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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턴 윌슨

프레스턴 윌슨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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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06-cardinals-champions.gif
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2006

파일:2003 MLB 올스타전 로고.svg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2003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2003년 메이저리그 내셔널 리그 타점왕
랜스 버크먼
(휴스턴 애스트로스)
프레스턴 윌슨
(콜로라도 로키스)
비니 카스티야
(콜로라도 로키스)

뉴욕 메츠 등번호 11번
코리 리들
(1997)
프레스턴 윌슨
(1998)
웨인 커비
(1998)
플로리다 말린스 등번호 8번
짐 아이젠라이히
(1997~1998)
프레스턴 윌슨
(1998)
알렉스 곤살레스
(1999)
플로리다 말린스 등번호 44번
돈 폴
(1997~1998)
프레스턴 윌슨
(1999~2002)
앨런 레브롤트
(2003)
콜로라도 로키스 등번호 44번
앨런 코크렐
(2002)
<colbgcolor=#000000> 프레스턴 윌슨
(2003~2005)
라몬 오르티스
(2007)
워싱턴 내셔널스 등번호 44번
훌리오 마뇬
(2003)
프레스턴 윌슨
(2005)
알렉스 에스코바르
(2006)
휴스턴 애스트로스 등번호 4번
에릭 브런틀렛
(2003~2005)
프레스턴 윌슨
(2006)
에릭 브런틀렛
(2006~2007)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번호 3번
아브라암 누녜스
(2005)
프레스턴 윌슨
(2006~2007)
미겔 카이로
(2007)
}}} ||
파일:Preston Wilson Marlins.jpg
프레스턴 윌슨
Preston Wilson
본명 프레스턴 제임스 리처드 윌슨
Preston James Richard Wilson
출생 1974년 7월 19일 ([age(1974-07-19)]세)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뱀버그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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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뱀버그 에어하트 고등학교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신체 188cm, 87kg
프로입단 1992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9순위, NYM)
소속팀 뉴욕 메츠 (1998)
플로리다 말린스 (1998~2002)
콜로라도 로키스 (2003~2005)
워싱턴 내셔널스 (2005)
휴스턴 애스트로스 (2006)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006~2007)
1. 개요2. 선수 경력3. 연도별 기록4. 여담5.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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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前 야구 선수. 현역 시절에는 외야수로 활약했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 뉴욕 메츠

뱀버그 에어하트 고등학교를 거쳐 1992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전체 9순위로 뉴욕 메츠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당시 윌슨은 베이스볼 아메리카에서 올해의 고교 선수에 뽑힐 정도로 기대받는 유망주였는데, 이해 드래프트 전체 6순위가 데릭 지터였고 제이슨 지암비가 2라운더였으니 윌슨이 꽤나 높은 평가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선지 데뷔도 하기 전인 1992시즌 종료 후 베이스볼 아메리카의 유망주 순위에서 93위에 이름을 올렸다.

기대를 반영하듯 1993시즌 루키 리그에서 화끈한 타격을 선보이며 시즌 후 유망주 순위를 46위까지 끌어 올렸지만, 이듬해부터 싱글A에서 2시즌이나 표류하며 중간에 유망주 Top 100에서 이탈하는 등 평가가 많이 깎였다. 1996시즌에는 하이싱글A에서 시즌을 소화하던 도중 부상으로 장기 결장하며 재차 유망주 순위에서 권외로 밀렸지만, 1997시즌에 하이싱글A와 더블A에서 연이어 좋은 활약을 선보여 가치를 재차 끌어 올렸다.

1998시즌에는 트리플A에서 뛰다가 5월 2일 빅 리그로 승격돼 데뷔에 성공했다.

2.2. 플로리다 말린스

1998년 5월 22일, 마이크 피아자의 반대급부로 조프 고츠, 에드 야널과 함께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됐다. 당시 말린스는 너무 높아진 페이롤의 여파로 1997시즌을 끝으로 대대적인 파이어 세일에 돌입했는데, 피아자 딜 역시 그 일부였다. 이 트레이드로부터 약 2주 전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가 말린스로 마이크 피아자와 토드 질을 보내고 게리 셰필드를 포함한 5명의 선수를 받는 2:5 트레이드를 단행했는데, 말린스는 피아자를 받아가긴 했으나 어차피 재차 트레이드될 예정이었고, 약 2주 만에 성사된 트레이드가 바로 윌슨이 끼어 있던 이 트레이드다.[1]

트레이드 첫 시즌에는 말린스에서 31타수 2안타만 기록한 뒤 트리플A로 내려가 대부분의 시간을 마이너에서 소화한 윌슨은 이듬해인 1998시즌 주전 외야수로 자리잡아 149경기에 나서며 타출장 .280/.350/.502 OPS .852 26홈런 71타점 wRC+ 115로 활약한다. 풀 타임 첫 해임을 감안하면 꽤 괜찮은 활약이었고, 신인왕 투표에서도 신시내티 레즈의 스캇 윌리엄슨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이어진 2000시즌에 31홈런-36도루로 30-30 클럽에 가입하는 등 윌슨은 빠르게 입지를 굳혔지만, 동시에 한계도 명확하게 드러냈다. 스윙이 과할 정도로 적극적인 프리스윙어다보니 헛스윙도 많았고, 그 결과 187개의 삼진으로 MLB 전체 삼진왕에 올랐다. 스윙이 적극적인 만큼 볼넷도 한 시즌에 많아야 50개를 조금 넘기는 정도. 그렇다고 수비가 좋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수비 관련 세부 지표가 아직 발달하지 않은 시기긴 했지만, 외야수가 수비율 .990을 넘기기도 힘겨워하는 시점에서는 세부 지표고 자시고 수비율만 봐도 수비 못하는게 보인다(...).

그나마 2001시즌에는 OPS .825를 기록하며 발전은 못 해도 퇴보는 안 하는 수준의 타격을 보여줬지만, 2002시즌에는 타출장 .243/.329./.429 OPS .759 23홈런 65타점으로 온갖 지표가 급락하며 풀타임 기준 커리어 로우를 새로 쓴 탓에 평가가 뚝 떨어졌다. 안그래도 슬슬 오르기 시작하는 윌슨의 연봉도 부담스러웠던 말린스는 재차 트레이드를 타진했다.

2.3. 콜로라도 로키스

2002년 11월 16일, 4:2 트레이드에 끼어 콜로라도 로키스로 트레이드됐다. 윌슨과 함께 찰스 존슨, 파블로 오수나, 빅 대런스버그가 로키스로 이적했고, 반대급부로 마이크 햄튼후안 피에르가 말린스로 향했다.[2]

산동네 공기가 좋긴 좋은지 윌슨은 화려하게 부활하며 토드 헬튼, 래리 워커와 함께 로키스의 중심 타선을 이끌었다. 2000시즌 이후 가장 많은 155경기 661타석을 소화하면서 타출장 .282/.343/.537 OPS .880 36홈런 141타점을 기록한 것. 타율, 장타율, OPS, 홈런, 타점에서 죄다 커리어 하이를 찍었고, 내셔널 리그 타점왕에도 올랐다. 이러한 활약으로 생애 처음 올스타에도 선정됐다. 수비에 있어서도 2002년부터 일반에 공개된 UZR 기준으로 양수를 찍는 등 장족의 발전을 보여줬다.

그러나 쿠어스 필드를 홈으로 쓰는 선수들이 대부분 그렇듯 윌슨의 성적, 특히 장타 관련 지표에는 산동네빨이 적잖게 끼어 있었다. 반면 삼진은 조금 줄긴 했어도 139개로 여전히 많았고, 볼넷도 54개로 여전히 적어서 출루율도 .343에 불과했다. 이러다보니 wRC+는 저 성적에도 111에 불과해 1999시즌(115)과 2001시즌(114)보다도 떨어진다.

아니나 다를까 윌슨은 2004시즌 OPS .706으로 삽질을 거듭하다 무릎 부상으로 58경기 만에 시즌을 접으며 900만 달러짜리 먹튀로 전락했다. 그나마 2005시즌에는 71경기에서 홈런 15개를 쳐내고 OPS .813을 찍는 등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이 해 윌슨의 연봉은 1250만 달러였다. 연 1000만 달러 넘는 돈을 받는 고액 연봉자가 쿠어스 필드를 홈으로 OPS가 0.8에 턱걸이 하는거면 빈말로도 만족스러운 성적은 아니었다.

2.4. 선수 생활 말년

결국 2005년 7월 13일, 1대2 트레이드를 통해 워싱턴 내셔널스로 트레이드됐다. 내츠는 윌슨의 반대급부로 J.J. 데이비스와 잭 데이, 현금을 로키스로 건넸다.

내츠 이적 후에는 68경기에 나서며 OPS .771을 기록했다. 2005시즌 종합 성적은 139경기 타출장 .260/.325/.467 OPS .793 25홈런 90타점.

시즌을 마치고 FA 자격을 얻었고, 해를 넘겨 2006년 1월 6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1년 400만 달러에 계약했다. 연봉 350만 달러에 구단 옵션으로 3년 2400만 달러가 붙어 있으며, 옵션이 실행되지 않으면 바이아웃 50만 달러를 지급하는 계약이었다. 1년 동안 복권을 긁어 보고 활약이 괜찮으면 그대로 눌러앉힐 심산.

그러나 이런 고민이 불필요할 정도로 윌슨은 망했다. 102경기에 나와 타출장 .269/.309/.405 8홈런 55타점으로 이젠 장타 생산도 안되는 모습을 보인 것. 처참한 출루율에서 감이 오겠지만, 볼삼비도 22볼넷-94삼진으로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그런 와중에 트레이드로 유틸리티맨 오브리 허프를 받아오고, 콜업한 루크 스캇까지 맹타를 휘두르자 윌슨의 자리는 완전히 사라졌고, 결국 8월 12일 쓸쓸히 방출당했다.

그런 윌슨에게 손을 내민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였다. 카즈는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분전하고 있었으나 타선의 퀄리티는 상당히 아쉬웠는데, 짐 에드몬즈가 부상을 당하자 기존 외야진만을 신뢰할 수 없던 카즈는 복권 긁는 시점으로 8월 18일 윌슨을 영입했다.

결과적으로 윌슨의 영입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입단 직후 열린 시카고 컵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곧바로 데뷔해 홈런까지 터뜨린 윌슨은 여전히 타율도 출루율도 낮은 프리스윙어의 모습을 보였으나 장점이던 장타 하나는 확실히 살아나며 33경기에서 무려 8개의 홈런포를 쏘아올렸다. 흔들리는 팀을 곧추세울 정도는 아니라서 카즈는 포스트시즌에 턱걸이로나 진출했으나 아무튼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

그렇게 데뷔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은 윌슨은 그렇게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다. 그러나 시리즈 내내 딱 2개 올린 타점이 꽤나 결정적인 순간에서 나오는 등 나름의 신스틸러 역할은 해냈다. 뉴욕 메츠와의 NLCS 5차전에서는 결승 적시 2루타를 때려냈고,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월드 시리즈 4차전에서는 3:3 동점 상황을 깨는 적시타를 쳤다. 세인트루이스도 끝끝내 기적과도 같은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윌슨도 우승반지를 끼게 됐다.

시즌 종료 후 다시 FA로 풀린 윌슨은 카즈와 1년 100만 달러에 재계약하며 잔류했지만, 한 달 동안 타출장 .219/.265/.313 1홈런 5타점의 초라한 기록만 남기고 무릎 부상으로 시즌 아웃됐다. 결국 그대로 부상자 명단에서 시즌을 마쳤고, 다시 무적 신분이 됐다.

2008년에는 팀을 구하지 못했고, 결국 2009년 2월 34살의 나이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 후 3월에 독립리그 애틀랜틱 리그의 롱아일랜드 덕스에 합류해 48경기에 출전하기도 했지만, 프로 무대에 재도전하는 일은 없었다.

3. 연도별 기록

4. 여담

5. 같이 보기


[1] 결과적으로 이 트레이드는 마이크 피아자가 메츠의 영구결번까지 받으며 전설이 됐다. 사실 트레이드 당시만 해도 평가가 좀 깎이긴 했어도 여전히 기대해봄직한 즉전감 유망주였던 윌슨, 1년 전 드래프트 전체 6순위 지명자던 좌완 투수 고츠와 마이너에서 빠른 성장세를 보이던 1996년 3라운드 드래프티 야널까지 말린스가 나름 알짜배기로 유망주들을 쓸어담았는데, 결과적으로 윌슨은 1군에서 준수하게 뛰긴 했으나 기대하던 포텐셜을 다 보여주지 못했고, 나머지 둘은 그냥 망해버리는 사이 피아자가 전설을 쓰면서 말린스의 완패로 끝났다.[2] 이 트레이드는 먹튀가 된 햄튼의 잔여 연봉을 말린스가 덤터기쓴 트레이드로 유명한데, 말린스는 연봉 보조를 껴서 햄튼을 받아와놓고 개막 직전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재차 트레이드하며 한 경기도 기용하지 않은 채 8500만 달러의 잔여 연봉 가운데 5000만 달러를 로키스와 분담해 지불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