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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17 21:31:42

프레더릭 벤틴

프레더릭 벤틴
Frederick Benteen
파일:1000139427.jpg
본명 프레더릭 윌리엄 벤틴
Frederick William Benteen
출생 1834년 8월 24일
미국 버지니아주 피터즈버그
사망 1898년 6월 22일 (향년 63세)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복무 미합중국 육군
최종 계급 미국 육군 소령
복무 기간 1861~1888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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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

2. 생애

버지니아주 피터즈버그 출신으로 군사학교를 졸업하고 1861년 남북전쟁당시 기병 소위로 임관해 제1미주리의용기병대 소속으로 주로 미시시피, 아칸소, 루이지애나 전역 미시시피강 인근에서 남군과 전투를 치르며 전시계급 대령까지 올라갔다.

전후 원 계급 대위로 환원되었고 1867년 제7기병연대에 전입했으며 대대장으로 1876년 리틀 빅혼 전투에 참가했다. 당시 연대장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는 병력을 3개로 나눴고 제대당 3개 중대로 편성했다. 각 제대의 지휘관은 커스터 본인, 마커스 리노, 프레더릭 벤틴 대위가 맡았다. 당시 전선 시찰을 나왔던 넬슨 마일스는 무모한 작전이라 판단하고 공격을 멈출 것을 제안했지만 늦은 상황이였다.

리노의 제대가 먼저 남쪽에서 진격했고 웅크린 황소의 마을을 발견했고 마을에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으나. 500명 이상의 전사들의 반격에 노출되었다. 리노는 네시라파트를 불러 조언을 구하려고 했으나 그 순간 날아온 총알이 네시라파트의 머리에 명중하였고 그의 피를 뒤집어쓰고 공포에 질린 리노는 도주를 지시했고 부대도 그를 따라 무질서하게 강가를 향해 패주하기 시작했다.

이 때 커스터는 리노의 부대가 공격 받았음을 알고 증원에 나서려 했으나 지형을 몰라서 도하할 곳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커스터가 겨우 강을 건넜을 때는 이미 리노의 부대는 도하해서 꽁무니를 뺀 상태였고 그가 기대했던 벤틴 대위의 병력은 끝내 오지 않았다. 결국 커스터의 본대가 전투 지역에 도착했으나 원주민 전사들의 매복으로 지휘관 커스터를 포함한 부대원 대부분이 괴멸했다. 

후퇴하던 리노 소령 제대는 원주민들이 커스터의 본대와 싸우러 후퇴하는 바람에 숨을 돌렸다. 여기에 드디어 벤틴 대위의 예비대와 그가 호송하던 병참 부대가 도착하여 합류했는데 이들은 커스터를 지원하기 위해 다시 북쪽으로 이동하다가 돌아오는 원주민 전사들과 마주쳐 약 350기의 병력으로 절벽 꼭대기에서 방어전을 했다.

하루 동안 포위당했던 미군 기병대는 전투가 길어지면 다른 백인들이 나타날 것을 염려한 웅크린 황소가 다른 전사들을 설득한 덕분에 생존자들이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다.

이틀간의 전투로 미 기병대에는 커스터 제대 210명, 리노 제대 휘하에서 58명의 전사자와 52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나 웅크린 황소의 회고로는 원주민 측은 27명의 전사자와 그보다 많은 부상자를 냈다.

전투 후 캐년그릭 전투에 참가했고 1879년 리노와 군사재판에 서기도 했으며 1887년 소령으로 퇴역했다. 1898년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애틀랜타의 묘지에 안장되었으나 추후 알링턴 국립묘지로 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