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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5 18:45:36

호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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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y(北,ruby=ほう)][ruby(条,ruby=じょう)][ruby(氏,ruby=し)]
호조씨
파일:1280px-Japanese_Crest_mitu_Uroko.svg.png
<colbgcolor=#666666> 호조 가문의 가몬
세 비늘
三つ鱗
본성 간무 헤이시(桓武平氏)?
가조 호조 도키카타(北条時方)[1]
종별 무가(武家)
출신지 이즈국 타가타군 호조향
(伊豆国田方郡北条郷)
근거지 사가미국 가마쿠라
지류
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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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에씨(名越氏)
고쿠라쿠지씨(極楽寺)
오사라기(大仏氏)
가네자와씨(金沢氏)
후온지씨(普恩寺氏) 등

1. 개요2. 상세

[clearfix]

1. 개요

가마쿠라 막부싯켄 가였다. 사실상 가마쿠라 막부의 실권을 장악해온 일족으로 가마쿠라 시대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영향력이 강했다.

2. 상세

간무 헤이시[2]의 일족 중 하나로 전해지는데, 기록마다 호조 도키마사 이전의 족보가 서로 달라 혼란스럽기 때문에 확실하지는 않다. 헤이케 일족이 아니라는 설도 있으며, 헤이케 일족과 혈연이 있을 수도 있다고 보는 연구자도 있다. 특히 호조 가문의 실질적 시조인 호조 도키마사(北条時政)의 경우 공식 사서인 아즈마카가미에 부친에 대한 기록이 없는 반면 다른 기록들에는 호조 도키카타(北条時方)가 그의 부친이라는 기록과 호조 도키카네(北条時兼)가 그의 부친이라는 기록이 충돌하여 골때리는 상황이다. 다만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일단 잠정적으로는 '도키이에-도키카타-도키마사' 순으로 가계가 이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도키이에의 경우 이즈노스케라는 관직을 역임했다는 기록이 있기에 훗날의 호조 도키마사가 이즈노스케라는 사실과 호응한다.

반면 호조 도키마사 계통이 진짜 호조 가문의 적류가 맞느냐는 의문도 있다. 이는 도키마사의 친척[3]인 호조 도키사다(北条時定)의 가전(家傳)에 그의 아버지인 호조 도키카네가 호조노스케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어서, 겨우 이즈노스케에 불과했던 도키마사 계통보다 도키사다 계통이 적류가 아니겠냐는 것. 여기에 겐페이투쟁록(源平闘諍録)에 호조 도키이에가 '호조노스케의 사위'였다고 기록한 것과 호조 가문이 일찍부터 요리토모의 가문과 인척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연결하여 '사실 호조 도키이에는 교토 무사 출신인데 어떠한 이유로 이즈로 와 이즈 재지(在地) 가문인 호조 가문의 데릴사위가 되어 이즈노스케를 계승했다'고 보는 연구자도 존재한다. 특히 공식 사서에 쓰인, 호조 도키이에의 아버지가 다이라노 나오카타(平直方)라는 기록이, 호조 도키이에가 진짜 교토의 헤이케 후손이거나, 혹은 다른 교토 무사 출신임을 나타내는 기록이라고 본다.

아무튼 대대로 이즈노스케[4]를 맡던 작은 세력에 불과했으나 1177년 가문의 당주이던 호조 도키마사의 딸 호조 마사코가 이즈에 유배당해 온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와 사랑에 빠지게 되어 결혼을 하게 되면서[5] 호조 일족은 1180년 요리토모가 거병을 하게 되었을 때 그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가마쿠라 막부 설립에 공을 세우면서 도키마사가 고케닌의 수장이 되면서 유력 가문으로 성장한다.

요리토모 사후 3대 쇼군 사네토모[6] 때 도키마사가 초대 싯켄 자리에 오르고 사네토모 사후 미나모토의 핏줄이 끊어지자 다른 겐지 일족들 중에서 허수아비 쇼군을 임명하고 대대로 싯켄 자리를 독점해 가문 이름을 '도쿠소케'(得宗家)로 칭하며 권력을 잡게 된다.[7] 이후 천황가와의 반목, 지나친 권력 독점으로 인한 다른 무사 가문들과 고케닌들의 대립으로 인한 내부 문제와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으로 인한 외부 문제가 겹치면서 생긴 혼란으로 인해 세력이 점차 약해지다(당시 싯켄 호조 도키무네가 33세에 요절한 탓도 있다) 결국 1333년 고다이고 덴노의 명을 받은 아시카가 다카우지, 구스노키 마사시게, 닛타 요시사다[8][9]등의 세력에 의해 가마쿠라가 함락되면서 16대 싯켄이던 호조 모리토키나 후계자이던 14대 싯켄 호조 다카토키의 아들 호조 구니토키 등 호조씨 일족 870여 명이 몰살당하면서 무너지고 만다.

이후 1335년 다카토키의 아들 호조 도키유키스와 요리시게 등의 도움을 얻어 호조씨 잔존세력을 모아 아시카가 다다요시를 몰아내고 가마쿠라를 재점령해 재기를 꿈꾸었으나 아시카가 다카우지, 다다요시 형제에게 패하고 처형당하면서 호조씨는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 이 도키유키를 주인공으로 삼은 만화가 도망을 잘 치는 도련님이다.

이후 센고쿠 시대에 옛 가마쿠라 지역을 기반으로 호조씨를 계승한다고 자칭한 이들이 있다. 말 그대로 자칭일 뿐 혈연적인 관련은 거의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후호조씨가 싯켄 도쿠소 호조씨의 방계라서 혈연적인 관련 자체는 있지만, 싯켄 도쿠소 호조씨와 후호조씨의 공통 조상이 헤이안 시대 사람이라서 촌수가 어마어마하게 멀기 때문에 사실상 남이나 다름 없다. 이들에 대해서는 후호조씨 참조.


[1] 호조 도키마사의 아버지라고 전해진다. 혹은 호조 도키카네가 호조 도키마사의 아버지라고도 전해지는데, 실은 도키마사의 친척인 호조 도키사다의 아버지가 호조 도키카네라고 한다. 호조 도키마사의 이전 족보에 대한 이야기는 문서 본문에 후술.[2] 다이라노 기요모리헤이케 일족이 여기에 속한다.[3] 남동생, 조카, 사촌 등 기록이 서로 상충한다[4] 이즈 국의 재청관인으로 이즈의 재정을 담당하는 벼슬이었다.[5] 이 때문에 상술하였듯, 본래 도키마사 계통의 가문이 교토에 있다가 이즈로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가문인 것 아니냐는 설도 있다.[6] 사네토모가 쇼군이 되는 과정에도 호조씨가 사네토모의 형인 2대 쇼군 요리이에를 사사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7] 호조 가문은 가마쿠라 막부의 가신에 불과했을 뿐만 아니라 겐지도 아니고 헤이시라서 쇼군 자리를 차지하기 어려운 위치였기 때문이다.[8] 미나모토씨와 같은 세이와 겐지 일족 출신 가문들로 미나모토 다음으로 가마쿠라 막부의 쇼군 계승권을 가진 세력.[9] 다만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아내인 아카하시 도코는 도쿠소 호조가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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