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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5 14:50:54

테살로니카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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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살로니카 왕국
Regnum Thessalonicae
파일:테살로니카 왕국 국기.svg 파일:640px-Kingdom_of_Thessalonica_arms.png
국기 국장
파일:1204년의 강역.png
옅은 감청색으로 칠해진 부분이 테살로니카 왕국의 영역이다.
1204년 ~ 1224년
수도 테살로니카
위치 그리스 트라키아와 테살로니카, 테살리아 일대
정치 체제 전제군주제
국가 원수
언어 중세 이탈리아어, 중세 그리스어, 라틴어
종교 가톨릭 (국교), 정교회
종족 프랑크인, 로마인
건국 이전 앙겔로스 왕조 동로마 제국
멸망 이후 이피로스 전제군주국
언어별 명칭
라틴어 Regnum Thessalonicae
이탈리아어 Regno di Tessalonica
그리스어 Βασίλειον τῆς Θεσσαλονίκης

1. 개요2. 역사3. 역대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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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204년 동로마 제국을 일시적으로 멸망시킨 십자군의 지휘관 보니파초 1세가 건국한 왕국. 명목상으로는 라틴 제국의 봉신국이었지만, 실제로는 독립적으로 아테네 공국, 아카이아 공국 등을 봉신국으로 거느렸다. 그러나 불가리아 제2제국이피로스 전제군주국의 침공으로 쇠락하다가 1224년 이피로스에게 멸망당했다.

2. 역사

1204년 4월 13일, 십자군베네치아 공화국 연합군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략하고 동로마 제국을 일시적으로 멸망시켰다. 그 후 그들은 무너진 제국의 잔재들을 나눠가졌다. 베네치아는 이피로스, 두라초, 코르푸 등 3/8의 영토를 가졌고, 나머지 5/8은 라틴 제국의 관할이 되었다. 몬페라토 변경백 보니파초가 유력한 황제 후보였지만, 베네치아인들은 그의 동생 콘라드 1세가 일찍이 동로마 황제 이사키오스 2세의 딸과 결혼한 전적이 있었고, 세력이 너무 강해서 자국에 위협적인 존재가 되리라 판단했다. 그래서 그들은 보두앵 6세 드 에노를 황제로 추대했고, 보니파초를 경계하던 다른 십자군 인사들도 동의하면서 보두앵 1세가 라틴 제국 초대 황제로 등극했다.

보니파초는 마지못해 이를 받아들이고 동로마 제국의 두번째 도시인 테살로니카로 갔다. 그는 1204년 후반에 테살로니카를 공략한 뒤, 1180년 자신의 남동생 레니에르마리아 콤니니와 결혼했을 때 테살로니키를 지참금으로 받았다고 주장하며 자신만의 왕국을 건국했다. 명목상으로는 라틴 제국에 종속되었지만, 실제로는 독립국으로서 발칸 반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트라키아, 테살리아, 마케도니아 해안 지대가 왕국의 직할령이었고, 보니파시오의 도움으로 건국될 수 있었던 아카이아 공국아테네 공국이 봉신을 자처했으며, 이피로스 전제군주국의 초대 데스포티스 미하일 1세 콤니노스 두카스도 초기에는 테살로니카 왕국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공물을 바쳤다. 여기에 보스포루스 해협 동쪽에 있는 모든 영토와 크레타까지 소유했지만, 나중에 크레타를 보두앵 1세에게 양도했다.

그러나 테살로니카 왕국은 불가리아 제2제국의 차르 칼로얀의 강력한 압박에 시달렸다. 1207년 7월, 보니파초는 라틴 제국 황제 앙리와 협의한 뒤 테살로니카로 돌아가던 중 모시노폴리스에서 불가리아군의 매복 공격을 받아 살해되었고, 그의 머리는 칼로얀에게 전달되었다.

칼로얀은 즉시 테살로니카를 포위공격했지만, 수비대의 저항으로 쉽사리 함락시키지 못하다 1207년 10월 돌연사했다. 차르가 급사하자 불가리아군은 철수하였고, 테살로니카 왕국은 멸망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보니파초의 아들 데메트리오가 뒤를 이었지만, 겨우 2살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오베르토 등 롬바르디아 귀족들이 섭정했다. 그들은 보니파초의 맏아들인 몬페라토의 굴리엘모 6세를 테살로니카로 불러들여 왕위에 앉히고, 보두앵 1세의 뒤를 이어 라틴 황제가 된 앙리에 맞설 음모를 꾸몄다. 이걸 간파한 앙리는 1209년 테살로니카로 진군하여 귀족들을 복종시키고, 동생 유스터스를 데미트리오의 섭정으로 삼았다.

1210년 가을, 앙리가 니케아로 원정을 떠나자, 이피로스 전제군주국의 군주 미하일 1세 콤니노스 두카스는 라틴 제국과 맺었던 평화 협약을 일방적으로 폐기하고 테살로니카 왕국으로 쳐들어가 도모코스 전투에서 라틴 귀족과 용병으로 구성된 적군을 격파했다. 이때 사로잡은 포로 중 최고위 귀족 3명을 십자가형에 처했고, 나머지 포로를 죽이거나 채찍형에 처했다.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이 소식에 격노해 파문을 내렸지만, 그는 이에 개의치 않고 이후에도 테살로니키의 여러 요새를 점령하고 성직자를 포함한 라틴 수비대를 섬멸했다. 앙리 황제는 이 소식을 접하자 격노하여 니케아 제국과의 전쟁을 중단하고 불과 12일 만에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테살로니카로 달려왔다. 그는 불가리아 제2제국과 동맹을 맺어 앙리에 대항했지만 패배했다. 하지만 불가리아가 트라키아를 계속 압박하는데다 니케아 제국도 공세를 가하고 있어서, 점령지를 되찾지 못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앙리가 떠난 뒤, 미하일 1세는 앙리의 동생 유스터스와 연합하여 1211년 펠라고니아에서 불가리아군을 격파해 테살로니카를 당분간 노리지 못하게 하였다. 1212년 테살로니카를 또다시 침공하여 라리사를 함락시키고 라틴 대주교를 폐위시킨 뒤 정교회 지역 교구를 복원했다. 이렇게 새롭게 확보한 영역은 그의 사위 콘스탄티노스 멜리세노스의 영지가 되었다.

1214년 후반 또는 1215년 초 미하일 1세가 암살된 뒤 이피로스의 새 군주로 등극한 테오도로스 콤니노스 두카스는 테살로니카 왕국에 대한 공세를 9년간 꾸준히 이어가 테살로니카 시를 제외한 왕국의 전 영토를 공략했다. 테살로니카 측은 라틴 제국과 베네치아, 그리고 교황에 구원을 호소했고, 교황 호노리오 3세는 이에 응해 테오도로스를 파문하여 아드리아 해 항구에서 말, 군대, 물자에 대한 금수조치를 명했으며, 십자군을 조직하여 이피로스 원정을 단행하려 했다.

비안드라테의 오베르토 2세가 이끄는 십자군 첫번째 부대는 1222년 여름 테살로니키에 도착했다. 이에 테오도로스는 서두르기로 마음먹고, 1223년 초 테살로니키를 완전히 포위했다. 교황은 베네치아와 신성 로마 제국황제이자 시칠리아 왕국 국왕 프리드리히 2세를 독촉하여 테살로니키에 대한 원조를 약속받았다. 호노리오 3세는 그리스 남부 지역의 라틴계 공작들에게도 이에 동참하라고 요구했고, 라틴 제국 황제 로베르도 돕겠다고 약속했다.

십자군은 1224년 3월 브린디시에 집결했고, 그해 4월 세레스를 포위공격했다. 그러나 라틴 제국의 황제 로베르가 2년 전 요안니스 3세와 포이마네논에서 맞붙었으나 참패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전해듣자, 포위망을 풀고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가려 했다. 그러나 그에게 급습당해 대부분의 병사가 죽거나 포로로 잡혔다. 게다가 십자군의 잠재적 지도자인 몬페라토의 굴리에모 6세가 병에 걸리면서, 교황은 십자군의 정식 출정을 내년 봄으로 미뤄야 했다.

십자군이 좀처럼 올 기미를 보이지 않자, 테살로니카 수비대는 1224년 12월 어느 날 항복하기로 결의했고, 테오도로스는 테살로니카 시에 위풍당당하게 입성했다. 1225년 3월 십자군이 드디어 출진하여 테살리아의 할미로스에 상륙했지만, 이질이 돌면서 수많은 병사가 죽었다. 굴리에모 6세 역시 이질로 사망했고, 나머지는 이탈리아로 철수했다. 이로서 동로마 제국의 제2의 도시로 손꼽히는 테살로니카는 이피로스 전제군주국의 수중에 들어갔고, 테오도로스는 자신을 테살로니카 제국의 황제로 칭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환하여 동로마 제국을 부활시키겠다는 야망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한편 데메트리오는 라틴 대주교와 함께 시칠리아에 있던 프리드리히 2세의 궁정으로 도주했다. 그는 프리드리히 2세가 제6차 십자군 원정을 할 때 동행했으며, 테살로니카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프리드리히 2세에게 양도한 후 1230년 아말피에서 사망했다.

몬페라토의 알레라미치 가문은 1284년까지 테살로니카의 왕을 자칭했으며, 1261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축출된 라틴 제국의 마지막 황제 보두앵 2세로부터 "나를 복위시켜주면 테살로니카 왕으로 삼아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부르고뉴 공작 위그 4세의 후손들도 1320년까지 테살로니카 왕을 자칭했다.

3. 역대 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