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토머스 스케일스 Thomas Scales | |
생몰년도 | 1397년경 ~ 1460년 7월 25일 | |
출생지 | 잉글랜드 왕국 미들턴 | |
사망지 | 잉글랜드 왕국 런던 | |
아버지 | 로버트 스케일스 | |
어머니 | 엘리자베스 바돌프 | |
형제 | 리처드 | |
아내 | 에스마니아 월리스버그 | |
자녀 | 토머스. 엘리자베스 | |
직위 | 스케일스 남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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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장군. 백년전쟁에서 프랑스군과 맞섰다.2. 생애
1397년경 잉글랜드 왕국 미들턴에서 제5대 스케일스 남작 로버트 스케일스와 제4대 바돌프 남작 윌리엄 바돌프의 딸인 엘리자베스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1418년 7월 형이자 제6대 스케일스 남작인 로버트 스케일스가 자녀를 낳지 못한 채 사망한 뒤 스케일스 남작 칭호와 재산을 물려받았다. 1422년 노르망디로 이동한 뒤 베드퍼드 공작 존의 지휘를 받았고, 1423년 베르뇌유 성의 대장에 선임되었다. 1424~1425년 존 파스톨프와 함께 프랑스군으로부터 메인에 있는 요새들을 공략하는 임무를 수행했으며, 1425년 가터 기사단의 기사가 되었다.1427년 퐁토르송 공방전에 참여했으며, 1428년 12월 오를레앙 공방전을 치르는 잉글랜드군 사령관 중 한 명으로 선임된 뒤 작전을 수해얬다. 도중에 수비대와 소규모 접전을 치르다가 체포된 뒤 몸값을 지불하여 석방되었다. 이후 잔 다르크의 활약으로 오를레앙 공략이 실패한 뒤 뒤이은 루아르 원정에서 프랑스군에 맞섰지만 속절없이 밀려났고, 파테 전투에서 아군의 참패를 막지 못하고 생포된 뒤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났다. 1430년 9월 기사단 부대의 대장에 선임된 뒤 1431년 루비에르 공방전에 참여했고, 알랑송 공작 장 2세 달랑송과 맞서는 브르타뉴 공작 장 5세 드 브르타뉴를 도우라는 베드퍼드 공작의 지시를 받들어 브르타뉴로 파견되었다.
이후 동프롱(1433), 생로(1435), 그랑빌(1441)의 대장을 역임했으며, 1435년 7월 존 탈보트, 로버트 윌러비와 함께 생드니를 포위해 10월에 공략했다. 또한 1436년까지 260명의 기병과 780명의 궁수로 구성된 분견대를 지휘하는 노르망디 야전 사령관 직을 수행했다. 1439년에는 프랑스 영토로부터 몽생미셸 성을 분리하기 위해 그랑빌에 요새를 세웠지만, 1442년 몽에 주둔한 프랑스군이 그랑비를 기습 공격해 공략했다. 이후 잉글랜드로 돌아간 그는 1450년 잭 케이드의 난을 진압하는 데 참여했다. 그 후 장미 전쟁이 발발했을 때 랭커스터 왕조를 지지했다. 1460년 7월 2일 요크군이 런던에 입성하자, 런던 탑의 대장이었던 토머스는 그곳에서 농성하면서 런던 시내를 향해 대포를 퍼부었다. 그러다가 7월 25일에 런던 탑이 합락되었고, 그는 분노한 민중에게 심한 폭행을 당한 끝에 살해되었다.
토머스는 생전에 이스메인 웨일스버그(Ismayne Whalesburgh)라는 여자와 결혼했다. 아들 토머스는 유아기에 사망했고, 딸 엘리자베스(? ~ 1473)는 초대 에식스 백작 헨리 부르시에의 둘째 아들인 헨리 부르시에와 첫번째로 결혼했고, 2대 리버스 백작 앤서니 우드빌과 재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