키스의 결속 아래 안정을 찾는다. 측근 가족, 그리고 다소나마 멀게 혈연으로 이어진 더 큰 집단, 그리고 자신의 직업 상 전문 분야나 연합은 말할 것도 없으며 이렇게 카락인들 상당수가 여러 가지로 엮여 있다. 만일 어떤 카락인이 어떤 키스-사와의 관계가 멀어진다한들 그 카락인은 여러 다른 키스와도 혼인 등의 여러 가지 관계를 맺고 있으며 당연히 이런 관계를 갈아타는 것 또한 가능하다.

다만 이런 것들이 항상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남반구 연방의 등장과 나발의 개입 이전, 카락인들 대부분은 자신들의 키스 외 인사들과는 거의 교류가 없었고 설마 그러한 관계가 있다 한들 한 키스와 그 키스의 종속 키스간의 지배와 복종의 관계로서 그 주인에게 공물을 바치고 자신보다 더 큰 키스의 군사력으로 보호를 받고 그 더 큰 키스의 주거지와 무역을 하는 수준이 전부였다.

하지만 자신의 소속 키스가 없는 이들은 그 어떤 대우도 보호도 받을 수 없었다. 현대 사회인들에게 있어 그 옛날 키스가 없는 남녀들의 이러한 운명이 도대체 어떠했을지는 상상조차 하기도 어렵다. 416 KDS의 키스 소반 탄생 이전에 있어 키스로부터의 추방령은 곧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키스 소반. "회색의 형제단"으로도 불리는 키스이다. 키스 소반의 근원은 지금도 좀 모호한 편이다. 두 번째 바다 옆 대지를 소유하고 있떤 두 개의 종속 키스가 근처의 강력한 키스의 신전 병력들에게 침략당했다. 두 종속 키스들은 맹렬하게 반격하며 온 힘을 다해 그들의 집을 지켰고 습격자 들 몇몇을 처치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침략자들은 그에 대한 보복으로 이미 항복한 생존자들을 잔혹하게 처벌했다. 카락 사회의 수많은 기본적인 금기들이 범해졌다. 이 농부들의 모든 자식들은 살해당했고 모든 가문의 지도자와 남녀들도 마찬가지 운명을 맞았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거주지에서 쫓겨나 번뜩이는 사막(Sparkling Desert)를 건너 도망친 뒤 키스-사에게 이 참극의 소식을 전했다.

이 도망자들의 지도자는 이후 적색의 소반(Soban the Red)로 알려진 소반이었다. 그는 그의 사 앞에 무릎꿇고 이웃 키스가 그의 사람들에게 저지른 참상에 대해 낱낱히 말하고 복수를 주장했다. 그는 직접 군사를 이끌고 이 침략자들을 단죄하겠노라 청원했고 키스-사가 보내 줄 남녀들을 이끌고 다시금 번뜩이는 사막을 질주하기 위해 기다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가 원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소반의 키스-사는 그런 행동이 부를 보복을 두려워했거나 아니면 그냥 자신의 키스가 더 크고 강력한 키스에게 이길 만큼 충분하지 않다고 했는지는 모르나, 이 약탈자들에 대한 보복을 거부했다. 대신 이 키스는 더 컸던 침략자 키스의 종속 키스로 들어갔고 그 살인자들과 혈연 관계를 맺게 되었다.

소반이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곧바로 수치심에 입고 있던 옷에서 자신의 키스의 상징을 모조리 찢어버렸다. 그의 추종자들 또한 이를 따랐고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키스를 완전히 버렸다. 당시로서는 전후무후한 행동이었다. 특히 땅도 없는 남녀들이 이를 행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랬다. 전설에 따르면 소반은 그 후 대지를 적신 아이들의 피를 무시하는 키스-사의 키스 따위는 무의미하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그는 오로지 동질감과 같은 야망을 지닌 이들끼리의 형제자매만이 진정 영혼을 지닌 키스로서 존중받을 가치가 있으며, 그 어떤 거짓된 키스에게도 속하지 않을 것임을 맹세했다.

소반의 추종자들은 새로운 색깔로 심장에서 흐르는 피의 깊고 선명한 적색을 택했다. 비록 그들의 수는 많지 않았지만 그들이 하나의 키스로서 행한 첫 행동은 한 때 그들의 집이었던 거주지들을 성공적으로 습격한 일이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옛 농장을 떠났을 때 풀 한 포기도 단 하나의 주춧돌 하나도 제대로 남아있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불탔으며 모든 침략자들은 살해당했으며 이로서 키스 소반의 피로 점철된 명성이 쭉 이어져 내려왔다.

키스 소반은 그 후 전사 키스가 되었으며 세월이 흐르며 특이한 의례가 그들 사이에 생겨났다. 물론 동시대에 여러 전사 키스들이 있었지만 이 여타 전사 키스들의 그 구성이나 목표란 다른 키스들과 큰 차이는 없었다. 그들보다 약한 이웃들의 재화를 약탈할 수 있기 위해서 좀 더 군사적인 성향을 띄는 정도가 다였다. 오로지 키스 소반만이 전혀 그 어떤 대지도 소유하지 않고 순수히 용병업에만 종사했다.

소반 용병들은 카락의 역사에 있어 흥미로운 성향을 띤다. 수백 년간 소반인들은 이 행성에서 있었던 모든 군사 분쟁에 끼어 있었으며 그들의 병사,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은 몹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고용된 소반인들은 그 어떤 비용이나 개인적인 위험에도 상관없이 고용된 키스의 복식과 색을 두르고 전장에 나섰다. 그러나 단 1분이라도 만일 고용기간이 끝난다면 소반 용병들은 그자리에서 무기를 내려놓고 고용되었던 키스의 복식과 색을 모두 제거한 뒤 자신들의 키스로 돌아갔다. 심지어 격렬한 전쟁의 와중이라거나 고향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서라도 고용 시간이 만료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고용기간은 현장에서 바로 연장될 수 없었으며, 계약의 갱신은 오로지 소반-사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현대까지도 소반은 일반적인 혈족 구성을 전혀 따르지 않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결혼"이 허용되지 않는다. 물론 남녀가 서로 여러 관계를 맺는 건 허용되지만, "소반 아이"는 존재할 수 없다. 소반인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다른 키스에게 맡겨지며, 그 부모는 아이를 양육하려면 키스 소반을 떠나야 한다.

키스 소반의 능력은 여전히 현대의 힘든 시기에 있어 유용한 관계로 그들은 결코 돈과 영향력이 모자라지 않다. 소반인들은 나발과 같은 강대한 키스의 정보 혹은 보안 장교 등으로서 종종 우대되며 현대의 거의 모든 장교들은 소반이 운영하는 티르의 군사학교에서 훈련을 받으며 이렇게 북부 연합 전체가 과거 평생동안 소반에 몸을 담은 카락인만이 받을 수 있는 훈련과 지도의 혜택을 보게 되었다.

여전히 대세에 굽히기를 거부하는 남녀들이 있는 한 진정한 소반인의 영혼은 현대에도 살아있다. 어떤 카락인들은 자의로 키스 소반에 합류하기도 하며, 이 때 그들은 다른 모든 키스와의 결속과 관계를 끊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키스의 금기를 어겨 추방당해 소반에 어쩔 수 없이 합류하기도 한다. "적색을 받아들이기" 이전, 소반인이 되고자 하는 이는 수 세기전부터 소반이 행해왔던 의식을 따라야 한다. 지원자는 강력한 부정의 표시로서 반드시 자신이 입고 있던 옷에서 이전 키스의 색과 상징을 찢어내야 한다. 어떤 이들에게 이는 진정한 반역으로서, 다른 어떤 이들에게는 유일한 구원으로 다가오지만, 키스 소반은 그들에게 언제나 같은 규율과 결속을 요구할 뿐이며 카락 사회는 이러한 소반의 일관성에 감사한다.

2.4.6. 키스 마나안(Mana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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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카락의 키스들 중 가장 생소한 존재가 "여행자들"로도 불리는 키스 마나안일 것이다. 비록 마나안인 간의 혈연 관계는 그리 두텁지 않고 그들의 외모나 키스 전통도 몹시 다양한 차이를 보이지만, 여전히 그들은 하나의 키스로 취급된다. 특히 외부인들의 시선에는 더욱 그러했으며 이 유목민들은 도덕과 예의, 방비되지 않은 거주지, 유수한 가문들의 젊은이들의 미덕에 대한 커다란 위협으로 보였다.

마나안인들에 대한 이런 혐오는 간단하게 설명될 수 있다. 과거 카락인 대다수가 이를 악물고 발버둥치는 근면한 농부였을 무렵부터 마나안인들은 전통적인 떠돌이 생활을 쭉 지속했다. 그들은 곳곳을 돌아다니며 식수원 근처에 머무르며 쉬었다. 만일 물이 거주지에 둘러싸여 있다면 그들은 친절을 기대했다. 비록 그들은 농부나 도시 거주민들에게 거의 적대적인 경우는 없었지만, 그들을 키스를 강제로 정착시키거나 "문명화"시키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저항했다. 그들이 가진 새로운 경험에 대한 굶주림과 활동력은 극히 드문 카락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들은 결코 한 곳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마나안인들은 그저 자신들의 물건을 챙겨 다시 황무지로 나아가 집과 거주지의 안전함을(그리고 힘든 노동도) 떠나곤 했다.

이 "마나안 방랑자들"에 대한 가장 오래된 역시 기록은 340 KDS 경의 것으로, 흰 사막(White Desert)의 해안가 거주지들이 이 여행자들에 의해 습격당했다고 불평하는 문건이었다. 그들이 키스-사에게 보낸 보고서에 따르면 흰 사막의 거주자들은 방랑하는 키스를 거주지에 들이는 것을 거부해 관문을 닫고 그들이 물가에 야영지를 마련할 수 없게 했다고 한다. 마나안인들은 그 때 평화롭게 물러났지만 그들은 밤새 돌아왔고, "수백 명의" 마나안인들이 벽을 타고 올라와 놀란 거주민들의 저항을 압도했다고 한다. 결국 마나안인들은 거의 1톤에 달하는 식품과 수백 명분의 물을 훔쳐갔다고 고발되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로, 약탈당한 물품은 하얀 사막의 거주민들이 자신들의 키스-사에게 보낼 그 해의 공물보다 조금 더 많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 흰 사막 거주민들의 이야기는 정착해 사는 카락인들에게 폭넓게 받아들여졌고 몇 세기간 그렇게 믿어져 왔지만, 실상 이 이야기는 여러가지로 의심스럽다. "수백 명의" 마나안인이 모래둑의 벽을 기어올랐다는 그 보고 자체가 이미 헛소리에 가깝다. 전통적으로 마나안인들은 대가족 이상의 크기로 뭉쳐 다니는 일이 없었다. 그런 그룹에는 고작해야 최대 12명 정도의 장정이 있을 뿐이었다. 마나안인을 "수백 명" 이상 찾기 위해선 그들의 "회합" 때 외에는 방법이 없다. 마나안인들은 페린 샤(Ferin Sha)- 춤추는 모래-에서 매년 열리는 "회합"을 가진다. 그런데 이 페린 샤는 흰 사막으로부터 200마일 이상 떨어져 있을 뿐더러 그 회합의 목적은 축하와 음주에 있을 뿐, 살인과 약탈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페린 샤에서는 그 어떤 상대와도 싸우는 것이 금지된다. 성지를 피를 흘려 더럽히는 것은 마나안인들의 가장 큰 금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로 인해 마나안인들이 도둑으로 취급당하는 편견에는 전혀 근거가 없느냐? 불행하게도 그렇지는 않다. 만일 대다수의 마나안인들이 습격과는 무고한 사람이라면, 여전히 일부는 그보다도 더 큰 세력으로 뭉쳐다니며 몇 개의 물통은 가지고 다닐만한 수준은 되었다. 대다수의 여행자들은 때때로 보잘것없는 소매치기 혹은 야밤에 과일을 서리하는 등의 좀도둑질 혐의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진정한 질문은 마나안인들이 정말 도둑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왜 그들이 도둑 취급을 당하는데도 대다수의 거주지가 이 마나안인 방문자들에게 관문을 열어주느냐이지 않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단 하나의 단어면 충분히 답이 된다. 유흥거리이다.

마나안인들은 언제나 행상인이었다. 그러나 대이주(Great Migration) 이전 시기에는 절대 그들이 통상 교역상들과 맞서 경쟁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평범한 화물만으로는 그랬다. 살아남기 위해 이 여행자 키스는 그들을 대접할 사람들을 위해 값싸거나 쉽게 다른 곳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들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때때로 마나안인들은 오지에서나 구할 수 있는 희귀한 약물이나 금기시되는 물건을 거래하기도 했지만 대개 거주지의 관문을 통과하기에 앞서 대개 검문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유형의 자산 대신 무형의 자산을 가지고 다녔다. 사막에서 사는 농부들을 끝없고 고된 중노동에서 한숨 돌릴 수 있게 할 음악, 웃음거리, 그리고 환상적인 휴식거리였다. 수많은 세월동안 키스 마나안은 그들의 재치와 능력을 발휘해 정착해 사는 카락인들을 즐겁게 해왔다. 가수, 시인, 마술사, 춤꾼, 배우, 그리고 호객꾼들. 마나안인들이 사악한 마술을 부린다는 그런 루머를 일으킬만한 것들은 없었다. 물론 지갑이 없어졌다거나 15살된 딸이 감쪽같이 함께 집을 나간다거나 하는 일은 있겠지만.

대이주(Great Migration)이 시작된 이래 마나안인들의 삶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첫 횡단(First Crossing)에서 큰 역할을 한 적은 없지만 작은 여행자 키스 하나가 키스 팍투를 따라 490 KDS경 모래돛단배를 타고 알베기도(Albegiido)를 떠났다. 그들 대부분은 497 KDS에 다시 돛이 3개 달린 배를 타고 북극으로 돌아왔다. 마나안인들은 단체로 모여 이 새 기술을 접하고 원형에 여러가지 개량을 해냈다.

이단 전쟁의 시작 이래 북지에 계속 살던 마나안인들은 시딤과 갈시엔의 통치 아래 끔찍한 고통을 당했다. 그들의 자유롭고 밝은 태도는 두 거대 키스에게 암적인 요소로 여겨졌고 극렬하게 대립하던 두 키스가 한 가지 동의하는 점이라면 이 마나안인들은 사주크의 눈에 한낱 이물에 불과한 존재일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페린 샤에서 있었던 마지막 축하연은 513 KDS에 열렸다. 그리고 시딤의 병력이 춤추는 대지를 습격했고 참석자들 전부를 참혹하게 살해했다.

페린 샤에서의 학살 이후 키스 마나안의 대부분은 무장한채 황무지를 나섰다. 한 때는 신화 속 존재에 불과했던 마나안인 약탈자의 이야기는 사막 접경지대의 시딤 정착지들에게 있어 끔찍하고 잔혹한 실체로 다가왔다. 이 약탈자들에게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았고 지평선에 걸린 모래돛단배의 마스트의 모습은 패닉과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수백 년 뒤, 마나안인은 점차 복수심을 버리고 점차 좀 더 이윤을 목적으로 모래배를 몰고 나섰다. 키스-사의 대모 조라 마나안이 시딤에 대한 전쟁의 종결을 656 KDS에 선포했을 때 마나안인들은 새 춤추는 대지를 팍투 키스 권역인 남부에 세우고 다시금 완전히 무역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마나안인들의 탐구 정신은 지금도 전혀 사그라들지 않았다. 키스 마나안은 어마어마한 부를 거머쥐고 있으며 카락의 키스들 대부분은 마나안에 대변인이나 외교관이 꼭 있기 마련이다. 마나안인은 정찰기 파일럿 중에서도 꽤 많이 보이며 실험기 운전에도 항상 자원하는 경우가 많다. 제일 처음 새롭고 다른 것을 접하고자 하는 열망은 여전히 그들의 피 속에서 깊게 타오르고 있다.

히가라에 도착한 이후에도 방랑성향을 유지하고 있다.

2.4.7. 키스 시딤(Siiddim)

"전통 없이는 미래도 없다"

키스 시딤은 언제나 모든 카락인의 방향을 결정짓는데 있어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키스 시딤은 완전 정복을 눈앞에 두고도 키스 자신의 모든 파멸을 감수해야 할 때는 언제나 한발짝 물러섰다.

"이단 전쟁" 당시, 시딤은 "영예로부터의 추락" 교리의 가장 큰 일원이었다. 카락인의 오만이 다른 신들을 불쾌하게 해 그들이 추방당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가장 큰 숙적 키스 갈시엔은 이 생각 자체를 몹시 큰 모독으로 받아들였다. 카락인들이 신들을 괴롭힐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키스 갈시엔은 이단 전쟁의 핵심과 믿음을 떠나 이를 지독한 교만으로 느꼈다. 그러나 현대 카락인들에게 있어 과거 갈시엔과 시딤이 카락인이 저주받은 사람들"인지"를 떠나 고작 "어떻게" 저주가 실현되고 있는지만으로 광기어린 전쟁을 수 백년에 걸쳐한 것만으로 보일 뿐이다. 전쟁은 계속되었고 수많은 생명과 자원이 잔혹하게 낭비되었다. 마침내 키스 나발이 티르(Tiir)에서 나타난 뒤에야 전쟁은 끝났다. 나발은 교리 앞에 이성을 내세워 폭정에 저항했으며 카락은 이에 열렬한 찬성으로 화답했다.

종교 키스들은 권력 구조의 이러한 거대한 변화에 각자 매우 다른 대응을 보였다. 솜타우는 전쟁 와중의 급격히 추락한 무역량과 황폐화된 재정에 시달려 나발의 이 움직임에 따랐다. 갈시엔은 더욱 더 교리 속으로 파묻혀 광기에 휩싸였고 그들만이 이해할 성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주-카(Saju-Ka)를 파괴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사막으로 떠났다. 그리고 마침내 키스 시딤은 3번째의 길을 택했다. 그들의 미친 선민사상의 꿈이 박살날 위기에 처하자, 키스 시딤은 조용히 사회로 재합류해 시류에 맞춰 움직였다. 그들은 적절하게 권리를 포기하고 보상을 했으며 800 KDS 초에 다다르자 시딤은 다시 한 번 키스 정치권과 새로이 나타난 다이아미드에 있어 메이저 플레이어로 발돋움했다.

지난 3세기에 걸쳐 키스 시딤은 과거에서 교리 대신 얻은 교훈을 봄으로서 새로이 등장한 문제점을 잘 극복해나갔다. 예를 들어 시딤-사는 각 키스에서 휘하 가문들을 종속시키는 법안들을 완화하는 걸 반대해왔지만, 그들이 취한 전술은 최대한 법을 보수적으로 만들되 카락 사회 속에서 필요한 유동성을 확보해 경제적인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수준을 맞추는 것이었다. 시딤-사는 언제나 동맹의 군사력에 있어 초석 역할을 해왔으며 지난 수십년 간 갈시엔 약탈자들에 대한 여러 군사 작전에 대해 인적 및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키스 시딤은 그 동안 군사력에 있어 최첨단 크롤러 병기의 개발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협조 속에서도 그들에 대한 불화의 목소리가 간간히 비어져 나온다. 키스 시딤은 최근 다이아미드에서 시딤 병력들이 이단 전쟁의 옛 숙적-갈시엔-들에 대해 과도한 폭력을 사용하는 혐의로 비난당한 적이 있다. 시딤-사는 이러한 혐의에 대해 대부분 경우는 그저 전쟁 후 스트레스의 결과일 뿐이며, 불행하고 후회스러운 사건이나 자신들의 공식적인 성명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이러한 이야기는 시딤이 비록 카락의 미래의 일원이 되는데 있어 아낌없이 투자한 노력에도 불과하고 과거가 여전히 그들의 등 뒤에 따라붙음을 의미한다. 다른 거대 키스들은 시딤에 대한 그 어떤 공식적인 불만도 표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잡음에 대해 시딤을 딱히 변호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루머 중 하나로, 1024 KDS에 있었던 미션 실루민 폭동 당시 급부상한 광신도 두인(Doine) 키스는 비밀리에 시딤 정보부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는 소문이 있다.

모든 강력한 키스들은 각자 꼬리를 물고 있는 소문들이 있다. 예를 들어 나발의 기업이 배후 통제를 꿈꾼다는 소문이나, 키스 스젯들은 사실 카락을 어떤 슈퍼 로켓을 개발해 떠나려는 계획을 하고 있다던지. 다른 의미로는 해냈다. 진짜로! 현재 시딤을 향한 이런 긴장감에도 불구하고 키스 시딤은 여전히 현 다이아미드 정치판에서 강력한 세력임은 분명하다. 시딤에 대한 협조와 존경은 분명 그들이 파멸 대신 미래를 취한 현명한 행동을 감안한다면 분명 합당하다. 또한 이 현명함은 더 많은 자원과 인명이 사라지기 전 갈시엔-사가 깨닫기를 많은 카락인들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이러한 변화에 잘 적응한 것 처럼 보이지만 데저트 오브 카락 시점에서 모함 사칼라(Sakala)가 북부연합 원정대를 배신하고 공격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함장인 마사드 시딤의 발언을 보면 선민사상 때문에 우주개발기술을 독점하여 혼자 승천하기 위함이며, 단순히 혼자만의 독단이라기 보다는 키스 시딤 전원이 자신들을 제외한 쿠샨 전부를 배신하기로 계획한 것처럼 추정된다. 아마도 시딤은 사칼라의 임무가 실패한 이후 다른 키스로부터 보복을 당했을 것이다. 모선 계획에 이들이 연관됐다는 기록은 없으며, 모선 승무원 혹은 동면자들 중에서도 시딤 인원이 있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그렇다면 라이벌이었던 갈시엔과 마찬가지로 카락에 남겨져 타이단의 공습에 멸망했을 것이다.

2.4.8. 키스 흐랄(Hraal)

키스 흐랄은 이단 전쟁 종반에 탄생한 신생 키스로, 이후 특유의 협업 정신으로 제조업에서 입지를 다진다. 특히 키스 흐랄은 지상 장비 생산에 집중해 샌드 크롤러나 지휘 모함와 같은 대형 지상 장비를 생산해냈다. 그러나 흐랄의 구성원 중 상당수가 독립해 신생 키스 리르흐라를 설립하고 공중/궤도 부문에 집중하고 있으나 흐랄은 지상 장비 제조업에서 막대한 이윤을 얻고 있어 이 새로운 분야에 대한 위험한 투자를 꺼렸다. 그러나 결국 카락이 타이단의 공습으로 파괴되며 키스 흐랄은 거의 전멸했고 살아남은 소수의 흐랄 생존자들은 후계 키스인 리르흐라에 흡수된다.

카락의 키스들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가장 깊고 깊은 전통을 파헤치는 것으로 현대의 카락을 이끄는 움직임들은 사실 수 백년 전의 사건들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물론, 사회가 얼마나 전통을 애지중지하건 언제나 상황에 적절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해 과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키스 흐랄이 바로 그런 행동에 딱 걸맞은 예시이다. 그들의 철학은 신성모독과 혁신의 경계선에 딱 서 있다.

흐랄은 이단 전쟁의 그 끝자락에 탄생했다. 갈시엔의 압제와 시딤의 학살 와중에 파괴된 여러 키스들은 산산히 흩어지고 결국 어쩔 수 없이 이 폭군들에게 종속되곤 했다. 평화유지를 위해 나발이 등장했을 때에도 키스 사회의 율법은 힘든 선택을 하게끔 했다. 소속 키스를 바꾸는 일은 곧 상대방에게 굴복해 전혀 알지 못하는 강력한 이방인들의 단체에 그들의 운명을 맡기는 일이었다.

이런 와중에 있어 선택권이란 것은 티르의 요새 바깥 작은 천막에 이렇게 부서진 키스의 다섯 사가 모일 때까지는 없었다. 그들은 이 잘난 전통이 그들을 완전히 실패의 길로 몰아넣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을 파멸로 이끈 옛 체계 따위는 거들떠 보지도 않을 것이며 그 누구에게도 무릎꿇지 않기로 해다. 그렇게 다섯 키스의 생존자들은 새로운 이름 아래 모여 그들 사이에서 새로운 사를 선출했다. 그들은 그 어떤 다른 키스에게도 신세지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해가 떠오르고 새로이 탄생한 다이아미드의 문이 열렸을 때, 이 신생 키스는 입장했고 새로운 사 한 명이 여러 키스-사들 사이에 동등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아무도 어쩔 줄 몰라했다.

처음에 경비병과 사제들은 어떤 종속 키스의 사가 주의를 끌고 어떤 안건을 제기하기 위해 왔거나 어떤 외딴 변방 출신들이라 자리를 잘못 잡은 줄로 착각했다. 그러나 이 조용하고 부드러운 여성이 위대한 원탁(Great Arc)의 자리에 앉아 그녀 스스로를 새로이 탄생한 흐랄-사(Hraal-Sa)로 소개했을 때 다이아미드는 격렬한 소란에 휩싸였다. 소반인 경비병들은 격분한 사람들의 외침에 반응해 이 방해꾼들을 저지하려 했지만 그들의 사의 시선을 받고 그 자리에 멈춰섰다. 결코 각자의 사(Sa)가 쉽게 뜻이 일치하는 적이 없던 나발과 시딤의 고함 속에서도 팍투, 솜토우, 소반의 조용하고 이성적이면서도 즐거운듯한 목소리가 그 날을 이끌어갔다. 그리고 키스 흐랄은 살아남았고 정식 키스로서 받아들여졌다.

이 때 있었던 카락 사회는 작고 큰 키스들 모두 변화의 물결을 느꼈고 흐랄은 대중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키스 흐랄의 이후 행보는 쉽지 않았다. 시딤에 의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흐랄의 존재에 한 법적 이의제기에 더해 흐랄은 카락 사회로 파고들어갈 틈바구니를 찾는 일이 어려웠다. 다른 거의 모든 키스들은 크고 작음과 무관케 수 세기에 걸친 평판과 각 전문 분야가 있었지만 흐랄은 필요에 의해 탄생한 존재로 그 어떤 공통된 전통도 기술도 없었다. 물론 예술가, 공학자, 물리학자, 경제학자들이 있긴 있었다... 하지만 통일된 하나의 단체로서 서비스를 제공하기에는 부족했다. 이대로라면 시딤은 법으로 굳이 손을 쓸 필요도 없이 간단히 경제력만으로도 이 키스를 해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흐랄은 점점 파산에 다다르고 있었다.

어느 날, 외로운 스텔 흐랄-사(Stell Hraal-Sa)는 나발의 철공소를 방문 중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그녀는 스젯 기술자들이 퉁명스러운 나발 장인들 그룹을 감독하며 나발 증기차를 제작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이 팀이 서로 다른 관점과 각자 생각하는 최선의 방법을 소화하려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았고 여기서 그녀는 현대 카락의 모습을 영원히 바꿀 영감을 얻게 된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두 다른 키스의 작업자들이 힘겹게 협업하고 소통하는 걸 보며 그녀는 깨달았다. 그녀는 비록 흐랄은 결코 스젯의 방대한 지식량도 나발의 기술력도 따라잡을 수는 없겠지만 그들은 결코 다른 키스들이 할 수 없는 절박한 협업 정신이 있음을 깨달았다.

흐랄-사는 바로 그녀의 야윈 키스 거주지로 가 자신의 키스를 설득하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말해준 후 키스의 전 재산을 털어 나발 증기차의 제작 라이센스를 구입했다. 그리고 다음 1/3분기의 끝에는 스젯과 나발의 사가 초대받아 40명의 흐랄 작업자들이 하루만에 3대의 증기차를 제작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본래 다른 키스라면 한 달이 걸릴 일이었다.

흐랄은 특유의 규율에 따라 몹시 정교한 기계를 만드는 복잡한 작업을 여러 개의 비교적 단순한 작업 여럿으로 깔끔하게 나누는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그 후 일 년 내로 흐랄은 제조업에 있어 현대까지도 잊지 못할 위대한 혁명을 이루어낸다. 한 빈 작업장에서 그들은 최초의 대량 생산을 위한 조립 라인을 구축했다. 그리고 흐랄은 그 검소한 작업장에서 카락의 가장 거대한 생산공장을 지을 정도로 성장했고 그 공장에서는 수천 명의 작업자들이 협업해 샌드 크롤러부터 가장 거대한 지휘 모함까지 제작했다.

신흥 거대 키스의 발호는 여전히 드물지만, 그 이후로 키스의 분리는 꽤 자주 발생하게 되었고 거대 키스의 지도자들은 작은 휘하 가문들의 요구에 좀 더 민감하게 대응하게 되었다. 그리고 흐랄은 비록 절대 시딤의 가장 가까운 우군은 될 수 없었지만 두 키스는 서로 긴밀히 협조했다. 그렇게 새로운 시딤의 지휘 모함이 티르에 자리잡은 흐랄의 핵심 생산시설에서 건조되었다.

하지만 변화가 가끔 도로 발목을 잡는 경우도 있다. 역설적이게도 흐랄은 아직도 이 키스의 핵심까지 뒤흔들고 있는 내부 불화의 여파를 신경쓰고 있다. 흐랄의 탄생에 있어 핵심이었던 융통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의 공학자와 과학자들이 흐랄로부터 독립해 신생 키스 리르흐라(LiirHra)를 1012 KDS에 설립했다. 그리고 키스 리르흐라는 그들의 거점에서 지상 장비 생산용 자산들을 공중 장비 생산과 궤도 배치용 자산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리르흐라는 자신들이 차세대 카락의 공학과 기술에 있어 지배력을 발휘할 것이라 보고 있다. 그러나 현재 사막 탐험용 장비 사업이 몹시 유리한 관계로, 현재의 흐랄-사인 존스(J'dones)와 내부 의회는 명백한 결과물과 이윤이 보장되지 않는 값비싼 기술에 모든 것을 투자하는 일은 위험하다고 보고 있다.

흐랄이 계속해서 바뀌는 산업계의 지평에 맞춰 움직일지, 아니면 이 새로운 가문들이 그들 자신의 미래를 개척할 때인지는 흐르는 시간이 밝혀줄 것이다.

2.4.9. 키스 솜타우(Somta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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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3대 종교 키스 중 한 곳이었으나, 이단 전쟁 와중 종교적 색체가 희미해지고 광업 전문 키스로 세속화되어 살아남았다. 그 후 광업에 매진하며 자라시 이상물체 탐험 원정이나 심우주 탐사 원정 등에서도 잔해 수집이나 광물 채취로 활약했다. 그러나 카락의 파괴로 인해 카락에 남은 인원 모두가 사망하고 대다수의 인원은 히가라로의 여정 도중 동면 상태였고 15,000여 명만이 살아남았다. 히가라로의 복귀 이후 군소 키스로 몰락했다.

이후 홈월드 캐터클리즘에서 주인공 키스로 등장하며, 이때의 활약 덕분에 어느 정도 이름을 날린 모양. 그리고 해당키스 소속이자 주인공 함선인 쿤-란은 해당 사건에서 활약하면서 비스트 슬레이어라는 칭호와 함께 솜타우 기반의 고유 문장을 갖게 된다.
2.4.9.1. 홈월드: 카락의 사막 시점
키스 솜타우의 가장 옛 시절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그러나 이 오래된 가문은 천 년이 넘게 그 계보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왔다. 옛적 솜타우는 카락의 북반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하는 크톤탈라 산맥의 계속과 봉우리에 거처를 마련했다. 최초의 두 세기 동안 크톤탈라의 솜타우 거주지는 풍족하고 다양했다. 농장에서 농업 전반부에 종사하거나, 댐, 요새, 기데오(Gydeo)와 햄린(Hameln)의 장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들과 마을을 보유하고 제분업에도 손을 뻗고 있었다. 이 키스는 자급자족 그 이상의 역량을 지니고 있었다. 저지대의 계단식 경작을 하는 농장과 고원의 방목지는 식료품과 가죽 쪽에서 큰 잉여 산출을 냈고 솜타우는 무역을 하며 번영했다.

178 KDS부터 다양한 파벌의 카락의 예술가들은 당대의 가장 깨우친 위인이었던 티고르 솜타우(Teigor Somtaaw)의 후원 하에 모여들었다. 수백 명의 숙련된 석공과 화가들, 건축가들과 직공들을 고용해 키스 솜타우는 룬그마 진(Lungma Jiin)-세계의 지붕- 산의 등성이에 일련의 신전들을 짓기 시작했다. 카사르(Kasaar)의 사막에서부터 당시 알려진 최고봉까지 33개의 신전이 이어져 있었다.

솜타우가 지은 이 33개의 신전들은 모두 한데 "빛나는 길(The Shimmering Path)"라 불렸다. 근 400년간 이 빛나는 길을 순례하는 일은 신앙에 대힌 가장 큰 헌신으로 여겨졌으며 대부분의 카락인들은 일생에 최소 한 번은 이 순례를 시도했다. 첫 신전 "탈라의 예언자(Oracle of Tala)"로부터 시작해 각 순례객이 최대한 스스로 도보로 걸어 갈 수 있는 거리만큼이 그 순례객의 마음 속 불타는 신념의 힘의 정도를 나타낸다고 여겨졌다.

절대 다수의 카락인들은 유명한 7번째 신전 "천국의 돔(Dome of Heaven"에서 순례를 끝냈다. 이 신전은 기데오의 도시 방벽 내에 자리잡고 있었다. 더욱 더 신에게 다가가고 싶은 억센 일부는 빛나는 길의 나머지 26개의 신전을 돌아볼 수 있었으며 각 신전을 거칠 때마다 순례길은 고되졌다. 이 신전들 중 가장 높이 자리잡은 곳이 바로 "신비의 신전(Temple of the Mysteries)"으로 극소수의 여행자들만이 도달할 수 있었다. 룬그마 진의 산등성이 윗부분은 부스러진 화강암과 얇은 얼음으로 이뤄진 급경사 구간으로 항상 몹시 추운 질풍이 불어닥쳤다. 전설에 따르면 솜타우의 가장 신성한 유물이 이 신전의 제단에 놓여 있으며 이 순례를 도보로 끝까지 마친 자들은 이 유물을 만져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이 유물이 바로 그 유명한 별금속 스크롤(Star-Metal Scrolls)로 전승으로는 자쿨(Jakuul)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직접 썼다고 한다.

그러나 이단 전쟁의 후반기에 들어 키스 솜타우는 종교 키스로서의 지위를 거의 버리게 된다. 약 1000 KDS 쯤 이 키스의 대부분은 다른 분야에 종사하며 현재 솜타우가 가장 잘 알려진 분야이기도 하다. 바로 광업이다.

주로 종교에 종사하던 키스로부터 근면한 광업 키스로의 변신은 솜타우에게 있어 수많은 세대에 걸친 고통과 고난이 걸린 느리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이단 전쟁은 솜타우에게 있어 힘든 시기였다. 크톤탈라 산맥은 갈시엔과 시딤의 침공에 대한 천연방벽의 역할을 잘 수행해줬고 두 거대 키스는 솜타우를 회유하거나 복속시키려 근 200년 동안을 시도해왔다. 전 세계가 전란에 휩싸이자 솜타우의 순례객 수는 급감했고 솜타우가 신전들을 빛나는 길의 중간기점으로서 제 기능을 유지시킬만큼의 자금줄조차 마련하기 어렵게 되었다. 결국 675 KDS에 들어 모든 33개의 신전 중 탈라의 예언자와 천국의 돔을 제외한 모두는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했다.

좁은 통로와 험준한 산맥의 지리적 이점과 그들 특유의 강인함으로 솜타우는 시딤과 갈시엔의 전쟁 중 그 어떤 침략 시도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장 버티기 힘든 것이 바로 그들을 휘하 종속 키스로 회유하려는 시도였다. 물론 솜타우의 거주지들은 방어하기에는 쉬웠다. 하지만 역으로 그 거주지들에 대한 교역을 끊기 또한 쉽다는 점이 역으로 존재했다. 작은 주둔지 하나면 카사르를 코르크로 병을 틀어막듯 봉쇄할 수 있었고 그렇게 솜타우를 산 속 요새에 가둬둘 수 있었다. 침략자들은 그 안으로 들어설 수 없었지만 행상인들이나 다른 방문객들 또한 그렇기는 마찬가지였다. 7, 8세기간 외부와의 연락은 드문드문 산발적으로만 이루어졌다. 이러자 솜타우는 카사르 길(Kasaar Road)를 열어둘만큼 충분한 물품이 유입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789 KDS에 들어 쿠라 솜타우(Kuura Somtaaw)가 여전히 크톤탈라 산맥에서 30,000명 정도가 살고 있는 이 키스의 키스-사로 있을 무렵 어느 날 이상한 꿈을 꾸면서 뒤바뀐다. 쿠라는 사주크 신이 장엄한 적색 검을 들어 주 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변방의 크톤탈라 산맥의 대지에 박아넣는 모습을 보았다. 꿈속 광경에 떠밀린 키스-사는 몇몇 작은 가문들에게 명령해 붉은 시내(Red Creek) 지역의 계곡을 파도록 명령했다. 이 키스-사는 탈라의 사제의 후손이었고 키스 솜타우는 마지못해 이 명령을 따랐고 몇몇 가문이 그 지역으로 옮겨 굴착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도 왜 이런 공사를 벌이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 붉은 시내에서 솜타우가 발견한 것은 이 때까지 카락에서 산출된 것들 중 가장 질 좋은 철광석으로 고작 계곡 바닥의 부드러운 퇴적층의 6피트 아래 묻혀 있었다. 여기서 나올 수 있는 금속의 양이면 엄청난 양의 검을 만들 수 있을 수준이었고 키스 솜타우는 지체하지 않고 이 사실을 세계에 공표했다. 시딤과 갈시엔 양측은 어마어마한 양의 재화를 들이밀며 이 광산을 매입하려했지만 쿠라 솜타우는 일언지하에 양측의 제안을 거절했다. "왜 내 목을 벨 광인들에게 칼을 팔아야 하지?"

대신 솜타우는 자신들 소유의 제련소를 차리고 순철에 탄소를 섞어 아주 고품질의 강철을 양산했다. 그리고 이렇게 위험한 시기에 있어 이는 금보다도 훨씬 더 값진 물건이었다. 그리고 이 솜타우제 강철의 가능성과 그 강철로 만들 수 있을 우수한 무기를 본 키스 소반은 쿠라 솜타우와 전후무후한 계약을 맺었다. 햄린의 제련소에서 매년 제공하는 공물의 대가로 이 용병 키스는 최소 100년 동안 카사르 무역로를 열어두고 모든 약탈자들을 막아주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나발의 개입 이후 솜타우는 더욱 사업에 매진해 그들 특유의 열정으로 이 새로운 분야에 매진했다. 비록 그들 스스로는 큰 의미를 가진 기술적 진보를 이루지는 않았지만 솜타우는 새로운 기술이나 도구를 다른 키스가 사용하기 시작한다면 이들을 사거나 복제하거나 심지어 훔치는 것에 결코 지체하지 않았다. 그렇게 솜타우는 증기력 드릴이나 폭약, 협궤 철도 등의 도입으로 아주 큰 혜택을 보았다. 이제 키스 솜타우의 구성원은 500,000명 쯤으로 거대 제조업 키스인 나발이나 흐랄과 함께 새로운 거주지들을 만들기도 했다.
2.4.9.2. 가이드스톤의 발견 ~ 모선의 발진 이전 (홈월드 본편 시점)
카르-토바(Khar Toba)의 발견 이후 카락의 학자들은 솜타우의 별금속 스크롤 또한 생명의 성배(Chalice of Life)나 다른 카락의 전설의 산물 정도로 추정했다. 가이드스톤의 발견 이전 별금속 스크롤 또한 소반의 검 칼리버노스(Caaliburnos)나 갈시의 불타는 창(Burning Spear of Gaalsi)와 같은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가이드스톤이 발견된 이후 이 솜타우의 신성한 유물에 대해 새로운 관심이 생겨났다. 많은 유명한 인류학자들과 가이드스톤의 발견자로 유명한 메바스 사갈드(Mevath Sagald)를 포함한 역사가들이 결집해 티르의 다이아미드에 현대의 학자들을 위해 외부인의 방문이 근 300년간 금지되었던 솜타우의 고산지대에 있던 신전들을 재개방하게 해달라는 청원을 넣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카락이 불타기 전까지 이런 운동이 효과를 보는 일은 없었다. 키스 솜타우의 대표자들은 다이아미드 의회에서 질질 시간을 끌었으며, 신비 신전에 들어가고자 하는 고고학자들은 옛 전통대로 순례객의 옷차림을 한 채 도보로 올라와야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물론 이는 사갈드와 그녀의 아군들에게 가당찮은 헛소리라는 대답만 들을 뿐이었고 그들은 공공연히 솜타우를 "한물 간 야만인"들로 비하했다. 많은 사갈드 지지자들은 다이아미드가 설립된 이유가 말도 안 되는 미신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이성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있음을 강조했다. 양측의 논쟁은 모선이 발진하는 그 순간까지도 계속 이어졌다.
2.4.9.3. 히가라로의 귀환 이후 (홈월드: 카타클리즘 시점)
히가라로의 귀환은 카락인들 대부분에게 그러한 것처럼 솜타우에게 있어 썩 기쁜 일은 아니었다. 카락에서 시작한 여정 와중 소수의 솜타우인은 자원 수집선의 유지보수에 참여했었지만, 대다수의 솜타우인은 동면상태로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히가라에서 깨어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카락에 남겨둔 자신들의 가문이나 친족들, 사랑하는 이들이 모조리 사라졌음에 경악했다. 한 때는 몹시 강성했던 키스가 이제는 극소수의 생존자만이 남았다. 오로지 15,000명의 솜타우인이 깨어났다. 이는 본래 인원의 2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였고 그 중 대다수는 남성이었다.

솜타우의 운명은 키스 나발과의 정치적 분쟁으로 인해 더욱 불투명해졌다. 나발은 솜타우의 생존자들을 종속 키스로 받아들이려 귀환 이후 7년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했다. 새로 설립된 신 다이아미드에서는 솜타우의 가문들의 유용한 능력과 그 능력이 나발의 산업 계획 위원회의 지휘 아래 히가라를 위해 보일 수 있을 엄청난 가능성에 대해 격론이 오갔다. 나발에 따르면 솜타우가 키스 나발에게 합류하는 것이 모든 히가라인들을 위한 최선의 방책이며 히가라 완충지대에 분포된 나발 소유의 식민지에서 그들의 광업에서의 재능을 기여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귀환 이후 지난 시기간 이러한 합병은 다반사였다.

그러나 솜타우는 이 제안을 바로 거절했고 신 다이아미드에서 있었던 솜타우와 나발 지지자간의 논쟁은 역사에 남을 사건으로 수많은 이들에게 이미 지목받고 있었다. 솜타우의 생존자들에 따르면 나발처럼 더 크고 강력한 키스들이 의도적으로 무력해진 동면자(Sleeper) 키스들의 주권, 그리고 거기에 부속된 그들의 히가라에서의 영토분할권, 신 다이아미드에서의 발언권, 모함의 건조시설 사용권을 빼앗고 있다는 것이었다. 솜타우는 이미 나발, 소반, 칼엘, 마나안 등의 거대 키스들은 모선의 건조시설에서 최소 15개 이상의 모함 전단을 건조했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그들 또한 우주 속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솜타우는 휘하 키스 수만큼에 비례하는 톤수만큼 함선들을 제조하게 해달라고 청원했다.

이 솜타우-나발의 분쟁 와중 카락의 와해된 키스 출신자들은 솜타우의 휘하 가문으로 결집해왔고 솜타우의 인원은 15,000명에서 25,000명 쯔음으로 몇 달만에 불어났다. 이 문제는 신 다이아미드에서 몇 달간 질질 끌었고 내부 의회의 거대 키스들 또한 서로 씁쓸한 토론을 주고받았다. 키스 소반은 솜타우와 옛날 했던 맹약을 존중해 나발의 권력추구를 반대했고, 과거 거대 키스에게 핍박당한 역사가 있던 팍투 또한 약해진 키스들을 모아 연맹을 결성하는 솜타우를 존중해 그에 동의했다. 거기에 맞서 키스 리르흐라(LiirHra)는 흐랄의 생존자들을 자신들이 받아들임으로서 생긴 혜택을 언급하며 나발을 꾸준히 지지했다.

이 문제는 솜타우가 약화된 키스들을 설득해 이 안건의 여부에 따라 전방위적인 파업을 하겠다는 선포를 하게 만듬으로써 신 다이아미드에서 근소하게 결국 솜타우를 지지하는 쪽으로 결정되었다. 비록 강성한 키스의 상당수가 솜타우를 고대의 사회 제도를 자신들의 이득을 보기 위해 이용했다며 비난했으나 어찌되었든 솜타우는 모선의 건조시설을 6개월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솜타우의 이용기간 이후 다른 약화된 키스들을 위한 이용기간도 할당되었다. 솜타우는 할당기간 동안 거대한 채광선 두 척을 제작했다. 45일 내로 쿤-란(Kuun-Lan)와 팔-코룸(Fal-Corum)으로 모두 승무원 정원을 채운 후 발진했다. 그리고 건조시설 이용기간의 남은 자투리 시간 동안 키스 솜타우는 당당하게 마지막으로 함선 하나를 더 건조했다. 클리-산(Clee-San). 최신예 심우주 연구용 프리깃이었다. 역사를 배우는 사람들이라면 이 세 함선의 이름이 옛 빛나는 길에 있던 신전들의 이름에서 유래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쿤-란, "정화의 불길(Purifying Flame)". 팔-코룸, "침묵의 나그네(Silent Wayfarer)", 클리-산, "진실의 탐구자(Truth Seeker)"...

그 이후 솜타우는 히가라 주변의 수많은 행성계들을 탐험하며 돌아다녔다. 비록 인원은 적었지만 그들은 희귀 광물을 채취할 여러 채취 거점을 세웠고 노고의 대가를 현재의 히가라 무역 규정이 허용하는 모든 고객들에게 판매해왔다. 물론 모든 히가라 키스들이 다 그렇듯 이 함선들 또한 히가라 영공이 침해당했을 경우 소집 명령에 반드시 응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 히가라에 대한 의무를 제외하면 솜타우는 자유롭게 살며 그들의 키스-사 외의 누구에게도 고개숙이지 않으며 세기를 이은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2.4.10. 카네프(Khaaneph)

우리는 카락에서 있었던 전쟁의 대가에 대해서 말할 때 주로 경작지의 손실과 무너진 모래방벽, 사주-카의 파괴, 거기에 뒤따른 키스 갈시엔의 추방과 그들이 가졌던 지혜와 예술의 영원한 소실을 말한다. 그러나 몹시 극소수의 학자들만이 겨우 말할 뿐인 대가가 있다. 육체가 아닌 정신의 죽음을 겪고 황무지로 사라진 사람들이다. 어떤 가문들은 농작지와 대지만이 아니라 문명과 법에 대한 신념마저 내버려두고 떠났다. 그렇게 그들은 모래 속으로 영혼마저 잃고 만 것이다.

시딤 교리 아래 가장 암울한 시기 중 작은 키스 전체가 그리티딤으로 선포당한 후 거주지에서 강제로 쫓겨났고 많은 가족들이 가져갈 수 있는 것들만큼만 물건을 챙겨 도망쳤다. 그런 일부는 이단 전쟁 와중 갈시엔에 다시 흡수될만큼 오랫동안 생존했지만 많은 이들이 죽거나 사막 깊숙한 곳으로 사라졌다.

전쟁이 끝나고 이성의 시대가 도래해 안정이 찾아오고 파괴된 세계가 다시 성장할 때에도 이러한 실종 사건은 지속되었다. 어떤 이들은 도적떼의 소행이라고, 어떤 이들은 그냥 광기 때문이라고 했다. 갈시엔의 추방 이후론 누구나 다 받아들일만한 설명이 생겼다. 바로 이 종교 광신도들이 작은 정착지들을 공격했다는 것이다. 수 세기간 이 설명은 겁 먹은 자들과 실종자의 친족들을 만족시켰다. 그 누구도 어떤 가문이 갈시엔 예언자들에게 설득당해 추방자들에게 합류했다는 생각은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익숙한 고통이었고 또 우리가 이해하고 말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종류의 고통이었다.

하지만 진실은 카락인들이 상상했던 것보다도 더 암울했다.

지난 수백 년간 갈시엔의 호전성은 증대했고, 북부 연합의 첩부부서는 적에 대해서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첩보부는 포로들을 많이 붙잡았고 그들의 성명을 가로채고, 심지어 카락의 모든 사람들을 위협하는 상황이 도래했을 때에는 이 약탈자들과도 거리낌없이 정보를 주고받았다. 물론 아무리 거부하고 거부해도 전혀 피할 수 없는 증거가 확보된 경우에만 고통스럽도록 긴 연줄을 통해 이런 교류가 이루어진다.

1024 KDS에, 마사르 마나안(Masaar Manaan)이란 이름의 한 암호해독가가 조심스레 작성된 보고서를 그의 상사에게 제출한다. 이 보고서는 해독된 갈시엔 암호문에 있는 하나의 단어의 의미에 대한 것이었다. 소규모 작전의 피해 보고나 소규모 집단에 대한 습격과 관련해서 이 단어가 특히 강조되었다. 처음엔 그 마사르의 상사는 그냥 이 단어가 연합을 칭하는 또다른 갈시엔의 단어이겠거니 하고 이 보고서를 무시했다. 그리고 마사르가 이 문제를 더 파고들자 상사는 그의 마나안 혈통과 폭풍을 타고 나타난다는 괴물에 대한 옛 여행자들의 이야기에 너무 영향을 받는 게 아닌가 의심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 젊은 장교는 연합 첩보부에 배정되기 이전 언어학자로서 모범적으로 학업을 쌓은 경력이 있었고 이 장교는 끈질기게 그의 자료를 밀어붙였다. 그는 심지어 500개나 되는 확인된 연합/갈시엔간의 조우 중 파간(Faagan)이란 명칭이 이 500개의 모든 레퍼런스에서 발견되었음을 증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연합과의 알려진 연관성이 없는 나머지 150개의 보고서에서는 카네프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마사르는 이 명칭을 토대로 저 머나먼 황무지에 갈시엔이 아닌 또 다른 적대세력이 있음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카락의 문명의 변방에 있는 정착지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그는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납득시키려 애썼다.

1026 KDS 초반, 마사르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프로젝트 팀을 담당하게 되었다. 과연 갈시엔 약탈자들과 협조 혹은 반목하는 알려지지 않은 세력이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가 찾은 진실은 어두운 것이었다.

제일 처음 확인한 사실은 "파간"과 "카네프"가 서로 다른 갈시엔 방언 사이의 동의어가 아니란 것이었다. "모든" 갈시엔 방언에 있어 두 단어는 이 두 단어는 전혀 다른 뜻을 의미했다. "파간"은 연합을 일컫는 일상적인 말로 "눈멀고 얽매인 자(the Bound and the Blind)"라는 뜻이다. 의역하자면 파가니(Faagani)라는 말은 "거짓된 신의 눈 먼 추종자들(Blind Followers of a False God)"이다. 파간이란 아주 긴 끈으로 휘몰아치는 모래폭풍 속에서 각각의 가문의 구성원에서 구성원으로 서로 연결되며, 아무 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모래폭풍 속에서도 이 끈을 붙잡고 이 구성원들은 그들의 지도자를 따르고 다른 이들에게 의지해 나갈 수 있다. 갈시엔은 연합의 키스들을 거짓에 사로잡혀 위험하게 그릇된 길로 이끌리는 존재로 치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시엔은 이 키스들은 여전히 "신봉자"로 분류한다. 그들은 과학과 논리 또한 결국 새로운 신격들로 보며 그러한 그들의 사상 속에 북부 키스인들은 적이지만 구원의 길이 아직 열려 있는 존재들로, 북부 키스인들이 만일 더 나은 올바른 지도자들에게 연결된 끈을 붙잡기만 한다면 구원의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카네프는 그와 전혀 다른 존재이다.

아주 오래된 단어에서 유래한 이 "카네프"란 단어는 직역하자면 "신이 없는 자"로, 갈시엔의 사상에 있어 거의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다. 카네프가 된다는 말은 곧... 아무 것도 믿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무 신도. 아무 법도도. 아무 정의도. 아무 키스도. "카네프"란 곧 인간이 아닌 야수의 영혼을 담은 인간을 말한다. 만일 앞서 말한 저 끈이 바로 우리를 공통된 인간으로서 남게 해주는 유일한 유대라면 카네프는 스스로 칼을 꺼내 그 끈을 잘라버린 자들이다.

갈시엔은 아무리 대담하고 대담한 약탈자들조차도 무서워하는 황무지 저편을 카네프가 돌아다닌다고 믿었다. 그리고 연합이 카네프의 존재 가능성을 인정할 준비가 되었다는 소식이 그들의 귀에 들어갔을 때, 심지어 갈시엔-사는 마사르의 팀에게 특정 기록을 몰래 공유해주었다. 그리고 3년에 걸친 고통스러운 연구와 교차 검증 속에 마사르는 카락 역사 속 가장 암울한 변두리 속 퍼즐을 짜맞출 수 있었다.

모든 그리티딤이 흡수되거나 파괴된 것은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어떻게 문명 사회 속에서 살아남았고 또 많은 이들이 죽었다. 하지만 일부는 그 어떤 쪽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 일부는 전투로 남겨진 폐허를 뒤지며 연명했다. 그리고 전장의 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하자, 그들은 서로를 잡아먹었다. 카네프가 된다는 것은 목숨을 부지하는 것 이외에 그 어떤 믿음도 없이 오로지 그 자신만에게만 충성하는 것을 의미했다. 카네프인들은 오로지 상대방이 다른 먹잇감들에 비해 일정 이상 강할 때에만 서로의 목숨을 빼앗지 않았다.

카네프는 이렇게 다른 거대 세력들이 살 수 없는 빈 공간 속에서 살아 남았으며 이렇게 수 백년의 이단 전쟁 기간을 버텼다. 그리고 북부 카락인들이 이성의 시대에 접어들었을 때 카네프인들은 작은 거주지들에서 학살을 벌이고 무방비한 행상들을 기습했다. 그들은 모든 것을 가져갔다. 모든 천쪼가리와 금속쪼가리들은 어떤 무엇인가를 위해 쓸 수 있었다. 모든 아이들은 전사로 키워낼 수 있었다. 모든 시체는 곧 식량이었고 원자재였다.

이렇게 카락인들은 사회의 경계 밖 한 구석에서 수백 년간이나 괴물들을 눈치채지 못하게 키워오고 있었던 것이다. 오로지 갈시엔만이 이들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저 카네프가 그 어떤 키스들보다도 그들을 더 자주 노렸기 때문이다.

카락인들이 더욱 더 혼란한 시기의 경계에 도달한 때, 전쟁이 모든 문명화된 거주지를 위협하고 사막의 모래가 방벽을 타고 올라 넘실거리는 그 때... 카네프는 더욱 더 강성해졌다. 폭풍의 경계를 타고 지나가는 정찰기에 의해 찍힌 고기동 차량으로 구성된 약탈함대의 사진이 찍힌 적이 었었다.

언젠가 북부 연합의 병력은 카네프와 교전하고 그들이 담습했을 알 수 없을 전술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 그 때 키스 갈시엔이 그런 분쟁에 힘쓸지는 알 수 없다. 마사르 마나안이 처음 이들의 존재를 알린 이후 카네프에 대한 상황 보고서가 수십 건이 올라왔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 어떤 보고서의 어조도 마사르가 쓴 보고서의 마지막 단락만큼 심각하지는 않다.

"이 분석 보고서를 읽는 사람들 그 누구도 말 안듣는 아이였을 무렵 침대 뒷편에서 당신 가문의 사가 하는 '나쁜 아이는 벽 밖에 둬서 밤새 갈시엔이 데려가게 해둔다'는 이야기를 안 들어본 이가 없을 거라는 데엔 한 치의 의심도 없다. 이제 한 번 사주-카의 소실 이후 갈시엔인들이 자기 아이들을 겁주는데 썼을 괴물은 무엇이었을지 한 번 생각을 해 봐야 한다! 한 번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지금 깨달은 게 있다면, 바로 이거다: 그들이 겁내는 건 우리만이 아니라는 거다."

2.5. 카데시(Kadesh)

카락을 떠나 고향인 히가라 행성으로 가던 쿠샨을 막아선 세력으로, 더스트워 이후 카락으로 유배되기 위해 가던 중 중도에 이탈한 함선들에서 나온 자들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3. 타이단(Taii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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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란을 카락으로 유배시키고 히가라를 차지했던 대제국으로 홈월드1의 이야기 이후 히가라에서 퇴각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4. 튜라닉(Turanic)

변방의 세력으로, 약탈을 하거나 용병업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5. 벤투시(Bentusi)

평범한 상인 종족으로 보이지만, 더스트 워 시절 히가라의 몰락을 유도한 세력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6. 베이거(Vaygr)

변방의 한 부족이었으나, 홈월드2에서 하이퍼스페이스 코어를 얻어 강력하게 성장하며 타이단의 세력을 흡수하며 침공해왔으나, 사주크를 두고 히가라와 전쟁을 하다 자신들의 지도자인 예언자 '마칸(Makaan)'[5]를 잃고 몰락하고 만다.

7. 화신(Incarnate)

8. 고대인(Progenitor)

프로제니터. 모든 종족 이전에 존재했던 종족으로 게임 내에서는 배경이나 잔해 등으로만 추측이 가능한 종족이다.
매우 고도의 과학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멸망한 것으로 나온다. 이상하게도 분파들이 베사이드나 아바시드같이 지구 아랍권의 명칭이며, 나중에는 홈월드 은하의 원주민이 아니라 이주민이라는 언급도 나온다. 때문에 팬들 중 일부는 사실 이들의 고향이자 홈월드 세계관 속 인류의 궁극적인 고향이 지구가 아니냐는 추측을 한다.


[1] 아래 소반 항목에서 알 수 있듯이 소반의 상징 색은 붉은색이다.[2] 히가라인들이 하이퍼스페이스 기술을 재건하여 카락에서의 탈출을 시도할 경우 카락인들을 공격해도 된다는 조약. 자세한 사항은 히가라 문서를 참조.[3] 하지만 급하게 준비하느라 카피시는 움직이는것만 되는 깡통상태로 캠페인을 시작하게 된다.[4] 이름은 정확히 나오지 않는다.[5] 카란 스젯과 마찬가지로 모선에 생체 컴퓨터가 되어 박혀 있다. 다만 우아한 카란과는 달리 마칸은 격리된 캡슐 안에서 코까지 파이프로 연결하고 꽤나 불편해 보이는 모습으로 박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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