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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20:25:12

푸아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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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672b><colcolor=#fff> 이집트 왕국 제3대 국왕
푸아드 2세
فؤاد الثاني
Fuad II
파일:1000041727.jpg
출생 1952년 1월 16일 ([age(1952-01-16)]세)
이집트 왕국 카이로 압딘 궁전
재위기간 이집트 국왕
1952년 7월 26일 ~ 1953년 6월 18일
가문 알라위야 가문
이름 아흐메드 푸아드 2세 이븐 파루크 이븐 아흐메드 푸아드 1세 이븐 이스마일 이븐 이브라힘 이븐 무함마드 알리
(Ahmed Fuad II ibn Farouk ibn Ahmed Fuad I ibn Ismail ibn Ibrahim ibn Muhammad Ali)
아버지 파루크 1세
어머니 나리만 사데크
배우자 (년 결혼, 년 이혼)
(년 결혼, 년 이혼)
자녀
종교 이슬람 (수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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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가족

[clearfix]

1. 개요

이집트의 마지막 왕. 그러나 당시 이집트의 실권은 이집트군 자유장교단이 쥐고 있었고 생후 6개월에 왕위에 올라서 11개월 후인 17개월 때 폐위된 탓에 실권 행사는 아예 못했다.

2. 생애

1952년 1월 16일 이집트 왕국에서 태어났다. 동년 7월 이집트 청년장교단의 쿠데타 후 1952년 7월 23일 아버지 파루크 1세가 퇴위하면서 7월 26일 즉위했으나 불과 6개월의 아기여서 아무런 권력도 행사하지 못했다.[1]

1953년 6월 18일 이집트 왕정이 폐지되면서 그도 자연스럽게 폐위되었다. 당시 그는 쿠데타 후 가족들과 함께 해외에서 체류 중이었다.

1958년 이집트 정부로부터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1965년 아버지 파루크 1세는 이탈리아에서 심장마비로 급사했는데 그는 파루크가 적에게 중독되었다고 믿는다고 한다. 이집트 정보부가 파루크 1세를 암살했다는 설이 있지만 증거는 없다.[2]

1973년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이 푸아드 2세와 그의 이복 누이들의 망명을 해제하고 이듬해 시민권을 복구시켜 주었다. 그는 1991년 이집트를 첫 방문했고 이후에도 종종 방문했다고 한다.

1977년 알자스 출신 유대인 도미니크 프랑스 로브-피카르 (파딜라)와 혼인하였으나 1996년에 이혼했고 2008년에 공식 절차를 완료했다. 파딜라와의 이혼 후 이복 누이들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스위스에서 거주 중이다.

2010년 월스트리스 저널과 인터뷰를 가졌다.#

2013년 10월 당시 대통령 후보로 나온 압델 파타 엘 시시를 지지했다.

2022년 3월 가족들과 관광 목적으로 이집트를 방문했다.#

3. 가족

알자스 출신 유대인 여성 도미니크 프랑스 로브 피카르(Dominique-France Loeb-Picard: 1948~)와 1977년 혼인하였는데 그녀는 결혼 후 수니파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19년 후인 1996년에 이혼했다.

로브-피카르[3]와의 사이에서 세 자녀(2남 1녀)가 있고 2011년 기준으로 손자 4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 파루크 1세는 쿠데타 후 이집트 왕정에 대한 불만이 잠재워지기를 바랐지만 당시 이집트 왕국은 제1차 중동전쟁 패전과 파루크 1세의 엽색 행각에 질려서 불만이 많았다.[2] 파루크 1세는 실정과 무능으로 이미 이집트인들에게 인기를 잃어버린 상태였고, 왕정 지지자도 중동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정말이지 아예 없는 상황이었다.[3] 결혼 후 파딜라 파루크로 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