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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8 21:04:37

허완(1569)

허완
許完
<colbgcolor=#94153e'><colcolor=#ffc224,#db9e00> 출생 1569년
사망 1637년 1월 26일 (향년 68세)
경기도 광주부 쌍령
(現 경기도 광주시 쌍령동)
자고(子固)
시호 충장(忠莊)
본관 김해 허씨
부모 부친 - 허기
모친 - 경산 이씨(京山 李氏)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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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의 무신.

2. 생애

1569년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기억력이 좋고 무예가 뛰어났다. 1593년 무과에 급제해 이순신휘하에서 종군하며 이순신에게 뛰어난 장수가 될 것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후 조정으로 돌아와 선전관과 비국랑을 역임하였다. 류성룡의 천거로 남평현감이 된 뒤 도총부도사를 거쳐, 단천군수가 되었다. 마침 여진족의 침입을 물리쳐 공을 세우고 절충장군이 되었고 무산진첨절제사에 제수되었다.

얼마 뒤 훈련중군, 충청수군절도사, 전라좌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했는데, 가는 곳마다 군사들을 사랑해 신망이 두터웠다. 광해군과 북인들의 횡포로 인해 9년 동안 은거했다가 인조반정 후 다시 중군에 등용되어 군졸들의 마음을 수습하였다. 그러나 권귀인의 비위를 건드려 파직당하였다.

그 뒤 정묘호란 때 중군으로 왕을 호종한 공으로 가선대부, 경상우도절도사 겸 진주목사를 거쳐, 회령도호부사를 지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경상좌도병마절도사로 우병사 민영과 함께 급하게 경상도 근왕군을 편성해 남한산성에 피난한 왕을 구하려 하였다.

그러나 광주 쌍령에서 청나라 군대를 만나 싸워 전초전에서 조총 화망을 형성해 선발대를 격퇴했으나 이 과정에서 사격통제에 실패해 화약이 바닥나 혼란이 발생했다. 이에 청군은 허완의 진지를 급습해 근왕군이 도주하기 시작했고 이에 많은 병력을 잃자 자신의 칼을 꺼내 자결했다. 뒤에 인조는 이 소식을 듣고 병조판서에 추증하였다. 시호는 충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