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前 축구 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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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colcolor=#000,#e5e5e5> 이름 | 프란체스코 모리니 Francesco Morini | |
출생 | 1944년 8월 12일 | |
이탈리아 왕국 토스카나 주 산줄리아노테르메 | ||
사망 | 2021년 8월 31일 (향년 77세) | |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 포르테데이마르미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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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키 180cm|체중 미상 | |
직업 | 축구 선수 (수비수 / 은퇴) 축구 행정가 (은퇴) | |
소속 | <colbgcolor=#eee> 선수 | UC 삼프도리아 (?~1963 / 유스) UC 삼프도리아 (1963~1969) 유벤투스 FC (1969~1980) 토론토 블리자드 (1980) |
경영 | 유벤투스 FC (1981~1994 / 디렉터) | |
국가대표 | 11경기 (이탈리아 / 1973~1975) |
1. 개요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前 축구 행정가. 스토퍼로 활약했으며, 강인한 수비력과 카리스마로 유명했다. 삼프도리아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유벤투스에서 가장 성공적인 시절을 보냈다. 은퇴 후에는 유벤투스의 디렉터로 활동하며 클럽의 황금기를 이끌었다.상대 공격수에게서 볼을 빼앗는 모습이 마치 해적과 같다 하여 "모르간(Morgan)"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의 아들 야코포 모리니와 안드레아는 음악가이자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모리니는 지역 클럽 베키아노에서 축구를 시작한 후 15세에 삼프도리아의 유소년팀에 합류했다. 체루비노 코미니와 지포 포지 감독 하에서 성장했으며, 1963년 유소년 팀과 함께 비아레조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1964년 2월 2일 로마와의 경기에서 세리에 A 데뷔를 했다. 부상당한 아제글리오 비치니를 대신해 미드필더로 투입되었음에도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 곧바로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삼프도리아에서 6시즌 동안 활약했으며, 1966-67 시즌에는 세리에 B에서 승격을 이루는 데 기여했다.
1969년 여름, 잠피에로 보니페르티의 추천으로 로베르토 비에리와 함께 유벤투스로 이적했다. 초기에는 루이스 카르닐리아 감독과의 불화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곧 주전 자리를 확고히 했다. 유벤투스에서 11시즌 동안 활약하며 5번의 세리에 A 우승, 코파 이탈리아 1회 우승, UEFA컵 1회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1970년대 유벤투스의 황금기를 이끈 핵심 선수 중 한 명이었으며, 후반기에는 가에타노 시레아와 환상적인 수비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1979-80 시즌에는 나이가 들어 세르조 브리오에게 자리를 물려주었고, 1980년 3월 유벤투스를 떠나 캐나다의 토론토 블리자드에서 짧은 기간 활약한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모리니는 1973년 2월 25일 터키와의 1974 월드컵 예선전에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데뷔를 했다. 1974년 FIFA 월드컵에서는 3경기 모두 주전으로 출전했으나, 이탈리아는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총 11경기에 출전했으며, 마지막 경기는 1975년 6월 8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소련과의 친선경기였다. 국가대표팀에서는 마우로 벨루기와의 경쟁으로 인해 클럽에서만큼 확고한 주전 자리를 차지하지는 못했다.
3. 은퇴 후
현역 시절 말기부터 지도자 과정에 관심을 보였던 모리니는 캐나다 체류 중 어학을 공부했고, 은퇴 후 코베르치아노에서 매니저 과정을 수료했다.1981년 여름 보니페르티의 부름을 받아 유벤투스로 돌아와 1990년까지 스포츠 디렉터, 이후 1994년까지 팀 매니저로 활동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유벤투스는 세리에 A 3회, 코파 이탈리아 2회, UEFA 컵위너스컵, UEFA 슈퍼컵, 유러피언컵, 인터컨티넨탈컵, UEFA컵 2회 등을 획득하며 역사상 최초로 모든 주요 유럽 대회를 석권하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이후 로베 디 카파에서 스폰서십 업무를 담당했고, 텔레롬바르디아에서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했다.
4. 플레이 스타일
모리니는 "모르간"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이는 유명한 해적 헨리 모건에서 따온 것으로 상대방에게서 볼을 빼앗는 모습이 해적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본인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항상 모난 구석이 있고 까칠하고 끈질겼다"고 회상했다.기술적으로는 뛰어나지 않다고 스스로 인정했지만, 뛰어난 예측력과 긴 팔다리를 활용한 볼 차단 능력으로 이를 보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까지 더해져 완성도 높은 수비수가 되었다. 특히 로베르토 보닌세냐와 지지 리바 같은 당대 최고의 공격수들과 벌인 명승부로 유명하다.
흥미롭게도 프로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 단 한 골도 기록하지 못했다. 본인은 "스토퍼로서 상대방이 골을 넣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골을 넣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5. 개인사
모리니는 야코포와 안드레아 두 아들을 두었다. 두 아들 모두 음악가이자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특히 야코포는 MP2라는 듀오로 활동하기도 했다.2021년 8월 31일 포르테데이마르미에서 심근경색으로 7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