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E0BFB8><colcolor=#000> 포르투갈 공 주앙 마누엘 João Manuel, Príncipe de Portuga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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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주앙 마누엘 (João Manuel) |
출생 | 1537년 6월 3일 |
포르투갈 왕국 에보라 에보라 왕궁 | |
사망 | 1554년 1월 2일 (향년 16세) |
포르투갈 왕국 리스본 히베이라 궁전 | |
배우자 | 오스트리아의 후아나 (1552년 결혼) |
자녀 | 세바스티앙 1세 |
아버지 | 주앙 3세 |
어머니 | 오스트리아의 카탈리나 |
형제 | 아폰수, 마리아 마누엘라, 이자벨, 베아트리스, 마누엘, 펠리페, 디니스, 안토니우 |
종교 | 가톨릭 |
1. 개요
포르투갈 왕국 국왕 주앙 3세의 왕태자로, 형제들 중 마리아 마누엘라(17세 9개월) 다음으로 가장 오래 산 인물이었지만 즉위를 3년 앞두고 병사했다.2. 생애
본래 주앙 3세와 오스트리아의 카탈리나의 6남 3녀 중 5남으로 태어나서 왕위 계승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태어나기도 전 장남인 맏형 아폰수가 1526년 사망했고, 넷째 형인 디니스가 1537년 사망하고 기존 왕태자였던 둘째 형 마누엘마저 1537년 4월 사망하여 왕위 계승 서열 2위가 되었고, 왕태자가 된 셋째 형 펠리페마저 1539년 사망함으로써 5남인 그가 사실상의 장남이 되면서 왕태자가 되었다. 이후 동생으로 태어난 6남 안토니우 왕자도 태어난 지 10개월 만인 1540년 1월 사망하면서 주앙 마누엘이 유일한 아들이 되었다.주앙 3세는 대를 잇기 위해 주앙 마누엘을 15살이 되자마자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자 스페인 국왕 카를 5세와 포르투갈의 이자벨의 차녀인 후아나(1535 ~ 1573)와 결혼시켰다. 이자벨이 외숙모이자 고모였고 카를 5세가 외삼촌이자 고모부였기에 고종사촌이자 외사촌과 결혼한 것이다.
그러나 주앙 마누엘은 1554년 1월 2일 결핵으로 외아들을 아내의 뱃속에 남겨 둔 채 사망했다. 유복자로 태어난 외아들은 태어나지도 못하거나 태어나도 얼마 못 가 요절할 것이라는 전망과는 달리 그의 사후 18일 만에 건강히 태어났고 할아버지이자 주앙 마누엘의 아버지인 주앙 3세의 뒤를 이어 세바스티앙 1세가 되었다. 아들이 무사히 자라 포르투갈 정계는 안도감에 빠졌지만 세바스티앙이 미혼에 자식도 없는 상태에서 전사하여 결국엔 우려대로 아비스 왕조의 대가 끊겼다. 이후 작은할아버지가 가톨릭 신부에서 환속하여 엔히크 1세가 되었지만 자손을 남기지 못했고 포르투갈은 약 60년 동안 사실상 스페인에 종속된 처지로 전락했다.
3. 가족관계
3.1. 조상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포르투갈 공 주앙 마누엘 (João Manuel, Prince of Portugal) | <colbgcolor=#fff3e4,#331c00> 주앙 3세 (John III) | <colbgcolor=#ffffe4,#323300> 마누엘 1세 (Manuel I) | |
비제우 공작 페르난두[1] (Ferdinand, Duke of Viseu) | |||
포르투갈의 베아트리스[2] (Beatrice of Portugal) | |||
아라곤의 마리아 (Maria of Aragon) | |||
페란도 2세 (Ferdinand II) | |||
이사벨 1세 (Isabella I) | |||
오스트리아의 카탈리나 (Catherine of Austria) | |||
펠리페 1세 (Philip I) | |||
막시밀리안 1세 (Maximilian I) | |||
부르고뉴 여공작 마리 (Mary, Duchess of Burgundy) | |||
후아나 1세 (Joanna I) | |||
페란도 2세 (Ferdinand II) | |||
이사벨 1세 (Isabella I) |
3.2. 자녀
<rowcolor=#373a3c,#ddd> 자녀 | 이름 | 출생 | 사망 |
1남 | 세바스티앙 1세 (Sebastian I) | 1554년 1월 20일 | 1578년 8월 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