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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
1. 소개
이 세상의 어떠한 어려운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해 주는 우주 최강의 무적 알고리즘이다.The Feynman Problem-Solving Algorithm:
(1) write down the problem;
(2) think very hard;
(3) write down the answer.
(1) write down the problem;
(2) think very hard;
(3) write down the answer.
(번역)
파인만의 문제 해결 알고리즘:
(1) 문제를 쓴다.
(2) 매우 깊게 생각한다.
(3) 답을 쓴다.
(1) 문제를 쓴다.
(2) 매우 깊게 생각한다.
(3) 답을 쓴다.
물리학자 리차드 파인만이 썼다는 문제해결 알고리즘. 오직 파인만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에 '파인만 알고리즘'이라 한다.
(2)에서 막히는 경우는 (4)로 분기한다.
(4) 잠을 잔다.
(5) 다시 깊게 생각한다.
(6) 답을 쓴다.
(5) 다시 깊게 생각한다.
(6) 답을 쓴다.
(5)에서 막히면 다시 (4)로가면 된다.
참 쉽죠를 연상하게 하는 알고리즘이다...
2. 누가, 왜 말했는가?
같은 물리학자이며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머리 겔만이 말한 것으로 알려져있다.[1] 이걸 알고 들으면 이 농담 뒤에 약간의 날선 비꼼이 느껴지는데, 겔만은 사적으로는 파인만과 친하고 직장 동료이기도 했으나 그만큼 앙숙으로도 유명했다. 일단 두 사람은 성격부터가 천지차이였는데, 권위를 싫어하고 자유분방한 파인만에 비해 겔만은 항상 양복을 입고 다니며 품위를 중시하는 등 귀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거기에 겔만은 파인만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2] 본인 역시 대단한 천재에 업적도 대단한 겔만이었지만[3] 파인만이 학계에서 자신보다도 조금 더 위로 대우받고, 대중적인 인기에서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을 보며 불편해 했던 인물이다. 겔만이 파인만에게 가진 열등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파인만의 친한 친구였던 그가 파인만의 장례 후 고인 드립성의 인터뷰를 했던 것이다. 겔만은 파인만 사후 '그는 전설적인 일화들을 만들어내 자신 주위에 둘렀다. 그를 통해 그는 스스로 구름 위에 있는 신적인 존재처럼 보이고 싶어했다' 라는 발언을 했다. 이후에도 파인만이 어떤 학자였냐고 묻는 질문에 '그는 자기홍보가 뛰어났다' 라고 대답할 정도였다.결정적으로 겔만은 물리학에 접근하는 방법이 파인만과는 전혀 달랐는데, 직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파인만에 비해 겔만은 철저히 수학적인 방법론으로 물리학에 다가가는 철두철미한 방법론의 소유자였다. 때문에 파인만과도 수시로 크고 작은 논쟁을 벌였는데 일단 겔만은 직관을 활용하는 파인만의 방법론에 거부감을 가졌고 파인만은 그런 겔만을 계속 놀려먹었다. 그리고 파인만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으면 알겠지만 파인만의 장난은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당히 괴롭다.
즉 위의 발언은 파인만을 칭찬하거나 찬양, 혹은 일반적인 문제 해결 과정을 도식화 하려던 게 아니다. 그냥 파인만을 까려고 한 발언이다.
물론 그렇다고 겔만이 파인만을 완전히 무시한 것은 아니다. 겔만은 학자로서의 파인만을 존중했고 그에게 놀림당하는 것을 질색하면서도 파인만이 있기 때문에 칼텍에 교수로 갔다. 공동 연구 역시 여러 번 진행했고. 다만 겔만의 자존심이 자극당할 때마다 그는 과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파인만에 대한 비꼬기나 이런 발언 역시 그런 과잉반응 중 하나다.
3. 일상 적용
사실 이 이야기를 겔만이 했다는 뒷배경만 제외하고 나면 지당한 말이다. 모든 문제는 문제를 문제로서 인식하고, 깊이 숙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기 때문. 보통 사람들이라도 문제 해결에 있어서 휴식을 취한다거나 잠을 잔다거나 하여 잠시 쉬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즉 사실 이 알고리즘은 문제 해결의 아주 전형적이고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방법이다. 하필이면 파인만이라는 천재의 이름이 들어가서 일반인과 거리가 멀게 느껴질 뿐이지.유명한 일화는 꿈에서 뱀을 보고 벤젠 고리를 발견한 케쿨레의 일화가 있으며, (4)번을 휴식을 취한다는 좀 넓은 의미로 받아들이면 목욕을 하다가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가 있다. 심리학에서 이렇게 휴식을 취하다 문제 해결의 기발한 착상이 떠오르는 현상을 연구하기도 했으며, 이 현상을 '아하 효과' 또는 '유레카 효과'라고 부른다. 정신의학적인 측면에서는,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도 무의식의 영역에서 계속 그 문제를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순간 해결책이 떠오르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비슷한 방법으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잡학책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는 스페인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시토회 수도자들의 묵상법을 본떠서 개발한 아이디어를 찾는 방법이 나오는데, 그 방법이라는 게 큼직한 팔걸이 의자에 앉아서 팔걸이에 팔을 얹은 채 엄지와 중지로 숟가락을 살며시 잡고, 그 아래 바닥에 접시를 엎어놓고 해결해야 할 문제를 생각하며 잠을 청하는 것, 숟가락이 접시 위에 떨어져 잠에서 깨게 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한다. 잠귀가 어두운 사람은 큰 숟가락을 쓰라는 팁은 덤. 위의 방식에 숟가락과 접시라는 제한 요소를 넣은 방식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본 알고리즘의 1번 스텝인 "문제를 쓴다"에 주목하는 의견도 있다. 난제에 부딛쳤을 때 문제를 한 번 적어 보지도 않고 머리속으로만 복잡하게 생각하며 고민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문제를 한 번 적어 봄으로써 생각을 정리하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 노스모크 위키의 파인만문제해결법 항목에서도 이러한 의견이 개진되었다.
[1] 정확한 출처는 아직 불명이다.[2] 사실 겔만은 다른 대다수의 입자물리학자들에 대해서도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지녔던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QED를 정립한 공로로 리처드 파인만, 도모나가 신이치로와 함께 1965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줄리언 슈윙거에 대해서도 아니꼽게 생각했다. 겔만이 말년에 했던 인터뷰를 보면 슈윙거와 함께 QED에 대해 논의했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처음에는 슈윙거를 칭찬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다가 슈윙거가 자신 앞에서 했던 한 콜로퀴엄에서의 계산은 전부 틀린 것이었다고 독설을 했다. QED에 한 획을 그은 고인을 회상하는 인터뷰에서 그에 대한 독설을 뱉을 정도니 겔만의 인성은 확실히 문제가 많은 것이 맞다. 그런데 파인만에 대해서는 까고 싶은데 흠집을 낼만한 꼬투리가 별로 없었다.[3] 가장 유명한 것 하나만 대 보면 쿼크 모델을 처음 제시한 사람 (다른 한 사람은 조지 츠바이크(George Zweig)) 중 하나이자 '쿼크'라는 이름을 붙인 장본인이다. 그 외에도 기묘도 등 쿼크 모델이 성립될 수 있는 밑바탕이 되는 연구들에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게다가 이 분, 15세에 예일 대학교에 입학하고 19세에 MIT 대학원에 들어가 21살에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