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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제5호 태풍 셀마 | ||
위성사진 | ||
진로도 | ||
활동 기간 | 1987년 7월 9일 15시 ~ 1987년 7월 16일 15시 | |
영향 지역 | 미크로네시아 연방 북마리아나 제도 괌 필리핀 루손섬 대만 전역 중국 화둥[1], 산둥성 일본 류큐 열도, 본토[2] 대한민국 전역 북한 전역 소련 연해주 | |
태풍 등급 | 4등급[JTWC] | |
10분 등급 | 매우 강한 태풍[JMA] | |
태풍 크기 | 초대형(직경 1,850km) | |
최저 기압 | 915hPa | |
최대 풍속 | 1분 평균 | 67m/s |
10분 평균 | 51m/s | |
피해상황[5] | 사망/실종자 | 345명 |
피해총액 | 3,913억 원[6] |
1. 개요
1987년 7월 9일 15시부터 7월 16일 15시까지 활동했던 슈퍼태풍으로 한반도를 강타하여 막대한 인적 및 재산피해를 입혔고, 대한민국 기상청 역사상 최악의 흑역사를 만들어낸 태풍이다.
2. 진행
이 태풍은 위력도 위력이지만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한때 강풍역(최대풍속 15m/s 이상 범위) 직경이 1,850km에 달했다. 따라서 이 태풍은 한국 기상청(현재기준)과 일본 기상청의 기준으로 초대형의 매우 강한 태풍이 된다.7월 12일경까지 계속 서진한 셀마는 이후 전향하면서 세력이 약해지는 듯 했으나 7월 14일경 재발달하여 한반도를 향해 매섭게 치고 올라왔다. 일본 미야코 섬 서부와 대만 동부를 지난 셀마는 45km/h라는 매우 빠른 이동속도로 제주도 동부 해안을 스쳐 지나가 7월 15일 오후 10시경 전남 고흥반도에 상륙했다. 상륙 당시의 세력은 중심기압 970hPa에 10분 평균 최대풍속은 39m/s에 달하였다. 이후에는 경상도와 강원도 남부를 관통하여 동해상으로 빠져나가 소멸하였다.
==# 진로 경과 #==
<rowcolor=#fff> 발표 시각 | 1분풍속 | 10분풍속 | SSHS | JMA |
7월 6일 21시 | 20kn | - | TD | 미발생 |
7월 7일 3시 | ||||
7월 7일 9시 | 25kn | 30kn | TD | |
7월 7일 15시 | ||||
7월 7일 21시 | ||||
7월 8일 3시 | 30kn | |||
7월 8일 9시 | ||||
7월 8일 15시 | ||||
7월 8일 21시 | 35kn | TS | ||
7월 9일 3시 | 40kn | |||
7월 9일 9시 | 45kn | |||
7월 9일 15시 | 50kn | 45kn | 열대폭풍 | |
7월 9일 21시 | 60kn | |||
7월 10일 3시 | 70kn | 55kn | 1등급 | 강한 열대폭풍 |
7월 10일 9시 | 80kn | 60kn | ||
7월 10일 15시 | 85kn | 65kn | 2등급 | 강한 태풍 |
7월 10일 21시 | 90kn | 75kn | ||
7월 11일 3시 | 100kn | 85kn | 3등급 | 매우 강한 태풍 |
7월 11일 9시 | 110kn | 90kn | ||
7월 11일 15시 | 120kn | 4등급 | ||
7월 11일 21시 | 130kn | 100kn | ||
7월 12일 3시 | 125kn | |||
7월 12일 9시 | 120kn | |||
7월 12일 15시 | ||||
7월 12일 21시 | 115kn | 95kn | ||
7월 13일 3시 | 105kn | 90kn | 3등급 | |
7월 13일 9시 | 95kn | 80kn | 2등급 | 강한 태풍 |
7월 13일 15시 | 90kn | |||
7월 13일 21시 | ||||
7월 14일 3시 | ||||
7월 14일 9시 | 75kn | |||
7월 14일 15시 | ||||
7월 14일 21시 | ||||
7월 15일 3시 | 85kn | 80kn | ||
7월 15일 9시 | 80kn | 1등급 | ||
7월 15일 15시 | ||||
7월 15일 21시[7] | 70kn | 75kn | ||
7월 16일 3시 | 55kn | 60kn | TS | 강한 열대폭풍 |
7월 16일 9시 | 40kn | |||
7월 16일 15시 | 35kn | - | 온대저기압 | |
7월 16일 21시 | 30kn | TD | ||
7월 17일 3시 | - | 소멸 | ||
7월 17일 9시 | ||||
7월 17일 15시 | ||||
7월 17일 21시 | ||||
7월 18일 3시 | ||||
7월 18일 9시 | ||||
7월 18일 15시 | 소멸 및 감시 종료 |
3. 기록
순간최대풍속(m/s) | 제주/전남 | 여수 40.3 완도 32.3 제주 31.0 목포 30.3 서귀포 27.8 광주 21.8 고흥 15.0 해남 10.5 |
전북 | 군산 30.2 전주 14.9 부안 13.0 임실 11.0 | |
경남 | 통영 39.6 부산 39.5 진주 36.4 창원 32.8 울산 30.5 거제 18.0 남해 17.5 밀양 15.0 합천 11.0 | |
경북 | 울진 34.2 울릉 31.6 포항 30.4 대구 26.0 안동 22.8 영천 15.0 영덕 14.0 구미 10.5 | |
충청 | 추풍령 24.5 서산 22.2 청주 21.6 보령 17.0 대전 12.7 천안 10.5 | |
경기/강원 | 강릉 31.8 대관령 31.5 속초 31.1 태백 23.2 인천 22.7 서울 17.5 수원 16.3 춘천 15.2 원주 14.8 |
최대풍속(m/s)[8] | 제주/전라 | 군산 26.7 여수 25.0 목포 24.8 완도 21.0 서귀포 19.3 제주 19.0 성산 15.5 광주 11.3 |
경상 | 울진 27.8 통영 26.7 부산 25.7 창원 25.3 울릉, 진주 17.7 포항 15.7 대구 15.0 울산 14.3 안동 11.7 | |
경기/강원/충청 | 대관령 22.3 속초 20.7 인천 15.2 청주 15.0 서산 14.2 태백 13.7 서울 12.3 강릉 12.0 추풍령 10.0 |
강수량(mm)[9] | 제주 | 제주 190.7 성산 134.5 서귀포 123.9 |
전남 | 고흥 241.9 장흥 198.7 여수 196.3 해남 192.5 순천 187.9 광주 183.3 완도 165.9 목포 123.1 | |
전북 | 남원 129.5 임실 125.5 정읍 122.5 부안 95.1 전주 92.7 군산 67.4 | |
경남 서부 | 산청 299.3 남해 293.5 합천 228.5 거창 212.0 진주 202.3 통영 178.9 | |
경남 동부 | 거제 107.7 창원 159.1 부산 147.9 울산 120.3 밀양 106.0 | |
경북 서부 | 문경 164.8 구미 139.2 영주 121.9 대구 121.0 안동 119.9 의성 95.1 | |
경북 동부 | 영덕 148.5 포항 124.0 울진 114.0 영천 98.0 울릉 63.6 | |
충남 | 보령 170.4 서산 107.4 대전 100.1 금산 99.4 천안 98.5 부여 89.8 | |
충북 | 추풍령 221.4 보은 105.4 제천 102.4 충주 98.0 청주 85.6 | |
강원 | 강릉 270.6 대관령 249.2 태백 197.8 속초 129.4 원주 65.1 춘천 58.2 홍천 52.7 | |
경기 | 강화 95.4 이천 82.5 서울 70.9 인천 64.0 수원 62.5 양평 58.0 |
또한 강원도 동해안에서도 드물게 순간최대풍속이 30 m/s를 넘어섰다. 이 지역은 온대저기압(날씨폭탄)이 내습했을 때 순간최대풍속이 40 m/s를 넘긴 적도 있는 지역이기는 하지만, 열대저기압인 태풍이 내습했을 때는 그러한 적이 드물다. 태풍이 강원도 부근까지 북상하면 이미 힘이 다 빠진 상태여서 바람이 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셀마는 내륙을 관통했음에도 빠르게 이동하여 강원도를 통과했을 때도 세력이 상당 부분 유지되었기 때문에 강원도 동해안에서도 강한 바람이 관측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강수량이 적은 편도 아니었는데, 이는 다르게 말하면 짧은 시간에 매우 강하게 쏟아졌다는 것이다.
4. 기상대의 예보 실패
한국 최악의 태풍으로 기록된 루사와 거의 동일한 경로로 한반도를 관통했고, 주로 개발에서 소외된 지역들에서 큰 피해가 났다. 345명의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했으며 이재민은 10만 명을 넘었다. 이는 1959년 사라, 1972년 베티에 이어 1987년 당시 세 번째로 큰 인명피해다. 2023년 하순 기준으로도 6번째로 큰 큐모이다. 2002년 환산가치로 재산 피해는 6천억 원에 달했다. 태풍의 위험반원에 들어간 전남 지역과 경남 서부, 경북 북부, 강원 영동은 말 그대로 직격탄을 맞았다. 20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으며 40m/s의 돌풍이 몰아쳤다. 셀마는 최전성기 위력이 슈퍼 태풍에 해당하는 1분 평균 최대풍속 67m/s에 달하는 등 그 위력이 매우 강력했기에 남부지방은 1959년 태풍 사라 이후로 큰 피해를 입었다.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 피해가 대한민국 기상대[10]의 억지로 인해 피해가 더 커졌다는 점이다.
7월 10일 셀마가 슈퍼 태풍으로 강화되었을 때, 기상대는 셀마가 한반도를 지나가지 않고 오키나와 해상에서 일본 열도로 간다고 예보했다. 그런데 당시 일본, 태평양의 미 해군, 그리고 다른 국가들도 모두 셀마가 한국을 지나간다고 예보했다. 셀마가 한국을 향해 무섭게 돌진하는 와중에도 오직 한국 기상대만이 셀마가 한반도를 지나가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언론도 기상대의 주장을 그대로 보도했다. 심지어 셀마가 제주도 코앞에 도달했는데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태풍의 바람이 30m/s씩이나 나올거라곤 생각하지 못하고 문과 창문만 잘 잠궈두면 큰 일 없을 약간의 비바람이나 오리라 생각해서 태풍 대비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셀마는 결국 기상대의 예상을 깨고 해외의 예보대로 고흥반도에 상륙했고, 국민들만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셀마는 유독 인명 피해가 큰데, 그 인명 피해의 대다수는 태풍이 오는지 모르고 작업하던 선박들이 좌초하고 침몰하면서 발생했다. 태풍이 올 것을 대비하지 않고 작업하던 산업현장에서도 인명피해가 속출했다. 비록 위력이 강하기는 했지만, 기상대가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주었다면 훨씬 인명피해가 적었을 것이다.
4.1. 기상대의 태풍 경로 조작
잘못을 인정하고 제대로 예보를 해도 모자랄 판에, 기상당국은 태풍의 지나간 경로를 조작(!)해서 "태풍은 한국에 상륙하지 않았고 예상대로 대한해협을 통해 빠져나갔다." 고 발표했다.# 한마디로 태풍의 본체는 예상대로 한반도에 상륙하지 않았고 태풍 끝 부분이 살짝 스쳤을 뿐인데 이런 피해가 났다고 한 것.당연히 이런 눈 가리고 아웅은 통할리가 없어서 동아일보에서 집요하게 취재를 해서, 결국 진짜 태풍 진로가 나온 기상대에서 발행한 기상월보를 바탕으로 기사를 썼고.출처 동아일보의 기사 일이 이렇게 되자 기상대에서는 잘못을 시인을 하고 기상대 고위 관료들이 줄줄이 사표를 쓰는 등의 난리가 났다.
하지만 당시에는 국민들이 기상대에서 말하는 대로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하지 않았다고 믿었기 때문에, 후일 기상청이 잘못을 시인하였음에도 당시에 태풍을 그대로 맞이했던 남해안 현지인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셀마는 위력과 피해 모두가 지금까지 기록된 태풍들 가운데서도 기록적인 수준이었는데도, 국민들이 기상대의 거짓말에 그냥 넘어가 현재도 별로 기억되지 않는 편이다.
이 사건은 기상청에게도 두고두고 오점으로 남았다. 단순히 인력의 부족이나 장비의 열악함으로 인해 분석 능력이 떨어져서 실수한 것이라면 참작이 될 지도 모르겠으나, 해외의 기상 발표를 모조리 개무시한 것도 모자라 피해 후에 조작까지 했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
4.2. 유사 사례
2012년 태풍 볼라벤이 한국을 향해 접근하자 루사나 매미를 방불케 하는 볼라벤의 강력한 위력, 그리고 수도권을 위험반원에 집어넣는 가히 최악이라 할 만한 진로 때문에 나라 전체가 발칵 뒤집어졌다. 전국적으로 대규모 휴교 사태가 벌어졌고, 생필품을 사재기하고 창문에 신문지나 테이프를 붙이는 등 온 국민이 태풍 대비 태세에 들어가 바짝 긴장했다.하지만 막상 볼라벤이 강도 '강'의 세력을 유지하면서 옹진반도에 상륙하는데도 서울에는 순간풍속 20 m/s 이상의 강풍이 불기는 하였으나 10분 풍속은 상대적으로 약하였고, 강수량도 적어 수도권과 중부지방의 피해는 경미했다. 이 때문에 남부지방은 볼라벤 - 덴빈 - 산바의 전무후무한 3연타로 처참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이 수도권에서의 볼라벤 설레발 여파가 워낙 커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상식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인데, 이는 이후 밝혀진 이유로는 기상청이 또 틀려버린것. 이미 태풍은 수도권과 비슷한 위도로 올라왔을 때 열대폭풍 (최대풍속 18~24m/s)수준으로 약화되어 있었고, 관측처럼 옹진반도로 상륙한 것이 아니라 백령도 서쪽을 지나고 있었다. 애초에 이미 약해진 태풍이 서울하고 수백km 가까이 떨어진 지역을 지나고 있었으니 저런 상황이 연출될 수밖에 없었다.
심각한 수준의 오보였던지라 일각에서는 셀마 때처럼 기상청이 태풍 진로를 조작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고, 부정하던 기상청은 세계 기상 학술대회에서 망신을 당해야 했다.
한편, 2013년 8월 국가태풍센터에서는 볼라벤을 포함한 2012년의 모든 태풍의 사후 해석을 완료했는데, 이는 과거 논란이 되었던 진로가 재분석 결과 다른 기관들의 예측과 같아진 것으로 수정[11]되었다. 하지만, 기상청의 태풍 찾아보기 에서 과거 태풍자료를 보면 기존의 속보 해석 진로도는 아직도 수정되지 않고 있다.