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 네빈 | |
Pat Nevin | |
본명 | 패트릭 케빈 프란시스 마이클 네빈 Patrick Kevin Francis Michael Nevin |
출생 | 1963년 9월 6일 ([age(1963-09-06)]세) |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 |
국가대표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스코틀랜드| ]][[틀:국기| ]][[틀:국기| ]]) |
포지션 | 윙어 |
신장 | 168cm |
유스 | 셀틱 FC |
경력 | 클라이드 FC (1981~1983) 첼시 FC (1983~1988) 에버튼 FC (1988~1992) 트란메어 로버스 FC (1992~1997) 킬마녹 FC (1997~1998) 머더웰 FC (1998~2000) |
국가대표 | 28경기 5골 (스코틀랜드 / 1986~1996) 4경기 0골 (스코틀랜드 B / 1987~1996) |
별명 | Wee Pat[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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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코틀랜드의 전 축구 선수.1983년부터 1988년까지 5년간 첼시에서 활약했으며, 1984년 첼시의 1부 승격을 이끈 주역 중 1명이다.
2. 선수생활
2.1. 스코틀랜드
네빈은 연고지팀인 셀틱에서 유스생활을 시작했으나 키가 너무 작다는 이유로 셀틱과는 계약하지 못하고, 클라이드 FC와 계약하게 된다. 첫시즌 30경기 14골을 집어넣으며 SPFA 2부리그 올해의 선수상을 받고, 두번째 시즌에는 44경기 6골을 넣으며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2.2. 첼시 FC
다시 승격을 노리던 첼시는 유망한 선수들을 수집 중이었고 케리 딕슨, 나이젤 스팩먼, 데이비드 스피디, 에디 네이즈위키 같은 선수들과 함께 영입된다. 9만5천 파운드의 이적료로 첼시에 입단하게 되며 시즌 6번째 경기에 데뷔를 하게되고, 데뷔시즌에 14골을 만들어 내며 측면에서 보여주는 현란한 드리블로 서포터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게 되며 데뷔시즌에 곧바로 올해의 첼시선수로 선정된다.하지만 존 닐 감독의 사임 이후 존 홀린스 감독 채제에서 초반엔 이전 2시즌같은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했고, 2월까지 선두를 달리던 팀이 뒷심부족으로 최종성적 6위를 기록하는 등 상황은 별로 좋지 못하였고 중반엔 또다시 올해의 첼시선수상도 수상하는 등 네빈의 폼도 올라왔으나 그와는 별개로 스탬포드 브릿지의 확장과 더불어 구단의 재정적인 문제 및 좋지 못한 운영으로 팀이 또다시 강등되며 세컨드 디비전 우승, 풀 멤버스컵 우승 트로피를 가져다줬던 팻 네빈도 에버튼으로 이적하고 만다.
2.3. 머지사이드로
1.75m 파운드의 이적료로 에버튼에 입단한 팻 네빈은 138경기 20골의 기록을 세우며 1989년 FA컵 준결승에서 노리치를 상대로 득점하며 팀을 결승으로 보냈지만 결국 지역 라이벌 리버풀 FC에게 패했다, 에버튼에서도 성향이 맞지 않은 감독과 대체자인 로버트 워지카, 마크 워드의 영입으로 밀리기 시작했고 에버튼에서의 4시즌 동안은 준우승만 2회 기록한 채 이적하게 된다.그리고 똑같은 머지사이드 연고지팀인 2부리그 트랜미어로 이적후 193경기 30골의 기록을 세우고 스코틀랜드로 돌아간다.
2.4. 다시 스코틀랜드로
킬마녹과 마더웰에서 팀의 황혼기를 보낸 후 2000년 은퇴하게 된다.3. 은퇴 이후
- 현재 그는 첼시의 서포터로 남아있으며, 첼시의 공식 홈페이지나 매치데이 매거진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15-16시즌 태업루머 관련해서 세스크를 지목했다가 실수라며 사과하기도 했던 인물이 바로 팻 네빈
- 2020년 1월, BBC 스코틀랜드 라디오에서 앨런 섬에서 드라이브로 휴가를 즐기던 중 자전거를 타고 있던 사람을 차로 칠 뻔 했다는 썰을 풀었는데 그 대상은 그 당시 첼시의 구단주였던 로만 아브라모비치..링크였다고 한다.
[1] 키가 작아서 붙여진 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