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7-29 22:32:08

패트릭 퍼거슨

<colbgcolor=#000038><colcolor=#fff> 패트릭 퍼거슨
Patrick Ferguson
파일:1000014207.jpg
출생 1744년 6월 4일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스코틀랜드 애버딘셔 피트포
사망 1780년 10월 7일 (향년 36세)
13개 식민지 사우스캐롤라이나 식민지 킹스마운틴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직업 군인
복무 영국군 (1759~1780)
병과 보병
최종 계급 소령
참전 7년 전쟁
미국 독립 전쟁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영국의 군인.

2. 생애

스코틀랜드 애버딘셔에 있는 피트포에서 의원인 제임스 퍼거슨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시절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자인 새뮤얼 리처드슨, 데이비드 흄의 영향을 받았다. 10대부터 삼촌인 제임스 머레이를 따라 종군했으며 스코츠그레이 소속으로 신성 로마 제국에서 복무했으나 결핵으로 귀국했고 복귀해 제70보병연대의 지휘권을 매입하여[1] 서인도 제도에서 복무했다.

1772년 영국으로 귀국했고 이 기간 동안 퍼거슨은 경보병들을 위해 후장식 소총의 단점을 보완한 새로운 후장식 소총을 설계했는데 이 총이 퍼거슨 소총이다. 이렇게 생산된 100정의 퍼거슨 소총의 시범 운용을 위해 시험용 경보병 부대가 창설되었으며, 퍼거슨이 해당 부대의 지휘관을 맡았다. 미국 독립 전쟁당시 파병을 나가 실전을 치르게 되었는데, 실전 운용된 전투 중 가장 규모가 컸던 때는 1777년 9월에 벌어진 브랜디와인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퍼거슨은 오른팔에 총상을 입어 불구가 되었으며, 회복하는 사이에 퍼거슨 소총 부대는 해산되어 부대원도 전원 원대 복귀했다.

3년 뒤인 1780년 신병으로 충원된 부대로 캐롤라이나-조지아를 잇는 고지를 장악해 감제할 목적으로 펼쳐진 킹스 마운틴 전투에서 말이 총을 맞아 낙마한 후 퇴각하다가 산등성이 인근에서 대륙군에게 포위당해 권총을 뽑는 순간 집중사격을 당하며 전사했다. 시신은 훼손되었다.


[1] 당시 영국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유럽 국가들에서는 매관매직이 당연시되었다. 영국군에서의 매관매직은 이로부터 약 100년 뒤 크림 전쟁에서의 발라클라바 전투를 계기로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