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석 筆石 | Graptolit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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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명 | Graptolithina Bronn, 18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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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FC6> 계 | 동물계 Animalia |
| 문 | 반삭동물문 Hemichordata |
| 강 | 익새강 Pterobranchia |
| 아강 | 필석아강 Graptolithin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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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석목 플랑크톤 필석의 복원도. 물 속에 흩어진 온갖 구조물들이 전부 필석 군체이다. |
1. 개요
고생대 캄브리아기 바다에 처음 나타난 반삭동물의 집단으로, 오르도비스기와 실루리아기에 걸쳐 많은 개체들이 화석으로 남아 고생대 전기의 표준화석으로써 생층서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석탄기를 기점으로 전멸했지만, 간벽충이라 불리는 저서성 필석 일부가 아직 남아 있다.2. 상세
필석이라는 이름은 '붓 돌'이라는 뜻으로, 화석의 형태가 마치 바위 위에 글씨를 쓴 것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었다. 필석은 주로 층층이 쪼개지는 퇴적암인 셰일에서 발견되는데, 판판한 암석 위에 새카만 탄소질 필름 형태로 찍힌 꼬불꼬불하고 길쭉길쭉한 화석들이 돌 위에 써갈긴 글씨처럼 보인 탓이다. 심지어 분류학의 아버지인 카를 폰 린네도 필석을 생물이 아닌 무기물 기원의 새김으로 해석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
| 가까이에서 본 필석의 구조 |
표준화석으로써 빈번하게 활용되는 점에서 알 수 있듯 필석은 생존시기 전반에 걸쳐 전 세계에서 풍부한 화석이 발견된다. 그러면서도 시대에 따라 형태가 꾸준히 변하기 때문에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하게 생긴 필석 화석이 발견된다면 비슷한 시기에 형성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이 때 활용되는 것은 대부분 부유성을 띠어 해류를 따라 세계 곳곳에 퍼져 살았던 필석목(Graptolitoloidea) 필석들로써, 이들이 번영했던 오르도비스기와 실루리아기의 경우 상세시대가 거의 대부분 필석으로 정의될 수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강원도 태백과 영월 지역의 전기 고생대 지층에서 필석이 여럿 발견되며, 당시 한반도의 지리적 위치와 생성시기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필석은 캄브리아기부터 등장하지만 당시 살던 최초의 필석은 나뭇가지 모양 집을 짓고 해저에 붙어 살던 수지목(Dendroidea) 필석들이고, 화석으로 남는 빈도나 다양성도 후손들만 못해 상대적으로 도드라지는 계통은 아니었다. 필석이 정말 고생대를 대표하는 생물로 부상한 것은 필석목의 플랑크톤 필석들이 탄생한 오르도비스기의 일. 필석목은 전 세계 바다로 퍼져나가 다양성을 폭발시켰고, 그물 모양, 면도칼 모양, 나비 모양, 나뭇잎 모양, 그물망 모양, 머리핀 모양, 이중나선 모양, 염색체 모양과 수레바퀴 모양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생김새의 군체를 진화시켰다. 이렇게 잘 나가던 필석목은 중기 오르도비스기에 다양성의 절정을 찍은 뒤 증감을 겪다 중기 데본기에 멸종하였고, 조용히 잘 버티던 수지목은 석탄기까지 살아남은 뒤 사라졌다.
앞서 말했듯 필석이 고생물학적으로 가치가 높기는 하지만 잘 쓰이는 부분은 단백질로 된 질긴 껍데기뿐이다. 조개 화석의 속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도리가 없듯 필석도 내부의 연한 살점은 대체로 쉽게 썩어 없어지기에, 필석 연구는 거의 껍데기를 토대로 이루어진다. 작은부레관해파리나 큰빗이끼벌레처럼 필석 또한 유전적으로 동일한 여러 개충(zooid)이 이어져 군체를 형성해 사는 군체생물이다. 갓 태어난 필석은 한 마리의 개충으로, 물 속을 떠다니거나(필석목의 경우) 주변의 단단한 물체에 붙어(수지목) 깔대기 모양의 시큘라(sicula)라는 첫 번째 집을 짓는다[1]. 그 뒤에는 네마(nema)라는 길고 가는 줄기를 따라 포벽/테카(theca)가 늘어서 가며 성장한다. 각 포벽 안에는 깃털 모양의 팔 한 쌍이 달린 개충이 한 마리씩 들어가 있으며, 이 팔을 파닥여 물 속의 부스러기와 미생물들을 끌어모아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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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식 복원도 |
다만 필석 개충의 생김새를 또렷이 볼 만큼 잘 보존된 화석이 없어, 개충의 구체적인 생김새에 대해서는 밝혀진 것이 얼마 없다. 심지어 이들이 어떤 동물이며 어떻게 살았는지도 오랫동안 다양한 의견이 난립했는데, 놀라울 정도로 복원도 변화가 반영이 안 되는 고생물 중 하나다. 제일 잘 알려져 있고 박물관과 교과서에까지 실려 있는 필석의 복원은 동글동글한 방울이 여럿 붙은 해파리 비슷한 형태로 그려져 있어서 해파리의 친척뻘 되는 생물인 것으로 아는 경우도 있다[2].
이 해파리 모양은 필석 고생물학자 루돌프 루에데만 (Rudolf Ruedemann, 1864–1956) 의 1895년 복원에 근거한 것인데, 루에데만은 필석이 히드라(동물)의 일종[3]이라고 생각한 데다 그가 네우마토시스트(pneumatocyst)라고 지칭한 해파리 몸통 모양의 부위 역시 단 한 번도 실제 화석으로 증명된 적 없는 거짓 구조였다. 필석이 반삭동물임이 밝혀지고 간벽충과의 유사성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1977년도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100년도 훌쩍 넘은 잘못된 복원도가 실제인 것마냥 쓰이고 있는 것이다. 공룡과 비교하면 최신 영화와 책에서 꼬리를 질질 끌며 물 속을 헤엄쳐 다니는 브라키오사우루스나 알로사우루스 머리를 한 스피노사우루스를 써먹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수준. 이 외에도 네마를 이용해 해조류에 붙어 살았다는 등 근거 없는 복원이 몇 종류 더 존재했지만, 오늘날에는 필석목의 플랑크톤필석들이 화석으로 발견되는 그 모습 그대로 바다 한가운데를 둥둥 떠다니며 살았다고 추측한다.
필석의 분류학적 정체가 무엇인지도 오랫동안 대단히 논란거리였다. 별 의미 없는 아로새김이라는 가설부터 시작해서 식물의 일종, 두족류, 히드라, 산호, 심지어는 더 큰 동물의 껍데기 일부라는 주장도 존재하였다. 하지만 결국에는 반삭동물문의 익새강에 속한다는 가설이 받아들여졌다. 과거에는 독립적인 부류인 필석강으로 분류하였으나, 현재는 간벽충과의 유사성이 입증됨으로써 익새강의 필석아강으로 분류된다. 간벽충목에 속한 간벽충속/라브도플레우라속(Rhabdopleura) 1속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멸종했다. 간벽충은 엄밀히 따지면 진짜 필석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으나, 캄브리아기의 유사성이 모호한 고착형 필석들 가운데에서 진화한 것으로 여겨지기에 필석의 일종으로 간주된다[4].
[1] 위 그림에서는 잘려서 표현되지 않았다.[2] 화석으로 발견되는 필석 군체는 마치 촉수처럼 그려진다.[3] 엄밀히는 히드로충강(Hydrozoa)의 일종. 히드라라고 하면 작은 말미잘처럼 생긴 담수히드라만 떠오르지만, 해양 히드로충 중에는 산호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한 군체를 이루거나 해파리처럼 부유성으로 진화한 종류도 무수히 많다.[4] 이 경우, 화석으로만 나오는 진짜 필석들은 진필석하강/에우그랍톨로이다(Eugraptoloida)라고 묶어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