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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성 이론 Theory of Relativity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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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특수 상대성 이론의 발단부터 발전 과정을 다루는 문서이다. 특수 상대성 이론의 발견은 19세기 이후 빛을 다루는 학문인 광학과 이를 전기장·자기장의 전파로 설명하는 전자기학의 발달로 빛에 대한 이해가 성숙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뉴턴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성숙된 토양 위에 나타난 다양한 성과들을 하나의 역학 이론으로 체계화하여, 물리학이 새로운 기반 위에서 발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2. 명칭의 역사
처음에 상대성 이론은 아인슈타인이 헨드릭 A. 로런츠의 에테르 이론(로런츠 변환)을 상대성 원리에 기초하여 재구성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기에 로런츠-아인슈타인의 이론(Lorentz-Einstein theory)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었다. 막스 플랑크는 1906년 9월 전자에 관한 공개토론회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Prinzip der Relativität 또는 Relativitätsprinzip)를 강조하면서 상대적 이론(Relativtheorie)이라는 용어를 제안했다. 같은 행사에 참석한 알프레드 부쉐러(Alfred Bucherer)가 이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Einsteinsche Relativitätstheorie)으로 바꾸어 부른 것이 상대성 이론이라는 명칭의 시초라 알려져 있다.[Planck(1906b)] 막스 플랑크는 이미 1906년 3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 주목하고("상대성 원리"를 이론의 이름처럼 사용하였다.) 그 운동 방정식의 해밀턴 함수를 유도해낸 바 있다.[Planck(1906a)]아인슈타인은 처음에 자신의 이론에 대하여 "상대성 원리"란 표현을 주로 사용하였다. 1907년 파울 에런페스트(Paul Ehrenfest)와의 교류 논문에서 처음으로 "상대성 이론"을 사용하였는데[Einstein(1907)], 이는 에런페스트가 사용한 용어를 단순히 받아준 것으로 이후에도 한동안 "상대성 원리"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후 그는 1910년 "이 원리들을 바탕으로 한 이론을 우리는 '상대성 이론'이라고 부를 것이다"라고 보다 직접적으로 용어를 수용하였다.[Einstein(1910)]
한편 독일 수학자 펠릭스 클라인(Felix Klein)은 1910년 "불변 이론"(Invariantentheorie)이란 이름을 제안하였으나, 물리학계에서는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5] 이후 아인슈타인은 1921년 9월 에버하르트 지치머(Eberhand Zschimmer)가 소개해준(제안한) "불변 이론"(Invarianz-Theorie)이라는 명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을 밝혔다.
Nun zum Namen Relativitäts-Theorie. Ich gebe zu, dass dieser nicht glücklich ist und zu philosophischen Missverständnissen Anlass gegeben hat. Der Name Invarianz-Theorie würde die Forschungsmethode der Theorie bezeichnen, leider aber nicht den materiellen Inhalt der Theorie (Konstanz der Lichtgeschwindigkeit, Wesensgleichheit von Trägheit und Schwere). Trotzdem wäre die von Ihnen vorgeschlagene Bezeichnung vielleicht besser, ich glaube aber, dass es Verwirrung anrichten würde, den allgemein akzeptierten Namen nachträglich zu verändern.
이제 "상대성 이론"이란 이름에 대하여. 저도 그것이 만족스럽지 않고 그간 철학적 오해를 일으켰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불변 이론"이라는 이름은 이론의 연구 방법을 설명하지만, 아쉽게도 이론의 내용을 설명하지는 못합니다(광속의 불변성, 관성과 중력의 동등성). 그럼에도 당신이 제시해준 용어가 더 나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이름을 나중에 바꾸는 건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로부터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이란 용어가 주는 혼란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나, 이미 대중화된 명칭을 굳이 바꿀 필요성이나 타당한 명분 또한 있다고 보지는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불변 이론"에 대한 태도 역시 분명하지는 않다.이제 "상대성 이론"이란 이름에 대하여. 저도 그것이 만족스럽지 않고 그간 철학적 오해를 일으켰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불변 이론"이라는 이름은 이론의 연구 방법을 설명하지만, 아쉽게도 이론의 내용을 설명하지는 못합니다(광속의 불변성, 관성과 중력의 동등성). 그럼에도 당신이 제시해준 용어가 더 나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이름을 나중에 바꾸는 건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
이후에도 [math(E=mc^2)]이란 식을 설명하면서 "특수 상대성 이론(the special theory of relativity)"이란 말을 적극 사용하였다. #
"일반" 상대성 이론 또한 "상대성" 이론 못지 않게 이름이 주는 혼란이 심하다. "일반 상대성"은 모든 좌표계에서 물리법칙의 표현이 동일하다(일반 공변성, general covariance)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으나 일반 공변성만으로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특징지을 수 없다. 공변성은 일반 상대성 이론만의 특징이 아니며 모든 물리 이론은 공변성을 만족하도록 재구성할 수 있다. 1917년 독일 물리학자 에리히 크레슈만(Erich Kretschmann, 1887~1973)이 아인슈타인의 용어선정을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고,[Kretschmann(1917)] 이후 프랑스 수학자 엘리 카르탕(Élie Cartan, 1869~1951)은 뉴턴 역학을 미분기하학으로 재구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것을 뉴턴-카르탕 이론(Newton-Cartan theory)이라 한다.[Cartan(1923)] 다만 맥락을 감안하자면 공변성은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 이론 및 미분 기하학을 통해 처음으로 개척하기 전까지는 구체화된 적이 없는 개념이었고 사후적으로 그것이 물리적인 의미가 없다는 게 밝혀진 것이다. "뉴턴의 중력 이론"에 대응시켜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이라는 이름도 간간히 사용되며 큰 문제는 없지만 대중적인 이름은 아니다.
3. 상대성 이론과 상대론적 역학
의미 전달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잠깐 여기에서는 오늘날 잘 알려진 아인슈타인의 시간과 공간에 관한 이론을 상대성 이론(Theory of Relativity)이라 하고, 상대성 이론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물리학 분야를 상대론적 역학(Relativistic Mechanics)이라 하자. (외국에서는 그냥 "Relativity"라고 하는데, 상대"론"은 다소 아쉬운 번역이다.) 일반적으로 둘은 동의어이지만 이런 구분이 좋은 이유는, 상대성 이론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이론이 아니며, 아인슈타인 이후로도 이 분야에 대한 어마어마한 기여와 대상 분야의 확장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미 현대 물리학과 상대성 이론은 분리해서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깊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이론이라 불리는 것도 애매한데, 양자론과 양자역학, 그리고 진화론과 진화생물학의 관계와도 비슷한 맥락이다.모든 상대론적 역학의 바탕이라 할 수 있는 특수 상대성 이론은 19세기 내내 축적되었던 광학과 전기동역학, 특히 전기동역학의 성과에 대한 궁극적 수확이라고 할 수 있으며, 1890년대에 등장한 로런츠의 전기동역학 이후로 이에 영향을 받은 수학적으로, 일부는 개념적으로도 비슷한 이론(푸앵카레, 라머, 비헤르트, 콘, 아인슈타인 등)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였다. 이들은 모두 상대론적 역학으로 분류할 만하다. 그 중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운동학을 구축한다는 굉장히 독특한 해법을 제시하였고 상대론적 역학의 표준이 되었기에 이러한 주장을 상대성 이론이라 부르고 일반적으로 아인슈타인을 상대성 이론의 창시자라 부른다.
일반 상대성 이론은 상대론적 역학의 하위 항목, 즉 "상대론적 중력 이론"(Relativistic theory of gravitation)에 속하지만, 특수 상대성 이론의 역사와는 어느 정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 이론에 이어서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전시켰고 이름도 비슷해서 "아인슈타인의 (두) 상대성 이론"으로 묶여서 불리지만, 일반 상대성 이론이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 외에는 상당히 독립적인 분야이고, 역사적 배경 또한 특수 상대성 이론의 대두(+리만 기하학)라는 것 이외에는 크게 고려할 부분이 많지 않다. 또한, 다른 가능성이 거의 없는 특수 상대성 이론과는 달리 일반 상대성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개인적인 (미적) 판단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까지 결정적인 문제가 없는 시대 초월적인 이론이며 상대론적 중력 이론의 실질적 바탕을 이룸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대안 이론들이 연구되고 있다.
4. 에테르 이론의 발전
4.1. 발광 에테르와 에테르 바람
19세기 초 영국의 영(Thomas Young, 1773-1829)과 프랑스의 프레넬(Augustin Jean Fresnel, 1788–1827)은 간섭 실험을 통해 빛의 파동성을 발견하였고 이에 따라 빛을 파동으로 보는 견해가 정설이 되었다. 그런데 당대의 기계적 세계관에서는 파동과 매질을 따로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주 공간을 넘어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 빛을 생각하면 매질이랄 것이 없는 진공에서도 빛은 전파되어야 했으므로, 파동설을 확정지은 물리학자들은 우주 공간을 균일하게 채워서 빛의 전파를 매개하는 가상의 매질인 발광 에테르(luminiferous ether)의 존재를 "자신있게" 예측했다. 에테르 가설은 근 100년에 걸쳐서 광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되었다.에테르라는 물질의 존재를 "가정"했다면, 가장 시급한 일은 자연스럽게 에테르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된다. 당대의 물리학자들은 에테르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에테르에 대해 정지한 실험실과 그에 대해 움직이는 실험실에서 광학 실험을 했을 때 나타나는 차이를 밝히자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고안했다. 이 개념은 가만히 있는 공기 사이를 사람이 지나가면서 바람을 만들어내는 효과와 비슷하다고 하여 에테르 바람(Ether Drift)이라고 불렸다. 이와 관련된 실험들을 "에테르 바람 실험"(Ether drift Experiment)이라고 부른다.
19세기 전반에 걸쳐, 에테르 바람이 광학 실험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는 이론을 구상하기 위해서 에테르에 관한 다양한 학설과 이론이 등장하였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에테르가 공간에 박혀 고정되어 있는지, 아니면 일반 물질과 상호작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의 문제였다. 대표적으로 프레넬은 에테르가 공간에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조지 스토크스(George Gabriel Stokes, 1819~1903)는 에테르가 물질에 끌려다닌다고 생각했다. 프레넬의 설명이 맞다면 에테르 바람은 쉬운 문제가 된다. 실험실이 공간에 대해서 움직인다면 그것은 곧 에테르에 대한 운동이 되기 때문에, 예를 들어 지표면에서 일정한 시간차를 두고 동일한 실험을 반복하면 그것이 곧 에테르 바람 실험이 되고 우리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스토크스의 설명이 맞다면 에테르 바람 문제는 실험적으로 해결하기 난감해진다. 이 경우 에테르를 지구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에테르가 지구와 함께 움직일 것이고, 따라서 지표면에서는 에테르가 정지한 상황에서의 실험밖에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스토크스의 학설에서는 에테르가 운동하고 있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게 된다.
1720년대에 제임스 브래들리(James Bradley, 1692–1762)가 발견한 광행차(stellar aberration) 현상은 에테르가 공간에 고정되어 있다는 프레넬의 가설에 강력한 힘을 실어주었다. 광행차 현상은 지구가 공전하는 동안 별빛이 보이는 각도가 계속 달라지는 현상으로, 에테르를 공간에 고정시켜 놓았을 때에는 설명이 어렵지 않지만 에테르가 지구를 따라 움직인다면 설명이 매우 난감해진다. 아래에서는 스토크스의 가설에 가까워 보이는 실험 결과들이 여럿 등장하지만 광행차 현상이 있는 한 스토크스의 이론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한편 고정된 에테르 가설의 여파로, 실험적으로 관찰자의 속도를 검출할 수 없다는 갈릴레이의 상대성 원리(principle of relativity)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 했다. 뉴턴은 고전 역학을 전개하기 위해 물질과는 상관없이 영원히 정지해 있는 절대 공간을 상정하였고, 이는 원리적으로 상대성 원리와 충돌하는 개념이었다. 애초에 뉴턴 역학에서 상대성 원리는 뉴턴 운동 법칙의 구조(힘과 가속도의 비례)에 의해 우연히 성립하는 따름 정리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역학 문제의 해결을 관점의 이동을 통해 쉽게 만들어주는 유용한 도구였지만 공간에 고정되어 있는 에테르 및 에테르 바람의 존재는 광학에서 상대성 원리가 실질적으로 성립하지 않게 만들 것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쉽게 종결되지 않았다.
4.2. 에테르 끌림 가설
에테르 바람을 측정하고자 했던 가장 초창기의 시도는 아라고(François Arago, 1786–1853)의 스넬의 법칙(snell's law) 관련 실험이다. 그는 프리즘에 의한 빛의 굴절률이 지구의 공전 속도의 영향을 받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실험의 결과는 에테르 바람의 영향이 없다는 것이었고, 이 소식을 편지로 접한 프레넬은 당황하였다. 결국 이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1818년 프레넬은 에테르가 완전히 고정된 게 아니라 "에테르가 움직이는 매질에 의해 부분적으로 이끌린다"는 요지의 에테르 끌림 가설(Ether drag hypothesis)을 추가로 도입하였다. 이 때 에테르가 끌리는 속도는 매질의 속도에 비례하며, 그 비례 계수를 프레넬 계수(Fresnel coefficient, [math(f)])라 한다. 매질의 굴절률을 [math(n)]이라 하면, 매질의 운동(속력 [math(v)])에 의해 에테르가 이끌리는 속도는[math(\displaystyle f = 1 - \frac{1}{n^2})] |
에 대하여 [math(f\cdot v)]가 된다. 이렇게 하면 진공에서는 [math(n=1)]이므로 에테르 끌림은 나타나지 않으며, 광행차 현상도 함께 설명할 수 있다. 한편, 에테르의 완전 끌림을 주장하는 스토크스의 학설을 끌림 계수로 설명하면, 언제나 [math(f=1)]이 된다. 이처럼 에테르 끌림 가설을 수용하더라도 학설에 따라 그 정도를 다르게 조절할 수 있었고, 실험적으로 그 우위를 가릴 필요성이 있었다. 그 역할을 해낸 대표적 실험이 1851년 프랑스의 과학자 이폴리트 피조(Hippolyte Fizeau, 1819–1896)가 수행한 피조의 실험(Fizeau's Experiment)이다. 피조는 에테르 끌림 계수에 관한 프레넬과 스토크스의 이론을 비교하기 위해, 흐르는 물에 의해 빛의 속력이 변하는 정도(빛의 상대 속력)를 검출하는 실험을 수행하였다.
<nopad> |
피조의 실험 |
[math(\displaystyle \Delta t = \frac{2l}{\displaystyle \frac{c}{n} - fv} - \frac{2l}{\displaystyle \frac{c}{n} + fv} \approx \frac{4nl}{c}\frac{v}{c}nf)] |
가 된다. 여기에서 끌림 계수 [math(f)]는 프레넬의 이론에서 [math(f = 1 - n^{-2} = 0.43)] (물에서 [math(n = 1.33)]), 스토크스의 이론에서 [math(f = 1)]이므로 충분한 정밀도를 확보한다면 어느 쪽이 맞는지 결정할 수 있다. 피조의 실험은 프레넬의 이론값을 [math(15\%)]의 오차로 검출함으로써, 프레넬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렇게 스토크스의 에테르 학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 했다.
4.3. 에테르 바람 실험의 실패
한편 아라고의 굴절 실험을 비롯하여 에테르 바람을 측정하기 위해 수많은 실험들이 계획되었고, 이들은 마이컬슨-몰리 실험 이전까지 모두 실험실의 속도 [math(v)], 빛의 속도 [math(c)]에 대하여 [math(\displaystyle \frac{v}{c})] 수준의 에테르 바람을 검출하려는 시도였기에 1차 에테르 바람 실험(first-order ether drift experiment)이라 불린다. 이들은 예외 없이 전부 실패하였다. 전통적 광학의 관점에서 이러한 일관된 실패를 설명하기 위한 가장 성공적인 방법은 프레넬 계수로 대표되는 부분적 에테르 끌림 가설이었으며, 피조의 실험으로 성공적으로 입증되었다. (따라서 피조의 실험도 1차 에테르 바람 실험의 일종으로 분류할 수 있다.) 스토크스의 완전 끌림 가설의 경우 에테르 바람 실험들이 1차를 넘어 그 이상에서도 "전부" 실패함을 말해주겠지만, 그것은 광행차 현상과 피조의 실험으로 힘을 잃었다. 후술하겠지만, 이후 1892년에 로런츠는 맥스웰의 전자기학을 광학에 접목하여 "고정된 에테르" 가설 내에서 1차 에테르 바람 실험이 왜 실패하는지를 설명하는 데 성공하였다. 특히, 프레넬 계수 문제 역시 에테르 끌림 가설을 필요로 하지 않음을 증명할 수 있었다.그렇다면 2차 에테르 바람 실험(second-order ether drift experiment), 즉 [math(\displaystyle \frac{v^2}{c^2})] 수준의 에테르 바람을 검출하는 것은 가능할까? 1차 에테르 바람 실험 실패의 해명에 새로운 빛을 드리운 전자기학의 프레임 내에서도 이것은 가능하다 여겨졌고, 최초의 2차 에테르 바람 실험이 바로 마이컬슨-몰리 실험(Michelson-Morley Experiment, 1887)이다.
<nopad> |
마이컬슨 간섭계의 도식 |
마이컬슨 간섭계의 원리를 간단하게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광원 [math(S)]에서 방출된 광선은 거울 [math(M)]에서 나뉘어, 광선 1(빨간색)은 거울 [math(M_1)]에서 반사되어 [math(M)]을 거쳐 검출기 [math(D)]로 들어가며, 광선 2(파란색)는 거울 [math(M_2)]에서 반사되어 [math(M)]을 거쳐 검출기 [math(D)]로 들어간다. 에테르가 간섭계에서 대하여 위와 같이 [math(v)]의 속력으로 움직인다면, (빛은 에테르에 대하여 상수 [math(c)]의 속력을 갖는다.) 광선 1이 [math(MM_1)]을 왕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다음과 같다.
[math(\displaystyle \frac{l}{c+v} + \frac{l}{c-v} = \frac{2lc}{c^2-v^2} \approx \frac{2l}{c}\left(1 + \frac{v^2}{c^2}\right))] |
그리고, 광선 2가 [math(MM_2)]를 왕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다음과 같다.
[math(\displaystyle \frac{2l}{\sqrt{c^2-v^2}} \approx \frac{2l}{c}\left(1 + \frac{1}{2}\frac{v^2}{c^2}\right))] |
이로부터, 에테르 바람의 효과를 2차항 수준으로 검출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매우 작은 값이지만, 마이컬슨은 빛의 도달속도 차이가 간섭무늬로 나타나 이것을 정밀하게 탐지할 수 있도록 장치를 설계하였다. 또한, 충분한 차이를 검출하려면 지구의 운동 방향이 반대가 되는 6개월의 간격을 두고 실험을 진행해야 했다.
실험을 주도한 마이컬슨(Albert Abraham Michelson, 1852–1931)은 1881년, 1887년 2번에 걸쳐서 이 실험을 수행하였고, 2차 실험에서는 보다 정확한 실험을 위해 몰리(Edward Williams Morley, 1838–1923)와 협력하였다. 그들은 먼저 1886년 향상된 정확도의 피조 실험을 반복하여 프레넬의 이론이 옳음을 재확인한 뒤, 1887년 2번째 간섭계 실험을 실시하였다. 마이컬슨과 몰리는 전년도의 결과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에테르 바람을 검출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실제로 나타난 간섭무늬는 그들이 기대했던 것(즉, [math(v^2/c^2)] 수준)에 비해 미약한 수준이었다. 이것으로 2차 에테르 바람 실험 역시 실패하자, 물리학계에서는 큰 혼란에 빠졌다. 기존의 물리학만으로 이 실험의 결과를 설명할 수 있을까?
4.4. 전자기학과 에테르 이론
한편, 1860년대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은 맥스웰 방정식을 통해 전자기학을 정리하고, 이에 더하여 전기장과 자기장의 상호작용으로 전자기파(Electromagnetic wave)가 발생하며, 이것이 곧 빛이라는 혁명적인 주장을 펼쳤다. 이후 하인리히 헤르츠(Heinrich Hertz, 1857~1894)가 1887년에 전자기파를 발생시키는 데에 성공하면서 광학 이론은 대대적인 변화를 맞았다. 이제, 발광 에테르는 전자기장을 품는 "전자기 에테르"(Electromagnetic Ether)로 탈바꿈하였고, 이 새로운 이론적 기반 위에서 에테르 이론을 다시 설명하려는 움직임들이 나타났다.흥미롭게도, 전자기학에서도 광학의 에테르 문제와 거의 유사한 문제가 발생한다. 맥스웰 방정식에 따른 전기장과 자기장은 관찰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비대칭적으로 발생한다. 예를 들어 패러데이 법칙을 생각하면, 코일이 정지해 있을 때 자석을 움직이면 유도 기전력이 발생하지만 자석이 정지해 있을 때 코일이 움직이는 경우는 이러한 기전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 문제는 하단에서 다시 자세하게 다룬다. 특히, 맥스웰이 유도한 전자기파의 속력은 광원의 속력에 상관없이 항상 같은 값으로 고정되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매질, 즉 에테르의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특정 매질에 대한 파동의 속력은 언제나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물리학자들은 "전자기장을 품는" 에테르를 가정하고(이는 본질적으로 "발광 에테르"와 같은 것이다), 맥스웰 방정식은 에테르가 정지한 좌표계에서만 성립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이제 광학의 에테르 바람 문제는 운동하는 물체에 적용되는 전자기 현상, 즉 운동하는 물체의 전기동역학 문제로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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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드릭 A. 로런츠 전자기학을 바탕으로 한 에테르 이론을 연구했다. |
로런츠 이론의 첫번째 도약은 공간 상의 모든 점에서 에테르가 정지해 있는 좌표계가 존재한다고 가정한 것이다. 즉, 로런츠의 에테르는 각각의 부분이 서로에 대해 움직이지 않는 강체의 성질을 가진다. 프레넬의 설명과 같이 에테르가 부분적으로 끌린다면 각각의 점에 위치한 에테르의 속도에 따라 맥스웰 방정식을 일일이 변환해야 하기 때문에 문제가 엄청나게 복잡해진다. 하지만 에테르가 강체와 같다고 가정하면 좌표계 전체에서 동일한 맥스웰 방정식이 성립하므로 문제를 다루기 쉬워진다. 따라서 로런츠에게 이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1. 1차 에테르 바람 실험과 국소 시간
로런츠 이론의 가장 가시적인 성과는, 에테르 끌림 가설을 제거한 상태에서 1차 에테르 바람 실험들이 실패한 이유(즉, 프레넬 계수)를 설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로런츠는 이로서 에테르의 물질성을 상당 부분 덜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더 이상 에테르는 물질에 이리저리 이끌리지 않고, 단지 "공간 상에 가만히 정지하여" 전기장과 자기장을 일으키는 역할만 하기 때문이었다.이는 "빛이 전자기파"라는 새로운 이론적 프레임을 도입함으로써 얻은 성과였다. 예를 들어, [math(v)]의 속력으로 움직이는 기준계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 운동 방향으로 진행하는 전자기파의 진행 속력은 원래의 전자기파, 그리고 그것과 물질 속 전자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생성된 전자기파의 합성에 의해 ([math(v/c)]에 대해 근사적으로) [math(\displaystyle \frac{c}{n} - \frac{v}{n^2})]이 되며 따라서 에테르에 대한 전자기파의 진행 속력은 [math(\displaystyle \frac{c}{n} - \frac{v}{n^2} + v = \frac{c}{n} + \left(1 - \frac{1}{n^2}\right)v)]가 되는 것이었다.
후속 연구에서 로런츠는 운동계에 다음과 같이 국소 시간(local time)이라는 양을 도입해 프레넬 계수를 보다 간단한 방법으로 유도할 수 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전자기파의 특징은 오로지 위상 [math(t-x/v)]에만 의존하는데, 에테르에 대해 운동하는 매질에서 전자기파의 속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위상에 일반적인 시간(에테르의 "실제" 시간) 대신 국소 시간을 도입하면 된다. 이 식을 원래의 식 꼴로 정리하면 [math(v)] 자리에 프레넬 계수가 도출된다.
[math(\displaystyle t' = t - \frac{v}{c^2}x)] [10] |
그렇다면 국소 시간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푸앵카레는 국소 시간에서 규약적 의미에만 집중하고, 여전히 에테르에 실제 시간을 부여하였다. 로런츠의 국소 시간 개념은 광학적 실험이라는 특정 맥락에서 나타나며, 푸앵카레의 아이디어는 이들 실험에 사용되는 간섭계의 원리에 맞닿아 있다. 말하자면, 국소 시간은 "간섭계 실험을 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한편 로런츠 이론에 독립적으로 전기동역학을 연구했던 에밀 콘(Emil Cohn, 1854~1944)은 1904년 실제 시간과 국소 시간을 실질적으로 구분할 방법이 없다면서 적어도 전기동역학에서는 동등하게 다룰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콘은 "역학적 시계"라는 개념을 따로 정의하여, 이들은 갈릴레이 변환에 따른 시간을 읽을 수도 있다고 한 발 물러섰다.
2. 2차 에테르 바람 실험과 수축 가설
한편, 동일하게 생각하면 2차항 수준의 에테르 바람은 검출되어야 정상인데 실제 실험들, 즉 1887년의 마이컬슨-몰리 실험, 그리고 1902/1904년의 레일리-브레이스 실험 등은 모두 실패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로런츠는 에테르가 운동하는 물체에 어떤 역학적 영향을 미쳐서, 그 운동방향으로 물체들의 길이가 "실제로" 축소된다(수직 방향의 영향은 없다)는 수축 가설(contraction hypothesis)을 제시하였다. (1889년 피츠제럴드(Fitzgerald)가 같은 가설을 제시하여 로런츠-피츠제럴드 수축이라고 흔히 불린다.) 에테르에 정지해 있을 때 물체의 길이를 [math(l)]이라 하면, 에테르에 대해 [math(v)]의 속력으로 움직이는 물체의 길이 [math(l')]은 다음과 같다.[math(\displaystyle l' = l\sqrt{1 - \frac{v^2}{c^2}})] |
[math(\displaystyle \frac{l'}{c+v} + \frac{l'}{c-v} = \frac{2lc}{c^2 - v^2}\sqrt{1 - \frac{v^2}{c^2}} = \frac{2l}{\sqrt{c^2 - v^2}})] |
3. 로런츠 변환과 상대성 원리
여기서 전기동역학-광학 문제를 보다 넓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1차, 2차 에테르 바람 실험들이 모두 실패한 것은, 지구와 같은 운동계에서 에테르에 대한 지구의 움직임을 실험적으로 검출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물리학자들은 두 가지의 선택을 할 수 있었다. 하나는, 보다 정교한 2차 에테르 바람 실험이나 3차 이상의 에테르 바람 실험을 통해 에테르 바람의 검출에 궁극적으로 성공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에테르 바람이 검출되지 않는 것이 물리학의 근본적 원리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후자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에테르 바람의 존재는 (에테르에 대한) 정지계와 운동계 사이의 실질적인 차이를 증명하는데, 이것의 검출이 불가능함은 정지계와 운동계를 구분할 실질적 방법이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지계와 운동계는 전기동역학 및 광학적으로 모든 물리법칙이 동일하게 성립해야 한다. 즉, 역학의 상대성 원리가 다시 도입되는 것이다. 푸앵카레가 전기동역학-광학의 상대성 원리를 처음으로 주장한 학자로, "상대성 원리"라는 명칭 역시 사실 1904년 푸앵카레에 의해 처음 도입되었다.물론, 상대성 원리의 부활은 미적으로 만족스러운 해답이지만 다소 도약이 필요했으며, 로런츠는 상대성 원리를 직접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1차 및 2차 에테르 바람 실험이 실패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특별한 좌표 변환을 고안했다. 먼저, 정지계에서 운동계로의 좌표 변환은 고전 역학에서와 같이 갈릴레이 변환이다.
[math(\begin{aligned} t' &= t \\ x' &= x-vt \\ y'&=y \\ z'&=z \end{aligned})] |
[math(\begin{aligned} t^* &= \frac{t'}{\gamma} - \gamma\frac{vx'}{c^2} \\ x^* &= \gamma x' \\ y^*&=y' \\ z^*&=z' \end{aligned})] [math(; \quad \displaystyle \gamma = \frac{1}{\displaystyle \sqrt{1-\frac{v^2}{c^2}}})] |
로런츠의 이론은 에테르 바람을 측정하는 실험들이 실패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전기동역학 이론"이었다. 로런츠는 다양한 가설의 도움으로 전기동역학의 방정식들이 에테르의 흐름이 숨겨지도록, 지구의 절대 운동이 관찰되지 않도록 만든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하지만 한편으로 로런츠의 이론에는 많은 한계가 있었다. 최대 11개에 달하는, 특정 사실들을 설명하기 위해 임시 변통적으로 도입된 Ad Hoc 가설들로 인해 구조적으로 투명하지 않고 매우 불안정했으며, 상대성 원리를 사실상 받아들였음에도 여전히 각각의 운동계에 에테르에 대한 속도 벡터를 도입하고, 수축 가설이 "에테르에 대한 속도"에 의존한다는 점 등이 인식론적인 맥락에서 흠으로 지적되었다. 이 문제는 1905년 베른의 특허청에서 근무하던 한 무명의 젊은 물리학자가 훌륭하게 해결하였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에 관한 이론의 수정이라는, 사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에 의한 것이었다.
5. 특수 상대성 이론
5.1. 새로운 운동학(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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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새로운 운동학 체계인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했다. |
구축될 이론은 — 다른 모든 전기동역학처럼 — 강체의 운동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각각의 이론이 하는 주장은 모두 강체(좌표계), 시계 및 전자기 과정 사이의 관계를 다루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충분치 못한 고려는 운동체의 전기동역학이 현 시점에서 고심하는 난관들의 근원이 된다.
Die zu entwickelnde Theorie stützt sich — wie jede andere Elektrodynamik — auf die Kinematik des starren Körpers, da die Aussagen einer jeden Theorie Beziehungen zwischen starren Körpern (Koordinatensystemen), Uhren und elektromagnetischen Prozessen betreffen. Die nicht genügende Berücksichtigung dieses Umstandes ist die Wurzel der Schwierigkeiten, mit denen die Elektrodynamik bewegter Körper gegenwärtig zu kämpfen hat.
당시 26세였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이 1905년 6월 30일 물리학 연보(Annalen der Physik)에 제출한 30쪽짜리 논문 "운동체의 전기동역학에 대하여"(Zur Elektrodynamik bewegter Körper)[Einstein(1905)]는 지금까지 소개한 대체적인 흐름과 굉장히 다른 관점에서 전기동역학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그 요점은 시간과 공간에 관한 이론, 즉 운동학(kinematics)의 기반을 새로 세우면 전기동역학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것이다.Die zu entwickelnde Theorie stützt sich — wie jede andere Elektrodynamik — auf die Kinematik des starren Körpers, da die Aussagen einer jeden Theorie Beziehungen zwischen starren Körpern (Koordinatensystemen), Uhren und elektromagnetischen Prozessen betreffen. Die nicht genügende Berücksichtigung dieses Umstandes ist die Wurzel der Schwierigkeiten, mit denen die Elektrodynamik bewegter Körper gegenwärtig zu kämpfen hat.
아인슈타인은 "단 두 가지 가설"을 바탕으로 로런츠 이론이 예측하는 모든 사실들을 그대로 유도하였으며, 이로 인해 로런츠 이론의 불안정했던 기반이 순식간에 단단해졌다. 무엇보다, 이 두 가지 가설은 전기동역학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로런츠 이론에서 나타나는 국소 시간, 수축 가설 등 운동학적 현상들이 물리학 전체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일 수 있었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의 1905년 논문은 갈릴레이의 운동학을 대체하는 새로운 운동학의 탄생이라 할 만하다. 이는 특수 상대성 이론의 형성 과정에서 가장 결정적인 한 걸음이었다.
이러한 급진적인 변화가 가능한 데에는,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원리를 받아들임과 동시에 그간 정지계와 운동계의 구분을 강요했던 에테르 개념을 완전히 제거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에테르는 뉴턴의 절대 공간과 마찬가지로 운동에 위계를 부여하는 개념이었으나, 로런츠가 에테르의 동역학을 전기동역학으로 대체한 것에 이어서 아인슈타인은 에테르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물리학에서 상대성 원리와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은 완전히 사라졌다. 또한 에테르의 제거로 정지계와 운동계의 시간(실제 시간과 국소 시간)은 완전히 동등해지면서 고전적 시간 개념은 비로소 본질적인 변화를 맞게 되었으며, 에테르는 수축 가설의 역학적 원인으로 지목되던 것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 또한 순수 운동학적 현상으로 환원되었다.
5.1.1. 구조
아인슈타인의 해당 논문은 다음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1) 운동학 편 :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가설을 바탕으로 새로운 운동학을 구축한다.
* 상대성 원리 : 뉴턴 역학이 성립하는 좌표계와 그에 대하여 등속 병진 운동하는 좌표계(이하 관성계)에서 모든 물리법칙(특히 전기동역학 및 광학 법칙)은 동일하게 성립한다.
* 광속 불변의 원리 : 관성계에서 임의의 운동 상태를 갖는 광원에서 방출된 빛의 속력은 진공에서 [math(c)]로 동일하다.
* 광속 불변의 원리 : 관성계에서 임의의 운동 상태를 갖는 광원에서 방출된 빛의 속력은 진공에서 [math(c)]로 동일하다.
아인슈타인은 먼저 사건의 동시성에 대해 논의한 후, 광선의 왕복을 통해 동시성이 상대적임을 논증한다. 다음으로 두 원리를 이용해 관성계 간의 좌표변환이 다음과 같음을 논증하였다.
[math(\begin{aligned} t' &= \gamma\left(t-\frac{v}{c^2}x\right) \\ x' &= \gamma\left(x-vt\right) \\ y'&=y \\ z'&=z \end{aligned} ; \quad \displaystyle \gamma = \frac{1}{\displaystyle \sqrt{1-\frac{v^2}{c^2}}})] |
이는 물론 완전한 로런츠 변환이지만 이름을 직접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다음으로 시간 지연 및 길이 수축과 같은 로런츠 변환의 물리적 의미를 밝혀낸다. 특이적으로 여기에서 쌍둥이 역설이 다뤄진다.[13] 마지막으로 상대론적인 속도 덧셈 공식을 유도하고, 속도의 합성이 언제나 광속보다 작음을 보인다.
[math(\displaystyle U = \frac{\displaystyle v+w}{\displaystyle 1 + \frac{vw}{c^2}})] |
2) 전기동역학 편 : 운동학 편의 결과들을 바탕으로 로런츠의 전기동역학을 그대로 유도한다. 먼저 로런츠 변환을 바탕으로 진공 맥스웰 방정식이 불변임을 이용해 전기장과 자기장의 변환식을 유도하고, 기전력과 로런츠 힘의 관계를 논한다. 그 다음으로 상대론적 도플러 효과와 광행차 현상을 다루는데, 여기에서 가로 방향 도플러 효과(TDE)가 처음으로 다뤄진다. 또한 빛의 에너지의 변환, 반사 시 거울에 가해지는 복사압 등 광학 이론을 다룬 뒤, 전하가 있을 때의 맥스웰 방정식의 변환, 마지막으로 느린 전자의 동역학에 대해 다룬다.
5.1.2. 특징 및 발전 과정
- 발전 과정
아인슈타인은 적어도 1898년부터 꾸준히 전기동역학 문제를 연구했고 결론적으로 특수 상대성 이론에 다다른 건 직전의 일이며, 그 전까지 아인슈타인은 7년이 되도록 상대성 이론과 거리가 먼 이론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아인슈타인이 줄곧 전기동역학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한 것은 바로 상대성 원리였다. 그는 1895년 로런츠의 전기동역학 연구로부터 전기동역학 및 광학에서도 [math(v/c)]에 대한 1차항 수준에서는 상대성 원리가 성립한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물론 이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설명은 상대성 원리가 "정확하게" 성립한다는 것이었다. 상대성 원리와 관련하여 아인슈타인이 제시하는 몇가지 사고실험은 전기동역학에서의 상대성 원리 문제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 빛을 쫓는 문제
1946년 저서 "Autobiographical Notes"에서,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16살(1896년)일 때 떠올렸던 한 사고실험을 설명했는데, 이는 특수 상대성 이론이 제기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담고 있다.만약 내가 속력 [math(c)](진공에서의 광속)의 빛줄기를 쫓아간다면, 이 빛줄기는 공간 상에서 진동하는, 정지한 전자기장으로 보여야 한다. 하지만 경험이나 맥스웰 방정식을 비추어 보았을 때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내게 직관적으로 분명했던 것은 그러한 관찰자의 입장에서 판단했을 때 모든 것이 지구에 정지한 관찰자에 대한 것과 동일한 법칙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첫번째 관찰자가 스스로 빠른 속도로 병진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거나, 판단할 수 있을까? 이 역설에 이미 특수 상대성 이론의 싹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문제는 아인슈타인의 가장 유명한 사고실험 중 하나이며, 그 자체로는 굉장히 단순하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접근해보면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한 가설에 의하면, (후술하겠지만)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견하기 전, 즉 시간과 공간의 이론을 수정하는 선택을 하기에 앞서 상대성 원리를 직관적으로 만족시키기 위해 뉴턴의 입자설처럼 빛의 속력이 광원에 의존하는 방출 이론(emission theory)을 심도 있게 연구했는데, 이 사고 실험은 방출 이론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고 여겨진다. 이 문제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다음을 참고. (John D. Norton, "Chasing a Beam of Light: Einstein's Most Famous Thought Experiment" #) - 자석과 도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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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석과 도체 문제(magnet and conductor problem)는 패러데이의 유도 전류 실험의 연장선 상에 있는데, 이 실험은 두 가지 방식으로 행할 수 있다. 편의상 에테르에 대해 정지한 가상의 좌표계를 정지계라 하자. 정지계에 도체를 가만히 두고 그곳에 자석을 접근시키면 유도 기전력(전기장)이 발생하고 도체에 전류가 흐른다. 반대로, 정지계에 자석을 가만히 두고 도체를 접근시키면 이번에는 도체 속 자유전하들이 자기력을 받아 가속하면서 마찬가지로 전류가 발생한다. 두 상황은 분명 설명이 완전히 다르기에, 서로 구분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측정가능한 물리량, 즉 전류의 크기는 동일하게 예측된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떤 것이 에테르에 대해 정지해 있는지 알 수 있을까?
이 문제를 정지계와 운동계의 문제로 바꿀 수 있다. 당시에는 맥스웰 방정식, 즉 전기정역학이 정지계에서만 성립한다고 여겼으며, 따라서 올바른 풀이를 제공하는 것은 오로지 정지계 뿐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서는 좌표계의 속도를 임의로 잡아도 우연히 같은 답을 얻으므로, 사실 무엇이 올바른 풀이였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정말로 우연일까? 당시 물리학자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인슈타인은 이것이 전기동역학에도 상대성 원리가 성립함을 보여준다고 굳게 믿었고, 논문이 완성될 때까지 줄곧 연구의 기준점으로 삼았다.
아인슈타인은 일찍이 이러한 사고실험에 중점을 두고, 추가로 피조의 실험과 광행차 현상에도 영향을 받아 상대성 원리가 고전역학뿐만 아니라, 전기동역학과 광학에서도 정확하게 성립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편 상대성 원리는 여러 운동 상태의 기준계가 모두 물리적으로 동등함을 의미하므로, 어떤 특정한 운동상태를 가정하는 에테르 이론과 맞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론에서 에테르 개념을 배제했다.이 시점에서 아인슈타인은 당시 가장 성공적이던 맥스웰-로런츠의 전기동역학에서 한 가지 중대한 문제점을 짚었다. 바로 진공에서의 광속이 광원의 운동 상태와 관계 없이 항상 같다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어 광원 기준계에서 속력 [math(c)]의 빛을 방출하면 광원에 대하여 [math(v)]의 속력으로 움직이는 다른 계에서는 [math(c+v)]의 빛으로 보일 것이며, 따라서 좌표계의 운동상태에 따라 위와 같은 법칙은 적어도 기준 속력의 값이 달라지므로, 상대성 원리와 충돌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공간 속에 퍼져서 빛의 속성을 결정한다고 여겨지던 에테르 개념을 제거한다면 전파 속력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광원밖에 없었다.
이러한 점에 입각해 초창기의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력이 광원에 의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런 종류의 이론을 빛의 방출 이론(emission theory)이라 하며, 당시 아인슈타인은 맥스웰의 파동 이론을 대체하기 위한 다양한 방출 이론을 시도하면서 많은 시간을 소비하였다. (뉴턴의 입자설이 대표적인 방출 이론으로, 이 단계에서 아인슈타인이 광양자 가설을 떠올렸다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방출 이론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모든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으며 결국 맥스웰-로런츠의 이론으로 돌아왔다. 이후, 그의 작업은 상대성 원리와 광속의 불변성을 어떻게든 조화시키는 문제로 수렴했다. 하지만 둘은 아무리 보아도 서로 모순인 것처럼 보였고, 아인슈타인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7년 간(1898-1905)의 헛되었던 고민 끝에, 해결책은 갑자기 나를 찾아왔다. 공간과 시간에 대한 우리의 개념과 법칙은 우리의 경험과의 명확한 관계 위에 세워진 뒤에야 그 타당성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이들 개념과 법칙에 충분히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동시성의 개념을 보다 가변적인 것으로 수정한 이후, 그렇게 나는 특수 상대성 이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Nach siebenjährigem vergeblichem Nachdenken (1898-1905) kam mir plötzlich die Lösung mit dem Gedanken, daß unsere Begriffe und Gesetze über Raum und Zeit nur insofern Geltung beanspruchen dürfen, als sie mit den Erlebnissen in klaren Beziehungen stehen, und daß die Erfahrung sehr wohl dazu führen könne, daß wir diese Begriffe und Gesetze abändern. Durch eine Revision des Begriffes der Gleichzeitigkeit unter gestaltbarer Form gelangte ich so zur speziellen Relativitätstheorie.[14]
논문이 완성되기 불과 5~6주 전, 아인슈타인은 고전적인 운동학이 아닌 다른 종류의 운동학이 가능하며,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해법은 시간과 공간의 성질을 선험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실제 측정 과정(경험)에 의존해 조작적으로 정의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아인슈타인은 동시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정의를 했는데, 이 과정은 푸앵카레가 로런츠의 국소 시간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과 일치한다. 먼저 두 점 와 가 있을 때, 에서 빛을 쏘아 에서 반사시켜 다시 에 도달하게 한다. 시간을 동기화하려면, 에서 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에서 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같아야 한다. 즉, 에서 빛이 출발하는 -시간을 , 빛이 에서 반사되는 -시간을 , 빛이 에 돌아오는 -시간을 이라 하면 다음과 같다.Nach siebenjährigem vergeblichem Nachdenken (1898-1905) kam mir plötzlich die Lösung mit dem Gedanken, daß unsere Begriffe und Gesetze über Raum und Zeit nur insofern Geltung beanspruchen dürfen, als sie mit den Erlebnissen in klaren Beziehungen stehen, und daß die Erfahrung sehr wohl dazu führen könne, daß wir diese Begriffe und Gesetze abändern. Durch eine Revision des Begriffes der Gleichzeitigkeit unter gestaltbarer Form gelangte ich so zur speziellen Relativitätstheorie.[14]
[math(\displaystyle t_B - t_A = t_A' - t_B)]
그런데 만약 막대 [math(AB)]가 길이 방향으로 [math(v)]의 속력으로 움직이는 좌표계를 설정하면, [math(t_A, t_B, t'_A)] 사이에는 다음 관계식이 성립한다.
[math(\displaystyle t_B - t_A = \frac{\overline{AB}}{c-v})]
[math(\displaystyle t_A' - t_B = \frac{\overline{AB}}{c+v})]
[math(\displaystyle t_A' - t_B = \frac{\overline{AB}}{c+v})]
이 좌표계에서는 [math(t_B - t_A)]와 [math(t_A' - t_B)]가 일치하지 않으므로, 시계가 동기화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두 좌표계는 시계의 동기화에 대하여 동의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동시성의 상대성(Relativity of Simultaneity)이다. 아인슈타인에게 있어서는 이 발견이야말로 7년 간 고민했던 전기동역학 문제가 일단락되고, 특수 상대성 이론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하이라이트는 로런츠의 전기동역학의 핵심인 로런츠 변환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는 1895년의 완성되지 않은 로런츠 변환만을 알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고, 그는 처음으로 전기동역학적 담론에서 벗어나 로런츠 변환이 순수하게 운동학적인 맥락에서의 관성계 간 좌표 변환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였다. 로런츠에게는 단순 수학적 장치였으며, 푸앵카레에게는 측정의 문제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아인슈타인의 1905년 논문은 특수 상대성 이론의 발단에 있어서 가장 기념비적인 것이었다.
- 아인슈타인 이론과 로런츠 이론의 비교
(1) 로런츠의 이론이 구성적(constructive)이라면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공리적(axiomatic)이다.
(2) 로런츠의 이론은 역학적(mechanic)인 반면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운동학적(kinematic)이다.
로런츠는 프레넬 계수나 길이 수축을 논하기 위해 맥스웰 방정식을 이용해 전자의 거동을 분석하는 등, 미시물리학(microphysics)에 근거한 개별적 접근을 사용했으며, 궁극적으로 이것을 에테르가 전자에 미치는 영향으로 해석하는, 역학적 분석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보조적 가설이 들어갔으며, 구조적인 난잡함으로 인해 이론이 옳은 답을 예측함에도 그의 가설들은 Ad hoc으로 여겨졌다. 상대성 원리에 대응되는, 대응 상태 정리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대응 상태 정리는 전기동역학에 국한되는 논리에 의존하기 때문에, 다른 물리학 분야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2) 로런츠의 이론은 역학적(mechanic)인 반면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운동학적(kinematic)이다.
아인슈타인 역시 상대성 원리를 확신한 이후 처음에는 상대성 원리를 유도하는 구성적인 이론을 시도했으나, 접근 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이를 포기하고 과감하게 상대성 원리(와 광속 불변)를 기본 공리로 하는 이론을 제안하였으며, 최대 11개에 달하던 로런츠의 가설은 2개의 공리로 줄어들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접근을 열역학 법칙에 비유하였다. 3개의 열역학 법칙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카르노와 클라우지우스의 열역학은 기체의 복잡한 미시물리학적 분석에 관심을 두지 않으며 반대로 구성 법칙들을 이용해 기체의 성질을 유도한다. 특수 상대성 이론도 마찬가지로 전기동역학의 복잡한 미시적 분석에 의존하지 않고, 그로부터 유도될 수 있는 일반적 법칙들을 아래에 두어 다른 물리학에서도 그 원칙이 성립함을 쉽게 기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성질로 인해 아인슈타인의 이론에서 프레넬 계수, 길이 수축 등은 그 기전에 대한 역학적 설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운동학적으로 그러한, 즉 추가적 해명이 필요하지 않은 시간-공간의 기초 성질이 된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예견하는 개별 요소들이 이미 선대에 밝혀진 사실들이라도(실제로 전부는 아니지만), 아인슈타인의 업적을 단순 재구성으로 치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뉴턴의 역학 법칙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이미 밝혀진 것들이라도 뉴턴의 업적이 작다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표준적인 물리 이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이미 밝혀진 사실들을 최소한의 가설로부터 가장 합리적인 방식으로 제시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전기동역학에 국한되던 연구들이 다른 분야에도 쉽게 확장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 아인슈타인이 받은 영향
제일 먼저, 로런츠의 이론(특히 수축 가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마이컬슨-몰리 실험의 경우 아인슈타인에게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오늘날의 많은 학자들이 여긴다. (Holton, 1969) 마이컬슨-몰리 실험이 아인슈타인의 두 가설 중 하나인 광속 불변의 원리에 영향을 주었다고 흔히 해석하지만, 이는 사실 관계를 다소 왜곡한 것이다. 1954년 Davenport에게 남긴 아인슈타인의 증언에 따르면, 마이컬슨 몰리 실험의 의의는 2차항 이상에서 전기동역학의 상대성 원리가 성립함을 증명했다는 것인데 그는 이미 그 실험의 결과를 알기 전에 (1차항 수준의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상대성 원리가 옳다고 생각했고, 마이컬슨-몰리 실험은 그 생각에 확신을 주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즉, 아인슈타인에게 시작점이나 전환점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지만, 이를 다시 부정하는 연구도 있다. (Dongen, 2009) 어느 쪽이든 물리학계에서 특수 상대성 이론이 받아들여지는 데에는 마이컬슨-몰리 실험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다음으로, 아인슈타인이 사전에 읽었다고 밝힌 전기동역학 논문은 1차항 수준의 로런츠 변환(상대성 원리)이 도입된 로런츠의 1895년 논문이 유일하다. 이는 1904년 논문의 완전한 로런츠 변환은 알지 못했다는 의미이며, 이 경우 자신이 유도한 좌표 변환에 로런츠의 논문을 인용하지 않은 것은 자연스럽다.[15]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원리를 받아들일 때 상술했듯이 자석과 도체 문제, 피조의 실험, 광행차 현상에 영향을 받았다고 진술했는데 피조의 실험과 광행차는 그 자체만 봤을 때는 상대성 원리와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들은 로런츠가 1895년 전기동역학을 이용해 "1차 에테르 실험의 실패"라는 맥락에서 설명했다는 공통점이 있다.[Norton(2005)]
이외에,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 중 상당수는 이미 전기동역학을 연구했던 여러 학자들의 논문에 흩어져 나타난다. 다른 학자들의 논문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각각의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이 중에 몇몇은 아인슈타인이 관련 저서를 읽었다는 간접적인 증거가 있다.
- 푸앵카레, 알프레드 부헤러(Alfred Bucherer, 1863~1927)는 상대성 원리를 주장하였다.
- 로런츠와 조지프 라머(Joseph Larmor, 1857~1942)는 로런츠 변환을 거의 완성했으며, 푸앵카레는 완전히 완성했다.
- 콘과 부헤러는 에테르 개념을 부정했다.
- 푸앵카레, 콘, 막스 아브하람(Max Abraham, 1875~1922)은 국소시간의 물리적 의미를 파악했다.
- 라머, 콘은 로런츠 변환으로부터 시간 지연을 묘사했다.
- 로런츠와 푸앵카레는 전자의 상대론적 동역학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요소들은 전부 흩어져 있기 때문에 (정답이 없는 상태에서) 정답만 고르는 것부터가 어려운 일이며, 실제로 정답을 모두 골랐더라도 아인슈타인은 공리적 구성이라는 전혀 시도되지 않은 방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업적의 독보성은 분명한 것이다.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아인슈타인처럼 근본적인 운동학을 수정한다는 대담한 시도는 보이지 않았다.[Darrigol(2005)]
물리학 논문 외에 아인슈타인은 데이비드 흄(David Hume)과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의 철학에 영향을 받았다고 수차례 증언했고 실제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있다. 구체적으로, 그는 흄의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A Treatise of Human Nature)를 탐독했다고 밝혔는데, 가장 중요한 대목은 "개념이란 오로지 실제 세계에 대한 경험에 의존해서 세워져야 한다"고 역설한 부분으로 보인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돌파구는 동시성의 개념을 빛 신호의 왕복이라는 경험적인 과정을 이용해 정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술하였듯 아인슈타인이 시간과 공간을 경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막바지에 이르러서이다. Norton은 아인슈타인이 흄의 사상을 수동적이고 제한적인 방식으로 적용했다고 주장하였다. 고전적인 시간-공간 개념 속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한 이후, 자포자기 심정으로 시도한 남은 선택지가 바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바꾸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시도는 상대성 이론이 성립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가 되었다.
5.2. 발전
아인슈타인의 논문이 처음부터 학계에서 전기동역학 문제의 궁극적 해결로 비춰지거나, 로런츠의 전자론을 바탕에 두고 있는 다른 이론들에 비해 크게 우월하다고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이는 1905년 이후 뒤따라오는 상대성 이론의 발전사(특히, 일반 상대성 이론)를 거치며 아인슈타인 중심의 연구 흐름이 분명해지면서 점진적으로 굳어진 후대의 이미지와 재해석에 가깝다. 당대의 이해로는 아인슈타인의 논문이 로런츠의 전자론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유도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져 많은 경우 로런츠-아인슈타인 이론(Lorentz-Einstein theory)이라고 함께 불렸는데, 정작 로런츠와 아인슈타인은 서로의 이론을 대체로 분명히 구분했다. 특히 로런츠는 국소 시간 등의 물리적 해석으로 아인슈타인의 해석을 인용했지만, 자신의 좌표 변환이 시간-공간의 새로운 구조를 나타낸다는 아인슈타인의 해석에 반대했고, 죽을 때까지 고전적인 시간과 공간 개념을 고수하였다. 오해할까봐 덧붙이지만, 아인슈타인과 로런츠는 이 때의 인연으로 둘도 없는 친구이자 학문적 동료가 되었고 로런츠는 아인슈타인에게 여러모로 정신적인 스승 역할을 했다.그의 여동생의 증언에 의하면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논문이 물리학 연보에서 받아들여질지 조마조마했다고 하며, 결국 논문이 출판되자, 즉각 어그로를 끌 수 있을 것이라 설레하면서 여러 반응을 상상했으나 다음 물리학 연보에서 언급조차 없자 엄청나게 실망했다고 전해진다. 오랜 기다림 끝에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로 여겨지던 막스 플랑크(Max Planck)가 편지를 보내 그의 논문에 관심을 표하자 아인슈타인은 뛸듯이 기뻐했다고 한다. 플랑크는 아인슈타인과 서신으로 몇 차례 교류를 나누었고, 자신이 있던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주최하였다.
흥미롭게도 로런츠-아인슈타인 이론이 처음 마주한 반응은 저명한 물리학자 카우프만(W. Kaufmann)이 실험적으로 부정했다는 것이다. 당시 이들의 이론은 로런츠-피츠제럴드 수축(길이 수축)을 부정한 막스 아브라함(M. Abraham)의 이론과 경쟁중이었고, 카우프만은 전자의 경로를 정밀하게 측정한 결과 아브라함의 예측이 보다 정확하다고 결론을 지었다. 그러나, 향후 재차 검증 결과는 로런츠-아인슈타인 이론의 손을 들어주었다.
초창기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과 여러 물리학자들은 상대성 이론을 계속해서 발전시켰다. 아인슈타인은 9월 후술할 에너지의 방출이 질량의 감소로 이어진다는 후속 연구([math(E=mc^2)])를 제출했는데, 이는 고전 역학이 상대성 이론에 의해 어떻게 수정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첫 논문으로 평가된다. 아인슈타인은 이 결과를 특수 상대성 이론의 최대 결과 중 하나로 여겼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보강된 증명을 내놓았다. 이후 막스 플랑크는 1906년 고전 역학의 힘이 상대론적으로 불변하도록 확장하였고, 아인슈타인은 다시 1907년 리뷰 논문에서 중력을 설명하기 위한 등가 원리를 도입하였으며, 헤르만 민코프스키는 1908년 시간과 공간을 통합한 4차원 시공간 개념을 제안하였다.
1907년 막스 폰 라우에(Max von Laue)는 아인슈타인이 놓쳤던 프레넬 계수 문제를 설명했는데, 프레넬 계수는 광학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었으므로 이것이 상대성 이론에서 어떻게 설명되는지를 자세히 살펴보자. 굴절률이 [math(n)]인 매질 내에서 빛의 속력은 [math(\displaystyle \frac{c}{n})]이다. 매질이 (빛이 진행하는 방향으로) [math(v)]의 속력으로 움직이고 있는 기준계를 선택하면, 이 기준계에서 빛의 속력, 그리고 그것을 ([math(v/c)]에 대한) 1차 전개를 구하면 다음과 같다.
[math(\begin{aligned} \displaystyle \frac{\displaystyle \frac{c}{n} + v}{\displaystyle 1 + \frac{v}{cn}} &\approx \left(\frac{c}{n} + v\right)\left(1 - \frac{v}{cn}\right) \\ &\approx \frac{c}{n} + \left(1 - \frac{1}{n^2}\right)v \end{aligned})] |
프레넬 계수의 정체는 상대론적 속도 덧셈 공식이었던 것이다. 갈릴레오 변환에서는 매질과 빛의 속도가 덜 더해진 것처럼 보였기에, 프레넬은 에테르가 매질에 이끌린 것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피조의 실험은 고전 역학 안에서 에테르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대론에서는 에테르 없이 순전히 운동학적으로 유도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로런츠가 이미 1895년 사실상 같은 과정을 거쳐 유도를 했고 그 자체로는 매우 중요한 성과였지만, 로런츠는 이것이 에테르에 의해 빛의 진행속력이 영향을 받은 역학적 결과로 해석하였다. 설명력에 있어서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한 단계 진보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5.2.1. 질량-에너지 동등성(1905)
질량-에너지 동등성은 질량이 에너지로 변환될 수 있고, 에너지가 질량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말한다. 대표적인 현상이 핵분열과 핵융합, 그리고 쌍생성-쌍소멸이다. 1932년 콕크로프트와 월턴이 핵반응에서 나온 입자들의 에너지가 전체 질랑변화와 같다는 것을 보이면서 질량-에너지 동등성이 성립함을 증명한다.물체의 관성(질량)이 전자기 에너지로 표현될 수 있다는 개념은 1905년 이전부터 꽤 자주 논의되었고, 푸앵카레도 그 중 한 명이다. 이러한 논의들을 바탕으로, 1900년 초반에는 모든 물질적 과정이 전자기 과정으로 해명될 수 있다는 사조가 특히 괴팅겐 대학을 중심으로 발생했다. 여기에는 헤르만 민코프스키, 막스 아브라함, 훗날 일반 상대론에 기여한 다비트 힐베르트 등이 포함된다.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지 3개월 뒤 "물체의 관성은 에너지 함량에 의존하는가?"(Ist die Trägheit eines Körpers von seinem Energieinhalt abhängig?)라는 논문에서 유사한 주제를 다루었다. 여기에서 아인슈타인은 양쪽 방향으로 방사되는 복사 과정을 이용해 물체의 관성이 복사 에너지의 방출량에 비례해 감소한다는 결론을 유도했다. 그리고 특별한 설명 없이 이러한 설명이 모든 유형의 에너지에 적용된다고 논의를 확장하였다. 일반적으로 아인슈타인의 해당 논문이 실제로 질량-에너지 동등성에 대한 완전한 증명을 내놓았다고 여겨지지는 않으며 이후에도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많은 학자가 후속 연구로 논리를 강화했다. 다만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론을 바탕으로 "임의의" 에너지와 질량의 관계를 탐색한 첫 학자로 여겨진다.
질량-에너지 동등성을 놓고 처음에는 질량이 운동에너지에 비례해 증가한다(상대론적 질량)고 해석하였지만, 나중에는 질량은 정지질량만으로 한정하는 추세로 바뀌었다.
5.2.2. 4차원 시공간(1908)
|
헤르만 민코프스키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 4차원 시공간 개념을 발견했다. |
민코프스키가 발견한 것은 시공간의 계량(metric) 구조, 쉽게 말하자면 기하학적 구조이다. 간단하게 언급하면
좌표공간에서 두 점 사이의 거리는 피타고라스 정리에 따라
[math(d^2=x^2 + y^2 + z^2)]
이라는 공식으로 구할 수 있는데, 이러한 표현은 직교좌표계 사이의 회전변환에 대해 불변이다. 한편 4차원 시간-공간에서는
[math(d^2=c^2dt^2 - dx^2 - dy^2 - dz^2)]
라는 식이 로런츠 불변이었다. 그렇다면 시공간에서 관성계는 직교좌표계에 해당하고, 로런츠 변환은 회전변환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math(d^2)]은 바로 시공간 위 두 점 사이의 거리의 제곱이 된다! 이것을 시공간 간격(spacetime interval)이라고 한다. (두 점 사이의 관계에 따라 음수, 양수, 또는 0이 되므로 부호는 필요에 따라 바꿔줘야 한다.) 민코프스키는 이런 사유과정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합쳐서 진정 고유의 기하학이 존재하는 하나의 4차원 공간인 "시공간"으로 다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을 이용하면 물리법칙은 모두 로런츠 불변이므로, 이따가 다시 등장하는 좌표계와 무관한 기하학적 양들, 즉 텐서들을 물리법칙에 대응시킬 수 있다. 가장 간단한 예로, 아까 로런츠 불변이라고 말한 고유 시간은 특정 경로를 잘게 쪼갠 다음, 각 구간에서 두 점 사이의 ‘시공간 간격’의 제곱근(거리 제곱이었으니까)을 모두 더한 것이다. 물체가 [math((0, 0) \rightarrow (t, tv))]로 직선 상을 운동했다면 고유시간은 [math(\sqrt{c^2t^2-t^2v^2}=c\sqrt{1-\biggl(\dfrac{v}{c}\biggr)^2}t)]가 된다. 시간 단위로 맞추고 싶으면 c로 나누면 된다. 두 점 사이의 거리는 두 점을 잇는 벡터의 크기이기도 하며 당연히 좌표계에 무관한 양이 될 것이다.
이외에 (중력을 제외한) 물질들의 질량, 에너지, 압력 등을 모두 집어넣은 스트레스-에너지 텐서, 전기장과 자기장을 합친 패러데이 텐서 등도 민코프스키의 기초작업에 의해 함께 도입되었다. 결국 나중에 가서는 일반상대론으로 넘어가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하게 되지만, 아인슈타인은 아직 이것들을 다룰 수 있는 수학을 배우지 못한 상태였다. 또한, 일반상대론에서는 좌표변환이 완전히 자유롭지만, 특수상대론에서는 로런츠변환만 허용되므로 이 때 도입된 텐서들은 관성계에 한정된 꼴이다.
5.3. 실험적 검증
5.3.1. 아이브스-스틸웰 실험(1938)
상대론적 도플러 효과, 특히 가로 도플러 효과(Transverse Doppler Effect)를 검증한 실험으로, 이는 아인슈타인이 1905년 원 논문에서 유도한 것이었다. 상대성 이론의 시간 지연 효과(로런츠 부스트)를 처음 검증한 중요한 실험으로 여겨진다.5.3.2. 하펠-키팅 실험(1971)
두 제트기에 원자 시계를 싣고 지구를 돌아 시간 지연 현상을 검증한 실험.#!if version2 ==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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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ck(1906b)] M.Planck, "Die Kaufmannschen Messungen der Ablenkbarkeit der β-Strahlen in ihrer Bedeutung für die Dynamik der Elektronen, Physikalische Zeitschrift 7 (21): 753–761(Read in September 19, 1906.)" wikisource(Deutsch)wikisource(English)[Planck(1906a)] M.Planck, "Das Prinzip der Relativität und die Grundgleichungen der Mechanik", Verhandlungen Deutsche Physikalische Gesellschaft. 8, pp. 136–141.wikisource(Deutsch)wikisource(English)[Einstein(1907)] A. Einsten, "Bemerkungen zu der Notiz von Hrn. Paul Ehrenfest: "Die translation deformierbarer Elektronen und der Flächensatz"; Annalen der Physik 23(1907): 206—208 Collected Papers of A. Einstein, princeton[Einstein(1910)] A. Einsten, "Le principe de relativité et ses conséquences dans la physique moderne" Archives des Sciences physiques et naturelles, Quatrième période, 29 (Jan/Feb 1910):5—28 ; 125—144 Collected Papers of A. Einstein, princeton[5] einstein on the theory of relativity, Collected Papers of A. Einstein, princeton, Volume 2. 254—274 #[Einstein(1913)] A. Einstein & M. Grossmann, "Entwurf einer verallgemeinerten Relativitätstheorie und einer Theorie der Gravitation ; I. Physikalischer Teil von Albert Einstein. II. Mathemathischer Teil von Marzel Großmann." Leipzig & Berlin: B. G. Teubner (1913) : 38pp. #[Einstein(1915)] Einstein, A. (1915). Zur allgemeinen Relativitätstheorie,Sitzungsber. Preuss. Akad. Wiss.,2, 778Collected Papers of A. Einstein, princeton(Deutsch)[Kretschmann(1917)] Erich Kretschmann, 1917. Über den physikalischen Sinn der Relativitätspostulate. A. Einsteins neue und seine ursprüngliche Relativitätstheorie. Annalen der Physik 53: 575–614.[Cartan(1923)] Élie Cartan , "Sur les variétés à connexion affine et la théorie de la relativité généralisée (Première partie)", Annales Scientifiques de l'École Normale Supérieure, 40 (1923) : 325#[10] 단, [math(t, x)]는 갈릴레이 변환에 의한 운동계의 시간 및 공간 좌표이고, 이 국소 시간은 [math(v/c)]에 대한 1차 근사이다.[Darrigol(2005)] [Einstein(1905)] A. Einstein, 1905, "Zur Elektrodynamik bewegter Korper", Annalen der Physik 17, pp. 891-921[13] 단, 이 때 아인슈타인은 이것이 역설인지도 모른채 짧고 쉽게 해결하고 넘어갔으며 쌍둥이 역설이 본격적으로 "역설로서" 다뤄진 것은 1911년 랑주뱅(P. Langevin)에 의한 것으로 여겨진다.[14] 아인슈타인이 1924년 2월 6일 했던 발언에 대한 녹취록의 일부로, Friedrich Henreck의 아인슈타인 평전(1966)에 수록되어 있다.[15] "로런츠 변환"이라는 이름은 푸앵카레의 1905년 6월 논문에서야 처음 등장한다.[Norton(2005)] John D. Norton, "Discovering the Relativity of Simultaneity, How did Einstein take "The Step"?" https://sites.pitt.edu/~jdnorton/Goodies/rel_of_sim/index.html[Darrigol(2005)] Oliver Darrigol, "The Genesis of the Theory of Relativity", S´eminaire Poincar´e 1 (2005) 1 – 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