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게리 파워스 Francis Gary Powers | |
출생 | 1929년 8월 17일 |
켄터키주 젠킨스 | |
사망 | 1977년 8월 1일 (향년 47세) |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 |
복무 | 미국 공군 미국 중앙정보국 |
최종 계급 | 대위 |
학력 | 밀리건 칼리지 |
복무 기간 | 1950 ~ 1961[1] |
[clearfix]
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켄터키주 젠킨스에서 석탄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6자녀 중 유일한 아들이였고 14세부터 조종사의 꿈을 꿨다. 2차 대전 기간 동안 디트로이트로 이주했고 이후 버지니아주 그런디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밀리건 칼리지를 졸업하고 1950년 공군 OCS를 지원했다. 기초군사훈련, 조종과정을 모두 수료하고 1951년 소위로 임관했다.전투기에서 복무했고 6.25 전쟁이 끝난 한국에서도 복무한 경력이 있다. 1954년 중위로 진급했고 1955년 민간 조종사가 되기위해 전역했고 얼마 안 가 CIA에서 채용되었다. U-2의 조종사가 되었고 대위가 되었다. 주로 소련 상공을 정찰하며 주요 시설을 촬영하는 담당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1960년 5월 1일 스베르들롭스크주 인근을 정찰하다가 소련 방공군의 S-75 대공미사일을 맞고 격추되었다(U-2 격추 사건).[2] 미국 정부는 U-2의 내구도가 약해 파일럿이 사망했다고 판단해 발뺌했으나 파워스는 살아있었다. 이후 소련의 스파이와 교환을 통해 귀국했고 상원 청문회까지 갔다. 파워스는 심문과정에서 자신의 임무, 소속에 대한 비밀을 철저하게 지켰고 격추되기 전후에도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별 문책없이 명예전역하고 록히드 마틴에 테스트 파일럿으로 취업했으나 주변의 불편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1970년 해고되었다. 이후 방송사 헬기 조종사로 일하다가 로스앤젤레스 인근 엔시노의 산불을 취재하던 과정에서 연료 표시기의 오류로 인해 연료 부족으로 추락했다. 불시착을 시도했으나 주변엔 아이들이 있었고 방향을 여러번 바꾸다가 지상에 부딪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