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Todd Christopher Kohlhepp[1]1971년 3월 7일~
미국의 연쇄살인범.
2. 생애
1971년 플로리다 포트로더데일에서 태어났고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활동하였다. 7명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본인에 따르면 더 많이 살해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입증이 되진 않았다.콜헵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했으며 양육권을 얻은 어머니는 이듬해 다른 남자와 재혼했다. 나중에 심리학 보고서에 따르면 콜헵은 양아버지와 불륜 또는 근친상간 관계를 갖고 있었고 종종 만나지 못한 친아버지와 함께 살고 싶어했다고 한다.
콜헵이 다니던 보육원에서 그는 다른 아이들에게 공격적이고 그들의 물건을 파괴하는 등 상당히 폭력적이고 말썽꾸러기인 아이였다. 9살 때 상담을 받기 시작했을 때 콜헵은 "폭발적이고 성적인 내용에 사로잡힘"이라고 묘사되기도 했다. 그는 또한 장난감 총으로 개를 쏘고 표백제를 사용하여 금붕어를 죽이는 등 동물 학대까지 벌였다. 이는 연쇄살인범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1983년, 어머니와 양아버지가 이혼한 후 콜헵은 친아버지가 있는 애리조나로 보내졌다 . 그는 아버지의 무기 수집 취미를 물려 받았으며 아버지로부터 "물건을 폭파하고 폭탄을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어릴때부터 함께 살고 싶어 했던 아버지였지만, 자주 집을 비우던 아버지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는 악화되었고, 콜헵은 어머니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했지만 어머니는 갖가지 이유를 대며 콜헵을 데려오지 않았다. 그 사이인 1986년에 콜헵은 첫 범행을 저질렀고, 그는 피해자의 신고로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되었고, 복역 중 치른 IQ 테스트에서는 118 이상을 기록했다고 한다.
출소 후 그는 센트럴 애리조나 대학(Central Arizona College)에 다니고 컴퓨터 과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2002년 1월부터 2003년 11월까지는 한 회사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고 2003년에는 그린빌 테크니컬 대학(Greenville Technical College)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는 두 번째 범행을 저질렀다. 다음해에는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교로 편입하여 2008년에 경영학 - 마케팅 학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감옥에서 치른 IQ 테스트에서도 보여지듯 범행과는 별개로 상당히 머리가 좋았던 모양.
첫 범행으로 인해 성범죄자로 등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콜헵은 중범죄 혐의에 대해 거짓말을 한 후 2006년 6월 30일에 부동산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그는 12명의 에이전트를 고용하는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직업적 재능까지 있었는지 그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지역에서 가장 매물을 잘 파는 에이전트로 인정받기도 했다.[2] 콜헵은 개인 조종사 면허, 그리고 주 외각의 부동산까지 소유하고 있었다.
자신의 집을 콜헵의 회사에 판매한 한 고객은 그를 매우 외향적이고 전문적인 사람으로 기억했지만, 그가 종종 자신의 총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때로는 대화 중에 성적 농담을 즐기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반대로 콜헵의 직원 중 한 명이었던 한 여성은 그가 늘 거만한 태도였으며 자신의 남편에 대해 화를 낸 적도 있었다고 밝혔다. 콜헵과 함께 일했던 또 다른 직원은 콜헵이 직장에서도 종종 포르노 비디오를 시청했다고 말했다.
3. 범행
콜헵의 첫 범행은 1986년 11월 25일, 고작 15세 였을 당시에 애리조나주 템피 에서 14세의 크리스티 그라나도(Kristie Granado)를 22구경 리볼버로 위협하여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테이프로 입을 막은 뒤 강간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라나도의 신고로 체포되어 15년형을 선고받았다.콜헵은 첫 범행 이후 17년이 지난 2003년 11월 6일,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소도시 체스니에 위치한 오토바이 상점에서 4명을 총으로 살해했다. 피해자는 가게 주인 스콧 폰더(30세, Scott Ponder), 서비스 관리자 브라이언 루카스(29세, Brian Lucas), 정비공 크리스 서버트(26세, Chris Sherbert), 폰더의 어머니이자 장부 담당자 베벌리 가이(52세, Beverly Guy)였다. 네 명 모두 다발성 총상으로 사망했다. 이 사건은 콜헵의 체포까지 미제사건으로 남아있었으며 이후 콜헵의 자백으로 인해 해결되었다.
피해자 스콧 폰더의 아내에 따르면 콜헵은 매장을 자주 찾았던 일명 블랙리스트 고객이었으며, 콜헵의 어머니에 의하면 그가 그곳에서 오토바이를 반납하려 했을 때 직원들은 그를 비웃었고, 오토바이 값으로 지불한 돈을 돌려주지 않았고, 타는 방법을 모른다는 이유로 그를 조롱했었던 적이 있다고 한다.
다시 13년이 지난 2016년 8월 31일, 칼라 브라운(30세, Kala Brown)과 그녀의 남자친구 찰리 데이비드 카버(32세, Charles David Carver)가 콜헵의 부동산 중 한 곳의 덤불을 제거하러 갔다가 실종되었다. 카버는 나중에 그 장소에서 여러 발의 총상으로 사망 한 채 발견되었다. 브라운과 카버의 실종 이후 카버의 페이스북 계정에 게시물이 게시되면서 브라운과 카버의 실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수사관들이 부부의 마지막 휴대전화 신호를 추적한 뒤 그녀를 추적했고, 11월 3일, 경찰은 브라운이 한 건물의 놓인 컨테이너 벽에 사슬로 묶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칼라 브라운의 구조 장면은 경찰 바디캠으로 고스란히 녹화되었다. 부부의 차는 얼마 후 콜헵의 땅에서 발견되었다.
브라운은 감금 기간동안 카버가 총에 맞아 사망하는 것을 모두 목격했고, 수 회 강간도 당했었다고 진술했다.
11월 6일 콜헵이 체포된 후 그의 사유지에서 또 다른 시신 두 구가 발견되었다. 이들은 2015년 12월 22일 실종 신고된 스파르탄버그 주민 부부 조니 조 콕시(29세, Johnny Joe Coxie)와 메건 리 맥크로-콕시(26세, Meagan Leigh McCraw-Coxie)로 확인됐다. 그들은 콜헵의 부동산 중 한 지역의 관리자로 콜헵에게 고용되었었다. 아내 맥크로-콕시는 12월 25일 또는 26일에 머리에 총상을 입어 사망했고, 조니 조 콕시는 맥크로-콕시의 사망 일주일 전에 몸에 총상을 입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콜헵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토드 콜헵과 10년간 사귀어온 홀리 유디는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평소에는 무척 다정한 남자친구였다고. 그런데 콜헵은 자신의 여자친구도 여차하면 살해할 준비를 해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