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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06-17 16:00:37

한재호(독립운동가)

파일:한재호.jpg
성명 한재호(韓在鎬)
이명 한기복(韓基福)
유석(柳石)
본관 청주 한씨[1]
생몰 1901년 5월 1일 ~ 1969년 5월 5일[2]
출생지 경기도 양성군 원당면 외가천리
(현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외가천리)#
사망지 경기도 안성군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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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한재호는 1901년 5월 1일 경기도 양성군 원당면 외가천리(현 안성시 원곡면 외가천리)에서 아버지 한기현(韓基賢)과 어머니 풍산 심씨 사이의 1남 4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4월 1일 오후 8시경 외가천리에 있던 원곡면 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대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독립만세를 하였고 뒤이어 태극기를 앞세워 양성면 동항리로 행진했다. 원곡면과 양성면을 경계로 하는 고개길에 이르러, 이유석(李裕奭)을 비롯한 주동자들이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취지를 설명하고, 양면 관내의 면사무소·우편소·주재소를 습격, 파괴하고 일본인 거주자를 축출시키기로 결의하였다.

오후 9시 30분경에는 양성면민들로 구성된 수백명의 만세시위대가 양성면 경찰 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길에, 이들 원곡면에서 시위대와 합세하여 오후 10시경 다시 주재소로 쇄도하였다. 이때 그는 몽둥이와 돌을 들고 선두에 서서 주재소 사무실에 투석을 하고 짚단을 모아 그 위에 주재소내의 의자와 탁자·집기류 등을 쌓아 놓고 불을 질렀다. 이어 우편소를 습격, 투석하였으며, 일본인 토자 토요테(外里與手)가 경영하는 잡화점을 습격하여 파괴하였다. 이튿날 새벽 4시에 원곡면으로 되돌아 오던 중에, 면사무소를 습격하여 투석으로 창을 부셨다.

이 일로 체포된 한재호는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건조물 소훼·소요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안성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9년 5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한재호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문정공파 32세 호(鎬) 항렬.[2] 청주 한씨 제7교 대동족보에는 1968년 3월 14일에 별세했다고 기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