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35:20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역사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한국기술교육대학교
파일:한기대.png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역사 학부 캠퍼스
교내단체 입학 출신 인물
}}}}}}}}} ||

1. 개요2. 역사

[clearfix]

1. 개요

한국기술교육대학교의 역사를 다룬 문서이다.

2. 역사

한국기술교육대학교가 설립되기까지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렸다.

1980년대 초, 직업훈련교사의 수요와 고급인재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기존 중앙직업훈련원에서 담당하는 2년 과정의 직업훈련교원 양성과정을 확대하여 정부에서 직훈교사양성을 위한 4년제 기관 설립을 추진하게 되었고 이는 독일 정부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다.[1]

처음에는 서울대 기술교육과와 충남대 기술교육과를 직업훈련교육을 전담하는 학과로 변경하는 안이 제출되었으나, 당시 대한민국을 원조하던 독일 정부는 타당성 조사를 통하여 별도 대학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2]

1982년 국립중앙훈련원의 직훈교사 양성과정이 폐지[3]되자 노동부에서는 4년제 대학 설립을 준비하였으며 기획 당시에는 현재 교명인 한국기술교육대학교가 아닌 한국산업기술대학(가칭)이라는 교명을 사용했다.

그런데 한국산업기술대학을 설립하라고 지시했던 전두환 대통령이 과학 영재 양성으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이 대학의 이름이 한국과학기술대학(KIT)으로 변경되었고 소관부처도 과학기술부로 이관되었다. 대학 설립에는 많은 돈이 필요하고 준비 기간도 필요하기 때문에 마침 노동부에서 추진하고 있던 대학 설립안을 합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노동부의 4년제 대학 설립안은 휴지조각이 되고 만 것이다.

1987년 국립중앙직업훈련원에 남아있던 사람들의 교육이 끝나고 훈련원이 완전히 문을 닫은 뒤, 노동부는 이를 대체하여 창원에 직훈교사 양성을 위한 대학을 신설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대통령의 재가과정에서 직업훈련교사의 양성을 전담하는 4년제 대학을 별도로 신설하기로 했다. 목적에 걸맞게 교명도 한국직업훈련대학(가칭)이라고 정했다. 국립대학으로 설립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대신 법인을 설립하고 노동부에 의한 전액 정부 출자 구조로 학교를 운영하는 사립대학의 형태가 되었다.[4]

그러나 국립창원대학과 창원기능대학의 반발로 인해 창원에 설립을 실패하고 각 지자체에서 대학 설립 의향서를 받아 심사하여 지금의 제 1캠퍼스가 위치한 병천에 설립하게 된 것이다. 이 부지가 다른 학교에 비해 좁아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최초의 노동부 계획안에서는 직업훈련교사양성을 비롯해, 산재환자 전문의를 양성하는 산업의과대학, 사법권을 갖는 근로감독관, 전문 직업안전요원, 기타 산업안전요원을 양성하는 종합대학교 설립을 희망하였다. 그래서 1캠퍼스 부지는 추후에 종합대학으로 확장될 것을 염두에 둔 선택이였다. 하지만 예산도 삭감되고 시간적인 여유가 부족했기 때문에 기술대학 부문만 건설하고 대학을 설립하기로 한다.

1990년 개교를 목표로 했으나 1991년 11월에서야 교육부에서 설립 인가를 받을 수 있었고, 교명은 맨 처음 대학을 설립할 때와 같은 한국산업기술대학으로 바꾸었다. 당시 학과는 산업기계공학과 등 8개였고 12월에 제1회 신입생 240명이 입학했다. 그런데 같은 시기 상공부[5]에서 산업기술대학[6]을 설립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고, 결국 1992년 3월 한국기술교육대학으로 교명을 바꿔 개교하게 된다.

최종적으로 1995년에 학교 명을 한국기술교육대학교로 확정하게 된다. 당시 영문 이니셜은 KITE[7]였으며, 이후 KUT를 거쳐 현재 KOREA TECH을 사용하고 있다.


[1] 대표적인 것이 한독부산직업훈련원과 창원기능대학.[2] 서상선 전 서울지방노동청에 따르면 당시 독일 정부는 900만 DM에 이르는 재원을 대학 설립에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3] 1983년부터 신입생 모집을 중단했지만, 재학생들을 고려해서 양성과정 자체는 1986년까지 운영되었다.[4] 한기대가 초창기 특수대학이었다는 말도 있는데 설립 당시 문교부(교육부의 전신)의 반대가 있었기 때문에 특별법에 의한 특수대학 설립은 실패하고 사립대학으로 설립하게 되었다. 대신 산업인력관리공단법을 개정해서 한기대에 직훈교사 양성기능을 위탁하는 방식으로 운영자금을 마련한다.[5] 지금의 산업통상자원부.[6] 경기도 시흥시에 위치한 한국공학대학교. 원래 교명은 한국산업기술대학교였다.[7] 설립부터 1997년까지의 교표는 KITE였다. 학생회관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었으나 리모델링하면서 사라졌다. 옛날 도서관 책에서나 겨우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769
, 2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769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