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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4 19:48:36

페이로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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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ronila​ de Aragón
가문 히메네스 왕조
생몰년도 1136년 6월 29일 ~ 1173년 10월 15일
출생지 아라곤 왕국 우에스카
사망지 바르셀로나 백작령 바르셀로나
재위
기간
아라곤 왕국 국왕 1137년 - 1164년
아버지 레미로 2세
어머니 푸아투의 아그네스
배우자 라몬 베렝게르 4세
자녀 페드로, 알리폰소 2세, 라몬 베렝게르 3세, 둘세, 산초
종교 기독교 (가톨릭)

1. 개요2. 생애3.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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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라곤 왕국 6대 여왕.

이름은 스페인어로는 '페트로닐라(Petronilla)', 아라곤어로는 '페이로넬라(Peyronela)'이다.

히메네스 가문의 마지막 적통 국왕이다. 사생아 계열인 가르체아 라미리츠 계열이 남아있긴 했으나, 적통은 이 여왕을 끝으로 완전히 단절되었다.

2. 생애

1136년 6월 29일 아라곤 왕국의 수도 우에스카에서 아라곤 5대 국왕 레미로 2세와 아키텐 공작 기욤 9세의 딸 아그네스의 외동딸로 출생했다. 레미로 2세는 본래 3명의 형 페로 1세, 페르난도 산체스, 알리폰소 1세가 있었기에 일찌감치 왕위에 오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간주되어 어린 나이부터 수도원에 들어가 성직자로 살아갔다. 그러다 세 형이 자식을 남기지 못한 채 잇따라 죽으면서 1134년 왕위에 오를 이가 없게 되자 귀족들의 추대를 받아 왕에 올랐다. 그는 수도자로서 아내를 맞이하는 것은 가톨릭 교리에 어긋나지만 "육체적 욕망 때문이 아니라 왕실의 혈통을 얻기 위해 아내를 얻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자식을 얻게 되자, 그는 자식을 왕위에 올리고 자신은 수도원에 다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1137년 8월 11일, 당시 1살이었던 페트로닐라는 바르셀로나 백작 라몬 베렝게르 4세와 약혼했다. 이때 작성된 약혼 계약문서가 현재까지 전해지는데, 이에 따르면 레미로 2세는 왕권을 라몬 베렝게르에게 넘기고 베렝게르가 실질적인 통치를 행사하는 것을 허용하되 아라곤 국왕은 딸 페트로닐라가 선임되며, 두 사람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나면 페트로닐라는 퇴위하고 그 아들이 왕위에 오르기로 했다. 이는 여성이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금지하지만 왕국의 소유나 양도할 권리를 부정하지 않은 아라곤 왕국의 법을 준수하기 위한 조치로 여겨진다.

그 후 1137년 11월 13일 레미로 2세는 왕위에서 물러나 산 페드로 엘 바에흐 수도원으로 들어갔고, 페트로닐라는 1살의 나이로 아라곤 여왕이 되었고 실권은 약혼남 라몬 베렝게르 4세가 주관했다. 페트로닐라는 14살 때인 1150년 정식으로 라몬 베렝게르 4세와 결혼했으며, 1152년 4월 4일 자신이 출산하던 중 사망할 경우 왕국을 남편에게 넘겨준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했다. 그렇지만 5명의 자녀를 무탈히 낳을 수 있었고, 남편이 통치를 행사하는 동안 궁궐에 조용히 지냈다. 다만 1156~1157년 남편이 프로방스에 가 있는 동안 바르셀로나에 들러서 신하들을 접견했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걸 보면 아예 정치에 관여하지 않은 것은 아닌 듯하다.

1162년 남편이 사망한 후 바르셀로나 백국과 발 데 리브스 일대를 상속받았다. 이후 2년간 아라곤 왕국을 홀로 통치하던 페트로닐라는 1164년 6월 18일에 아라곤 왕국과 바르셀로나 백작령을 7살된 아들 알리폰소 2세에게 맡기고 왕위에서 물러났다. 그 후 아직 어린 아들을 대신해 섭정을 맡았다. 1166년 프로방스 후작이자 라몬 베렝게르 4세의 조카였던 라몬 베렝게르 3세가 자신에게 반란을 일으킨 니스를 포위하던 중 사망하고 딸 둘세만 남았다. 이에 페트로닐라는 프로방스 백작령을 라몬 베렝게르 3세의 사촌인 알폰소 엘 카스토에게 넘겼다. 툴루즈의 레몽 5세가 이에 반발하여 지지자들을 규합해 반란을 일으키자, 1167년 몽펠리에, 프로방스 주교관, 보 가문의 지원을 받은 아라곤군이 프로방스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레몽 5세의 저항을 완전히 분쇄시키지 못했다.

한편, 라몬 베렝게르 4세는 1157년 레온-카스티야 국왕 알폰소 7세와 레리다에서 만나서 나바라 왕국을 분할하기 위한 협약을 맺었다. 그러나 알폰소 7세가 레리다 협약을 이행하기 전인 1157년 8월 21일에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뒤를 이어 카스티야 왕위에 오른 산초 3세 역시 1158년 8월 31일에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갓난아기였던 알폰소 8세가 왕위에 올랐으며, 라몬 베렝게르 4세 역시 1162년에 사망했기에 레리다 협약은 제때에 실현되지 못했다. 이에 페트로닐라는 나바라 왕국을 적대하는 대신 화해하기로 하고, 1168년 안초 6세와 13년간의 휴전을 맺었다. 이때 앞으로 무슬림으로부터 정복한 땅을 나바라 왕국과 분할하기로 했다.

1173년 10월 15일 바르셀로나에서 사망했다. 그녀의 유해는 바르셀로나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이리하여 아라곤 왕국의 히메네스 왕조는 단절되었고 알리폰소 2세가 개창한 바르셀로나 왕조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3. 가족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